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터 비즈니스 바이블
권병민 지음 / 이은북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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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크리에이터는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지속 가능한 콘텐츠 제작을 위한 크리에이터 비즈니스 전략 실무서






  그야말로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시대다. 스마트폰 하나면 누구나 영상을 제작할 수 있고, 팔로워를 얻으며, 브랜드 협찬이나 협업을 통해 수익까지 올릴 수 있다. 어느 새 미디어는 유튜버, 틱톡커, 인플루언서 등 사회적 영향력과 다양한 팬덤까지 구축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에게로 집중되고 있다. 기업들 역시 기존의 스타중심 마케팅이 아닌, 생활밀착형 크리에이터들을 중심으로 한 마케팅을 선호하기 시작하면서 크리에이터 경제 시장의 규모 역시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시작했다고 해서 모두가 살아남을 수는 없는 법. 크리에이터 비즈니스 바이블‘1인 창작자에서 ‘1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전략을 담은 크리에이터 비즈니스 가이드다.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 운영 전략, 수익이 만들어지는 구조, 플랫폼과 브랜드 그리고 MCN(크리에이터를 지원하고 광고주·플랫폼과의 연결을 돕는 매개체)과 협업이 이루어지는 방식, 크리에이터 마인드셋 등 크리에이터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 필요한 전략을 정리한 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전파진흥협회가 발표한 ‘2024 디지털 크리에이터 미디어 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3년 국내 크리에이터 산업의 총매출액은 약 53,159억 원으로 전년 대비 28.9% 성장했다. 국내 크리에이터 산업의 사업체 수는 13,514개로 21.5%로 증가했으며, 종사자 수도 42,378명으로 19.8% 증가했다. 이는 크리에이터 산업이 국내 미디어 산업의 주요한 축으로 정착하고 있으며, 전문적이고 조직화된 직업군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 26p

 



브랜드 협업을 위한 사전 준비 체크리스트

브랜드 협업 제안을 위한 크리에이터 소개서를 체계적으로 구성했는지 점검할 것

정량적 데이터(구독자 수, 조회수, 댓글 수 등)와 정성적 특징(콘텐츠 성격, 팬 소통 모두 포함할 것

협업 사례와 성과를 수치 중심으로 정리해 설득력을 높일 것

협업 콘텐츠의 제작 방식과 일정에 대한 안내 항목을 포함할 것

구독자 분석 자료를 기반으로 타깃 소비자 정보 전달이 가능한지 확인할 것 / 136p

 




숫자 중심에서 이야기 중심으로의 관점 전환이다. 콘텐츠를 조회수, 노출 수, 전환율 등으로만 평가하는 순간, 크리에이터는 잘 되는 콘텐츠가 아니라 반응이 있는 콘텐츠를 반복하게 되고, 그 결과 자신만의 세계관이나 메시지는 점점 희미해진다. 저성장 구간일수록 콘텐츠의 이야기성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회수는 떨어져도 기억에 남는 콘텐츠가 있고, 단기 성과는 낮지만 팬의 신뢰를 높이는 콘텐츠가 있다. 숫자는 측정 가능한 가치지만, 창작 동기의 본질을 측정 불가능한 영역에 존재한다. / 238p

 











  도서 및 일부 콘텐츠·상품 이용 광고 협찬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평범한 리뷰어에 보다 가까운 편이라, 크리에이터들은 어떻게 크리에이터에서 비즈니스 오너로 커리어를 전환하고 브랜드와 협업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는지 평소 궁금했던 것들을 배울 수 있어 좋았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조언은 영상 하나하나를 단편 콘텐츠로 소비되게 두지 않고 채널 전체를 하나의 서사 구조로 엮어내라는 점이었다. 그 안에는 말투, 자막, 조명, 속도, 편집 스타일까지 모두 포함되는데, 팔로워들은 단지 콘텐츠를 시청하는 것이 아니라 그 채널 속 세계관에 머무른다는 점을 유념해야겠다.

