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깡이 (특별판) 특별한 서재 특별판 시리즈 3
한정기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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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부산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힘들고 어려웠던 그 시절, 그 나날들을 추억하게 하는 소설!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가족의 힘으로 성장했던 이 땅의 수많은 ‘딸’들을 위한 이야기! 

 

 

 

   “깡깡깡깡…….”

   깡깡이 아지매들의 망치 소리를 시작으로 하루가 시작되는 곳. 쇠와 쇠가 부딪치며 내는 깡마른 소리와 쇳가루 냄새, 생활 오수가 그대로 흘러들어오는 항구에서 나는 시척지근한 냄새와 폐선에서 흘러나온 기름 냄새가 파도처럼 밀려드는 곳.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1970년대, 부산의 봉래동과 대평동 해안가 일대에는 가난한 살림을 붙들고 사는 사람들의 고된 풍경이 비릿한 짠내와 함께 진득하게 늘러 붙어 있었다. 모두가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대평동의 작은 골목 안에는 주로 배에 들러붙은 따개비 따위나 녹을 깨끗하게 떨어내는, 소위 깡깡이 아지매라 불리는 이들이 생계를 책임지며 사는 집들이 더러 있었다. 정은의 집도 마찬가지였다. 커다란 빚만 남기고 집을 떠난 무능한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는 다섯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힘든 깡깡이 일을 해야만 했다. 정은으로서는 중학교로 진학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노릇이었다. 깡깡이 일을 하러 나선 엄마를 대신해 아래로 줄줄이 딸린 동생들을 거둬 살피고 챙기는 역할은 오롯이 맏딸인 자신의 몫이었다. 젖먹이 동생 동우가 엄마 젖을 먹어야 할 시간이면 엄마의 일터까지 매일 두 번씩 찾아가야 하는 번거로운 일에서부터 돈을 벌기 위해 신문 배달을 하는 일까지도 마다할 수 없었다. 하물며 바로 아랫동생인 동식이는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사고를 치러 다니기 일쑤였고, 여리고 어린 여동생들도 살뜰히 챙겨야 했으니 어려운 형편에 모두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정은은 투정 한번 부릴 수 없었다. 그건 순전히 다 아버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집 살림 밑천 기특한 맏딸!” 아버지의 그 말은 정은을 옥죄는 족쇄였다. 어디 정은뿐이었을까. 그 시절의 딸들은, 특히나 맏딸은 가족에게 있어 모두 그런 존재였다.

 

 

 

엄마의 그 말은 아버지의 ‘기특한 맏딸’처럼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늘 불러일으켰다. 돌에도 나무에도 기댈 곳 없는 부모님께 힘이 되어 드려야 한다는 생각, 스스로 짊어졌던 그 책임감은 나를 일찍 철들게 했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나를 옭아매기도 했다. 양면성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 16p

 

이해까지는 안 되더라도 나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결혼을 포기하면서부터였지 싶다. 나는 세상의 모든 일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았다. 감정의 질척한 구덩이에 들어가 함께 엉켜 뒹구는 건 이제 사절이다. 가족이든 친구든 최대한 객관화시켜 바라보면 문제의 핵심이 놀랄 만큼 명료해졌다. 그걸 깨닫기까지 참 오랜 세월을 나는 맏딸이라는 책임감에 눌려 살아야 했다. / 27p

 

 

엄마는 딸이라서 부모한테 관심 받지 못한 걸 서운해하면서도 정작 자신도 딸한테 그런 관심을 기울일 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중학교 보낼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서도 동식이 육성회비는 밀리는 법 없이 꼬박꼬박 제 날짜에 쥐여 보냈고 공부하는 데 필요한 거라면 어떻게라도 갖춰줬다. / 150p  

 

 

 

 

 

 

   가난하고 고단한 삶은 쉬이 나아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딱 한 번 가족들을 잠깐 찾아왔다가 수출선을 타러 나가선 영영 돌아오지 않았고, 엄마는 깡깡이 일을 하다가 사고로 다쳐 팔을 다쳤다. 오빠를 따라 나섰다가 길을 잃은 정희는 겨우 찾아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막내 동우는 끝끝내 찾지 못했다. 그나마 하게 된 신문 배달도 악덕 사장을 만나 번 돈을 모두 떼일 뻔했다. 그렇게 가난은, 비루한 삶은 도무지 나아질 줄을 모르고 저마다에게 상처로 남았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자식들 굶기지 않고 공부까지 다 시키겠다는 엄마의 억척스러움이, 그 의지가 끝내 가족을 키워냈다. “니는 내처럼 맏딸이라는 말에 묶어 살지 마라. 사람은 배워야 제대로 대접받고 살 수 있는 기라.” 자신도 맏딸로 자라 희생하며 자랐던 엄마는 정은이만큼은 그렇게 살지 않기를 바랐다. 시간이 흘러 자신이 꿈꾸던 화가가 된 정은은 그제야 “내가 자유로우니 동생도 엄마도 자유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것은 엄마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엄마와 함께 자식을 다섯이나 낳아놓고 다른 여자한테 가버린 아버지. 아버지는 한 번인가 잠깐 우리를 찾아왔다가 수출선을 타러 나가선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나에게 아버지란 말은 무책임이란 말과 동의어였지만 엄마는 치매에 걸리기 전까지도 젊은 시절의 아버지를 잊지 못했다.

