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깡이 (특별판) 특별한 서재 특별판 시리즈 3
한정기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70년대 부산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힘들고 어려웠던 그 시절, 그 나날들을 추억하게 하는 소설!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가족의 힘으로 성장했던 이 땅의 수많은 ‘딸’들을 위한 이야기! 

 

 

 

   “깡깡깡깡…….”

   깡깡이 아지매들의 망치 소리를 시작으로 하루가 시작되는 곳. 쇠와 쇠가 부딪치며 내는 깡마른 소리와 쇳가루 냄새, 생활 오수가 그대로 흘러들어오는 항구에서 나는 시척지근한 냄새와 폐선에서 흘러나온 기름 냄새가 파도처럼 밀려드는 곳.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1970년대, 부산의 봉래동과 대평동 해안가 일대에는 가난한 살림을 붙들고 사는 사람들의 고된 풍경이 비릿한 짠내와 함께 진득하게 늘러 붙어 있었다. 모두가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대평동의 작은 골목 안에는 주로 배에 들러붙은 따개비 따위나 녹을 깨끗하게 떨어내는, 소위 깡깡이 아지매라 불리는 이들이 생계를 책임지며 사는 집들이 더러 있었다. 정은의 집도 마찬가지였다. 커다란 빚만 남기고 집을 떠난 무능한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는 다섯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힘든 깡깡이 일을 해야만 했다. 정은으로서는 중학교로 진학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노릇이었다. 깡깡이 일을 하러 나선 엄마를 대신해 아래로 줄줄이 딸린 동생들을 거둬 살피고 챙기는 역할은 오롯이 맏딸인 자신의 몫이었다. 젖먹이 동생 동우가 엄마 젖을 먹어야 할 시간이면 엄마의 일터까지 매일 두 번씩 찾아가야 하는 번거로운 일에서부터 돈을 벌기 위해 신문 배달을 하는 일까지도 마다할 수 없었다. 하물며 바로 아랫동생인 동식이는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사고를 치러 다니기 일쑤였고, 여리고 어린 여동생들도 살뜰히 챙겨야 했으니 어려운 형편에 모두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정은은 투정 한번 부릴 수 없었다. 그건 순전히 다 아버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집 살림 밑천 기특한 맏딸!” 아버지의 그 말은 정은을 옥죄는 족쇄였다. 어디 정은뿐이었을까. 그 시절의 딸들은, 특히나 맏딸은 가족에게 있어 모두 그런 존재였다.

 

 

 

엄마의 그 말은 아버지의 ‘기특한 맏딸’처럼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늘 불러일으켰다. 돌에도 나무에도 기댈 곳 없는 부모님께 힘이 되어 드려야 한다는 생각, 스스로 짊어졌던 그 책임감은 나를 일찍 철들게 했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나를 옭아매기도 했다. 양면성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 16p

 

이해까지는 안 되더라도 나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결혼을 포기하면서부터였지 싶다. 나는 세상의 모든 일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았다. 감정의 질척한 구덩이에 들어가 함께 엉켜 뒹구는 건 이제 사절이다. 가족이든 친구든 최대한 객관화시켜 바라보면 문제의 핵심이 놀랄 만큼 명료해졌다. 그걸 깨닫기까지 참 오랜 세월을 나는 맏딸이라는 책임감에 눌려 살아야 했다. / 27p

 

 

엄마는 딸이라서 부모한테 관심 받지 못한 걸 서운해하면서도 정작 자신도 딸한테 그런 관심을 기울일 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중학교 보낼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서도 동식이 육성회비는 밀리는 법 없이 꼬박꼬박 제 날짜에 쥐여 보냈고 공부하는 데 필요한 거라면 어떻게라도 갖춰줬다. / 150p  

 

 

 

 

 

 

   가난하고 고단한 삶은 쉬이 나아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딱 한 번 가족들을 잠깐 찾아왔다가 수출선을 타러 나가선 영영 돌아오지 않았고, 엄마는 깡깡이 일을 하다가 사고로 다쳐 팔을 다쳤다. 오빠를 따라 나섰다가 길을 잃은 정희는 겨우 찾아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막내 동우는 끝끝내 찾지 못했다. 그나마 하게 된 신문 배달도 악덕 사장을 만나 번 돈을 모두 떼일 뻔했다. 그렇게 가난은, 비루한 삶은 도무지 나아질 줄을 모르고 저마다에게 상처로 남았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자식들 굶기지 않고 공부까지 다 시키겠다는 엄마의 억척스러움이, 그 의지가 끝내 가족을 키워냈다. “니는 내처럼 맏딸이라는 말에 묶어 살지 마라. 사람은 배워야 제대로 대접받고 살 수 있는 기라.” 자신도 맏딸로 자라 희생하며 자랐던 엄마는 정은이만큼은 그렇게 살지 않기를 바랐다. 시간이 흘러 자신이 꿈꾸던 화가가 된 정은은 그제야 “내가 자유로우니 동생도 엄마도 자유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것은 엄마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엄마와 함께 자식을 다섯이나 낳아놓고 다른 여자한테 가버린 아버지. 아버지는 한 번인가 잠깐 우리를 찾아왔다가 수출선을 타러 나가선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나에게 아버지란 말은 무책임이란 말과 동의어였지만 엄마는 치매에 걸리기 전까지도 젊은 시절의 아버지를 잊지 못했다.

아버지를 대신한 엄마의 노동을 지켜보며 아이답게 자라지 못한 나의 어린 시절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응어리졌고 나는 남자라는 인간 전체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기억으로부터 벗어난 지금 엄마는 아버지한테서 자유로워졌을까? / 64p

 

 

벼랑 끝에 내몰린 것처럼 절박한 환경은 엄마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주저거리던 눈빛에는 어떻게라도 살아야 한다는 결기가 더해졌고 자주 한숨을 내쉬던 입매는 앙다물어졌다. 깡깡이 일을 하는 조선소는 엄마에겐 더는 피할 수 없는 막장과 같은 곳이었다. 광부가 굴 속에 들어가 석탄을 캐내듯 엄마는 높다란 배에 매달려 깡깡이 망치로 쇠를 떨어냈다. / 79p

 

 

 

 

 

 

   이처럼 『깡깡이』는 1970년대 부산의 한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가족이라는 품이 있어서 마음만은 따뜻했던 그 시절, 그 날의 향수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한편으로는 시간이 흘러 화가가 된 정은이 치매에 걸린 엄마를 만나러가는 장면에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가족에게 희생한 엄마의 고단했던 삶을, 그 시절의 딸들이 겪어야 했던 애환을 담담하게 풀어냄으로써 묵직한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덕분에 우리는 부모님 혹은 조부모님 세대가 겪었을 시절의 모습들을 먹먹한 마음으로 그려본다. 방앗간 운영을 하느라 바빴던 외할머니를 대신해 위의 두 오빠와 아래 두 동생들을 위해 살림을 도맡았던 엄마, 그 버릇이 아직도 남아서 친척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날이면 더더욱 부엌에서 떠나질 않던 나의 엄마. “엄마는 언제부터 요리를 잘했어?” 하고 묻는 어린 나에게 “엄마는 너만 할 때부터 부엌에서 밥을 지었거든.” 했던 그때 엄마의 목소리와 낯빛은 어떠했던가. 이렇게 자라서도 나는 한 번도 그것을 제대로 어루만져주지 못한 것 같아 새삼 미안해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