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펀트 헤드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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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이 폭발한다, 이건 그냥 괴물 같은 소설이다!

다중추리와 거듭된 반전, 충격적인 설정으로 어디까지 나아갈지 종잡을 수 없는 극한의 상상력!





  『엘리펀트 헤드』가 국내에 출간되었을 당시, “악마 같은 소설”이라는 평가가 다수를 이루며 이 책만큼은 한사코 스포를 막으려는 독자들의 반응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순전히 독자들의 반응 때문에 이 책을 구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을 읽은 뒤의 나 역시 그들의 반응과 결코 다르지 않았다. 이건 그냥 괴물 같은 소설이라고, 정말 미친 작품이라고.




극한의 상상력이 폭발한다



  가가조 의과대학 부속병원 정신과에서 환자를 진료한 지 23년째, 정신과 의사인 기사야마 세이타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 스스로는 의사로서 확고한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은 물론, 배우인 아내와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큰딸, 지병에도 아랑곳없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작은딸과도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인생을 몇 번 다시 살아도 이렇게 멋진 가족을 만날 수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이런 행복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기사야마는 격렬한 불안에 휩싸이곤 한다. 어딘가에 작은 균열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릴 단 하나의 균열이…….




가족을 지키려면 어떤 균열도 방치해서는 안 된다. / 109p



  이따금 이런 공포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평온한 나날이 지속되고 어쩐지 하는 일마다 순조롭게 진행되어갈 때쯤이면, 언제 이 일상이 흔들릴지 모른다는 추락에 대한 불안 같은 것. 『엘리펀트 헤드』는 어떻게 해서든 가족의 평화를 지켜야겠다는 한 정신과 의사의 과도한 신념에서 비롯된 범죄 내러티브를 기반으로 이러한 공포가 한계에 치닫으면 이야기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극한에 극한의 상상력을 보여주는 미스터리 소설이다. 여기에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다중세계와 타임 패러독스를 인용한 특수설정, 망상과 의식의 분열, 그 안에서 거듭되는 다중추리와 반전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작가의 필력까지… 독자가 무엇을 상상하건 미스터리 장르가 발휘할 수 있는 최대한의 능력치를 이 작품에 아낌없이 쏟아 부은 느낌이다.





“소문은 들었어요. 수상쩍은 이야기뿐이었지만요. 너무 큰 쾌락 때문에 살아갈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거나, 자신의 뇌를 긁어서 꺼냈다는 것도 그중 하나죠.” / 264p



“선생님은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다중세계 해석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이 세계의 온갖 일은 여러 가능성이 중첩된 상태로 존재합니다. 선생님은 오늘 아침 분홍색 넥타이를 고르셨지만, 옆에 있는 노란색 넥타이를 고른 선생님도 동시에 존재하죠.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촌스러운 네이비색 넥타이를 고른 선생님도 있어요. 책상 화분에는 파리지옥이 심겨 있지만, 파인애플과인 브리세아가 심긴 세계도 있죠. 스피커에서 코카인 베이비스가 아니라 디즈니의 오르골이 흘러나오는 세계도 있고요.” / 371p











  다만, 이야기의 흐름상 필연적인 설정이었을지라도 우라시마라는 인물은 상당히 비현실적이어서, 섬세하고 완벽한 논리로 앞선 추리를 반박하고 깨부시고 나아가야 하는 다중추리만의 흥미로운 매력을 일부 손상시킨 듯한 아쉬움을 남긴다. 또 가학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설정 역시 호불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미스터리 장르가 지닌 특수성과 마지막까지 도파민을 아낌없이 폭발하게 하는 상상력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가타부타 말할 것도 없이 그냥 읽어보시라고 말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작품은 참 오랜만이다. 참고로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내 뇌가 분열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될 테이 마음 단단히 먹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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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Axt 2025.1.2 - no.58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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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나와 당신’ 사이의 거리와 마음을 헤아리는 일에 대하여!

서로가 지닌 웅덩이의 크기와 간극을 가늠하고 끊임없이 이해의 경계를 좁혀나가기 위한 시도 속에 문학이 있다!







  『Axt』 58호의 키워드는 ‘폭(Wide)’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쉽고 빠르게 연결되고 있는 요즘이지만, 정작 ‘너와 나’ ‘나와 당신’ 사이의 거리와 마음을 헤아리는 일은 더욱 어렵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우리를 둘러싼 관계의 범위와 경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이번 주제는 좀 더 특별한 듯하다.





  이번 호의 포문을 연 백다흠 편집장의 글은 비상계엄 선포와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국내 최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기쁜 소식이 혼재했던 지난 시간을 돌이켜본다. 과신과 불신으로 두서없이 흩어지고 분열된 각각의 태도를 하나의 올바르고 엄정한 태도로 정의하고 정립해야 하는 우리 시대의 과제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와 윌리엄 트레버의 『마지막 이야기들』을 리뷰한 공현진 소설가의 글 역시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타인이 자신의 이해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순간에 발생하는 충돌과 고통 앞에서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지녀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 중에서도 ‘손쉽게 타인에 대해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는 결국 자신의 이해 속에서만 타인과 타인의 삶을 인정하게 되고, 타인을 그 안에 가둔다.’는 글귀가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데, 나의 오만한 이해 속으로 애써 타인을 끌어들이기 보다는 서로의 간극을 그 자체로 인정할 때 우리는 서로에게 더 겸손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소년이 온다』는 계속하여 묻게 만든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어떤 인간은 더욱 특별히 잔인하게 인간을 학살했고, 어떤 인간은 총을 갖고도 쏘지 않고 누구도 죽이지 않았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117쪽)다고, 자신은 총을 쏠 수 없는 인간이었다고 고백한다.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양방향으로 향한다. 극악무도한 잔인함을 향하여, 그리고 그러한 잔인함 앞에 맞서는 용기를 향하여. / 공현진 소설가 <어떤 인간은>, 「소년이 온다」(한강) review 중에서 12p



