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셜리 클럽 오늘의 젊은 작가 29
박서련 지음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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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의 땅에서 만난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 그리고 끝끝내 발견하게 되는 ‘우리’

셜리라는 이름의 사랑스러운 그녀들에게서 ‘우리’라는 연대의 힘을 마주하는 시간!

 

 

 

   “엇, 저는 이름만 듣고 남자인 줄 알았어요.”

   내 이름 석 자만 알고 온 이들은 깜짝 놀라곤 한다. 완벽히 남성적이라 생각하기에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여성적인 이름이라고 하기에도 그저 그런 ‘지헌’이라는 이름은 종종 이와 같은 오해를 사곤 한다. 그럴 때면 너스레를 떨며 말한다. 괜찮아요, 딱히 여성스럽지도 않아서요. 나는 이름이 그 사람의 정체성과 의식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정확하게는 이름대로 살아가는 듯한 느낌이다. 흔하지 않아, 중성적인 느낌이지, 가볍다거나 발랄한 느낌은 아니고 적잖이 무게감이 느껴지지. 딱 이름이 주는 그 느낌대로 살아온 게 나라는 사람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문득 나와 같은 성과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녹색창에 검색해봤더니 대체로 저술가 혹은 예술가로 분류되는 정말 몇 안 되는 이들만 간략하게 나온다. 그들은 이름대로 살고 있을까? 혹은 이름값을 하며 살기에 녹녹하지 않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더 셜리 클럽』을 읽고 난 후, 이 땅에서 지헌이라는 이름의 당신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지 문득 안부가 궁금해진다.

 

 

 

 

 

 

나와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한 수많은 인생을 만난다는 것

 

 

 

   한국 이름 ‘설희’, 영어식 이름으로는 ‘셜리’. 스무 살의 한국인 셜리는 한인 워킹홀리데이 정보 사이트를 통해 치즈 공장 일자리를 구하면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살기 좋은 도시라 불리는 호주 멜버른으로 향한다. 마침 그녀가 도착했을 때는 오세아니아 대륙 전역을 통틀어 손꼽히게 큰 축제인 멜버른컵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다. 무심코 사람들 틈에서 멜버른 커뮤니티 페스티벌 퍼레이드를 구경하고 있던 셜리는 ‘더 셜리 클럽’이라는 이색적인 이름을 발견하게 된다. 독특하게도 클럽에 소속된 이들은 모두 할머니들이다. 전통 의상을 입은 것도 아니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닌, 그냥 사람 좋아 보이는 평범한 할머니들이다. 너무 평범해서 눈길이 가는 이 할머니들의 가슴에는 저마다의 이름이 적힌 명찰이 달려 있다. 셜리 J, 셜리 M, 셜리 O……. 그러니까 이 할머니들은 모두 셜리고, 셜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만이 클럽에 가입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내 이름도 셜리예요! 문득, 셜리는 할머니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어져서 손을 흔든다. 처음 호주에 발을 디딘 날이 어떤 세계의 새해 첫날이고 그 도시에서 가장 큰 축제가 열리는 날이라는 건,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이 세계가 나를 환영한다는 의미기도 하겠지만 도착한 이래 그런 해석을 유지할 만한 장치가 마땅히 없었던 그녀로선 ‘더 셜리 클럽’은 설명하기 힘든 기쁨으로 마음을 출렁이게 한다. 어쩌면 그것은 셜리라는 이름이 주는 특이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국 이름으로 치면 ‘자’나 ‘숙’으로 끝나는 이름과도 같은, 그래서 19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잘 붙이지 않는 데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조차 유색인 인구가 늘어나기 한참 전에나 유행했던 올드한 느낌의 이름을, 그것도 한꺼번에 여러 명을 만나게 되다니. 그건 한국에서 온 이방인으로서, 이곳도 저곳도 아닌 제3자의 시선에서 겨우 마주한 동질감 같은 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셜리는 퍼레이드를 마치고 일종의 뒤풀이를 하고 있던 셜리 할머니들을 뒤따라갔다가 우연히 S를 만나게 되고, 덕분에 임시명예회원으로 클럽 가입에 성공한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예요. 첫째, 제 한국 이름과 발음이 굉장히 비슷하다는 것. 둘째, 셜리라는 이름은 사랑스럽다는 것.” / 38p

 

“누굴 찾고 있어요?”

거의 완벽한 보라색 목소리였다.

