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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물보라 여인숙(The Spouter-Inn)

 

모비 마라톤’ - 모비 3 천천히 읽기

 

[3장의 기본 줄거리]

추운 겨울 저렴하게 잠잘 곳을 찾아 전전하던 이슈메일은 물보라 여인숙이라는 음침하고 바람이 들이치는 여인숙에 들어간다. 불길해보이는 유화와 거대한 고래 턱뼈가 장식된 현관을 지나 술청(public room) 들어간 이슈메일은 성경에서 저주받은 요나(Jonah)’ 같은 이름을 쓰는 여인숙 주인에게 하룻밤 묵을 방을 요청한다. 마침 방이 모두 있어서 요나는 이슈메일에게 침대가 있는 방에서 작살잡이와 침대를 쓰라고 권한다. 추운 겨울 이상 여인숙을 전전할 없어 이를 수락하게 된다. 커다란 침대에서 잠들 무렵 찾아온 퀴퀘그라는 이름의 작살잡이는 식인종이었다. 와중에 이슈메일은 여인숙 주인 요나의 중재로 퀴퀘그에 대한 편견을 깨고 침대에서 단잠을 자게 된다.

 

 

3장의 주요 사건은 이슈메일이 물보라 여인숙에 들어가 곳을 찾는 과정에서, 우연히 침대에서 밤을 보내게 되는 식인종 작살잡이 퀴퀘그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퀴퀘그는 남태평양에서 작살잡이로 몸에 문신을 고래의 향유로 처리한 뉴질랜드 원주민의 머리를 팔러 나간 상황이었다.모비 놀라운 점은 소설의 중간중간에 지금부터 170 정도 전의 작가가, 백인들이 사람의 피부에 대해 갖고 있던 보편적인 사고 방식과 확연히 다른 에피파니(순간에 다가오는 깨달음 같은 ) 순간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내가 미지의 작살잡이에 대해 부당한 편견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잠시만 기다려보자.”(51)

 

식인종에게 붙들려 강제로 문신을 당했다는 어느 백인-그도 역시 고래잡이였다- 이야기가 기억난 것이다. 작살잡이도 바다를 항해하다가 그와 비슷한 일을 당한 분명하다고 나는 결론지었다. 결국 그게 어쨌단 말인가! 그것은 그의 표면일 뿐이다. 사람은 어떤 피부를 가졌든 관계없이 정직할 있다.” (56)

 

이런 생각들을 노예제가 존재하던 시기에, 그것도 백인의 집단에 있던 사람이 으레 있는 사고는 분명 아닐 것이다. 이슈메일이 잠시만 기다려보자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는 순간이 바로 에피파니의 순간이며 반성적 사고의 순간일 것이다. 멜빌은 내가 내린 결론, 내가 판단이 과연 옳은가라고 반문할 아는 소양을 갖춘 인물이다. 그렇다고 해도 당시에 백인 작가가 사람은 피부색과 무관하게 정직할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1장에서 세상에 노예가 아닌 사람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던 것처럼 당시의 시대 상황 속에서 놓고 , 상당한 논란의 여지를 남겼을 같다. 하지만 작가 허먼 멜빌은 어떤 사람인가. 몰락해버린 자신의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지금으로 말하면 고등학교 졸업할 즈음에 거친 바다로 나가 배를 타기로 사람이었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1장에서 언급한 있는 대가를 받은 에는 신분이나 피부색도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가난한 이들이 당시 경제 공황의 여파로 더욱 극심한 곤궁 속에서 살아가던 , 젊은 남자들이 있는 일로서 배를 타는 일은 나름의 보상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충족시켜줄 창구가 되었을 것이다. 멜빌의 경험은 당시에 많은 젊은이들이 이러한 경험을 했으며, 멜빌과 같은 성찰적인 사고를 있는 이들에게는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아도 놀랍고 한편으로 귀담아 들을 만한 지혜를 모비 통해 우리에게 남겨놓았다고 있겠다.

 

소설을 읽다가 흥미로운 부분은 무언가 불쑥 지나가듯 작가가 자신의 의식을 문장으로 드러내는 부분이다. 마침내 문신으로 가득한 새로운 룸메이트 퀴퀘그가 등장한 , 이슈메일은 그의 몰골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친다. “결국 그게 어쨌단 말인가! 그것은 그의 표면일 뿐이다.”(56)라고 말하는 것이다. 원서의 표현으로는 ‘outside’ 번역자는 표면으로 옮겼다. 결국 상대방의 겉모습 보고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멜빌의 판단이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소설 속의 이슈메일은 온전히 멜빌의 분신은 아니기에 일반적인 백인의 편견을 보여주기도 한다. 결국 3장에서 화자인 이슈메일이 퀴퀘그라는 인물을 만나면서 백인들의 시선을 보여주며 멜빌의 인식과 처음으로 충돌하고 있는 장이기도 하다.

 

(퀴퀘그) 30 전쟁에 참전했다가 속옷 대신 고약을 처바르고 전쟁터에서 방금 탈출한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다리도 짙은 초록색의 청개구리 떼가 어린 야자나무 줄기를 뛰어 올라가고 있는 것처럼 얼룩덜룩했다. 그가 남양에서 포경선을 타고 기독교 국가에 상륙한 혐오스러운 야만인인 것은 이제 분명해졌다.”(58)  

 

