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평이면 충분해 - 은평구 증산동 5평 가게에서 매일매일 샌드위치를 만드는 박지성 씨 이야기
박지성 지음 / 달먹는토끼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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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골목에 들어서본 사람들은 이제 두 가지의 선택만이 남았다는 것을 안다.

그저 주저앉아 목숨이 끊어지기를 기다리거나 다시 뒤돌아 나가 새로운 길을 찾거나.

하나님은 견딜만큼의 어려움만 주신다는데, 견디기 힘든 순간들이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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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평'이라고 해서 지하셋방이나 작은 옥탑방에서 살게된 사연일까 싶었다.

두 아이를 낳고 기르다가 홀로 남겨진 엄마가 막다른 골목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따라가본다.

이 책은 선택할 때 내 눈, 마음에 들어온 단어는 500만원이었다.

나도 막다른 골목에 섰을 때 남은 돈이 딱 500만원이었다. 그동안 나를 위해 편하게 돈을 써본 기억이 없었다. 아이는 어렸지만 그 돈으로 미국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렇게 유학을 떠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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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공항에 중학교 동창이 마중을 나와주었다. 친구집에서 며칠을 지내다 하숙을 구하고 서류를 만들어 제출하고 클라스를 기다리는 동안 하숙집 주인장이 하는 페인트 일을 도우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미국은 모든게 '빨리 빨리'가 안되는 나라였다. 많은 시간이 흐른 후 다닐 학교가 정해지고 다시 주경야독의 고된 길이 이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부 그 자체가 나를 성장시켰다기보다는 그 여정이 나를 단단하게 해주었던 것 같다. 그 단단함이 결국 다시 나를 일으켜세웠고 지금에 오게 해주었다. 여기 이름도 아주 익숙한 박지성 사장님도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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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알바중에 누군가 '샌드위치'를 만들어 팔아보라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했다니 않은가.

천사가 잠시 나타났던 모양이다. 길을 잃고 멍하니 서있는 여인에게 정신 차리라고 보낸 천사.

그렇게 샌드위치를 만들었단다. 유산지를 접고 또 접고, 자신만의 레시피를 개발하느라 버린 재료도 엄청났다고 한다. 그저 맛만 좋은 샌드위치가 아니고 누군가에게 '든든한 한 그릇'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빛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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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를 만드는 정성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이제 간절한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다.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우리는 소문도 없이 세상을 떠난 사람조차 모든다.

아마도 그 길을 선택하기까지 수많은 망설임과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지 않았을까.

나도 그런 순간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이 글을 쓰고 있을만큼 단단해졌다.

혹시 삶에 대해 포기하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면 반드시 지금의 이 고단함을 언젠가 웃으면서 얘기하는 순간들이 온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 글을 쓴 샌드위치 사장님도 보여주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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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을 통해 은평구 증산동에 있는 '더상큼하루'샌드위치집을 찾아냈다.

조만간 그 집의 샌드위치맛을 볼 예정이다. 기대하시라...

건강하고 맛있는 샌드위치를 만들어내는 멋진 사장님과의 만남이 기대된다. 오늘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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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미래의 풍경
장강명 지음 / 해냄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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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등장이 발전이라고 생각하는가. 인류의 멸망을 더 빨리 이끄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근미래의 모습이 아니고 이미 시작된 풍경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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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미래의 풍경
장강명 지음 / 해냄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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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일단 반세기전보다 달라진 문화, 문명을 떠올려보자. 물론 세탁기가 청소기같은 전자제품들은 지금보다는 조금 단순하지만 있었고 전기밥솥은 일본에 다녀오는 사람마다 들고왔었다. 아직 인터넷은 없었고 자동식보다는 수동식의 생활용품들과 모든 정보는 책을 통해 얻었다. 어찌보면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많았던 가난한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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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전과 비교하면 이건 일취월장이라고 표현하기에도 부족하다. 그전 50년에 걸쳐 이루어졌던 일든은 고작 몇 년이면, 아니 몇 개월이면 만들어졌고 아날로그 시대 사람인 나는 따가잡기가 힘들 정도이다. 그냥 하루가 다르다. 이게 발전인걸까? 내가 좋아하는 장강명작가는 근미래라고 했지만 이미 벌어지고 있는, 태동되고 있는 현실을 담은 짧은 소설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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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 티가 안나고 안하면 더 티가 난다는 집안일을 하다보면 빨래는 세탁기가 돌려주고 청소는 손으로 돌려가며 하는 것도 아닌 로봇청소기가 알아고 돌아가는데도 하루일이 끝이 없다.