아버지를 대신한 엄마의 노동을 지켜보며 아이답게 자라지 못한 나의 어린 시절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응어리졌고 나는 남자라는 인간 전체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기억으로부터 벗어난 지금 엄마는 아버지한테서 자유로워졌을까? / 64p

 

 

벼랑 끝에 내몰린 것처럼 절박한 환경은 엄마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주저거리던 눈빛에는 어떻게라도 살아야 한다는 결기가 더해졌고 자주 한숨을 내쉬던 입매는 앙다물어졌다. 깡깡이 일을 하는 조선소는 엄마에겐 더는 피할 수 없는 막장과 같은 곳이었다. 광부가 굴 속에 들어가 석탄을 캐내듯 엄마는 높다란 배에 매달려 깡깡이 망치로 쇠를 떨어냈다. / 79p

 

 

 

 

 

 

   이처럼 『깡깡이』는 1970년대 부산의 한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가족이라는 품이 있어서 마음만은 따뜻했던 그 시절, 그 날의 향수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한편으로는 시간이 흘러 화가가 된 정은이 치매에 걸린 엄마를 만나러가는 장면에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가족에게 희생한 엄마의 고단했던 삶을, 그 시절의 딸들이 겪어야 했던 애환을 담담하게 풀어냄으로써 묵직한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덕분에 우리는 부모님 혹은 조부모님 세대가 겪었을 시절의 모습들을 먹먹한 마음으로 그려본다. 방앗간 운영을 하느라 바빴던 외할머니를 대신해 위의 두 오빠와 아래 두 동생들을 위해 살림을 도맡았던 엄마, 그 버릇이 아직도 남아서 친척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날이면 더더욱 부엌에서 떠나질 않던 나의 엄마. “엄마는 언제부터 요리를 잘했어?” 하고 묻는 어린 나에게 “엄마는 너만 할 때부터 부엌에서 밥을 지었거든.” 했던 그때 엄마의 목소리와 낯빛은 어떠했던가. 이렇게 자라서도 나는 한 번도 그것을 제대로 어루만져주지 못한 것 같아 새삼 미안해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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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셜리 클럽 오늘의 젊은 작가 29
박서련 지음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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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의 땅에서 만난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 그리고 끝끝내 발견하게 되는 ‘우리’

셜리라는 이름의 사랑스러운 그녀들에게서 ‘우리’라는 연대의 힘을 마주하는 시간!

 

 

 

   “엇, 저는 이름만 듣고 남자인 줄 알았어요.”

   내 이름 석 자만 알고 온 이들은 깜짝 놀라곤 한다. 완벽히 남성적이라 생각하기에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여성적인 이름이라고 하기에도 그저 그런 ‘지헌’이라는 이름은 종종 이와 같은 오해를 사곤 한다. 그럴 때면 너스레를 떨며 말한다. 괜찮아요, 딱히 여성스럽지도 않아서요. 나는 이름이 그 사람의 정체성과 의식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정확하게는 이름대로 살아가는 듯한 느낌이다. 흔하지 않아, 중성적인 느낌이지, 가볍다거나 발랄한 느낌은 아니고 적잖이 무게감이 느껴지지. 딱 이름이 주는 그 느낌대로 살아온 게 나라는 사람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문득 나와 같은 성과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녹색창에 검색해봤더니 대체로 저술가 혹은 예술가로 분류되는 정말 몇 안 되는 이들만 간략하게 나온다. 그들은 이름대로 살고 있을까? 혹은 이름값을 하며 살기에 녹녹하지 않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더 셜리 클럽』을 읽고 난 후, 이 땅에서 지헌이라는 이름의 당신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지 문득 안부가 궁금해진다.

 

 

 

 

 

 

나와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한 수많은 인생을 만난다는 것

 

 

 

   한국 이름 ‘설희’, 영어식 이름으로는 ‘셜리’. 스무 살의 한국인 셜리는 한인 워킹홀리데이 정보 사이트를 통해 치즈 공장 일자리를 구하면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살기 좋은 도시라 불리는 호주 멜버른으로 향한다. 마침 그녀가 도착했을 때는 오세아니아 대륙 전역을 통틀어 손꼽히게 큰 축제인 멜버른컵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다. 무심코 사람들 틈에서 멜버른 커뮤니티 페스티벌 퍼레이드를 구경하고 있던 셜리는 ‘더 셜리 클럽’이라는 이색적인 이름을 발견하게 된다. 독특하게도 클럽에 소속된 이들은 모두 할머니들이다. 전통 의상을 입은 것도 아니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닌, 그냥 사람 좋아 보이는 평범한 할머니들이다. 너무 평범해서 눈길이 가는 이 할머니들의 가슴에는 저마다의 이름이 적힌 명찰이 달려 있다. 셜리 J, 셜리 M, 셜리 O……. 그러니까 이 할머니들은 모두 셜리고, 셜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만이 클럽에 가입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내 이름도 셜리예요! 문득, 셜리는 할머니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어져서 손을 흔든다. 처음 호주에 발을 디딘 날이 어떤 세계의 새해 첫날이고 그 도시에서 가장 큰 축제가 열리는 날이라는 건,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이 세계가 나를 환영한다는 의미기도 하겠지만 도착한 이래 그런 해석을 유지할 만한 장치가 마땅히 없었던 그녀로선 ‘더 셜리 클럽’은 설명하기 힘든 기쁨으로 마음을 출렁이게 한다. 어쩌면 그것은 셜리라는 이름이 주는 특이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국 이름으로 치면 ‘자’나 ‘숙’으로 끝나는 이름과도 같은, 그래서 19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잘 붙이지 않는 데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조차 유색인 인구가 늘어나기 한참 전에나 유행했던 올드한 느낌의 이름을, 그것도 한꺼번에 여러 명을 만나게 되다니. 그건 한국에서 온 이방인으로서, 이곳도 저곳도 아닌 제3자의 시선에서 겨우 마주한 동질감 같은 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셜리는 퍼레이드를 마치고 일종의 뒤풀이를 하고 있던 셜리 할머니들을 뒤따라갔다가 우연히 S를 만나게 되고, 덕분에 임시명예회원으로 클럽 가입에 성공한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예요. 첫째, 제 한국 이름과 발음이 굉장히 비슷하다는 것. 둘째, 셜리라는 이름은 사랑스럽다는 것.” / 38p

 

“누굴 찾고 있어요?”

