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있습니다 - 때론 솔직하게 때론 삐딱하게 사노 요코의 일상탐구
사노 요코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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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 요코가 살다간 시간들은 그녀의 조국 일본이 고단했던 것처럼 온 국민들이 힘들었던

시대였던 것같다. 물론 일본인 특유의 기질을 살려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어 그 시간들이

짧아지긴 했지만 그 시대의 사람들은 결코 그 시간을 지우지 못했다.


 


일본의 침략으로 고통을 받았든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을 물론이고 당사국인 일본사람들도 결코 행복하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글쎄 패배하지 않고 승승장구 했더라면 행복했으려나.

사노 요코는 그런 조국을 그런 시간을 살아온 것은 결코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항변한다.

누구든 선택해서 태어나는 이는 없으니까. 더불어 그녀가 그토록 원망했던 부모마저도.

어려서 죽은 아버지에 대한 느낌은 그리움보다는 아쉬움이었고 아흔 넘어 치매를 앓는 엄마와는 내내 원망과 슬픔같은 것들이었다. 치매를 앓아 어린애가 되어버린 후에야 겨우 화해 비슷한 걸 해냈으니까.


 


'누구에게서 태어날지 아무도 선택할 수 없다. 그것이 가장 큰 운명이다.'

이기적인 삶을 살았던 엄마를 미운 시선으로 바라봐야 했던 사노 역시 평탄한 삶을 살진 못했다.

두번의 결혼과 두번의 이혼, 이건 선택이었을까 운명이었을까.

다행이랄까. 그녀에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재능이 있어 그나마 고단한 시간을 견뎌냈는지 모른다.

책을 읽는 내내, 활자중독이다 시피 했던 시간들이 너무 무의미 했다고 탄식하는 장면이 마음에 걸렸다.

나역시 어린시절부터 독서에 바친 시간이 너무도 컸기에 그녀의 허무하다는 탄식이 가슴 아프다.

특히 그녀가 작가이기에 그런 탄식은 너무도 뼈아프다. 자신이 읽어낸 책에서 건져낸 것이라곤 없는 것같은 삶을 살았다는 자괴감같은 것이 아닐까.

흔히 우리는 책을 많은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기대가 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대하지 않는 그런 것들.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고보니 알량한 삶이 부끄러워 이렇게 말했는지도 모른다.

'잘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얼핏 개구쟁이처럼 보이는 그녀의 맑은 얼굴에 이런 어둠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솔직한 일상과 마음의 이야기들을 이제는 만날 수 없는 것이 너무 아쉽다. 100세 시대에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것 같아.

다소 차가운 듯한 그리고 어리숙하게도 보였던 삶들을 끝내고 떠난 그곳에서 그녀는 또 어떤 삶과 만나게 될까. 전쟁도 없고 패전한 조국도 없고 지리멸멸한 결혼도 없는 시간에서 부디 행복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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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아직 쓰지 않은 이야기 - 2030년 대학생 마리가 들려주는 AI 100년사 아우름 20
고다마 아키히코 지음, 박재현 옮김 / 샘터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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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문명은 어디까지 진화할 것인가.

나는 가끔 우주 어디엔가는 지구와 비슷한 별이 있고 인간과 비슷한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직 인류가 닿을 수 없는 우주의 광할함이 그렇고 가끔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는 사인이 지구에 나타날 때 그것이 증거라고 생각한다.

미개하고 계급사회가 분명했던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던 것을 축복하다가도 지금 이 시대의 폭주하는 문명에 정신이 아득해지기도 한다.


 


물론 어려서 컴퓨터가 이세상을 이렇게 점령하고 사람마다 절대 손에서 놓치못할 휴대전화를

들고 다닐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미래를 그린 영화를 보고 분명 머지않아 실제하리란 생각이 확고해진다.

예를들면 이제 땅에서만 다니는 자가용이 아닌 하늘자가용들이 등장할 것이고-트럼프의

자가용비행기와는 다른-아이언맨같은 인간+로봇이란 존재가 나타난다거나 심지어 우주여행 전단을 보면서 신혼여행지를 고르는 그림이 마꾸 떠오른다.