 




  또, 조회수는 떨어져도 기억에 남는 콘텐츠가 있고, 단기 성과는 낮지만 팔로워의 신뢰를 높이는 콘텐츠가 있기 때문에 숫자에 매몰되지 않도록 주의할 것, 알고리즘을 탓하거나 콘텐츠의 포맷을 무리하게 바꾸려고 시도하기보다는 제작 주기, 콘텐츠 분량, 포맷 구성 등을 잘 설계해 장기 생존의 가능성으로 연결하는 법 등 크리에이터로서의 마인드셋을 익힐 수 있어 유익했다. 평소 크리에이터를 꿈꾸거나 크리에이터 비즈니스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이 책에 도움을 받아보시길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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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미스터리 2025.가을호 - 87호
서미애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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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의 즐거움은 이토록 다양하다!

드넓은 미스터리의 지대를 사유하는 시간!

 





  정기 구독 신청 후에 받은 첫 책이라 더 큰 애정을 갖고 읽었다.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이번 호는 장르라는 특정 형식에 한계를 두지 않을 때 미스터리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게 한 호라 특별했다. 전우성 브랜딩 디렉터가 인터뷰에서 말했듯, 미스터리가 세상에 던지는 질문이자, 정해진 틀과 규칙 없이 기존의 편견을 깨고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며 세상을 탐구하는 사고방식일 수 있다면,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스터리에 진심일 때 과연 무엇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인가, 상상만 해도 설레지 아니한가.




 

미스터리를 단지 장르적 접근이 아닌 세상이 던지는 질문과 연결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미스터리란 추리의 과정만이 아닌, 상황과 서사를 중심으로 구축되며, 긴장과 불안, 몰입을 유도하는 가장 진화한 이야기이자 인간과 세상의 불확실성을 탐구하는 이야기라고 재정의했습니다. 즉 미스터리란 단순한 장르가 아니라 세상을 탐구하는 방식이죠. / 전우성 브랜딩 디렉터 인터뷰 중에서 32p

 











  그래서인지 이번 호에 수록된 단편들이 모두 예사롭지 않다. SF와 미스터리를 결합한 홍정기의 <인공지능의 살의>와 서동훈의 <포 라이더스>는 텔레포트 기술과 신체 재생 기술이 상용화되는 시대의 맹점을 파고드는 미스터리로 신선한 충격을 준다. 순례길을 기약 없이 떠도는 어느 중년 남자의 이야기 <고스트 하이커: 북극성>은 불안과 우울을 견디고 살아가는 인간의 서글픈 자화상을 담은 기묘한 미스터리다. 민비시해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무경 작가의 역사 미스터리 <생문과 사문>도 흥미롭다. 예전에 <치지미포, 꿩을 잡지 못하고>를 읽었을 때도 느꼈지만, 역사와 픽션을 유려하게 넘나드는 필력이 돋보인다.

 




역사 미스터리의 시선은 과거를 향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를 바라보며 쓴 이야기는 과거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과거의 누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심지어 아직도 과거에서 청산되거나 종결되지 않은 것이 남아 있다. 어쩌면 역사 미스터리는 현재 우리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의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시도의 다른 방향일지도 모른다. 탐정이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 본질을 찾아내듯, 역사 미스터리야말로 현재가 아닌 곳을 살펴 더욱 명확히 현재를 판단하려는 가장 현재적인 서술이다. / 무경, <진짜와 가짜 사이의 투쟁> 중에서 226p

 




  개인적으로는 박인성 문학평론가의 <마스터플롯으로 읽는 장르문학: 호러 장르와 공포의 사회학>을 인상 깊게 읽었다. 공포가 어떻게 집단으로 공유되거나 전염되는지, 공포라는 감정의 속성이 어떻게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지, 호러 장르 속 사회·문화적 의미를 톺아보는 특별 기획이다. 저자는 위험한 대상에게서 느껴지는 위기감이나 생존의 위기에서 느끼는 공포보다는, 사회적인 주체로서 느끼는 사회적 죽음에 대한 위기감이야말로 오늘날 공포의 주된 원인을 형성한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한국, 일본, 미국이 어떠한 방식으로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와 공동체의 위기감을 호러 장르에 반영하는지 비교 분석한다. 단순히 읽고 즐기는 것을 넘어서, 우리 시대의 복잡성을 탐구하는 필수적인 문화적 매개체로 성장한 장르 문학을 면밀히 살펴볼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곡성>은 이러한 파편적이고 초개인화된 믿음의 시대, 서로를 악마라고 생각하는 시대에 포괄적인 공포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결국 외지인은 악마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거울이다. 그에게서 발견한 공포는 곧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공포이기 때문이다.

