혹독한 스탈린 시대와 세계 대전을 거치는 동안 러시아인은 누구나 힘들게 살았고, 인텔리겐치아에게도 그 힘든 삶은 비껴가지 않았다. 납득할 수 없는 죽음과 이유도 모르는 수용소로의 유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엉뚱한 곳으로의 강제 발령이 비일비재했고, 살기 위해서는 그러한 억울함과 부당함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소네치카는 그러한 시대와 그 후 주어진 기만적인 해빙기를 온 몸으로 지나온 소냐(소네치카)라는 여인과 그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행복보다는 불행 쪽에 가까운 이 여자의 일생을 작가 울리츠카야는 정확하고 사실적인(어떨 땐 폐부를 찌르는-‘무언가를 앗아가는 사람에게는 역설적으로 관대하고 퍼주는 사람에게는 끔찍이도 잔인한 여자의 본성(p.16)’ 같은), 신랄한 문장으로 압축적 서사의 힘을 보여준다. 또한 흔들림 없는 객관성을 유지함으로써 소네치카의 인생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금지시킨다. 불행한대도 의연하게 살아가는 여자의 강인함을 부각시키는지, 아니면 그것으로 사실 이 여자가 엄청 불행하고 바보스럽다고 하는지 조금 헷갈린다.

 

특별히 예쁘다고 할 게 없고 근시이기도 한 소네치카는 일곱 살 때부터 스물일곱 살까지 책에 빠져 산다. 자신의 인생에 독서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시작부분에 서술된 소네치카의 광적인 독서에 머물 수밖에 없다. 똑같이 책을 좋아하는 습성에 대한 반가움은 잠시이고 그 뒤에 따르는 울라츠카야 작가의 뼈를 때리는 문장 때문이다. 어떤 이유로든 책벌레가 된다는 것은 타고난 기질과 그쪽에 대한 재능이 있어서이다. 하지만 책벌레의 삶은 책 속의 삶과 현실을 잘 구분하지 못하거나 가벼운 정신병리적 기운(p.11)’마저 들게 만들 수 있다. 경계에 머물며 그저 그렇게 인생의 대부분을 보낼지도 모른다.


[이것은 무엇이었을까모든 예술에 전제되는 유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인가미숙한 어린아이의 덜 깨인 순진한 믿음인가상상력의 부재로 허구와 현실 사이의 경계가 존재한다는 인식이 없는 것일까아니면 그 반대로 자아를 잊을 정도로 환상의 영역으로 깊숙이 들어가 그 경계 바깥의 모든 것들이 의미와 내용을 상실하는 것일까?

그녀는 마치 꿈조차도 읽는’ 듯했다. -p.10~11]

 


소네치카는 도서관의 지하 보관실에 근무하며 책 속의 삶을 이어간다. 그곳에서 예술가의 삶을 포기하고 부조리와 강압적 삶에 적응한 유린당한 유럽 인텔리겐치아47세의 로베르트 빅토르비치의 뜬금없는 청혼을 받아들인다. 결혼과 동시에 소네치카는 믿고 있었던 책 속의 삶을 너무나 가볍게 던져 버리고 억척스럽게 집안을 이끌어가는 일상의 삶을 사는 전사가 된다. 남편을 사랑하고 그가 주는 사랑에 황송할 만큼의 행복을 느낀다. 다시 예술가로 돌아간 빅토르비치는 소네치카가 가족으로 받아들인 폴란드 소녀 야샤와 사랑에 빠져 그녀를 자신의 뮤즈로 삼는다. 소네치카는 남편과 야샤의 사랑을 아무 저항 없이 인정한다.

 

그토록 애써 마련한 집과 남편도, 자신을 전혀 닮지 않은 딸인 타냐도 모두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소네치카에게 남은 건 늙어버린 자신밖에 없었다. 공허와 주어진 인생을 그대로 수긍하며 살아왔다는 안타까움뿐이었다. 소네치카는 그 적막과 외로움을 이겨내고자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다.

 

결국 소피야 이오시포브나에게, 책벌레인 우리들에게 책이란 무엇인가? 독서에 대한 타고난 재능으로 책 속의 문장에 공감하며 감동을 느끼는 행복을 얻지만, 그것은 일상에, 자신의 선택에 그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저 책 안에서 위안과 충분한 자유를 얻는 것으로 만족하는 건 아닌지.