백인들의 사회, 특히나 기독교가 지배하고 있는 미국과 같은 서양 문명의 사람들이 이교도를 바라보는 무의식적이고 일반적인 시선으로 이해할 있겠다. 따라서 다시 정리해보면 3장에서는 새로운 인물 하나를 자연스럽게 소개하면서 등장 인물의 면면을 재미있는 에피소드 속에서 보여주며, 동시에 이슈메일과 퀴퀘그의 만남을 준비한 장이다. 상징적으로는 서양 문명에 속한 사람과 비서양 문명의 사람이 만나는 자리, 이들의 삶과 문화가 충돌을 시작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의 만남에서 우여곡절 끝에 사람이 같은 침대에서 단잠을 자며 마무리하는 모습은 재미있는 장면이면서도 의미심장하다. 특히나 이슈메일이 여인숙의 현관에 있던 거대한 턱뼈를 통과하여 들어온 것을 떠올려본다면, 둘은 마치 거대한 괴물 리바이어던, 혹은 성서에 나오는 요나의 이야기처럼 고래 뱃속에서 이루어지는 서구인과 비서구인의 만남, 우정이 시작되는 장면이라고 바라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부분은 다시 말하면 저자가 자신을 소설 속에서 불쑥 드러내는 부분인데, 3장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견해를 드러낸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사람(퀴퀘그) 나와 똑같은 인간이야. 내가 사람을 두려워했다면, 같은 이유로 사람도 나를 두려워했을 아닌가. 술에 취한 기독교도보다는 취하지 않은 식인종과 함께 자는 나을지도 몰라.”(61)

 

170 가까이 과거에 이러한 말을 있었던 것도 놀랍지만, 부분도 멜빌이 자신이 남태평양 마르키즈 제도의 식인종족 타이피족과 수개월간 생활했던 경험이 없었다면 이런 문장은 나올 없었을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멜빌은 함께지내던 타이피족에게 잡아먹히기 전에 탈출했다고 하는데, 그의 이러한 경험을 고려한다면, 문장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게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멜빌 자신의 목숨을 경험을 통해, 그리고 살아남았기에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문장을 나는 좋아하게 되었다.

 

 

식인 풍습과 야만 대한 시각

 

우리가 고전이라고 하는 작품을 읽다 보면 은연중에 지나치는 부분이 바로 식인 풍습 관한 사항을 만나게 되곤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분은 내게 흥미를 주는 주제다. 왜냐하면 나이가 들수록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정체는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멜빌은 135장이나 되는 소설의 앞부분인 3장에서 이미 퀴퀘그라는 식인종 등장시키고 있다. 게다가 퀴퀘그가 밤늦게 돌아다니는 이유가 고래의 향유로 처리를 뉴질랜드 원주민의 머리를 기념품삼아 백인들에게 팔러다니고 있다는 설정은 독자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무척이나 자극한다. 나는 부분에서, 그리고 3장의 마지막 부분, ‘술취한 기독교도보다 멀쩡한 식인종과 침대에서 자는 것이 낫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수상록 몽테뉴를 떠올렸다. 분명하게 예상해볼 있는 사실은 멜빌도 몽테뉴의 수상록 읽었다는 점이다. 모비 표지 다음에 바로 나오는 어원편을 지나 발췌록 보면 멜빌이 수상록 읽고 고래 관해 언급한 부분을 발췌한 부분이 나온다.

 

짐승이든 배든, 다른 것들은 모두 괴물(고래) 아가리, 무시무시한 심연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당장 삼켜져서 모습을 감추지만, 오직 바다모샘치만은 그곳으로 안전하게 물러가 잠자리로 삼는다.(14, 재인용)

[미셸 몽테뉴의 에세(수상록) 수록된 레이몽 스봉의 변호’]    


지금 부분을 다시 읽어보면서 떠오른 생각은 3장에서 이슈메일과 퀴퀘그가 여인숙의 침대에서 자게 되는 에피소드는 마치 부분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여인숙에 있던 고래의 턱뼈를 통과하여 여인숙 내부(고래 뱃속) 들어간 이슈메일과 퀴퀘그는 바다모샘치마냥 고래의 심연에서 안전하게 잠자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심연이라고 하는 장치는 무지와 죽음의 세계를 상징할 있다. 그리고 인간에게 근원적인 공포를 주는 개념의 한가운데에서 이슈메일과 퀴퀘그는 마치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 것을 맹세하는 부부처럼 침대에서 우정을 나누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심지어 여인숙의 주인장 별명을 요나라고 설정해둔 것도 생각을 더욱 그럴듯하게 하지 않은가.

 

잠시 옆길로 빠졌지만 다시 식인의 풍습으로 돌아오면, 몽테뉴 역시 흥미로운 점을 기록하고 있는 대목이 나온다. 몽테뉴의 수상록(동서문화사판, I, 218면부터)에는 식인종에 대하여라는 항이 있는데, 스키타이 족을 예로 들면서 이들 전사 각자는 자기가 죽인 적의 머리를 전리품으로 가져와 자기 문에 매달아 두는 습속을 언급하고 있기도하다. 마치 남태평양의 식인부족에서 서양문명을 보기위해 자신의 부족을 떠나왔던 퀴퀘그의 행동처럼 말이다. 물론 스키타이 족의 행위는 몽테뉴가 지적하고 있듯이 먹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극단적인 복수를 보여주기 위함이긴 하지만 말이다.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유럽에 발을 들여놓은 식인종 3명과 만나 대화하는 대목이 나오는데(이후에 정확한 부분을 찾게 되면 다시 언급해보겠다), 이들과 대화하며 이들을 야만인으로 보기보다는 다른 풍습을 가진 이들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알아낸 사항들을 기록한 대목도 있다. 멜빌이 모비 쓰면서 읽었던 수많은 책들과 자신의 30 상당시간을 보낸 바다에서의 경험을 통해 몽테뉴의 책을 읽고 공감하는 바가 많았을 것같다. 수상록을 다시 들쳐보며 눈에 띄는 부분은 몽테뉴가 사람들이 자기 습관이 아닌 것을 야만적이라고 부르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대목이다.

 

그들을 야만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연이 그 자체로 여느 상태로 나가며 이루어 놓은 성과를 야만이라고 부르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다. 그러나 사실은 오히려 우리의 기교로 사물을 그 평범한 질서에서 틀어 변경해 놓은 것들을 차라리 야만이라고 불러야 할 일이다.