<곡성> 이후에 한국 호러 장르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 것은 역설적으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일상의 공포가 기존의 호러 장르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호러가 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 박인성, <마스터플롯으로 읽는 장르문학: 호러 장르와 공포의 사회학> 중에서 199p

 


일본의 호러 마스터플롯은 포기할 수 없는 대상으로서의 공동체와 그 내부에서 오롯이 개인주의자이기를 바라는 사람들 사이의 이중구속을 그려내는 장르다. 공동체는 필연적이고 가치를 유지해야 하지만 동시에 위험하고 억압적이다. 개인주의자는 매혹적이지만 취약하고 공포스럽다. 이러한 복합적인 이미지가 일본 호러의 가장 모순적이고 양면적인 욕망을 상연한다. / 박인성, <마스터플롯으로 읽는 장르문학: 호러 장르와 공포의 사회학> 중에서 206p

 











  말미에는 독자가 직접 추리해볼 수 있는 단편 소설이 꼭 하나씩 수록되어 있는데, 이번 <한 방의 총소리>는 도전 이래 처음으로 사건 추리에 성공한 작품이다. 추리 능력이 성장한 듯해서 뿌듯한 마음이다. 이제 다음 겨울호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겠다. 나도 미스터리에 한 진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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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긍정 확언 일력 365 (스프링) - 말하는 대로 만들어가는 하루
정예슬 외 지음, 송은주 그림 / 북하우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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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5, 긍정의 가치를 전하는 만년형 일력!

아이의 책상에 두고 매일 긍정의 힘을 선물해보세요!





  얼마 전, 2025 LoL 월드 챔피언십에서 굉장히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습니다. 22로 접전을 이루었던 결승전 마지막 경기였습니다. 승리를 목전에 앞두고 팀 내 선수가 큰 실수를 하자, 페이커 선수가 미안할 거 없으니 심호흡 크게 한 번 하라며 다시 차분하게 경기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이끄는 모습을 보였던 것입니다. 큰 경기에 부담감을 느꼈을 동료에게 질타가 아닌 긍정적인 말로 다독이고 결국 우승을 차지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그간 쌓아온 긍정의 리더십이 위기의 순간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따라서 우리 아이들에게도 긍정의 힘을 가르쳐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아이 스스로 매일 자기 자신에게 긍정의 말을 해줄 수 있다면 삶의 곳곳에서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더 큰 힘을 발휘하겠지요. 초등 긍정 확언 일력 3651365, 매일 긍정적인 말을 스스로에게 선물할 수 있는 특별한 책입니다. 초등 교사 6인이 뭉쳐 함께 만든 이 책은 실제 교육 현장에서 매일 아이들과 교감하며 쓴 긍정의 확언들로 이루어져 있어 더욱 특별합니다. 습관, 감사, 용기, 배려, 사랑, 책임, 성장, 도전, 몰입, 협력 등 아이의 마음을 자라게 하는 삶의 중요한 가치들이 가득 담겨 있어요.

 












실수해도 괜찮아. 다시 해보는 내가 참 멋져.

It’s okay to make mistakes. I feel awesome when I try again.

 

무언가에 깊게 몰두한 시간, 내 하루를 더 알차게 만들어.

When I focus, my day gets better.

 

겨울을 딛고 봄이 오면 내 안의 싹이 돋아날 거야.

After the cold winter, my inner sprouts will bloom.

 

나는 나의 특별함도, 친구의 특별함도 발견할 수 있어.

I can see what’s special about me and my friends.

 





  『초등 긍정 확언 일력 365은 긍정적 사고방식에 초등 영어 학습까지 챙길 수 있는 일력이에요. 초등 필수 영단어 200개가 포함되어 있어, 긍정 확언을 통해 문장의 맥락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지요. 여기에 오늘 하루, 이렇게 해볼까요?’를 따라 확언과 연결된 작은 행동 미션도 실천하다보면, 말이 행동이 되고 또 습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어요.