일단 작동을 시키려면 버튼 정도는 눌러야 하고, 심지어 '~야 청소 시작해줘'처럼 말만 해도 된다.

밖에서 휴대폰으로 지시해도 된다. 이렇게 쓰다보니 인터폰이 우리 생활을 감시한다는 보도가 떠올랐다. 이게 인간의 의도적인 개입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인간의 지시없이 스스로 생각하고 실행하는 AI가 있다니 끔찍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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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가정생활에 기여하는 부분을 계산하는 '김집사'기능이라니...가사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 늙은 남편들이 보면 기겁할 일이다. 이 기능을 넘어서 직장생활의 기여도 계산기 '김팀장'이 나온다니 담배핀다고 슬쩍 밖에 드나들던 직장인들도 식겁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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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그린 작품들을 보면서, AI기능의 발빠른 진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제 문학작품은 어떻게 될까. 노래는? 그림은?

번역정도는 이제 거의 인간의 힘이 필요하지 않아 최근 보도로는 번역가들이 급격하게 직업을 잃고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작가의 바람이 깃들어서 그런지 그래도 이 문학, 번역만큼은 여전히 인간의 힘이 필요하다고 했는데-인간의 협업이 꼭 필요하다고-글쎄 아닐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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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자궁으로 임신과 출산을 대신하고 심지어 엄마를 꼭 닮은 안드로이드에 의해 양육된다.

그걸 인간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유전적으로는 완벽할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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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사, 변호사, 회계사들이 설자리도 이미 없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젊은이들은 어떤 직업을 갖게 될까. AI의 보조정도가 남으려나.

얼마전 중국에서 시연된 로봇의 모습을 보니 경찰의 역할까지, 군인의 역할까지 다 가능해보였다.

사무실을 돌며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치우고 식당에서도 키오스크와 서빙로봇이 이미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노래도 만들고 그림도 그리고, 문제는 지시없이도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한다는데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벌이는 전쟁에도 드론이 등장했고, 로봇이 등장했다. 그렇다면 인간의 살상은 없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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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정부가 실직자나 취준생들을 위한 제도나 지원금들이 마련하고 있듯이 더 이상 고용되지 않는 젊은이들을 위한 생활비지원도 마련될 것 같다. 갈 곳없는 젊은 세대, 그걸 지켜보며 쌈지돈까지

꺼내야 하는 기성새대들...그런데 이 질문이 가슴을 친다.

'기성 세대는 이런 세상이 올 줄 몰랐던 걸까? 무슨 생각으로 모든 영역에 AI를 도입한 걸까?'.

결국 인간의 소멸은 인간이 부른 재앙으로 시작되었다. 부정주의자인 나는 인류의 소멸은 이미 시작되었고 AI가 그런 미래로 이끌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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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나마 먼 미래의 풍경이었으면 좋겠지만. 이미 이 멸망의 풍경은 시작되었고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에 창밖에 흐린 하늘만큼이나 마음이 어두워진다. 그러나 어쩌랴. 인간이 지닌 욕망의 댓가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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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천천히 자라도 괜찮아 - 너는 느리게 걷는 아이, 나는 발맞춰 걷는 엄마
구하라 지음 / 모티브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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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제 아이들이 서른을 넘어서는 나이가 되고보니 어떻게 길렀는지 기억이 가물거린다.

두 아이 모두 순한 편이어서 크게 힘들지 않고 키웠었다. 감사한 일이다.

무엇보다 건강하게 태어나주고 우리가 생각하는 평균 속도대로 잘 걸어주어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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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누구나 '평균'에 대한 선입견이 있기 마련이다. 아이의 자람뿐만이 아니라 집의 평수나 재산의 정도까지 평균은 해야한다는 막연한 압박감이 존재한다.

아이의 자람에서 평균이라 하면 몇 개월에 일어서서 걷고 말하고 뛰어다니는 것에서부터 한글이나 영어같은 것을 배우는 속도에 이르기까지 언제 어느정도까지는 해야한다는 계산이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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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느리게 자라는 둘째 아이를 보면서 혹시 낳는 순간 너무 느긋하게 대처하는 바람에 태변을 먹어 이상해진건 아닐까. 첫째 아이보다 태교를 소홀해서 그런 것 아니었을까. 얼마나 많은 후회와 자책의 시간이 있었을지 가슴이 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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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지하철안에서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보게 된다. 덩치는 산만하게 큰데 조용히 앉아있지 못하고 지하철 안을 뛰어다니거나 혼자 무슨 말을 하면서 떠들고 누구의 시선도 신경쓰지 않는 모습들.