[미셸 몽테뉴의 수상록, (동서문화사, 222) ‘식인종에 대하여’]    

이 표현이 다소 어려운 듯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상당히 흥미롭고 놀라운 표현이다. 마치 현대를 살고 있는 내게 나의 편견을 지적하고 있는 듯한 목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 그대로의 것, 문명화되지 않은 것을 야만이라고 부르고 있던 것인데, 몽테뉴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과연 야만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게 해주고 있는데, 몽테뉴는 자연의 순리대로 그렇게 존재하는 것들을 인간의 잔꾀와 기술로 이 자연의 질서를 변경시키는 것이 오히려 야만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닌가 반문하고 있다. 허먼 멜빌이 수상록을 읽다가 이 부분에서 자신의 작고 깊은 눈을 깜빡이며 생각에 잠기지 않았을까 싶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몇몇 고전을 읽으면서 발견하게되는 인류의 식인풍습에 대해서 점점 관심이 많아지게 되었다라고 했다. 우리가 흔히 듣는 나치 정권의 유대인 학살의 표현으로 사용하는 홀로코스트(holocaust)는 사실 번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고대 유대교의 풍습에서 어린아이를 제물로 삼아 불에 태워 신에게 바치는 의식으로서의 번제말이다. 이를 히틀러의 나치는 자신들의 민족주의와 결부시켜 만들어낸 유대인 학살로서의 의미로 사용했는데, 이 용어의 의미를 살펴보면 결국에는 인류의 유아살해 내지는 식인풍습의 흔적과 만나게 된다.

 

식인풍습과 관련하여 동양의 기록도 보인다. 청나라를 수개월간 여행하고 《열하일기》(1783)를 남겼던 박지원 선생도 중국 도사들이 어린 아이를 먹는 풍습에 대해서 언급하는 대목이 나온다. 우리가 《열하일기》에서 재미있는 부분만 많이 접할지 모르지만, 박지원 선생은 여러 군데에서 이 식인풍습에 대해서도 잊지 않고 기록하고 있다. 이 부분은 나중에 여러 자료와 함께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다시 고민을 해볼 생각이다. 식인풍습은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할 때 한번쯤 만나게 되는 주제가 아닐까한다.  

 

 

여인숙 현관에 있는 그림이 주는 불길한 전조와 숭고미

 

3장에서 이슈메일이 물보라 여인숙 현관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발견하는 것이 한쪽 벽에 걸려있던 커다란 유화 이었다. ‘불가사의한 그늘과 그림자들의 집합체 보였던 그림의 정체에 대해 이슈메일은 궁금증을 갖는다. 마치 마녀 시대에 야심 있는 젊은 화가가 저주받은 혼돈의 세계를 나타내려고 듯한 그림, 정체불명의 그림을 유심히 뜯어보는 장면이 페이지 넘게 지속되고 있다. 마치 괴물과도 같은 무언가 길고 유연하고 불길해보이는 검은 덩어리 가닥의 푸르고 희미한 수직선 위에서 떠돌고 있는 형상에서 이슈메일은 상상할 없는 숭고함 있다고 까지 말한다. 그림의 정체에 대해 더욱 궁금해진 이슈메일은 여러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만 그가 생각하는 화가의 의도를 정리하면 다소 불길한 내용이다. 이슈메일의 해석은 곶을 돌다가 허리케인을 만나 좌초한 배의 돛대에 성난 고래 마리가 선체를 뛰어넘으려다가 돛대에 꽂힌그림이라는 것이다. 황당하기도하고 기발하기도 이슈메일의 평가는 결국 무서운 장면으로 결론을 내리게 되는데, 마치 소설의 방향이나 결말과 관련이 있는 불길한 전조가 아닐까 생각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슈메일이 여러 공상을 하며 그림의 의미를 알아내는 과정은 마치 스위스 정신과 의사가 개발했다는 '로샤(Rorschach) 테스트'를 닮았다. 오늘날 검사 방법이 얼마나 신뢰성을 얻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추상적인 그림을 보고 자유 연상을 하는 과정을 통해 개인의 심리적 특성을 알아낼 있다는 것이 검사의 목적일 것이다. 정체불명의 , 신의 섭리에 의해 이슈메일이 바다로 다시 나가게 1장의 사연을 떠올린다면 멜빌이 3장의 시작을 정체모를 유화에다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는 것은 소설의 기본적인 전말에 대한 저자의 의도를 추측하게 해주는 부분이다.

 

한편 멜빌이 사용한 숭고함(sublimity)이란 개념에 주목해 보게 된다. 용어 뒤에 숨어 있는 역사적 맥락은 연구해볼만할 주제라는 생각을 적이 있다. 우리가 숭고함이란 단어를 어떤 상황에서 사용하는지 떠오르는 대로 언급해보자면, 나는 우선 니체가 알프스 산맥의 실즈 마리아에서 보았다는 거대한 구름바다를 떠올리곤 한다. 니체가 영원회귀사상을 떠올렸다는 알프스 산맥말이다. 동시에 독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가 그린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1818) 떠올리곤 하는데, 바로 인간이 대자연 앞에 섰을 느끼는 그런 압도감과도 같은 것일까 생각해본다. ‘숭고미 대해 미학자들이 책을 쓴다면 아마도 권을 써도 모자를 같다.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1790) 유명한 영국 보수주의의 기수 에드먼드 버크는 숭고 개념과 미학적 개념에 대해서 저서(숭고와 아름다움의 이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 남긴 것으로 알고 있다. 멜빌은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 혁명에 관한 저서와 숭고미에 대한 저서를 읽지 않았을까 상상해보게 되는 대목이다. 숭고함이라는 용어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아마도 버크의 저서에 나와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 버크의 저서들을 읽어보진 못했으므로, 서적들은 앞으로 내게 남은 숙제가 될터이다. 멜빌은 모비 집필하면서, 그리고 20대의 대부분을 바다에서 보내면서 망망대해에서 거대한 해양동물과 마주친 경험, 자연의 숭고함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없는 불가항력적인 힘을 다시금 기억해 냈을 것이다.         