어떤 소리는 색깔로 들린다. 특히 사람의 목소리에는 거의 항상 색깔이 있다. / 28p

 

 

 

 

  평소 사람이 지닌 목소리에서 색깔을 느끼곤 하는 셜리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보라색 목소리를 가진 S에게 본능적으로 이끌린다. 때문에 S와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주말이 되면 S의 친구들을 함께 만나고 도시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차츰 즐거워진다. 그렇게 셜리는 S를 만나거나 ‘더 셜리 클럽’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참여해 셜리 할머니들과 소소한 우정을 나누면서 점차 이 도시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그녀가 S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좋아한다, 이 사람이 좋다. 이 단순한 사실에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 S가 느닷없이 사라지고 만다. 아무런 연락이 없고, 답장도 없다. 이때부터 그녀는 S를 다시 만나야 한다는 믿음으로 치즈공장에서 일하는 것을 그만두고 에어즈록에서 울루루로 그리고 퍼스로, 로트네스트섬으로 이어지는 여정을 떠난다. 그리고 이 낯설고도 무모한 여행길에 놀랍고도 위대한 ‘더 셜리 클럽’이 함께 한다.

 

 

 

그 순간,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깨달음이 피할 길 없는 파도처럼 나를 뒤덮었다.

이 사실에 순응해야 했다. 내게 이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토록 큰 위안과 감사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에. 이 사람을 알게 된 이후 나는 내내 이 사람을 필요로 해 왔는데, 그 사실을 애써 모른 척해 온 것 같았다. 그걸 인정하는 일에는 기묘한,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종류의 감동이 있었다. 나는, 좋아한다, 이 사람을. 이 사람이 좋다. 이 사람을 좋아한다. 나에게 그건 아주 단순하고도 파괴적인 사실이었다. / 123p

 

 

“우리 클럽의 모토가 뭐였지요?”

“재미, 먹거리, 친구!”

할머니들이 입을 모아 Fun, Food, Friend라고 외쳤다.

“그중에 제일 중요한 것?”

“친구!”

할머니들이 다시 제창했다. 해먼드 할머니는 미소를 지었다.

“들었죠? 더 셜리 클럽에 셜리보다 중요한 건 없어요. 우리는 모두 셜리고, 우리는 모두 셜리를 아끼죠. 부담 느끼지 말아요. 우리가 도울게요. 셜리를 돕는 게 우리를 돕는 거니까.” / 141p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셜리를 받아들여준 할머니들은 이제 S에게 전하지 못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 하는 셜리의 진심에 함께 돕겠다고 나선다. 빅토리아 지부에서 제일 컴퓨터를 잘한다는 셜리 아케인 할머니가 S의 페이스북 계정을 찾아 주고, 셜리 벨머린 아주머니는 치즈공장의 셰어 하우스에서 그녀가 겪은 부당한 대우를 바로잡아주며, 셜리 해먼드 할머니는 다른 지역의 클럽 회원들에게 연락해 곳곳에서 셜리를 도울 수 있도록 한다. 피부색이 다르고 나이도 다르지만 셜리를 따뜻하게 품어주고, 감싸주고, 사랑을 찾으려는 용기를 마음껏 응원해준다.

 

 

 

   이렇게 소설 『더 셜리 클럽』은 셜리라는 이름의 사랑스러운 그녀들에게서 모든 것을 초월한 ‘우리’라는 연대의 힘을 보여준다. 비록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서로 다른 시간에 다른 역사를 살아온 이들이 연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모든 힘을 품을 수 있는 ‘사랑’이 있어 가능한 게 된다. ‘여러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은 그 문화적 배경에서보다 그들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 안에서 정체성을 찾게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 안에서 우리가 된다. 네가 찾고 있는 사람에게 네가 주는 사랑이 그 사람을 완성해 줄 거다.’ 셜리에게 전하는 넬슨 할머니의 메시지가 유독 마음을 울리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저 이름이 같은, 딱히 이유랄 것이 없는 이 연대에 우리가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 또한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있는 선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어서가 아닐까.

 

 

 

“리틀 셜리를 가르치려거나 교훈을 주려고 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셜리도 잘 알겠지만, 어머니와 딸 사이에는 다른 사람들이 함부로 판단하거나 끼어들 수 없는 마음의 매듭이 있게 마련이잖아요?” / 185p 

 

 

 

 

  『더 셜리 클럽』은 핑크빛 사랑이 흘러넘치는 표지의 그것처럼 참 달콤한 소설이다. 그러면서도 ‘한국인으로도 독일인으로도 영국인으로도 내가 충분하지 않은 느낌’이 든다던 S의 고백처럼, 어느 나라의 국민, 시민이라는 감각 대신 ‘이민자’라는 제3, 제4의 정체성 속에서 떠도는 이민자 가정의 내밀한 상처에 시선을 둔 작가의 섬세함도 돋보인다. 워킹홀리데이라는 그럴 듯한 이미지 속에 청년들이 겪는 각종 부당함과 인종차별 문제까지 사실적으로 그려낸 점 또한 인상적이다. ‘오늘의 젊은 작가’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오늘의 시대를 공유하는 박서련 작가만의 ‘감각’을 잘 보여준 듯하다. 덕분에 이미 좋은 평을 받고 있는 그녀의 다른 작품들도 사뭇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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