거의 완벽한 보라색 목소리였다.

어떤 소리는 색깔로 들린다. 특히 사람의 목소리에는 거의 항상 색깔이 있다. / 28p

 

 

 

 

  평소 사람이 지닌 목소리에서 색깔을 느끼곤 하는 셜리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보라색 목소리를 가진 S에게 본능적으로 이끌린다. 때문에 S와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주말이 되면 S의 친구들을 함께 만나고 도시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차츰 즐거워진다. 그렇게 셜리는 S를 만나거나 ‘더 셜리 클럽’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참여해 셜리 할머니들과 소소한 우정을 나누면서 점차 이 도시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그녀가 S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좋아한다, 이 사람이 좋다. 이 단순한 사실에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 S가 느닷없이 사라지고 만다. 아무런 연락이 없고, 답장도 없다. 이때부터 그녀는 S를 다시 만나야 한다는 믿음으로 치즈공장에서 일하는 것을 그만두고 에어즈록에서 울루루로 그리고 퍼스로, 로트네스트섬으로 이어지는 여정을 떠난다. 그리고 이 낯설고도 무모한 여행길에 놀랍고도 위대한 ‘더 셜리 클럽’이 함께 한다.

 

 

 

그 순간,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깨달음이 피할 길 없는 파도처럼 나를 뒤덮었다.

이 사실에 순응해야 했다. 내게 이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토록 큰 위안과 감사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에. 이 사람을 알게 된 이후 나는 내내 이 사람을 필요로 해 왔는데, 그 사실을 애써 모른 척해 온 것 같았다. 그걸 인정하는 일에는 기묘한,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종류의 감동이 있었다. 나는, 좋아한다, 이 사람을. 이 사람이 좋다. 이 사람을 좋아한다. 나에게 그건 아주 단순하고도 파괴적인 사실이었다. / 123p

 

 

“우리 클럽의 모토가 뭐였지요?”

“재미, 먹거리, 친구!”

할머니들이 입을 모아 Fun, Food, Friend라고 외쳤다.

“그중에 제일 중요한 것?”

“친구!”

할머니들이 다시 제창했다. 해먼드 할머니는 미소를 지었다.

“들었죠? 더 셜리 클럽에 셜리보다 중요한 건 없어요. 우리는 모두 셜리고, 우리는 모두 셜리를 아끼죠. 부담 느끼지 말아요. 우리가 도울게요. 셜리를 돕는 게 우리를 돕는 거니까.” / 141p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셜리를 받아들여준 할머니들은 이제 S에게 전하지 못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 하는 셜리의 진심에 함께 돕겠다고 나선다. 빅토리아 지부에서 제일 컴퓨터를 잘한다는 셜리 아케인 할머니가 S의 페이스북 계정을 찾아 주고, 셜리 벨머린 아주머니는 치즈공장의 셰어 하우스에서 그녀가 겪은 부당한 대우를 바로잡아주며, 셜리 해먼드 할머니는 다른 지역의 클럽 회원들에게 연락해 곳곳에서 셜리를 도울 수 있도록 한다. 피부색이 다르고 나이도 다르지만 셜리를 따뜻하게 품어주고, 감싸주고, 사랑을 찾으려는 용기를 마음껏 응원해준다.

 

 

 

   이렇게 소설 『더 셜리 클럽』은 셜리라는 이름의 사랑스러운 그녀들에게서 모든 것을 초월한 ‘우리’라는 연대의 힘을 보여준다. 비록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서로 다른 시간에 다른 역사를 살아온 이들이 연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모든 힘을 품을 수 있는 ‘사랑’이 있어 가능한 게 된다. ‘여러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은 그 문화적 배경에서보다 그들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 안에서 정체성을 찾게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 안에서 우리가 된다. 네가 찾고 있는 사람에게 네가 주는 사랑이 그 사람을 완성해 줄 거다.’ 셜리에게 전하는 넬슨 할머니의 메시지가 유독 마음을 울리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저 이름이 같은, 딱히 이유랄 것이 없는 이 연대에 우리가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 또한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있는 선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어서가 아닐까.

 

 

 

“리틀 셜리를 가르치려거나 교훈을 주려고 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셜리도 잘 알겠지만, 어머니와 딸 사이에는 다른 사람들이 함부로 판단하거나 끼어들 수 없는 마음의 매듭이 있게 마련이잖아요?” / 185p 

 

 

 

 

  『더 셜리 클럽』은 핑크빛 사랑이 흘러넘치는 표지의 그것처럼 참 달콤한 소설이다. 그러면서도 ‘한국인으로도 독일인으로도 영국인으로도 내가 충분하지 않은 느낌’이 든다던 S의 고백처럼, 어느 나라의 국민, 시민이라는 감각 대신 ‘이민자’라는 제3, 제4의 정체성 속에서 떠도는 이민자 가정의 내밀한 상처에 시선을 둔 작가의 섬세함도 돋보인다. 워킹홀리데이라는 그럴 듯한 이미지 속에 청년들이 겪는 각종 부당함과 인종차별 문제까지 사실적으로 그려낸 점 또한 인상적이다. ‘오늘의 젊은 작가’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오늘의 시대를 공유하는 박서련 작가만의 ‘감각’을 잘 보여준 듯하다. 덕분에 이미 좋은 평을 받고 있는 그녀의 다른 작품들도 사뭇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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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9
김희선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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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 다잉 시대, 노인 혐오와 배제라는 사회적 문제를 날카롭게 포착한 소설!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교묘히 파고들어 발칙한 상상력과 신선한 감각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작품!