 

모비 3장은 다소 편이다. 하지만 멜빌은 소설이 나아갈 불길한 전조에 대한 짤막한 암시와 새로운 등장인물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제시해주고 있는 장이기도 하다.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멜빌의 글쓰기 방식은 불쑥불쑥 저자 자신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부분을 조규형 교수는 영미 문학, 어떻게 읽는가: 감성과 실천(2019)에서 사건의 전개와 더불어 이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로 구성되어 있다’(196)라고 정리한다. 결국 이슈메일의 입을 통해 멜빌의 사유가 드러나는 대목을 나는 좋아하게 되었다. 엄청난 독서량을 통해 고래와 포경업에 관한 백과사전적인 지식을 망라한 부분을 앞으로 지나게 것이다. 물론 나는 여기서 부분을 되풀이해서 정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기록해 두려는 사항은 모비 읽으며 내가 반응한 흔적을 입자 검출기처럼 기록해두자는 것이다. 생각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든, 자연히 흘러가도록 내버려두고 이를 들여다볼 것이다. 마치 멜빌이 모비 집필하면서 그랬을 처럼 말이다.  

 

 





[참고도서 자료]

모비 ,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작가정신]

Moby-Dick or, The Whale, Herman Melville, [Penguin Classics]

수상록(I), 미셸 몽테뉴 지음, 손우성 옮김 [동서문화사]

영미 문학, 어떻게 읽는가: 감성과 실천, 조규형 [세창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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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마라톤’ - [2] 여행가방(The Carpet-Bag)

 

지난 1장을 읽고 두서 없는 글을 보니 앞으로 어떤 식으로 써야할지 걱정스럽긴 하다. 다시 변명을 해보자면 앞으로 적어 나갈 나의 독후 기록들은 결국 그때 그때 모비 천천히 다시 읽으며 내가 반응한 결과의 모음일 뿐이다. 훗날 글을 보고 유치한 생각들에 새삼 부끄러움이 든다면 나름대로 의미있지 않을까. 그동안 그만큼 생각이 달라지거나 자라났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아무튼 이러한 작은 바람을 가지고 계속 해보려고 한다.

 

지난 1장을 다시 떠올려보자면 1장은 독자가 쉽게 지나칠 있지만 중요한 정보들을 많이 담고 있다. 소설의 화자인 이슈메일의 내러티브가 곧바로 시작하며 자신에 대한 이야기와 공간적인 정보를 풀어 놓는다. 1장의 제목 어렴풋이 보이는 것들에서도 암시하고 있듯이 자신이 고래잡이배를 타려고 바다로 향하는지에 대한 동기를 설명하는데, 물이 내포하는 근원적인 마력을 포함하여 자신이 책임 있는 자리가 아닌 일개 선원으로 배를 타려는 이유에 주목해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고래잡이 배를 타려고 하고 당시에 포경업의 주도권을 육지에 있는 뉴베트포드에 건네주고 쇠락해가는 낸터킷 섬에서 굳이 출항하려는 이유를 신의 섭리 기대고(청교도적인 배경을 찾아볼 있다) 있기도 하다. 아울러 1장을 마무리하며 멜빌은 덮인 거대한 산처럼 거대한 유령 같은 고래의 이미지를 상상하고 있는 대목에서 소설 전체의 방향, 소설의 어조를 어떤 느낌으로 설정할 것인지를 살짝 드러내고 있는 같다. 특히나 주는 공허함, 무지 혹은 무지에 대한 공포, 숭고함, 불가항력적 신비와 섭리와 같은 이미지와 오버랩되며 모비 딕의 숨결을 미리 느끼게 해주고 있다.

 

2장의 줄거리를 간단히 정리해본다. 이슈메일은 맨해튼을 떠나 코넥티컷주 뉴베드퍼드에 도착했다. 때는 12월의 어느 겨울 , 매서운 추위로 유명한 미국 동부의 겨울 밤이었다. 이슈메일은 당시에 포경산업의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기 시작하며 번성하던 뉴베드퍼드에서 고래잡이 배를 있었지만, 이제는 쇠락해가던 낸터킷 섬으로 건너가서 고래잡이 배를 타기로 결심한다. 이슈메일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낸터킷은 오랜 역사를 지닌 포경업의 발상지이며, 미국에서 최초로 고래의 시체가 해안에 떠밀려 이었다. 게다가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통나무배를 타고 고래를 잡으러 처음 출격한 이었다. 실제로 멜빌이 20 초반에 포경선을 탔을 뉴베드퍼드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낸터킷 주민이자 작가인 너새니얼 필브릭(Nathaniel Philbrick) 사악한 , 모비 보면, 멜빌이 낸터킷 섬에 대한 묘사를 보면 낸터킷 섬에 와보진 않았으리라 말한다. 따라서 멜빌의 경험은 뉴베드퍼드에서 출항한 것에 기반하지만, 소설 속의 극적인 묘사를 위해 자신만의 낸터킷섬을 구상했으리라 보는 편이 설득력이 있다.

 

다시 줄거리로 돌아와서 늦은 밤에 도착하여 낸터킷섬으로 떠나는 배를 놓친 이슈메일은 이틀밤을 머물고서야 다시 낸터킷섬으로 떠나는 배를 있기에, 가벼운 주머니를 의식하며 저렴한 숙소를 찾기 시작한다. 흑인 교회를 비롯하여 여러 군데를 전전하다 이슈메일이 발견한 여인숙은 피터 코핀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물보라 여인숙이었다. 코핀이 뜻하기도 한다는 것을 멜빌은 다시 일깨우며 소설의 불길한 전조를 예고하는 듯하다. 2장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슈메일이 여인숙에 들어와서 겨울 외풍이 휙휙 느껴지는 초라한 여인숙에서 옛날 어느 작가가 남긴 말을 떠올린다.