  일력이 나오기 시작하면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과거의 부족함이 새해의 성장에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아이의 책상에 두고 매일 긍정의 힘을 선물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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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후쿠
김숨 지음 / 민음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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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있는 한 우리는 기억할 수 있다!

담담하고 절제된 언어지만 지독히도 생생한 전쟁과 폭력의 역사!






  이건 아주 거대한 한 편의 시다. 일제강점기 시절, 만주 위안소에 붙들린 15세 소녀의 상처에 관한 절망의 돌림노래다. 낡고 추레한 전쟁의 옷을 입고, 얇은 널빤지 방 안에서, 영문도 모른 채 거친 힘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유린당해야 했던 수많은 소녀들의 아픔을 담은 슬픈 역사다.

 



삿쿠의 개수는 지난밤 내 몸에 다녀간 군인의 개수와 같다. 일곱, 여덟.

삿쿠 한 개는 군인 한 개.

삿쿠 두 개는 군인 두 개.

삿쿠 열 개는 군인 열 개.

삿쿠 스무 개는 군인 스무 개. / 24p

 



  간단후쿠는 귀리죽 한 사발보다 가볍다는, 아랫구멍은 고향 집에서 2리쯤 떨어진 우물보다 깊고 크다는, 일본군 위안소에서 위안부들이 주로 입었다던 간단한 원피스식의 옷이다. ‘간단후쿠를 입고, 나는 간단후쿠가 된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널빤지 방에서 유령 같은 몸을 하고 누워 있는 소녀의 모습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열 개의 널빤지 방. 열 개의 널빤지 문. 그 안의 다른 소녀들까지. 하지만 그 이름이 무엇이건 간단후쿠는 누가 입든 똑같은 간단후쿠가 된다는 서글픈 독백에, 여러 얼굴을 했던 소녀들이 하나같이 잔뜩 스크레치된 화면처럼 흐려지고 만다.

 












  이처럼 김숨 작가는 간단후쿠라는 기억의 언어를 통해 전쟁과 그에 희생된 이름 모를 수많은 위안부 소녀들의 삶 속으로 독자들을 데려온다. 쑥밭이 된 언덕에 목화밭에, 우물가에, 집마당에 있던 소녀들이 어쩌다 천황이 군인들에게 내린 하사품이 되어 낯선 만주강변에 와 있는 것인지. 대체 이 많은 소녀들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아버지는, 늙은 남편은 대체 얼마를 주고 자신을 이곳에 판 것인지. 간호사 양성소나 신발 공장에 취직한 줄 아는 부모는 딸이 낯선 전쟁터에서 군인들의 위안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지.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은 있기나 한 것인지. 구할 길 없는 물음만을 씹어 삼키는 소녀들의 비애가 애처롭게 다가온다.

 



나나코가 강물에 씻는 건 밭에서 막 딴 오이가 아니라 군인 콧물 묻은 삿쿠다. 그녀는 오이로 김치도 잘 담그는 아가씨가 아니라, 삿쿠로 풍선도 잘 부는 조센삐다. 부지런히 일하는 살림꾼이 아니라, 부지런히 군인을 데리고 자는 조센삐다.

간단후쿠를 입고 간단후쿠가 된 조센삐들은 만주 들판에 산다. 귀리죽 한 사발을 먹고 강을 찾아와 운다. 조센삐 조센삐 운다. 귀리죽 먹은 게 꺼질 때까지 조센삐 조센삐 울다가 강물에 얼굴을 씻고 조센삐 조센삐 날아간다. / 17p

 



나는 속으로 묻는다. ‘전쟁이 언제 끝난대?’

간호사가 대답한다. ‘군인들이 전부 죽으면.’

군인이 하나라도 살아 있으면 어떻게 돼?’

전부 죽어야 전쟁이 끝나. 살아 있는 군인이 하나라도 있으면, 죽은 군인들을 살려 내서라도 전쟁을 계속하려고 할 테니까.’ / 77p

 



나는 없애고 싶은 몸을 씻긴다.

나는 없애고 싶은 몸을 먹인다.

나는 없애고 싶은 몸에 간단후쿠를 입힌다.