 

 

 

   여덟 개의 계곡 사이에 푹 파묻혀 있다고 해서 사람들은 이곳을 팔곡마을이라 부른다. 지도나 내비게이션 없이 그쪽을 지난다면 거기 마을이 있는 줄도 모른 채 지나칠 만한 그런 곳, 마을이 있다는 걸 안다 해도 막상 배에서 내리면 잘못 온 게 아닌가 하는 불안을 느낄 만큼 어둡고 축축한, 바로 그런 곳이다. 누군가는 팔곡마을 하면 우울한 풍광을 떠올리며 소위 시체 같은 느낌을 떠올리기도 한다. 거기선 만약 길을 걷다가 유령을 마주쳐도 그게 유령인 줄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마을 노인들이 이미 유령과 별로 다를 바 없는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

 

 

 

유령처럼 회색지대를 떠도는 노인들

 

 

 

   월상파출소의 소장 박 경위는 우체부가 하도 팔곡마을의 노인들이 사라졌다고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하는 수없이 선착장으로 향한다. 해질녘이 다 되어가는 데다 몸은 피곤했지만 우체부의 확신에 찬 말을 듣고 있으려니 차마 떨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체부는 여느 때처럼 팔곡마을에 우편물을 배달하러 갔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이 손수 페인트를 칠해서 나사못으로 바닥에 고정해둔 우편함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비워지지 않은 적이 없던 그 우편함이 지난번에 넣어둔 우편물과 함께 그대로 남아 있더라는 것이다. 우체부는 뭔가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났을 것 같은 이상한 징조를 느꼈다고 한다. 마을에 살고 있는 여덟 집 앞으로 동시에 배달된 웰다잉협회라는 이름의 우편물 역시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쓱 훑어보니 연명치료 거부에 대한 사전의향서 작성을 안내하는 건조한 내용의 우편물에 불과했지만, 다 늙어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노인네들이 서류에 사인하는 광경을 떠올리려니 어딘지 꺼림칙했을 것이다. 그때부터 우체부는 약간 두려워진 마음을 안고서 마을 이장인 피 노인의 집과 마을회관을 차례로 둘러본다. 하지만 거기엔 피 노인의 흔적은커녕 마을의 노인들이 한꺼번에 사라진 게 분명하다는 선뜩한 예감만이 감돌뿐이다.

 

 

 

“물론이죠. 있어요. 내가 알아요. 그 노인네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마을을 비운 적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왜 갑자기 다들 사라져버렸겠어요? 무슨 사달이 나지 않고서야 그럴 일이 없지 않겠느냐고요.” / 49p  

 

 

 

 

  보나마나 팔곡마을 노인 전원이 조그만 봉고차를 대절해서 어디 관광이라도 갔으려니 하면서도 박 경위는 팔곡마을로 향하는 배에 우체부와 함께 올라탄다. 이미 사위는 컴컴해지고, 하늘이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여 있는 걸 보니 곧 폭풍우라도 몰아칠 듯한 분위기다. 살집이 있고 퉁퉁한 선장은 가는 길에 심심하니 홍보 영상용 비디오나 보라고 틀어주는데, 그 영상의 내용이 어쩐지 기묘하다. ‘웰다잉-죽음을 이기는 법’이라는 제목의 영상은 죽음을 능동적으로 맞이하라는 심오한 메시지와 함께 영상을 보는 이로 하여금 기이한 최면에 빠져들게 하는 데가 있다. 잿빛 거리, 죽음을 이긴다는 사람들, 박 경위는 자신도 모르게 커다란 호수에 뛰어들어 그것과 하나가 되어 완전히 사라지는 환영에 사로잡힌다. 다행히 우체부가 자신을 깨우는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갑자기 호수에 들어가겠다며 영원히 쉬고 싶다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해댔다는 우체부의 말이 찝찝할 따름이다.

 

 

 

제길. 대체 노인들은 왜 한곳에 가만히 있지 않는 걸까. 힘도 없고 관절도 안좋다면서 툭하면 그들은 여기저길 돌아다녔고 길을 잃거나 버스에서 굴러떨어지고 계단에서 다쳤다. 다친 노인네들이야 병원에 들어가 누우면 그만이다. 그러나 남은 가족들은? 그들은 도대체 무슨 죄가 있어서 그런 존재들, 살아 있되 살아 있다고 하기도 애매한, 삶과 죽음의 중간인 회색지대를 맴도는 이들에게 발목을 잡혀야 하는가 말이다. / 53p

 

 

죽음이 다가왔을 때 굴복한다면 그건 죽음에 압도당하는 겁니다. 그러나 먼저 죽음을 택한다면 그거야말로 죽음에 대한 승리가 되는 거니까요- 곁에서 지켜봐주는 겁니다. 놀라운 건, 이 나라에선 늙거나 병든 사람만이 이런 죽음을 택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젊고 건강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어도 그저 삶을 지속하기 싫어지면, 의사를 불러서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겁니다. / 58p

 

 

 

 

 

 

   그러고 보니, 그 많던 노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이곳 팔곡마을에는 이제 열 명의 노인만이 살고 있을 뿐이고, 월상댐까지 들어가는 뱃길에 있던 다섯 개의 마을 중 벌써 세 개는 완전히 사라졌다. 박 경위는 우체부의 말대로 노인들이 사라진, 텅 비어있는 스산한 풍경의 팔곡마을을 둘러보며 알 수 없는 기시감과 실체를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이상한 의문에 사로잡힌다. 설마, 이건 정말로 희대의 노인 단체 실종극일지도 몰라. 노인들은 대체로 한 명씩 사라졌고 한 명씩 죽어갔다. 그래선지 그들의 죽음은 별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고 아무도 그 행방을 궁금히 여기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노인이 한꺼번에 사라진 적이 없었다는 사실은 박 경위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바로 그때, 내내 보이지 않았던 우체부가 누군가에 의해 사로잡혔다는 것을 알게 되고, 선장 역시 뜻밖의 습격을 받고 쓰러진다.