 

유로클리돈이라는 폭풍에 대해서 생각할 , 바깥쪽에만 성에로 덮인 유리창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느냐, 아니면 안팎에 서리가 내려 있고, 민첩한 죽음의 사자만이 유리를 끼울 있는, 창틀도 없는 창문으로 밖을 관찰하고 있느냐에 따라 놀라운 차이가 있다.”(42)

 

붉은 비단옷으로 몸을 감싼 부자 영감 다이비즈는 말하겠지. 유로클리돈? 그게 어쨌다는 것이냐. 서리가 내려서 정말 멋진 밤이군. 오리온자리의 별들은 얼마나 밝게 빛나는가. 북극의 오로라는 얼마나 아름다운가!”(42)

 

옮긴이의 주석에 따르면, 유로클리돈은 지중해의 강한 북동풍으로 매섭고 차가운 바람을 의미할 테다. 바깥쪽에만 성에로 덮인 유리창은 난방이 되는 방을 뜻할 것이다. 안팎에 서리가 내려 있는 방은 난방이 거의 안되는 외부와 내부의 온도 차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법한 그런 방을 뜻한다. 따라서 추위로 거동도 하기 힘든 사람이 아닌 죽음의 사자만이 유리를 끼울만한 그런 방에서 밖을 내다보는 것과의 차이를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멜빌은 여기서 인간의 보편적인 습성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따뜻한 방에서 추운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에게 별들은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겠는가. 하지만 난방이 안되는 곳에서 추위에 덜덜 떠는 사람들에게는 이럴 겨를이 없다. 흥미롭게도 멜빌은 이슈메일의 입을 머리 속에서 추운 겨울 난방이 안되는 이들이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도를 한다. 혹은 추운 겨울 밖에서 떨고 있을 사람들의 입장을 떠올려보고 있다.

 

하지만 나사로는 무슨 생각을 할까? 푸르뎅뎅하게 손을 웅대한 오로라쪽으로 들어올린다고 해서 손을 녹일 있을까? 나사로는 여기보다 수마트라 섬에 있고 싶지 않을까? 적도를 따라 길게 몸을 눕히고 싶지 않을까?”(42)

 

멜빌은 유복한 상인집안의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스코트랜드 , 어머니는 데덜란드 계의 명문가였다. 하지만 멜빌이 성인이 때까지 유복한 집안의 자녀였다면 이런 생각을 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12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고 가족이 경제적으로 몰락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가족은 외가로 옮겨가 살게되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멜빌은 우리의 나이로 따지면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생의 나이에 학교를 중퇴하고 일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19 상선의 선원으로 바다로 나아가는 멜빌의 삶을 떠올려보면, 청소년기에 거친 사회로 나가 스스로 책임지는 삶을 배워야 했던 그가 바라본 사회의 모습들은 모비 구석구석에 각인되듯 드러나고 있다. 그대로 자신이 난방이 되어 창문 밖에만 성에가 끼어있는 에서 살다가 어느 갑자기 창문 안팎에 서리가 내리는 환경에서 지내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경험이 멜빌에게 사회의 다양한 층위를 있는 눈을 갖게 해주었던 같다. 멜빌은 사회 구성원 각자가 처해있는 입장의 상대성에 대해 생각할 아는 작가였고, 그래서 내게는 더욱 놀랍고 새롭게 발견하는 재미를 주는 것이 바로 모비 이기도 하다.  

 

이어 이슈메일은 신발에 얼어붙은 얼음을 털어내고, 물보라 여인숙 어떤 곳인지 알아보기로 하자.”(43)라고 3장의 내용을 예고하며 독자를 여인숙 안으로 끌어들인다.

 



 


[참고도서 자료]

모비 ,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각가정신]

사악한 , 모비 , 너새니얼 필브릭(Nathaniel Philbrick), 홍한별 옮김, [저녁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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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비딕

허먼 멜빌 지음  |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1] 어렴풋이 보이는 것들(Loomings)

 


모비 마라톤 시작하며

 

올해는모비 Moby-Dick 우리에게 남겨주었던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1819-1891) 태어난 200주년 되는 해이다. 중년이 되어 처음 읽어보는 모비 읽으면서 정말 놀라운 책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소설에서 주인공인 이슈메일이 고래잡이 배를 타는 코넥티컷 주의 낸터킷이란 섬은 당시에 이미 포경업의 발상지라는 위상만 남기고 산업이 내리막길을 향하던 곳이었다. 현재 낸터킷 섬에서 매년 개최한다는 모비 마라톤이라는 행사의 이름을 따서 (행사에 참여는 못하지만) 나도 모비 다시 읽기 해보려고 한다. 행사에서는 참가자들이 쉬지 않고 일간 모비 읽는다고 하는데, 나는 이와 반대로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135개로 이루어진 () 대한 독후기를 남기는 일을 꾸미게 되었다. 그러므로 모비 읽은 후에는 135편의 독후집을 남기는 일이다. 길면 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하나의 () 읽으면서 나의 특기인 옆으로 새기, 딴생각하기 모아놓은, 무척이나 쓸모없지만(?) 흥미로운 여행이 같다.   

 

우선 어릴 읽었던 아동문고판 모비 보면 고래나 포경업에 관련한 자세한 지식은 모두 빠져있고, 줄거리만 나와있다. 나는 거대한 장편 소설을 문장으로 어떻게 요약해볼 있을까 생각해본다. 아마  커다란 고래를 스토킹하다가 소설의 화자를 제외한 모든 이가 몰살당한 이야기정도로 정리해볼 있지 않을까? 하지만 전체 작품을 읽는다는 일은 쓸모없어 보이는 부분이라도 저자의 의식을 따라가는 행위이기에 무의미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안개비가 내리는 우산 없이 돌아다니다 어느 순간 옷이 흠뻑 젖어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 이제 나의 쓸모없는 시도에 대한 의미부여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문장부터 따라가보려 한다.