아마 이보다 더한 현실들이 머지 않은 미래에 인류를 찾아올 것이다.

거기에 더해 악몽같은 최후의 날을 포함하여.


어쨋든 이 책은 이제는 도저히 우리 삶에서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는 수많은 인공지능의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다.

예전에 인류에게 영웅이 등장하여 역사를 바꿨다면 현세의 영웅들은 바로 이런 기기들을 발명,

혹은 발견하는 영웅들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요즘 트렌드인 전생에 나라를 구한 영웅들이 현세에

혁신을 일으키는 것은 아닐지.

과거 100년에 이루었던 업적들이 이제 10년 정도면 일어난다. 그만큼 인간의 진화는 빨라지고 있다.

분명 편리해졌다. 그리고 그런 편리를 제공했던 수많은 발명가와 발견인들에게 존경심을 보낸다.

얼마전 호주로 입양된 인도의 젊은이가 자신이 살았던 고향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영화가 개봉되었다.

실제 인도에 가지 않고 자신이 살았던 동네의 기억을 인공위성을 통한 화상을 보고 찾아냈다는 것이다.

우리는 실제 그 나라를 가지 않고도 같은 공간에 있는 것같은 현실감을 느낄수도 있다.

인터넷은 세상을 하나로 묶었고 네트워크의 발달로 지구는 시차없이 오가는 이웃이 되었다.


 


이런 획기적인 진화를 이루어낸 역사를 적은 책을 보니 인간의 능력은 거의 신의 수준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2030년 대학생 마리가 들려주는 AI 100년사는 바로 인공지능의 역사다.

2030년 이라면 불과 10여년 후의 일인데 어느새 대학 캠퍼스라는 의미도 사라져버린 시대가 되었다.

굳이 대학에 출석해야 할 필요가 없어져 버린 미래. 개인 퍼스널 컴이 비서처럼 따라붙고 모든 것은 말 한마디로 처리가 된다. 너무 이른 모습이 아닐까 하지만 어찌 알겠는가 이보다 더한 미래가 펼쳐져 있을지.

가상현실게임인 포켓몬 Go가 열풍이다. 사고까지 염려될 지경으로 휘몰아치고 있는 이런 게임이

진화된다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다만 미래의 어느 날 AI의 모습들이 인간의 심장을 관통하는

냉혹함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따뜻한 AI! 이런 미래를 열여줄 인재들이 우리 곁에 있을지도 모른다. 진화의 속도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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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예술가다 - 자유로운 예술 정신으로 삶 바라보기 아우름 19
한상연 지음 / 샘터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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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래도 인간의 수명은 한계가 있지만 예술의 흔적들은

얼마든지 무한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살아보지 못한 과거의 시간들을 예술로 만나기도 한다.

그렇기에 에술은 힘은 위대하다. 하지만 '예술'이라 함은 왠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먼 이웃의

이야기라고 생각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우리 모두 예술가라고 말한다.


 


예술이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거창한 분야이기도 하지만 아주 소박한 예술품들도 많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면 만날 수 있는 거창한 것들보다 주변에서 만나는 소박한 작품에 더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모든 것들이 다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모두 예술가라니.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린다거나 진흙이나 수수깡으로 작품을 만들때도 나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찌보면 예술가의 능력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닐까.


 


범인의 눈으로 어찌 보석같은 작품들을 이해하겠냐만 때로 아주 우스깡 스런 작품이 위대한

작품이라는 것에 의아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작품을 남긴 작가들은 모든 힘을 기울여 최선을 다해 작업을 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가치가 없고 의미없는 작품은 없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예술을 어떤 잣대로 저울질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조언한다. 특히 이런 폐단은 문학분야가

더 심하다고 하는데 그 말에 200% 공감한다. 뭔가 이름붙여진 제도가 많아질수록 자유로움은 구속된다.