 

 


거의 같이 늙어가고 있지만 아흔의 무르는 예순의 딸인 안나 표도르브나에게 폭력적으로 군림하고 있다. 안과 의사인 안나는 인텔리겐치아이지만 엄마에게 꼼짝없이 복종한다. 안하무인에 참을성 없고 변덕스러운 무르는 평생 딸을 부려 먹는다. 소네치카보다 스페이드의 여왕의 안나가 더 불행해 보인다.

 

작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는 격동의 시기를 지나온 러시아 여성의 삶을 짧은 분량이지만 시대적 배경 안에 각 인물의 성격과 개성을 밀도 있게 잘 녹여내고 있다. 그렇지만 왜 소네치카와 안나가 자신의 삶에 놓인 부당성에 분노하지 않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시대 여성으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또는 계속되는 인생의 부단한 전진 속에서 다져진(책읽기를 포함한) 포용력이라고 보기엔 안타까움이 많이 남는다.



 

 

 

 

 

 









소네치카가 남편의 공방에서 발견한 그림에 있는 하얗게 빛나는 하얀 눈을 가진 여자가 야샤라고 알아챈 순간 그녀는 자신의 주위에 눈이 쌓여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길에는 5월의 형형색색의 녹음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녀는 십칠 년간의 행복한 결혼생활이 끝났다고, 벌써 오래 전에 벌어졌어야 하는 일이 지금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책장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책이나 골라 읽는다. 소네치카가 고른 책은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벨킨 이야기귀족 아가씨-농사꾼 처녀였다.

 

그녀는 책 속의 문장에 몰입하며 다시 행복을 느낀다. 예술가인 남편의 기질을 이해해주고 그의 뮤즈가 될 수 없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며 본래 좋아했던 책의 세계로 돌아간 그녀에게 더 이상의 불안과 강박은 없어졌고, 책을 통한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무심결에 고른 책은 러시아 문학에 냉소적이었던 남편에게 유일하게 예외적이었던 푸시킨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스페이드의 여왕은 감추어져 있는 앙심을 의미(p127-푸시킨의 스페이드 여왕)’하는 그대로 푸시킨의 스페이드 여왕은 권선징악적 내용을 담고 있다. 노 백작 부인에게 카드 게임에서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3장의 번호를 가르쳐 달라고 해 백작 부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게르만은 스페이드 여왕 카드 패로 전 재산을 잃고 정신병원으로 가게 된다. 백작 부인에게 모질게 시달렸던 가난한 양녀 리자베타는 상당한 재산을 가진 친절한 젊은이와 결혼을 한다.

 

푸시킨의 스페이드 여왕과 동명의 소설인 울리츠카야의 스페이드의 여왕은 푸시킨의 소설과 플롯은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간다. 스페이드 여왕인 무르의 존재는 너무나 크고 확고해서, 주변 사람들을 시들게 한다. 안나는 어머니인 무르를 의자로 내리치고 싶어 하고, 머리끄덩이를 잡고 싶고, 혐오와 구역질(p.110-울리츠카야의 스페이드의 여왕)’을 느끼지만 한 번도 실천한 적이 없다. 어머니에게 알리지 않고 아이들을 전 남편이 있는 곳으로 보내려는 계획을 세우지만 안나의 삶은 너무 어이없게 끝나고 만다.

 

울리츠카야의 스페이드 여왕의 악령은 나쁜 사람을 벌주는 것이 아닌 자기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오히려 잠식해 버린다. 푸시킨의 소설보다 울리츠카야 소설이 더 빛나는 건 이 부분 때문이다. 어이없고, 말도 안 되지만 사실 이러한 일들이 우리에게 자주 일어난다. ‘관계라는 종속적인 것이 사람의 발목을 잡고 지옥으로 끌어당긴다. ‘스페이드의 여왕의 마지막 내용이 너무 먹먹하고도 슬펐다. 섬뜩하기도 했다.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오랫동안 생각했다.