 

 

 

“내 말은, 이 세계가 공정하고 온전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같이 보이느냐, 이거야. 하긴, 지금 이런 얘길 한들 누가 이해하기나 할까. 여하간 아까 내 손목을 보고 당신이 우리 조직의 정체를 어느 정도 눈치챘다는 건 알았어. 그래 맞아. 우린 ‘뉴 제너레이션’의 일원이야. 뉴 제너레이션. 세계를 구할 사람들. 새로운 세대, 미래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우린 세상 곳곳에 숨어 그림자처럼 자신의 임무를 완수해 나가고 있다고.” / 107p

 

 

“세계 각지에서 그건 이미 골칫거리였지. 그래, 세상이 점점 늙어가고 있다는 것. 노인들의 지구 전체를 뒤덮어서 결국은 모두를 쇠락과 소멸로 내몰고 말 거라는 것. 늙은 자들은 탐욕스럽고 오만하고 꼰대에다 자기들만 옳다고 믿지. 그것만으로도 심판받아 마땅한데, 거기에 더해서 늙어 죽어가면서까지 오직 살겠다는 욕망으로 발버둥 치며 국가 의료 재정에 구멍을 내고, 그렇게 연명한 목숨 덕분에 연금 시스템까지 갉아먹어. 돈이 있는 노인이라고 더 나은 것도 아니야. 그것들은 끝가지 재산을 틀어쥐고 새로운 세대에겐 한 푼도 내놓지 않아. 살날도 얼마 안 남은 주제에 악착같이 다 늙은 몸을 이끌고 투표장에 가서는, 앞날이 새파란 젊은이들을 골로 보낼 궁리나 하면서 말이야.” / 107p

 

 

 

 

 

 

   처음 보았을 때부터 뭔가 이상한 느낌을 주었던 남자, 우체부와 박 경위를 습격한 건 선장이었다. 선장은 두 사람을 포박한 뒤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기 시작한다. 바로 웰다잉협회 즉, ‘뉴 제너레이션’이라는 이름의 비밀 조직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자신이 이 비밀 조직의 요원으로 인류, 나아가 지구 전체에 있어서 쓸모없는 노인들을 제거하기 위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다시 말해 노인들이 스스로를 혐오하게 만들고 마침내 삶을 비관하여 자신의 비루한 생을 마감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조직의 목표라는 것이다. 그리고 조직의 배후에는 가장 거대한 조직인 국가가 있다며 차마 믿기 힘든 말을 거침없이 떠벌린다. 아무래도 선장의 말은 미치광이의 헛소리에 불과해보이지만, 독자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끔찍하고도 불편한, 섬뜩하지만 굉장히 낯선 하나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늙음이 혐오가 되고, 부양이 자식의 짐이 되어버린 현실, 스스로를 실버타운과 요양원에 내맡겨야 하는 노인의 미래. 어쩌면 뉴 제너레이션의 음모론은 한 정신병자의 망상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간과할 수 없는 진실의 당연한 결과물일지도 모르겠다.

 

 

 

“최종 목표는 다른 데 있지. 그건 바로…… 노인들 스스로가 자신을 혐오하게 만드는 것. 스스로를 무용지물로 여기게끔 몰아가는 것. 그리고 잘 알겠지만, 자기에 대한 혐오의 귀결은…….”

“……설마, 자살?”

선장이 담배꽁초를 폐가 바닥에 던지더니 발로 비벼 껐다.

“역시 소장님은 영리하다니까. 그래, 우린 노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비루한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야. 그게 다라고. 그러니 마을 노인들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는 내 알 바가 아니야. 다만 그들이 차차 한 명씩 세상을 등지도록 도와주는 게, 내 임무인 거지. 어때, 놀랍지 않아? 엄청난 아이디어 아니냐고.” / 116p

 

 

  명절 날, 시어머니는 나에게 연명치료를 거부하겠다는 내용의 신청서를 작성하고 왔다고 말씀하셨다. 노년의 삶이 짐이 되지 않기 위한 결심들을 나는 종종 부모님 세대로부터 자주 듣곤 한다. 그것은 머지않아 나에게도 찾아올 숙명이기에 뼈아프다. 늙음이, 죽음이, 세대와 세대를 갈라놓는 주요한 기준이 되어버린다면 그건 곧 그 자체로 죽음이며 두려움이 된다. 아침부터 바지런히 나와 지하철 상가에서 공허하게 떠도는 저 수많은 어르신들, 오육남이라는 이름의 꼰대들, 정말이지 웰빙이 아닌 웰다잉이 더욱 중요해진 이 시대에 우리가 깊이 숙고해볼 문제다.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이지만 백만 명을 죽이면 혁명이 된다.” / 10p

 

 

 

   이렇듯 『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는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교묘히 파고들어 웰 다잉 시대, 노인 혐오와 배제라는 사회적 문제를 의미심장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심플한 스토리라인과 극적 긴장감, 간결한 필치만으로도 극의 마지막까지 거침없이 내달릴 수 있는 작가의 신박함이 돋보인다. 정말 오랜만에 앞선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지게 만드는 작가라 참 반갑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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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교양 있고 품위 있는 돼지 슈펙
존 색스비 지음, 볼프 에를브루흐 그림, 유영미 옮김 / 뜨인돌어린이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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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쟁이 돼지 슈펙과 다양한 동물 캐릭터들이 만들어 내는 유쾌한 동물 농장 이야기!