진정한 예술, 혹은 문학이 탄생되려면 기존의 권위가 사라져야 한다는 것에 동감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그동안 만나온 모든 것들 중에 영원할 것들은 많지 않다. 어쩌면 이런 유한함과 한계점 때문에

인간들은 예술을 추구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죽어도 인류가 없어져도 뭔가 남아있어야 한다는 절박함

같은거.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경외심, 그러니까 신과 가까운 존재나 영원불변의 존재에 대한 동경이 예술로

승화되지 않았을까.


 


'예술은 자신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하려는 소망과 의지의 표현'이라는 저자의 말이 감동스럽다.

'존재하기 놀이'라는 표현이 참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런 '존재하기 놀이'를 하는 사람은 인간과 세상에 대해 얼마나 진지한 사람들일까.

결국 이런 예술과 예술가들이 넘치면 세상은 진정한 평화가 넘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모두 예술가'라는 제목이 큰 숙제처럼 다가온다.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진지한

만남이 되고 예술로 승화되는 세상이 오면 신이 인간에게 원하는 그런 낙원같은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다.

예술은 어렵고 남의 일이라는 생각은 접고 나도 예술가다운 눈을 기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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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지혜는 어리석은 듯하니 - 옛글 57편이 일깨우는 반성의 힘 아우름 18
김영봉 지음 / 샘터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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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선인들의 이야기에는 지혜가 담겨있다. 우리가 지금도 고전을 찾는 이유이다.

흔히 고전은 지루하고 고루하고 뻔한 가르침의 이야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동서고금의 인간에게는 불변하는 가르침이 분명 있기 마련이다.

5년에 걸쳐 샘터에 연재했던 이야기를 추려 내면서 현재 시점과 어울리지 않는 내용을 대폭 수정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유효함을 알고 놀랐다는 것이 바로 이점을 증명하는 것이다.


 


분명 현대는 모든 것이 넘친다. 먹을 것도 들을 것도 과거 가난했던 시대와는 다르게 풍요로움이 넘친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좀더 공허하고 몸이 편해진 만큼 정신적으로 고단해진 삶을 살고 있다.

그나마 의식이 깨어있는 사람들은 공허의 이유를 찾고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해 고민해보기도 한다.

왜 우리는 풍요속의 빈곤을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가.

한때는 가난을 이기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오로지 미래를 위해 쉬지 않고 일했고 그만큼 풍요로움을

얻었지만 매주 토요일 광화문으로 달려가야 하는 사람들은 극심한 허기와 박탈감에 시달린다.

오랜 불황으로 살기에 힘들어진 현실도 한몫 했겠지만 근본적으로 우리는 지금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 한끼 밥을 먹으면서 행복할 수는 없겠지만 저자의 말처럼 상식적이고 정의로운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조금 배가 고프더라도 행복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는 말이 있지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난세를 타파할 영웅은 보이지 않는다.

정말 똑똑한 사람들은 넘치는데 그만큼 독선과 아집 또한 넘친다. 그 알량한 자부심을 버리고 배려하는 영웅은 정녕 없는 것인가.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넘치는데 머리에 가득한 지식만큼 지혜는 오히려 빈곤하니 지금 우리의 교육시스템은 분명 잘못되었다. 오로지 대학만은 위한 교육이라니...그렇게 대학을 위한 대학을 나온 젊은이들은 어디를 걷고 있을까. 이는 분명 윗사람들의 잘못이다. 획일된 교육시스템에 아이들을 억지로 밀어넣은 어른들 말이다.

'시험선수'가 아닌 진정한 교육은 이제 기대할 수 없다.

이렇게 지혜를 전하는 책이라도 읽어주면 좋으련만 어디를 가나 스마트폰에만 열중할 뿐이다.

혁신을 위한 가장 첫걸음은 반성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비우지 않고 어찌 채우기를 바라겠는가. 누구나 후회의 시간은 있다. 그 후회의 시간들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공허의 삶을 살것이고 후세에 지혜의 주머니를 전하기는 커녕 빈 껍데기의 '나태'와 '허무'를 물려줄 뿐이다.