대개 보호자가 곁에 있지만 홀로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다. 많이 불편했다. 그리고 저런 아이들 낳고 기르게 된 엄마는 얼마나 불행할까....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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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과 달라서 겪는 마음고생을 다 짐작할 수는 없지만 이 웹툰을 보면서 조금 느리게 자라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고충이 생생하게 느껴져서 마음이 아파왔다.

나도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웠기에 아침마다 전쟁통이었다. 아이를 먹이고 입히면서 나도 단장을 해야했기에 '빨리 빨리'가 일상이었다. 느기게 걷는 아이가 답답하면 안고 뛰었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걷는 것도 느렸던 아이를 지켜보면서 내가 너무 앞서가서 아이를 다그친게 아닌지 생각하는 이 엄마의 모습에서 대견함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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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은 내 아이뿐만 아니라 세상 모두의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말이라고 해석한다.

특히 조금 느리게 자라는 아이들을 남의 아이들이라고 무관심하게 보지 말고 계단을 오르는 아이의 손을 잡아주고 말을 걸어주고 가능하면 안아주는 것까지 해야한다.

이 시간 내가 사는 공간까지 찾아와준 소중한 생명들. 오히려 사랑을 많이 배우라고 보낸 아이들이기에 더 많이 눈길을 주고 마음을 줘야한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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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느린 아이이지만 아이의 속도에 맞춰 잘 걸어가는 엄마와 아이에게 따뜻한 마음을 보낸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다 나와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 마음들이 모여 분명 두 모자에게 닿을 것이다. 언제 잘 자라고 있다는 편지같은 다음 작품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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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일의 밤과 사라진 아이들 ㅣ 집사TV 오리지널 스토리북 시즌3 1
이정수 그림, 김지균 글, 집사TV 원작 / 서울문화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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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컬처블룸카페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제 한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하면 다시 사고가 터지는 대저택의 집사들과 용사들!

해적출신의 로희는 전설의 나무꾼, 몸속에 무술인의 피가 흐르는 씩씩한 여우 또이, 프라이팬 하나로 괴물을 깨부수는 료미, 요정이었지만 폭군요리사가 된 멜로우, 하늘에서 떨어진 천사이자 전직 경찰인 푸딩제리, 택배 상자를 나르며 근육을 단련해서 위기에 능력을 발휘하는 현이머까지 용사마다 재능이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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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돌아와 겨우 평화를 누리던 집사는 어느 날 먹구름 사이로 경비행기가 나타나더니 추락하는 장면을 보게된다. 분명 경비행기안에 사람이 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구조대를 꾸리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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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경비행기안에는 네 아이와 엄마가 타고 있었다. 겨우 한 살 된 막내를 지키기위해 품속에 아기를 품었던 엄마는 죽고 말았다. 레시안은 자신과 어린 동생 셋만 살아남은 것을 알게 되었고 어떻게든 동생들과 살아남아야 했다. 레시안은 다른 부족의 공격을 피해 달아나던 후이토토 부족의 핏줄로 숲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전수받았다. 물과 양식을 구하는 방법! 하지만 아이들에게 다가오는 어둠의 그림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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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들이 숲으로 달려가 아이들을 구하려하지만 용사들의 머리위에 미션 퀘스트가 떠오른다.

숲에서 99일동안 살아남아야 아이들을 구할 수 있다.

예전에는 평범했던 숲이 괴물들에 의해 결계가 쳐지면서 도저히 빠져나갈 수가 없다. 양식도 없는 숲에서 용사들은 99일동안 살아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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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괴물들은 왜 아이들을 가두려하고 아이를 구하려는 용사들을 공격하는 것일까.

어이없게도 자신이 갖지 못한 소중한 기억때문이었다.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던 기억들을 없애고 서로를 기억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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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를 따먹고 칠면조를 요리해서 먹으면서 버티지만 결국 베리도, 먹을 것도 없어진 황량한 숲에서 용사들은 99일을 버티고 아이들을 구할 수 있으려나.

미션 하나 하나를 깨나가는 장면들에 나도 용사가 되어 돕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엄마를 잃은 불쌍한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 불끈 힘이 솟아오르지만 괴물들의 공격이 만만치 않다. 과연 용사들과 우리의 힘으로 아이들을 구할 수 있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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