나는 없애고 싶은 몸에 햇볕을 쬐어 주고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쐬어 준다.

내 몸은 어떻게 생겼을까. 비루하고 구질구질할까. 흉측하고 역겨울까. 나는 내 몸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 124p

 












  자신을 비루하고 구질구질한 몸으로 여기며 살아간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 성병과 설사, 헛구역질과 고열은 당연하고, 매순간 나를 잊어버리는 병을 앓다 낯선 땅에서 스러져간 영혼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하루하루가 폭력의 연속이고, 사는 것이 고통인데 대체 무슨 수로 그 긴긴 시간을 견딜 수 있었을지소설은 담담하고 절제된 언어로 이들의 고통을 증언하지만, 정작 내 안에선 수많은 감정들로 요동치게 한다. 그리고는 결국엔, 그들의 야윈 등을 꼭 끌어 안아주고 싶어지게 한다.

 



  언어가 있는 한 우리는 기억할 수 있다. 반복되는 전쟁과 폭력과 학살. 간단후쿠를 입고 간단후쿠가 된 소녀들은 현재와 미래의 또 다른 언어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이 책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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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들
저스틴 토레스 지음, 송섬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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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 텍스트, 은폐된 목소리 그 위로 다시 쌓아올리는 서사!

시적이고 경이로움으로 가득한 문장이 내내 마음을 훔친다!





  그건 어쩌면 셰에라자드가 이야기로 하여금 자신의 목숨을 구했던 천 일의 밤과도 같은 것. 네네는 흙먼지가 흩날리는 황폐한 사막 지역의 팰리스에 도착했을 때만 하더라도, 고작 열일곱이었을 때 잠깐 정신 병원에서 알고 지낸 노인 후안 게이가 팰리스에서 죽어가고 있는 것을 돌보아야겠다고 결심했을 때만 하더라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조각난 이야기를 깁듯, 낮과 밤을 뛰어넘어 그들이 나누었던 그 숱한 이야기가 과거의 누군가를, 혹은 자기 자신을 구하는 일이었음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지워진 텍스트 그 틈에서 시작된 이야기



  저스틴 토레스의 소설 『암전들』은 죽음을 앞둔 노인 후안이 네네에게 『성적 변종들: 동성애 패턴 연구』란 제목의 책을 건네는 것으로 시작된다. 잰 게이라는 퀴어 연구가이자 레즈비언이었던 사회학자가 3백 명이 넘는 동성애자들을 상대로 그들의 삶과 욕망들에 대해 증언한 것들을 수집한 책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어찌된 일인지 일부 텍스트를 제외하고는 검은색 마커로 시커멓게 칠해져 있었는데, 네네는 집요할 정도로 텍스트를 지우려한 흔적에, 그 안에서 편집당하고 삭제되어버린 퀴어들의 이야기에 강한 호기심을 느낀다.





대부분 검은색 마커로 뒤덮여 있었다. 언뜻 보았을 땐 실성한 상태로 아무렇게나 줄을 죽죽 그어 놓은 것처럼 보였고, 그래서 아마도 주(州) 공무원이 삭제한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곧 이 공들인 정확성과 노력, 집착에 가까운 정성은 검열을 뛰어넘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삭제된 텍스트. 기분이 좋다기보다는 심연의 놀라움, 강렬한 흥미가 일었다. 나는 후안에게 그 삭제를 도발이었다고, 하지만 남은 단어들은 어긋난 음조로 울려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 68p



후안은 죽어 가고 있었지만, 오직 빛 속에서만, 오직 몸속에서만 그랬다. 어둠 속에서 그의 목소리는 나보다 더 예리하며 생기로 충만하게 방 안을 채웠다. / 76p



잰은 베를린, 런던, 옥스퍼드의 도서관에서 레즈비어니즘, 동성애, 성의 역전, 반음양증, 성적 변종-서로 교차해서 쓰일 수 있지만, 조금은 되는 대로인-을 다룬 활자 형태로 된 자료는 가리지 않고 다 읽었다. 그리고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 줄곧, 이 도시들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레즈비언을 인터뷰했고, 그렇게 원고를 꾸렸다. 3백 개의 사례, 즉 레즈비언 3백 명의 삶이 세세하게 담긴 이 원고를.

