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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 - 무리 짓지 않는 삶의 아름다움
박홍규.박지원 지음 / 사이드웨이 / 2019년 12월
평점 :
내내 읽다가 늙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사람으로써, 일단 이 책의 제목이 나를 강력하게 불렀다. 부제목으로 '무리 짓지 않는 삶의 아름다움' 도 마음에 들었다. 박홍규와 박지원의 이름을 처음 들어 보아서 그분들에 대해 알고 싶기도 했다. 이 책은 평생을 내내 읽으며 살아온 학자 박홍규의 삶과 생각에 대해 박지원이 묻고, 박홍규가 답하는 대담집이다. 많이 읽으며 살아왔기에 여기엔 당연히 책얘기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책을 통해 발견한 지혜를 세상을 향해 내던지는 담론이 더 많다.
한평생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달려 학교를 오가는 사람, 오늘도 가방에 도시락을 싸든 채 홀로 도서관에 틀어박히는 사람, 노동법을 전공하고 법대 교수를 지내며 한국 사회와 노동 현실에 대한 발언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 그리고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40년간 150권이 넘는 책을 쓰고 옮겼던 사람....
책머리에 박홍규옹에 대해 이렇게 쓰여져 있다. 자발적인 단독자의 길을 택하고 좌우를 떠나 모든 진영과 집단의 패거리 문화를 진심으로 싫어한 사람으로 아나키스트적인 계몽주의자의 면모를 보이는 분이다.
70을 눈앞에 둔 분으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교수출신으로 아웃사이더를 자처하고 모든 권위와 가족주의를 해체하고, 불합리, 억압과 편견을 버리자는 주장은 쉽지 않다. 상당히 진보적인 시각으로 지금의 현실을 비판한다. 학자이기에 누구나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담집을 읽어가며 이 분은 사회적인 실천도 많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지향하는 노년의 삶과 생각들에 많은 구심점이 되어 주어 좋았다.
읽는다는 것은 고독하고 시간이 많이 드는 것이다. 더 많이 읽기 위해 삶의 잔가지들을 제거하고 집중하고 몰두해야 한다. 읽으면서 거기에 있는 것들을 모아가며 정리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어렵다. 얼마만큼 많이 읽어야 박홍규옹처럼 막힘없는 답변이 술술 나올수 있는지 나로서는 참 아득하다.
대담의 형식으로 된 책을 읽다보면, 두 대담자의 언어가 너무 어려워 읽어내기가 힘든 것도 있고, 지루할 때도 많다.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 는 이러한 면에서 읽기가 편하다. 여러 분야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오가며 다양한 얘기를 풀어나간다. 작가인 박지원씨는 단지 질문만이 아닌 내용에 대한 정리도 잘 해준다. 다만 이런 책은 내용에 대한 검증이 필요한데 참 힘들고 귀찮은 것도 사실이다. 무조건적이지 않게, 좋고 옳은 것만 받아들여야겠다.
이 책은 461페이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읽는 내내 양손으로 책을 눌러서 읽어야하는 불편함이 있다. 잘 펴지지가 않는다. 책의 마지막 부분의 박홍규옹의 아내분과의 인터뷰는 별로 필요없을 것 같다.
내내 읽으며 늙어 갈 수 있고, 도시락까지 싸주시는 아내분의 노고로, 내가 아닌 누군가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교수님이 부럽다. 내내 분주하게 살아가며 잠시 책을 읽을 수 밖에 없는 나의 삶과 비교된다.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하시지만 여자를 위하는 것과 여자와 똑같이 일을 하는 것은 다르다. 밥벌이와 고마움으로 모든 것이 상쇄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