 

1장에서는 인물과 시작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등장한다. 자신을 이슈메일이라 소개하고, 고래잡이 배를 타러 낸터킷 섬으로 가는 길에 배를 놓쳐 뉴베드포드 항구에 일간 머물러야 하는 상황을 전한다. 여기서 자신이 고래잡이 배를 타러 바다로 왔는지, 그리고 일개 선원으로 지원하는 이유를 비롯하여 화자의 인물됨을 있는 단서를 멜빌은 마련해두었다. 참고로 독후 마라톤의 모든 번역은 작가정신출판사의 김석희 번역가의 번역을 따르려고 한다.

 


 

문장 ‘Call me Ishmael’ 대해

 

언젠가 어느 영문학과 교수님이 번역소프트웨어를 놓고 문장으로 농담을 했던 기억하고 있다. 어느 유명 회사의 번역소프트웨어로 문장을 넣었더니 내게 전화해줘, 이슈마엘이라고 했다나. 물론 딥러닝과정을 통해 좀더 개선할 여지는 있겠지만, 아직 상황 판단이나 맥락에 대한 정보 혹은 수혜자의 의도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그것도 구체적으로), 모든 작업에 대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 힘들다는 깨달음을 주고 있기도 하다. 아무튼 문학사상 유명한 문장 순위에 오를 만한 문장에 대한 번역을 김석희 번역가는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라고 시작하고 있다. 여기서 ‘~라고 해두자라는 표현이 주는 미묘한 뉘앙스를 좋아한다. 말하자면 화자의 이름이 정말 이슈메일인지 아닌지 보다는 보편적인 상징을 지닌 인물임을 드러내주고 있는 같아서이다. 옮긴이 주석에 따르면 이슈메일 구약성서 <창세기> 나오는 이스마엘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인의 조상 아브라함 그의 하녀였던 하갈사이에서 태어난 이스마엘 아브라함 본처인 사라역시 아들을 낳자 집에서 쫓겨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따라서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스마엘 방랑자또는 세상에서 추방당한 라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지고, 따라서 소설의 이슈메일역시 이러한 보편적인 상징성을 지닌 인물로 있겠다. 오랜 세월 세계를 떠돌았던 유대인의 모습이 마치 구약성서에 예정된 신의 섭리의 일부로서 보일 있겠다는 점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다시 보면 이슈메일 운명은 이미 소설의 문장에서 이름지어짐 통해 고난과 역경이 준비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도 있겠다.

 

과거 스페인에서  국토회복운동(레콩키스타, Recongquista)’으로 알려진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유대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디아스포라로서 살아야만 했던 운명을 소설의 문장을 읽다가 떠올려 보았다. 조사를 해보니 레콩키스타 이미 700년대 초부터 시작하여 15세기 (1492)까지 7세기 동안 , 현재 스페인 지역의 이베리아 반도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이슬람국가를 축출하고, 기독교 국가의 영토를 회복하려고 했던 운동을 가리키는데, 과정에서 구약성경에 비중을 두는 유대교 역시 탄압의 대상이 된다. 유대인들은 기독교로 개종을 하거나 아니면 이베리아 반도를 떠나야만 하는 선택의 기로에 있었으며, 결과 자신이 독실한 유대교인임을 드러내지 않거나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과 이를 거부하고 유럽 전역에 유대인들이 퍼져나가게 되는 실마리를 제공한 역사적 사건이다.

 

 

세계를 방랑하는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생각해본다

 

오늘날 유대인들의 영향력은 한계를 가늠하기 힘들다. 인류의 유산(서양 문명에서) 속에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유대인들과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중세 시대의 국토회복운동과정에서 특히나 고통받았을 유대인들은 유럽 전역으로 이주하게 되는데, 영향을 우리는 고스란히 받고 있다. 스페인에서 네덜란드로 건너간 유대인들의 후손에는 철학자 스피노자도 있고, 수상록으로 알려져있는 프랑스인 몽테뉴 또한 모계 쪽에 유대인의 핏줄이 있다. 한편 여러 사상가가 철학자, 문인들 또한 유대인들이 많이 있는데, 예를 들어 한나 아렌트, 아도르노, 발터 벤야민도 유대인이었다. 이탈리아인 프리모 레비도 조상들이 이탈리아 북부(토리노) 이주해와 정착한 유대인의 후손이었고, 다른 이탈리아 문인 나탈리 긴츠부르크나  카프카 역시 프라하의 유대인이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유명한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는 어떤가. 현대 물리학의 기반을 마련한 아인슈타인도 유대인이었으며, 양자역학의 기반을 마련한 닐스 보어도 유대인의 피가 섞여 있었으며, 줄리안 슈윙어나 리처드 파인만(리투아니아계 유대인) 또한 유대인의 후손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언어학자 촘스키나 신경과학 의사였던 올리버 색스는 어떤가. 영국에서 성장한 올리버 색스는 유대인으로서 그는 우리에게 감명깊은 글을 남긴 있다. 밖의 수많은 유대인의 후손들이 생의 흔적을 많이 남겨놓은 셈이다.