동물들이 살아 숨 쉬는 듯한 스토리에 위트 있는 그림체를 더해 아이들이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 책!

 

 

   여기는 셰펠 씨네 농장이에요. 농장을 지키는 나이든 개 헥토르, 늘 밭을 가는 일에 지쳐 있는 말 하드리안, 노란 털을 가진 젖소 부터블루메, 평소 외모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고 우아한 맵시를 지녔지만 어쩐지 얄미운 구석이 있는 수고양이 그레고르, 항상 야단법석인 암거위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거위 군터, 농장에서 일어나는 소식이라면 누구보다도 잽싸게 찾아내 퍼뜨리는 다람쥐 티티. 여기에 돼지 중에 돼지, 모든 돼지의 이상형, 상당히 수준 높고 영리하며 스스로를 멋지다고 생각하는 돼지 에두아르트 폰 슈펙이 바로 우리의 주인공입니다. 슈펙은 평소 자신이 더 많이 알아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에 거만하고 잘난 체 한다는 평을 듣곤 하지요. 일단 말을 내뱉고 보는 성격이라서 허풍을 떨거나 자기 꾀에 걸려 스스로 낭패를 보는 일도 있답니다. 이렇게 셰펠 씨의 농장은 오늘도 시끌벅적합니다. 어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허풍쟁이 슈펙이라도 괜찮아 이토록 매력적인 걸

 

 

 

   함박눈이 며칠 째 펑펑 쏟아져 온 세상에 눈 속에 파묻혔습니다. 슈펙은 눈이 전혀 달갑지가 않았어요. 추운 걸 견딜 수 없었거든요. 게다가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다간 돼지우리가 눈 속에 파묻힐 게 분명합니다. 똑똑한 돼지라면 이럴 땐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죠. 닭들이 사는 헛간의 푸짐한 건초 더미 안으로 파고드는 겁니다. 자신의 먹이를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닭들의 모이까지 빼앗아 먹을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죠. 그렇게 한참을 헛간에서 나오지 않았던 슈펙은 마침내 심심해진 어느 날, 친구들이 자신의 우리 앞에서 얼굴을 맞대고 심각하게 토론을 벌이고 있는 광경을 흐뭇하게 지켜봅니다. 모두들 슈펙이 눈에 파묻혔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그 모습이 우스워서 킥킥대며 웃고 있던 슈펙은 뭔가가 쩍 하고 얼음 갈라지는 소리를 듣고 맙니다. 앗, 자신이 있던 곳이 연못 위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우지끈 갈라진 얼음 사이로 풍덩 빠지고 말았어요. 눈을 피하기 위해 내내 닭들에게 민폐까지 끼쳐가며 몸을 사리고 있던 슈펙이었건만, 눈 피하려다 얼음물을 맞았으니 이런 망신이 또 어디 있을까요.

 

 

 

   하지만 슈펙의 망신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봄이 오자 개구리 노래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하던 슈펙은 마침내 대장 개구리를 만나 따집니다. 하지만 대장 개구리는 콧방귀만 끼고 있을 뿐이었어요. 하는 수없이 대장 개구리를 골려주려고 그들이 제일 싫어하던 여우 울음소리를 흉내 내기로 한 슈펙은 진짜 여우인 줄 오해한 셰펠 아저씨의 산탄총에 맞아 그만 엉덩이가 얼얼해지는 경험을 하고 맙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슈펙이 아니에요. 복수를 다짐한 슈펙은 연못을 없애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지 꾀를 내어야 했지요. 이내 슈펙은 연못 아래에 보물이 묻혀 있다는 표식이 그려진 지도를 그려 은근히 흘려놓습니다. 이를 본 친구들이 앞 다투어 연못 아래의 보물을 얻기 위해 물을 퍼낼 것이고, 그러면 개구리들이 떠날 수밖에 없을 거라는 그럴 듯한 생각을 해낸 것이죠. 그런데 이를 어쩌나요. 대장 개구리가 이를 눈치 채고 말았지 뭐예요. 대장 개구리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연못이 아니라 슈펙의 집에 보물이 묻혀 있는 것으로 표식을 바꾸어 놓았고, 졸지에 동물 농장 친구들의 방문을 받게 된 슈펙은 더더욱 잠을 이룰 수 없게 되었다나 뭐라나요.

 

 

 

 

 

 

   이 뿐만이 아닙니다. 셰펠 아저씨의 벌통 속 꿀이 먹고 싶었던 슈펙은 하드리안을 꾀어내 꿀을 먹으려다 벌 떼에 쫓기는 신세가 되고요. 셰펠 아주머니가 계단 위에 올려둔 크림을 먹고 싶어서 그레고르가 한 것처럼 꾸며 놓았다가 들통이 나 다음날 점심까지 쫄쫄 굶게 되기도 합니다. 자기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가 가지가 부러져 떨어지는 망신을 당하는 일도 허다하죠. 하지만 우리의 슈펙, 이쯤 되면 말썽꾸러기에 허풍만 가득한 것이 미움을 살 법도 한데 또 그렇지는 않습니다. 집에 불이 났을 때 용감하게 뛰어들어 이를 알린 일도 있고요. 셰펠 아주머니로부터 혼이 나면서도 맛있는 크림을 먹을 수 있었던 데다 한 번밖에 혼나지 않았다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참 긍정적인 면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허풍에 가까운 말일지라도 일단 무엇이든 시작하고 보려는 성격은 배울 만한 점이기도 하고요.

