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습관 - 도리스 레싱 단편선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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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뜻 제목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감성적으로 보이지만, 실제 그 내용에는 안타까움이 묻어나오는 소설이었다. 총 9개의 단편소설이 실린 '도리스 레싱'의 단편선이다. 2차세계대전을 겪은 영국의 배경이 동일할 뿐 각각의 화자와 이야기들이 다르다. 그 중 표제작인 <사랑하는 습관>을 보며 외로움과 고독함으로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조지와, 그런 그의 부인이 된 젊은 여성 보비의 이야기에 울적하면서도 진실한 사랑을 놓친 채 습관으로 사랑의 가면을 쓰게 된 두 사람의 안타까운 현실이 가슴 아팠다. 사랑의 허망함을 느끼며 여러 여성의 사랑을 전전하는 빈곤한 모습은 연극계의 거장인 조지의 재물과 지위와 상관없이 병든 환자처럼 느껴졌다. 

  1950년대 영국의 시대적 배경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하였는데, 2차세계대전 이후 폐허가 된 국가, 그리고 그 국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신적으로 피폐하고 어두운 삶을 볼 수 있었다. 연애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랑하는 습관>을 읽으며 당대의 연애와 현재의 연애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되었다. 시대적 배경이 묻어나올 수는 있겠으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은 인간의 감정을 허락없이 무자비하게 헤집어 놓기 때문이다. 그것이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이로든 말이다. 

  <사랑하는 습관>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사랑은 낭만적이고 로맨스적이지만은 않다. 사랑이라 믿었던, 혹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감춰져야했던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이다. 사랑은 삶이고 그 삶은 절망과 행복을 오간다는 것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도리스 레싱은 소설 속에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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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와카타케 치사코 지음, 정수윤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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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일본소설인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는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것은 물론 저자가 63세로 최고령 문예상을 받았다고 한다. 평범한 주부로서 살아가던 저자가 남편과 사별 후에 소설강의를 듣고 썼다는 이 작품은 그녀의 자서전과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소설 속의 주인공 74세의 모모코는 남편과의 사별 후 고독한 일상과 마주하며 살아간다. 바드득바드득 갉아대는 쥐의 소음은 모른척하며 차를 마시는데 신경을 집중하는 그녀는 슬픔과 고독으로 점철되어 있는 듯 하다. 마치 무당과도 같이 여러 존재의 인물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하는데, 처음 내용을 몰랐을 때는 신내림을 받는건가 싶을 정도로 기괴한 느낌이었다. 고향인 도호쿠 지방의 사투리로 대화하는 서로 다른 목소리의 존재들은 모모코의 일상이 스러지지 않도록 해주는 역할로 보인다.

  모모코는 누군가의 아내, 그리고 누군가의 엄마로서 수십년을 살아왔다. 하지만 현재는 적막이 두려운 집에 혼자 남겨져 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며 성찰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인간은 모두 늙고 병들며 죽어가는 존재이다. 이 책을 보면서 은교가 떠올랐는데, 그저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여러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마지막 장면도 난 마음에 들었다. 결국 사람은 혼자이지만 또 함께라는 것, 그것을 잘 보여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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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의 은밀한 밤 생활 - 한 젊은 과학자의 밤 생활에 숨겨진 아슬아슬 유쾌한 물리학 파티
라인하르트 렘포트 지음, 강영옥 옮김, 정성헌 감수 / 더숲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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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부터 궁금증을 자아내는 <물리학자의 은밀한 밤 생활>은 모든 은밀한 밤이 그렇듯이 약간은 기이하고 엉뚱한 물리학 파티의 내용을 담고 있다. 지은이의 서문에도 언급되어있듯이 물리학은 비커와 삼발이의 이미지가 그려지면서 범접하기 어려운 실험을 떠올리게 한다. 관심도 없었거니와 물리 현상을 듣다보면 미간에 주름이 생기면서 고뇌에 빠지기 때문에 접근성이 높은 학문이 아니라는 점은 아마 많은 이들이 공감할 듯 하다.

 

  <물리학자의 은밀한 밤 생활>의 젊은 물리학자 라인하르트 렘포트는 셰어하우스의 송년파티에서 무려 17시간가량이나 시간을 보내며 친구들과의 일상생활 대화 속에서 펼쳐지는 물리학을 다루고 있다. 나와 같은 물리학의 물자도 모르는 사람도 읽을 수 있도록 흥미와 접근성을 높였는데 더군다나 맥주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안읽어 볼 수가 없는 주제들이었다. 송년파티에서 있었던 주제들이니 어련할까 싶지만, 맥주병 바닥을 세게 치면 왜 거품이 나오는지 맥주를 단시간에 시원하게 마실 수 있는 방법, 건전지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확인하는 방법 등 일상생활로 물리학을 가져왔다.  