 

내가 읽은 러시아 소설은 도스토옙스키 작가의 작품이 많다. 언제나 그의 작품을 읽으며 감탄하지만 새롭게 만나는 러시아 작가도 정말 매력적이다. 이번에 만난 울리츠카야의 작품 역시 좋았다. 너무 장황한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보다 분량이 훨씬 적었지만 그의 작품을 읽는 것만큼 풍성했다. 러시아 여성에 대한, 러시아 여성 작가가 쓴 글이라 재미있었고 공감한 내용이 많았다.


[안나 표도르브나는 차가운 우유팩을 들었다십오 분 후에 아이들이 떠나고두 시간이 더 지나서야 무르는 아이들이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그때는 아마도 이미 파흐라에 있을 것이다안나 표도로브나는 무르의 눈이 휑해지고조용하고 쉰 목소리가 유리가 쨍그랑하는 듯 날카롭게 올라가 고함치는 것을 상상했다깨진 그릇의 파편들가장 비열하고 참을 수 없는 여편네의 욕설.....그러고 나서는 별안간 이 일이 이미 일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즉 안나는 힘없는 손을 들어 화장을 한 늙은이의 따귀를 기분좋게 힘껏 갈긴다이후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p143~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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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12-10 10: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러시아 특유의 가난하고 비극적인 이야기가 좋더라고요~!!
이 책을 읽었던 감상평이 떠오르네요 ㅋㅋㅋ

페넬로페님 역시 러시아 소설 전문가 이십니다~!!

페넬로페 2023-12-10 11:55   좋아요 3 | URL
러시아가 워낙 역사의 굴곡이 심해 비극적인 스토리가 많은 것 같아요.
러시아 전문가는 당연 새파랑님 이십니다. 아마 누구나 인정할걸요^^

dokkikorea 2023-12-10 15: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네요

미미 2023-12-10 22: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녀는 마치 꿈조차도 ‘읽는‘ 듯했다!! 읽다 보니 김영하 작가 팟케스트에서
<소네치카>줄거리를 들어봤었네요. 남편이 너무 어처구니 없어서 가슴 아팠던 것 같아요.
그래도 페넬로페님의 리뷰를 보니 책으로 읽고 싶어집니다. 어느 것이 발췌문이고 어느 것이 리뷰인지 페넬로페님 문장이 아름다워서 헷갈렸습니다. >.<

페넬로페 2023-12-10 23:09   좋아요 3 | URL
남편이 정말 어처구니가 없죠.
러시아 여성의 삶도 녹록지 않았다는 걸 울리츠카야 작가가 잘 썼더라고요.
새로운 작가의 발견이었습니다.
저는 그저 위대한 작가의 작품을 훑었을 뿐입니다 ㅎㅎ

희선 2023-12-11 0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는 박경리상 받기도 했어요 예전에 다른 나라 사람이 상을 받아니 했군요 그저 그렇게 알고 책은 읽어본 적 없어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한 사람이 나오다니, 저는 어릴 때는 책을 안 봐서... 책과 현실은 아주 다르다고 생각하기도 하는군요 그래도 사람이 사는 데 책이 주는 게 있기는 하겠지요 사람은 책을 읽지 않아도 사는 데 문제 없군요 안 보는 것보다 보는 게 좀 나을 듯합니다 다른 즐거움이 없다면... 제가 그렇군요


희선

페넬로페 2023-12-11 16:41   좋아요 1 | URL
박경리상이 있다는 걸 저는 이번에 알았어요. 소네치카는 프랑스 메디치상도 받았는데, 이번에 한강 작가가 받은 상이더라고요.
책은 안보는 것보다 보는 게 훨씬 더 좋겠지요^^

서곡 2023-12-11 1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사 바꾸셨네요 예쁩니다 ㅎㅎ 월요일 저녁 편안히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3-12-11 20:30   좋아요 1 | URL
네, 오늘 일리야 밀스타인 전시회 보고 와서 작가의 서재 그림으로 바꿔봤어요^^
오늘 하루종일 비가 오네요.
건강한 저녁 되시길요^^

책읽는나무 2023-12-12 1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한 기분이 절로 들었습니다.
페페 님의 리뷰를 읽는 동안 말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페넬로페 2023-12-12 12:46   좋아요 1 | URL
우아한 기분~~넘 좋으네요 ㅎㅎ
덩달아 저도 순간적으로 우아한 기분이 들어 기뻐요♥

2023-12-12 1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12 1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12 2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