 

 

 

에두아르트는 끙 앓는 소리를 냈어요. 이번에는 분노 때문이었죠. 이제 멍청한 오리들을 포함하여 온 세상이 에두아르트가 허풍을 떨었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에휴.”

에두아르트는 천천히 부드러운 진흙 웅덩이로 들어갔어요. 그럭저럭 만족스러웠어요. 태양은 언제나처럼 에두아르트의 넓적한 엉덩이를 따뜻하게 달구어 주었죠. 에두아르트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어요.

‘그래, 뭐. 이만하면 별로 나쁘지 않은 삶이야.’ / 204p

 

 

남자는 팔을 공중으로 높이 쳐들더니 마치 춤을 추려는 듯 밀짚모자를 바닥에 내던졌어요. 그러고는 그림을 집어 높이 집어던졌어요. 에두아르트 눈에는 환호에 찬 몸짓으로 보였어요. 남자가 기뻐하는 걸 보니 에두아르트도 기뻤어요. 에두아르트는 예술가들이 종잡을 수 없이 행동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화가는 너무 기쁜 나머지 주체를 못하는 것 같았어요.

에두아르트는 흡족한 마음으로 천천히 우리로 돌아왔어요. 몰래 착한 일을 하는 건 얼마나 보람찬지 하고 생각하면서요. / 224p

 

 

 

 

 

 

   이렇듯 『세상에서 가장 교양 있고 품위 있는 돼지 슈펙』은 자신이 영리하고 멋지다고 생각하는 돼지 에두아르트 폰 슈펙이 벌이는 29가지의 일화들을 담은 우화집입니다. 비록 계획하는 모든 일이 엉망이 되곤 하지만 능청스럽게 자기를 긍정하고 또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독자들로 하여금 유쾌하게 다가옵니다. 특히 저마다 다른 성격을 지닌 동물들로 하여금 풍자와 교훈을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방식은 우리 아이들에게 즐거운 상상력을 심어줍니다. 실제로 이 책의 저자인 존 색스비가 손주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쓴 이야기를 엮은 책이라고 하니, 설레어하며 기다리고 있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참 흐뭇해집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를 그린 볼프 에를브루흐의 그림이 이야기의 맛을 풍성하게 해주니 보는 즐거움까지 배가 됩니다.

 

 

 

   이 책을 6살이 된 제 아이에게 매일 여러 장에 걸쳐 들려주었더니, 어느 새 이야기의 말미에 이르면 아이는 귀를 막을 준비를 합니다. 오늘은 또 슈펙이 무슨 사고를 칠지 걱정이 되었나봅니다. 그러면서 “슈펙은 말썽꾸러기야.” 하고 핀잔을 주기도 하고요. 하지만 아이는 슈펙이 말썽을 부릴 때마다 피식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합니다. 이야기가 끝나면 동물 모형 장난감을 한 가득 꺼내와 자신만의 동물 농장 이야기를 완성해가기도 합니다. 덕분에 슈펙의 이야기는 저희 집에서도 계속 될 것 같네요. 이 책으로 하여금 다른 독자분들도 아이와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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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아프지 마라 -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웠던 삶의 순간들에게
나태주 지음 / 시공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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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살아가며 시간과 자연 그리고 사람에게서 배우게 되는 것들!

삶의 마지막 순간을 눈앞에 둔 나태주 시인이 세상에 전하는 귀중한 문장들!

 

 

 

   나태주 시인의 언어에는 세상을 아름답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따뜻한 믿음이 서려있다. 특별히 시문학에 조예가 깊지 않더라도 누구나 시를 즐기고 공감하며 어지러운 마음을 단정히 살필 수 있는 치유의 힘이 그곳에 있다. 이미 문학인생의 반세기를 맞은 시인이지만, 삶에 대한 웅숭깊은 시선과 어린 아이처럼 특유의 맑은 정신은 지금까지도 한결 같다. 여기에 신작 『부디 아프지 마라』에서는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이자 교육자이자 시인으로서 살아온 지난날을 회고하며, 어느 덧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렀을 때에야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생의 의미들이 묵직하게 담겨 있다. 흘러온 시간을 통해서 남은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느끼고, 죽음이 있기에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생의 끝을 자연스럽게 마주하려 하고,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애틋한 마음을,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는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자 한다. 덕분에 나는 어수선하고 복잡한 지금의 마음을 담담히 여며본다. 또한 단단히 굳어져 있던 마음을 낙낙하게 풀어놓아본다.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도 함께 부축하면서 가야지.

그러면 조금씩 좋아질 거야.

 

 

 

   나는 지난해 겨울, 시인의 책 『당신이 오늘은 꽃이에요』를 읽고 처음으로 시란 것이 우리의 길이 되고, 동무가 되고, 삶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96편에 이르는 이번 산문집 『부디 아프지 마라』에서도 나태주 문학이 지닌 힘, 이를 테면 삶에 대한 진정성을 담은 그의 시선은 변함이 없다. 그 중 ‘시간에게서 배우다’에서는 깊은 산골에서 자란 유년 시절에서부터 늙은 아이 같은 시인이 되기를 바라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생의 순간순간에서 배울 수 있었던 삶의 소중한 가치들이 애틋한 마음과 함께 담겨 있다.

