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인류를 구했다고 믿어지는 늑대-개로 진화한, 누군가는 늑대와 개의 유전적 차이가 있다고도 하지만-가 더 많은 진화와 계급상승을 누리고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 외갓집에서 기르던 쫑쫑이가 아닌 멋진 이름을 붙여주는-요즘 대부분의 반려견들은 집안의 귀염둥이를 넘어서 상전으로 군림하고 있다. 우리집도 그렇다-
누군가가 그러던데 현대의 계급은 개, 어린이, 노인, 그리고 여자, 그 다음이 남자라고.
순서가 한 두개 뒤바뀐다 해도 인류를 먹여살렸다고 믿어지는 사냥꾼 남자는 이제 맨 마지막을 차지하고 있다는데 아직 어딘가에서는 여성들보다 대체로 상전으로 군림하는 모양이다.

인류학 교수가 쓴 책이니 뭐 고루한 인류학이나 고고학이 등장하는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좋겠다. 그런 전문적인 이야기가 등장하기는 하는데 그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모습정도에
민족성에 따라 의미를 많이 줌으로써 명성을 누리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정도이다.
미국은 잘 모르겠지만 한국 사회로 보면 멀지 않아 은퇴할 시기가 올 것 같은 인류학 교수의 에세이는 그나마 여성교수로 살아남기 조금 괜찮은 나라에서도 전사로서 살아온 투쟁기를 보는 것만 같았다.
여성이 짊어져야 하는 편견과 더불어, 임신, 출산, 육아, 가사까지 수만년 전의 여성들이 짊어진 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는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나도 몇 년전까지 '여류~~'하는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썼었다. 하지만 어느 작가가 그랬다던가. 왜 '여류'라는 수식어를 붙이느냐고.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도 있다. 여의사, 여약사는 왠지 신뢰감이 덜했던 시간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열심히 달려와서 편견을 깨부수고 '여교수''여류'라는 타이틀을 떼어내준 수많은 선배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