「안타깝지만, 아가씨, 과학적으로 말하자면 이 원고는 쓸모가 없을 것 같습니다.」 디킨슨은 이렇게 말한 뒤 입을 다물지만, 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덧붙인다. 「민간 지식이잖습니까.」 / 262p












  이때부터 소설은 검게 덧칠된 『성적 변종들』의 빈틈을 메워나가기 위한 두 남자의 긴긴 대화와 의식의 흐름으로 진행된다. 후안은 권위 있는 남성 의사의 이름으로만 출판할 수 있었던 제도적 한계로 인해 자신의 연구를 타인에게 넘길 수밖에 없었던 잰 게이의 생애와 비애를, 비정상적 섹슈얼리티로 치부되어 자신들의 삶과 욕망을 질병이자 장애로 진단받을 수밖에 없었던 퀴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렇게 암전되고 만 사실들, 침묵을 강요당한 이들의 증언들은 후안의 이야기 속에서 마침내 존재의 흔적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 그러는 사이에, 오랫동안 성 노동자로 살았던 네네 역시 퀴어로서의 정체성을 마주하고 자신의 삶을 반추할 용기를, 진실된 목소리를 얻게 된다.




「난 육체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음, 저는 그…… 무관심을 따라하고 싶었어요. 또, 다른 사람에 대한 당신의 점잖고 교양 있는 관심도.」

「상대의 에고를 훔치기 위해 포주들에게 자신을 내준 젊은 망나니. 장 주네를 묘사한 사르트르 말이지.」

「맞아요. 정확히 그 말처럼, 당신의 에고를 훔치고 싶었어요. 아, 그 시절 전 참담했어요. 제 몸이 수치스러웠어요. 살갗을 찢고 나가고 싶었어요. 세상을 알고 싶었어요.」 / 60p



「혼란에 빠져 있었어요. 정신 병원에서 막 나왔을 때니까.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계속 다닐 수가 없었어요. 딱 한 달 만에 그만뒀죠.」

「네네, 아마 넌 그 모든 걸 낭만으로 포장했겠지?」

「모든 거라뇨?」

「실패 말이다. 네가 되려고 했던 영리하고 번지르르한 청년. 망나니 동성애자라는 관념 그 자체.」 / 62p



우리가 가진 이 책, 내가 찾아낸 모습 그대로 새까맣게 지워진 이 책이 더 좋아. 깨달음의 짧은 시들로 가득한 이 책 말이야. 헨리 박사의 지침이 무엇이었든 이에 대항하는 서사인 셈이지. 책을 순서대로 읽는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어? 아무 페이지나 열어젖히면 그 속에 과거로부터 솟아오른 어떤 삶의 스케치가 끝없이 펼쳐지고, 그 하나하나가 등장한 인물이 극복했거나 극복하지 못했음을 토로하는 단 하나의 증언인 것을.」 / 117p













  이처럼 『암전들』은 차별과 은폐 그리고 침묵에 의해 가려진 퀴어 서사를 두 남자의 대화를 통해 다시 잇는 작업을 시도하는 독특한 형태의 소설이다. 깜빡깜빡 암전되었다 불이 켜지기를 반복하는 전등 불빛처럼 이야기는 종종 조각난 상태로 모습을 드러내거나, 진실인지 허구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몽환적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폭력과 개인의 정체성을 지우려는 작업들은 뚜렷하게 감지된다. 하지만 소설은 그간에 가려진 역사를 전복하려 시도하거나 애써 추동하지 않는다. 어떤 상처는 벌어진 상태로 흘려보내기도 해야 한다는 것. 다만 중요한 것은 서로가 서로의 삶에 목격자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 그저 서로의 이야기를 진실 되게 들려주고 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한 이 두 남자의 대화가 긴 여운을 남긴다.





「네가 이 이야기 좋아할 줄 알았다! 상상해 보렴! 오로지 너를 위해, 그 이야기를 여기까지 짊어지고 왔다.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정말 까다롭게 굴지 않니?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지.」

「전 당신이 돌아오길 바라요. 영원히.」

「그런 생각은 버려, 네네. 그저 흘려보내.」 / 36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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