 

 

 

억지로라도 해본다는 것.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한다는 것. 그것은 인생살이에서 필요한 덕목이고 좋은 일이다. 문제는 방향성이고 목표다. 자기에게 맞는 방향을 정하고 자기에게 알맞은 목표를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면서 천천히 끝까지 그 일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실은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 ‘살아간다는 것’ 중에서 61p

 

 

 

 

 

  몇 년 뒤면 내 나이도 어느 덧 마흔이라는 생각이 들자, 부쩍 시간이 흐를수록 하기 어려워지는 것들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일까, ‘남강 선생의 회심’이라는 제목의 글이 유독 인상에 남는다. 남강 이승훈 선생은 오산학교의 설립자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분이다. 그는 원래 평범하게 시장을 돌며 장사를 하는 상인이었는데, 어느 날 장마당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연설을 듣고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한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면서 새롭게 살고자 하는 회심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도산 선생과 면담을 한 뒤부터 그는 젊은 세대들을 기르고 가르치는 사업에 투신하게 되었다. 이렇듯 사람은 일생을 살면서 한 번쯤은 회심의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 나태주 시인은 남강 이승훈 선생처럼, 50살에 회심의 기회를 갖고 통회하면서 『참회록』을 쓴 톨스토이처럼 인생의 터닝포인트에 대해 생각해볼 것을 독려한다. 나는 언제쯤 터닝포인트가 있었던가, 아니 언제쯤 터닝포인트를 가져야 할지를 생각해보고 새롭고도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보라고 말한다. 내 삶에 기회를 줄 것, 지금의 내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말이다.

 

 

 

우리도 꽃이다. 꽃이지만 언젠가는 시드는 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름답고 싱싱하게 또 순간순간 반짝이도록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야 한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그 말은 오늘도 우리의 귓전에 입을 대고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겸손하라. 준비하라. 조심하라, 그리고 관대하라. / ‘메멘토 모리’ 중에서 64p

 

 

이제 어쩌는 도리가 없다. 서로 기도하고 염려하고 응원하고 위로하면서 살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그 안에 작으나마 평안이 깃들고 행복이 있겠지 싶다. 우리 서로에게 말해보자. 많이 힘드시지요? 나도 힘들답니다. 이 힘든 고비를 조금만 참고 넘겨보시지요. 그러면 분명 좋은 날, 밝은 날이 올 것입니다. / ‘부디 아프지 마라’ 중에서 80p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재유행하면서 또다시 마음이 뒤숭숭해지는 요즘이다. 이전에는 없던 국지성 폭우와 40도를 육박하는 여름 기온에서 느낄 수 있는 이상 기후, 바다 쓰레기를 먹고 죽은 해양 생물과 늘어나는 멸종 위기의 생물들까지. 올해 들어 부쩍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가 두려워지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테다. 시인도 이를 염려하며 책에 ‘꽃들이 걱정이다’를 남겨놓았다. 예전엔 살구꽃 다음에 복숭아꽃, 그 다음에 앵두꽃, 자두꽃, 배꽃이 순서대로 피었는데 요즘엔 그 모든 꽃들이 폭죽처럼 한꺼번에 피어난다는 것이다. 어디 꽃뿐일까. 예전엔 바닷고기들이 철 따라 순서대로 잡혔는데 지금은 그야말로 제멋대로 잡힌다 한다. 시인은 이에 대해 ‘자연이 성급해진 탓이요 난폭해진 탓이요 근본적으로는 질서가 무너진 탓이다. 이를 따라 우리 인간들도 성급해지고 난폭해졌다. 꽃이 피는 건 좋은 일인데 이제는 꽃 피는 일조차 겁이 난다’고 말한다. 사람의 마음 쓰임, 사람의 사는 일까지 덩달아 거칠어지고 뒤죽박죽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이, 풀꽃에 마음을 둘 줄 아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새삼 많이 그립고 또 그립다.

 

 

 

실상 풀꽃 시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사람을 대상으로 쓰인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예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하면 예쁘고 사랑스럽게 볼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쓴 작품이다. 무릇, 시라는 문장은 있는 그대로 현상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 너머의 소망을 쓰는 글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 ‘풀꽃 시의 현장’ 중에서 112p

 

 

시의 시대가 끝났다고 한탄하는 말은 내가 시 공부를 처음 시작했을 때도 있었다. 1960년대 초반이다. 신문이나 잡지에서는 그 문제를 가지고 대서특필해서 다루기도 했다. 마치 그렇게 하면 다시 시의 시대가 올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것은 그 이후에도 여전했다. 그것은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어떤 경련 같은 것이다. / ‘시를 읽지 않는 시대’ 중에서 168p

 

 

연애가 아이 러브 유라면 결혼은 아이 니드 유다. 정말로 그건 그렇다. ‘사랑’보다는 ‘필요’가 더욱 큰 사랑이고 절실한 사랑인지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지 모른다. 나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나는 당신 없으면 곤란합니다, 나는 당신 없이는 살 수 없어요, 하고 말할 때 그것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이 된다. 삶이 되고 사랑을 넘어선 사랑이 된다. / ‘아이 니드 유’ 중에서 255p

 

 

 

 

 

 

   시인은 시를 쓰면서 살았기에 보다 정신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고, 초등학교 선생으로 일관했기에 어린이다운 어법을 잃지 않았으며, 시골에서 살았기에 자연과 친숙한 사람이 되었고, 자동차 없이 살았기에 서민적인 삶을 더 잘 이해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한다. 또 더 많은 것을 원하거나 꿈꾸지 않아도 되는 지금, 늙은 사람인 것이 좋고 다행이라고 여기기까지 한다. 생의 순간순간에 감사하고 행복을 느끼며 살아온 사람에게서만이 배울 수 있는 진정한 여유와 깨달음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아등바등 살고 있는 우리에게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되새겨보게 하는 대목이다. 늘 내가 가진 뿌리의 깊이를 가늠하면서 살고,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자. 생의 마지막을 앞둔 이 시인에게서 이렇게 나는 또 한 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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