아우름의 책들은 결코 무겁지 않다.  가벼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 부피의 책속에는

세상을 바꾸고 나를 바꾸고 결국 모두가 행복해지는 지침이 들어있다.

서당의 훈장이 하는 말쯤으로 여기지 말고 귀를 기울여야 하고 가슴을 열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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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줄도 읽지 못하게 하라 - 누가 왜 우리의 읽고 쓸 권리를 빼앗아갔는가?
주쯔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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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역사를 이해하는데 책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결국 누군가의 기록으로 우리는 살아보지

못한 시대를 느껴야하기 때문이다. 아예 역사책이란 이름으로 기록된 책들도 도움이 되겠지만

그 시대를 대변하는 책들에게 더 리얼한 시대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인간들은 아주 묘한 동물인지라 '하라'는 말보다 '하지말라'는 말에 더 호기심을 느끼고 달려들려고 하는 본능이 있다. 역시 그런점에서 '읽어보라'는 책보다는 '절대 읽지 마라'는 책에 더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유독 그 당시에 '금서'라고 지정되었던 책들에는 오히려 시대상이 더 많이 반영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금서'라는 주홍글씨를 붙힌 책들은 당시에 권력을 휘두르던 계급들의 두려움과 시기심들이 녹아있기 마련이다.

중세에는 종교가들이 그러했고 뒤를 이어 계급의 꼭대기층에 있는 권력자들이 그러했다.

자신들의 치부를 마구 써내려갔던 작가들을 죽이거나 탄압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물론 그들의 책들은 '금서'라는 멍에를 안고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역설적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겅우가 더 많았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열쇠가 바로 '금서'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떼문이다.


 

 

'악마의 시'를 써서 이슬람의 원흉이라 낙인찍혔던 루슈디 역시 도망자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이란은 그에게 현상금을 붙여 수배를 내렸고 루슈디는 숨어살면서 두번이나 이혼을 당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악마의 시'를 쓴 것에 대해 후회는 없었을까.

대부분의 '금서'를 지은 작가들은 자신들이 이런 운명에 처해질 것을 알았던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운명같은 열정을 숨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이런 용기와 열정 덕분에 우리는 '금서'의 비밀을 열고 그 시대의 실랄한 모습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물론 흥행을 위해 세상밖으로 끄집어내고 싶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더러운 권력자들에 의해 단죄를 당했던 '금서'들은 지하에서 혹은 세월이 흘러 더 빛나는 평가를 받았다.

'금서'들 중 유독 셩(性)에 관한 책들이 많았던 이유는 인간의 본성에 근접한 표현들이 외설스럽다는 이유말고도 당시 은밀하지만 은밀할 수 없었던 타락한 사회상을 기록한다는 것이 너무도 부끄러웠던 이유가 더했을 것이다.

'금서'로 낙인 찍은 인물들이 그 책의 주인공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바리 부인','체털리 부인의 연인', '위런 부인의 직업', '악의 꽃' 같은 작품들은 당시의 사회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신사복으로 위장된 타락한 모습속에 리얼한 도덕성을 후대에 남긴다는 것은 치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주홍글씨'를 새겨 매장시키는 방법밖에는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독특한 비문으로 더 유명한 버나드 쇼 역시 '워런 부인의 직업'을 통해 추악한 현실을 고발했다.

단순히 자극적인 섹스만을 그린 것이 아니라 이미 타락하고 길들여진 관능에 굴복한 인간의 모습에서 개혁의 의지를 일으켜보려는 노력. 바로 그것이 이런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던 작가들의 진심이 아닐까.


그나마 현대에는 이런 억압없이 수많은 작품들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블랙리스트'라는 이름으로 억압당하는 수많은 작가들과 빛을 보지 못하는 작품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시대가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무지와 몽매는 색만 달리할 뿐 내림처럼 유전되는 현실이 가슴아플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금서'의 봉인을 해제하고 읽어내야 한다.  감추고 싶었던 인간의 역사를 똑바로 쳐다봐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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