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 - 고전시가로 만나는 조선의 풍경
김용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현대화된 세상에 웬 조선시대의 시가란 말이냐, 테크노에 메탈릭한 노래들이 온몸을 쥐어짜듯이 울리는 세상에! 실제로 음악사에서는 조선에서도 후기로 가면 음악적 변화를 '번음촉절(繁音促節)'이라 하여 휘모리 장단이 유행했다(17쪽)고 하지만 설마 요즘과 견줄만 했을까! 내게 시조는 번음촉절이건, 무엇이 되었건 차분하고 나직이 읊조리는 무엇일 뿐이다.  

그런데도 그 차분하고 나직한, 이 책에 실린 조선의 노래들은 그야말로 내 영혼을 훔쳐갔다. 어릴 적 기계처럼 외곤 했던 많은 익숙한 시조들이 이렇게나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다니, 탄로가를 읊조리면서는 기어이 눈물이 고이기도 했던가, 아니었던가. 늙는다는 것이 때로 지독히 서럽고 눈물겹지만, 때로는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이 위로가 되기도 한다는 걸, 어린 날 이 시조들을 정작 욀 때는 느끼지 못했었다. 참 진한 삶의 노래들. 

탄로가들 뿐 아니다. 술, 사랑, 부부, 애국충정, 삶의 성취, 자연, 부귀 영화, 친구, 세월, 늙음 등에 대한 노래들이 어느 것 없이 구구절절 가슴에 스며든다. 사람 사는 모습은 어쩌면 이렇게도 같고 또 같을까 싶다. 기생 홍랑과 최경창의 사랑 이야기는 또 얼마나 절절한지. 로미오와 줄리엣이 울고 갈만한 사연이 애잔하면서 정겹다. 게다가 옛 글이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김용찬 선생이 쉽게 풀어놓아 고개를 끄덕거리며 짚어볼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김용찬 선생은 미사여구를 동원하지도 않고, 휘감았다 풀었다 하는 긴장미도 넣지 않았으며, 그저 조근조근 이야기하듯 시조를 종류별로 묶어 슬슬 소개해 준다. 한 마디로 편안히 읽힌다. 도드라지는 건 그저 시조, 시조들이다. 한 번을 다 읽고 나면 죽 넘기며 좋아하는 시조만 골라 읽기 좋게, 시조는 파르스름한 색깔로 써 놓았다. 시조를 주제별로 묶은 마디는 스물 일곱 마디이지만, 굳이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고 마디별로 편하게 골라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노래뿐 아니라 곁들여진 그림들도 예사로이 봐지지 않는다. 한창 화제가 되는 김홍도 신윤복의 그림은 물론 여러 그림들이 노래와 잘 어울려 읽는 맛을 돋군다. 김후신의 <대쾌도(大快圖)>를 보면 웃음이 절로 나지 않을 수 없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밀고 당기며 몇 차인지 모를 한 잔을 하러 가는 무리의 표정이 살아 있다. 

되돌아 보니, 강호를 노래한 시조들이 예전에는 참 이해되지 않았었다. 자연에 묻혀 세상 일을 잊고 살고 싶다는 수많은 노래들이 사실은 임금 곁에서 정사를 논하는 자리를 그리워하는 노래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뭔가 이율배반적이라 느꼈었던... 그러나 나이 들면서 가뜩이나 삶의 이율배반이 이해되던 참에, 이 책에 사대부의 의식에 대한 설명이 차근차근 되어 있어 그들의 노래가 바로 내 노래가 되는 느낌. 묘할 정도다. 수기치인(修己治人). 수기는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질서를 조화롭게 이해하는 것을 말하며, 자연에 머물면서 자신의 내면 수양에 힘쓰는 것을 가리킨다 내면적 수양을 갖춘 이후에 관직에 나아가 다른 사람을 교화하는 치인은 언제나 도덕적 수양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45쪽) 새겨 둘 말이다. 요즘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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