 

언젠가 유대교 신비주의혹은 영지주의(Gnosticism)’ 대한 이해가 되면 이와 관련하여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와 관련한 자료를 읽다가 내가 흥미있게 기억하는 부분은 작가 허먼 멜빌과 카뮈 또한 영지주의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받았다 대목이었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멜빌이 모비 에서 구약성서 많이 의지하는 것을 지적하며 이는 멜빌 집안의 청교도적인 배경 때문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여기에는 멜빌이 간접적으로 영향받은 영지주의적인 배경을 고려할만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부분은 기회가 되면 이해를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물과 상상력, 물의 마력

 

굳이 시인이자 과학철학자인 바슐라르를 언급하지 않아도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의 근원을 마련해준 물질이며, 따라서 모든 생명체의 고향이라고 말해볼 수도 있겠다. 1장에서 화자인 이슈메일은 나를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나는 바다로 나가게 됨을 설명하고 있다. 논리적으로 해명할 수는 없지만, 물이 끌어당기는 마력 대해 화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가령 당신이 시골에, 호수가 많은 어느 고지대에 있다고 하자. 어느 길이든 마음에 드는 오솔길을 골라서 걸어간다고 하자. 당신이 택한 길은 십중팔구 골짜기로 내려가 시냇가 웅덩이에 이르게 것이다. 웅덩이에는 마력이 있다. 가장 얼빠진 사람을 가장 깊은 몽상 상태에 빠뜨린 다음, 사람을 일으켜 세워서 발길 닿는 대로 걸어가게 해보라. 지역에 물이 있다면, 사람은 틀림없이 물이 있는 쪽으로 당신을 데려갈 것이다. (…) 누구나 알다시피, 명상과 물은 영원히 결합되어 있다.”(32)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화자 자신이 물에 끌리는 정황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샘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잡지 못해 물에 빠져 죽은 나르키소스의 이야기도 곁들이면서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우리 인생의 모습에 비교하기도 한다. 물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 잡을 없는 삶의 환영이자 모든 것의 열쇠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 불가피하게 이런 근거없는 실체를 쫓는 존재들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며, 실체임을 저자는 간파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의 엉뚱한 생각이긴 하지만 멜빌은 낮은 곳으로 향하는 본성을 주목해본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고지대의 호수에서 흘러내린 물이 낮은 곳의 웅덩이로 모이게 되는 물을 언급한 대목 뿐만 아니라 바다로 나갈 일개 선원으로 간다라고 말하며 선장이나 요리사 등의 직책을 맡은 자리 아닌 정직한 노동을 하는 자리가 자신이 편하게 지낼 있는 자리임을 표방하고 있다. 이러한 실마리들은 일면 저자 멜빌이 삶에 대해 가진 무의식적인 태도와도 닿아있다고 생각한다.  권위나 사회의 규범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이를 이용하거나 활용하는 위치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낸 자세로도 읽혀진다. 이런 태도는 세상에 노예 아닌 사람이 있는지 묻고 싶다’(35)라고 언급한 대목에서 더욱 보강되고 있다. 부분은 특히나 당시 미국이 노예문제 몸살을 앓고 있었으며, 모비 출간된 시점(1851) 남북전쟁(1861-1865) 발발한 시점과 동떨어진 시간이 아니듯이 문장은 당시에 논란의 여지가 많았을 것으로도 보인다. 실질적인 의미에서든, 상징적인 의미에서든 멜빌이 1장에서 밀어넣은 문장은 노예제도 대한 문제의식을 분명히 반영하고 있으며, 사회 규범에 대한 반발심 발로로 수도 있겠다. 당시 사회 통념을 벗어나 현상의 본질을 보려는 멜빌의 지성을 엿볼 있는 대목이었다.

 


 

정당한 대가를 받는 일과 미국적 가치관의

 

옮긴이가 언급하고 있듯이 멜빌은 없는 신의 섭리에 세계를 맡기고, 앞에 자신의 죄를 깨닫고 겸허하게 행동해야 구원받는다 청교도적인 흐름 속에서 있었으며, 보다는 자유로운 신흥 교리를 주장하는 유니테리언 파에 속했던 아버지의 영향도 물론 무시할 수는 없을 같다. 아무튼 낮은 곳에 겸허하게 임하려는 청교도적인 자세는 본성과도 상당한 친화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나아가 거대한 있는 바다로 나아가며 자신은 일개 선원으로 배를 타려는 이유를 이러한 맥락 속에서 정당화하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일반 선원으로서 대가를 받는 대해 언급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대가를 받는 -이것을 무엇과 비교할 있을까? 돈이야말로 지상의 모든 악의 근원이고, 부자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없다고 우리가 진지하게 믿고 있음을 생각하면, 사나이가 멋진 활동으로 돈을 받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36)

 

대목은 성경에 나온 바대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갈 없다는 명제와 돈벌이라고 하는 현실적으로 상충하는 문제가 미국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해결되어 가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보여주기도 한다. 내가 이해한 바가 맞다면 이런 국면은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도 확인할 있다. 신교도(프로테스탄트)들의 경제활동과 도덕적인 모순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로서 정당한 노동이라는 전제에 주목했던 정황을 여기서도 엿볼 있다. 모비 지극히 미국의 정신을 담고있는 소설이라고 한다면 이런 부분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현대의 미국인들에게, 특히 부를 거머쥐고 있는 미국의 기독교인들에게 도덕적인 정당성을 부여한 맥락을 확인해볼 있다는 말이다.