  그 중 한가지를 간단히 말해보자면, 술자리에서 소맥을 섞을 때 젓가락으로 컵 바닥을 내리치면 거품이 먹음직스럽게 생겨난다. 저자는 이 물리적 반응을 3단계에 나눠 설명하고 있다. 충돌로 인해 작은 압력파가 음속으로 이동하는데 바닥에서 팽창하여 위로 올라온다. 그 후 팽창이 다시 압축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거품이 확산되며 엄청난 수로 쪼개진다는 것이다. 이 연쇄반응들이 1초 안에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솔직히 전문을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대략적인 현상을 이해하는데는 꽤 도움이 되는데다가 매우 흥미롭기까지하여 완독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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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의 겨울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5
토베 얀손 지음, 따루 살미넨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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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유럽의 귀엽고 인기 많은 캐릭터 무민. 캐릭터가 찹살떡마냥 하얗고 귀여워서 대학시절부터 좋아했다. 무민이 좋아진 것은 대학 때 글로벌챌린지로 필란드에 잠시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무민이란 캐릭터를 알게된 후부터였을 것이다. 무민 이야기는 실제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에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내게는 무민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약간의 과업처럼 느껴질때도 있었다. 언젠간 꼭 읽을거야. 이 귀요미들을 정복하고 말겠어!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읽게 된 무민 연작소설! 다섯번째 이야기이지만 각 이야기들이 독립적이라서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단지 여러 캐릭터를 이해하는데 조금의 검색이 필요했을 뿐이다.

 무민 연작소설을 읽으면서 무민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는데 겁 많고 소심한 녀석이지만 하는 행동마다 선하고 맑아서 엄마미소를 유발하게 했다. 무민 외의 캐릭터들도 어찌나 한 개성들 하시는지 악동 미이와 철학자 느낌이 살짝드는 투티키, 초긍정 마인드의 무민마마까지 나의 시선을 끌었다. 개인적으로 무민의 겨울을 읽으면서 가장 내 마음에 들어왔던 캐릭터는 헤물렌 아저씨였다. 약간 눈치가 없어 다른 이들의 눈총을 사기도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길 줄 아는 사람. '이런 캐릭터를 좋아하다니 나도 어른이긴 하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덮지 않는 게 좋겠어. 알아서 해쳐 나가도록 내버려 두자. 어려움을 조금 겪고 나면 훨씬 잘 자랄 테니까.”

 

 북유럽의 혹독한 계절, 겨울잠에서 깨어나 유일하게 겨울이란 계절을 겪게되는 무민의 이야기에 심쿵한 여름밤이였다. 겨울을 보낸 무민의 가족들이 서서히 깨어나고 스노크메이든이 봄이 오는 기운에 가장 먼저 돋아난 새싹에 추운 밤에도 끄떡없게 유리 덮개를 덮어주자는 말이 무민이 했던 마지막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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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해리 세트 - 전2권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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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정녕 악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인가’에 대한 논제를 강하게 이끌어낼만한 소설이었다. <도가니> 이후 5년만에 펴 낸 <해리>는 도가니와 같이 안개가 자욱한 무진을 배경으로 한다. 지척에 있는 바다가 보이지 않을 정도인 무진의 안개는 촘촘한 그물망으로 타인을 갈취하고 욕망을 집어삼키는 미물들마저 가려준다(차마 인간이란 표현은 못 쓰겠다). 무진의 안개가 상징하는 것은 어쩌면 무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최근에 보았던 영화 신과함께에서 등장한 “나쁜 사람은 없다. 나쁜 상황이 있을 뿐이다”란 대사가 기억에 남았었다. 그러나 <해리>에서는 “인간은 변하지 않아요. 만일 변한 친구가 있다면 우리가 어려서 그를 잘못 본 거예요”라고 말하며 악한자의 일관성을 이야기한다. 사실 무진은 악의 동굴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폐쇄적이고 서늘하여 악인들이 무럭무럭 자라나기 좋은 환경이라고도 생각된다. 그 촘촘한 그물에 걸려드는 사람들은 역시나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다. 참 지루하지만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실인듯 하다.

"거대한 악은 작은 악의 보호막이 되어준다. 이렇게 정글로 변한 세상의 숲에서 언제나 먹이사슬의 제일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죽어나는 것이다."

"악마는 창조하지 못해. 오직 흉내 내고 베낄 뿐이야. 악마는 진부하게 하던 걸 계속하지. 그리고 말해. '원래 그러는 거예요.' '예전부터 이랬어요','관행이에요.' 이게 유일한 변명이란다.

작중 인물 ‘해리’를 분석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그녀의 악은 환경의 요소인건지 갖고 태어난 것인지에 대한 이견이 분명 존재할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이의 선악을 떠나 책의 말미에는 역시나 지루하고 변하지 않는 진실이 있었다. 악은 완전히 뿌리뽑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말을 볼 때 그 사람이 가진 삶의 태도는 중요해진다. 왜냐하면 <해리>는 쉽게 바뀔 줄 알았냐며 독자를 비웃으려는 것이 아닌 그런 고루한 세상에서 당신이 어떤 위치에 있을지 택하라는 혹은 고민이라도 해보라는 무언의 의미로 난 해석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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