 

아울러 이슈메일이 고래잡이 배를 타게된 또한 이미 오래 전에 계획된 신의 섭리 표현한 것도, 그리고 이를 다르게 운명이라는 보이지 않는 경찰관으로 표현하고 있는 부분도 청교도적인 정신 흔적이라고 있을 같다. 어쩌면 신비주의적인특성을 포함하는 이런 대목은 미국의 기업인이 성공하여 부자가 되면 이건 분명 신의 섭리이므로 정당성을 부여받는 심리와도 연결지어볼 있다.거대한 사기극에서 이원석은  미국적인 자기계발의 배경과 등장을 이야기 하는데, 19세기 미국의 정신세계를 언급한다.시크릿으로 대변되는 신비적 자기계발 언급하며 미국적 자기 계발 맥락을 가지로 정리한다. 하나는 신비적 자기계발 다른 하나는 윤리적 자기계발 계보이다. 저자 이원석에 따르면 윤리적 자기계발 청교도의 토양 위에서 이신론의 줄기가 뻗어나고 이에서 자조사상이 피어난 이며, ‘신비적 자기계발 유니테리언과 초절주의를 경유해서 시사고 운동으로 모습이 드러난 ’(52)이라고 하였다.  벤자민 프랭클린으로 대변되는 정당한 노동 대한 대가를 당연시하는 , 근면할 것을 중요한 덕목으로 삼은 윤리적 자기계발 계보와 관련지어보면 , 모비 에는 이슈메일이 일반 선원으로 고래잡이 배를 타고 고된 노동으로 받는 대가에 대해 긍정하고 있는 모습이 겹쳐 보인다. 하지만 자신이 바다로 나가 고래잡이 배를 타려고 하는 지에 대해서는 이런 신비주의적 분위기 에도 기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분명히 이런 윤리적이고 정신적인 태도는 유럽인들의 태도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이런 모습들은 오늘날 미국인들의 말과 행동에서 여전히 찾아볼 있는 특징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비 1장은 쉽사리 지나치기에는 다양하고 중요한 정보를 주고 있는 부분으로 천천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의 현재성 현재 미국의 오래된 미래

 

1장을 읽다가 한번 놀란 대목은 이슈메일이 신의 섭리 의해 고래잡이 배를 타게된 이유를 언급하며 운명 삶이라는 연극의 무대감독으로 비유하면서 제시한 연극 프로그램이었다


미합중국 대통령 선거전

이슈메일 아무개의 고래잡이 항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전투


대목(37) 현대 미국의 행보 와도 너무나 닮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특히나 전세계에 대한 영향력이 커져버린 미국 사회에서 중요한 행사이자 하나의 되어버린 미국 대통령 선거를 떠올리게 한다. 아울러 아직도 미국이 개입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문제들을 생각해보면 모비 그토록 다양한 현대적 맥락에서 비유와 상징을 통해 해석될 있는지, 면면을 찾아볼 있는 실마리가 이미 1장에 들어있다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고래의 불길한 이미지 죽음에 대한 예견일까

 

1장을 마무리하며 멜빌은 유령 같은 고래의 이미지로 여운을 남기고 있다.

 

목표를 향해 나를 내몬 멋진 공상 속에서 둘씩 짝을 지어 영혼의 깊은 곳으로 헤엄쳐 들어오는 고래의 끝없는 행렬이 보였다. 그리고 행렬 한복판에, 하늘로 우뚝 솟은 덮인 산처럼 두건을 거대한 유령이 하나 떠다니고 있었다.”(38)

 

여기서 나는 하늘로 우뚝 속은 덮인 이미지를 어디서 보았을까 궁금해졌다. 1장에 앞서 책에 소개된 미국 포경선 헨리 롱펠로호의 항로와 이슈메일이 타게될 피쿼드호의 항로를 참조해보면 상선 선원이자, 해군의 선원, 포경선을 탔던 허먼 멜빌은 아프리카를 지날 킬리만자로의 덮인 산이나, 일본 근해를 지날 눈이 덮여 있던 후지산을 적이 있지 않았을까 상상만 해보게 된다. 여기서 언급하고 싶은 점은 백색 주는 공포와 불길함에 대한 연관성 혹은 암시이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죽음 천착한 작가라고도 불리는데, 그만큼 죽음이라는 문제가 톨스토이에게 인생의 문제였다는 반증일 것이다. 특히 광인의 수기에서  주인공이 하인과 멀리 떨어진 곳의 영지를 매입하러 가는 길에 머물었던 하얀 에서 경험한 발작증세와 겨울 속에서 사냥을 하다 사방이 눈으로 덮힌 벌판에서 길을 잃고 경험했던 발작에 대한 묘사는 톨스토이 자신의 경험에 근거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여기에서 백색 주는 상징은 죽음 혹은 죽음에 대한 공포 암시하고 있다고 있겠다.

 

마찬가지로 1장의 마지막 부분에 멜빌이 언급해 놓은 하늘로 우뚝 솟은 덮인 떠다니는 거대한 유령으로 표현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내게 다가왔다. 흰색 고래 떠올리게 하는 묘사로부터 죽음으로 이어지는 불길한 암시를 저자가 설정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1 독서를 마무리하며

 

1장을 아주 천천히, 생각을 하며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적어가다 보니 앞으로의 독서 후기를 적는 일이 만만치 않겠다는 불길한징조를 보게 된다. 이렇게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건만, 모비 저술 구조를 다시금 생각해보면, 스스로도 권에 대한 독서 후기를 이렇게 느린 속도로 읽으며 길로 새는 일이 어쩌면 책과 닮아 있다는 위안도 가져본다. 어쨌거나 과정은 동안 해왔던 독서 경험을 정리하는 장으로 활용하는 계기가 같기도 하다. 아울러 과거에 읽었던 다른 책들과 새롭게 연결 지으며 새로운 독서 신경을 만들어가는 기회가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모비 읽으며 느꼈던 놀라움을 조금이라도 놓치지 않고 기록해두고 싶었던 바람인지도 모른다. 모비 마라톤 올해 안에 끝낼 있을까 하는 고민을 잠깐 하기도 했지만 이상 문제를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어쨌든 재미있는 경험이 되지 않을까.  

 


 

[참고도서 자료]

모비 ,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각가정신]

나의 서양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창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막스 베버 지음, 박성수 옮김, [문예출판사]

<위키 백과> 영지주의중에서 현대의 영지주의항목 (https://ko.wikipedia.org/wiki/영지주의)

거대한 사기극, 이원석 지음 [북바이북]

이반 일리치의 죽음/광인의 수기, 레프 톨스토이 지음, 석영중·정지원 옮김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