먼지처럼 작은 우리가 광대한 우주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경이로운 것 같아요. 우주의 폭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곧 우리 자신을 이해하려는 여정입니다. 우주를 알아가려면 알아갈수록, 우리는 그 크기 앞에서 더욱 겸손해지는 것 같습니다. / 박선경 <우주의 폭, 인간의 자리> issue 중에서 57p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박서련 작가와 김연수 작가의 새로운 단편작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 이번 호에서는 김연덕 시인의 에세이 <사랑하는 은발에 대해>를 가장 인상 깊게 읽었다. ‘계산해 만들어낼 수 없는 색, 미세하게 달라질 미래를 버티고 있는 색, 팽팽한 긴장의 빛으로 젊은 사람들을 초청하는 것’이라 묘사하며, 언젠가는 이 머리칼이 나를 이루는 전부가 되어 ‘내가 노년의 세계와 뚝 떨어진 채 구분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착각도 희미해질 것’이라던 시인의 글 속에서 나의 미래를 엿본다. 젊은이도 노인도 아닌 상태의 나, 여전히 은발의 세계가 나와 무관하다고 믿고 싶은 나에게 그것의 한 올, 한 올이 공포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으나 이왕이면 나의 은발은 단정하고 따뜻해 보이면 참 좋겠다고 나름의 긍정 회로를 돌려본다.




어느 순간 흰머리가 한 올이라도 섞여 있으면 내가 이곳에서 저곳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이곳과 저곳 사이에 우뚝 서 있다는, 그러니까 서성이거나 흐르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지만 그 한 올을 뽑아버리고 나면 금방 고정된 흑발의 세계로 돌아와버리기 때문일까.

언젠가 이 머리칼이 너를 이루는 전부가 될 거야, 미래 한 올이 내 머리로 엎어지며 알려주던 표지를 곧 잊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돋아난 표지는 해가 갈수록 더 자주 나에게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내가 노년의 세계와 뚝 떨어진 채 구분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착각도 희미해질 것이다. / 김연덕 <사랑하는 은발에 대해> essay-objects 중에서 85p



“이 사진은 제 인생의 보물이에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기억하려고 해요. 아기는 울고 있지만, 울고만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그 시절, 저는 나뭇잎을 잡아당겼지만, 잡아당기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렇게 조금씩 바뀌기 시작해 저의 세계 전부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어떠세요? 아기가 울고만 있지는 않다는 게 보이세요?” / 김연수 <조금 뒤의 세계> short story 중에서 164p



모두가 끔찍하다고 말해도 끔찍하기만 한 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다른 걸 보는 것, 그게 바로 예술이 하는 일이야. 이 현실에는 현실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 다른 것에 집중할 때, 너는 네 인생을 바꿀 수 있어. 그 다른 것이 바로 꿈이야. 꿈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꿈의 내용을 바꿀 수 있어. 알겠니? / 김연수 <조금 뒤의 세계> short story 중에서 166p










  58호에 수록된 인터뷰에서 천선란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에게는 타인이 절대로 발을 들일 수 없는 웅덩이가 있는데, 그 웅덩이가 사람 간의 폭을 만드는 것 같다고.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끝내 완전히 이해할 수도, 이해받을 수도 없는 존재이기에, 대신 웅덩이를 사이에 두고 끝없이 소리를 냄으로써 함께 있음을 감각할 수 있는 거라고. 천선란 작가의 말처럼, 나는 서로가 지닌 웅덩이의 크기와 간극을 가늠하고 끊임없이 이해의 경계를 좁혀나가기 위한 시도야말로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문학을 하는 사람이나 문학을 읽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Axt』가 문학하는 사람들에게는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는 터전이 되고, 문학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문학을 향유할 수 있는 놀이터 같은 공간이 되길 응원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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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홀 2 - 맨부커상,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작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2
힐러리 맨틀 지음, 강아름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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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수준 높고 세련된 정치 드라마를 이제야 만났다!

갖은 위협과 모욕으로부터 철저하게 감정과 얼굴을 단속해가며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해야만 하는 정치가로서의 숙명과 분투!






이건 난치성 싸움꾼들의 세계, 

사체로 달려드는 늑대와 그리스도교도를 놓고 싸우는 

사자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쟁이다. 

그 안에서 살아남고자 한다면 

그대여, 얼굴을 단속하고 또 단속하라.





  『울프홀』 2권은 헨리 8세 치하의 권력 핵심이었던 울지 추기경이 실각한 뒤, 그를 보좌하던 크롬웰이 헨리 8세의 지지와 신임을 등에 업고 본격적으로 국정 전반을 장악해가는 과정을 그려나간다. ‘크롬웰을 도와라, 그럼 그도 당신을 도울 것이다. 충성하라, 성실히 임하라, 그를 대신해 기지를 발휘하라. 그럼 보상을 받을 것이다. 그를 헌신적으로 섬기는 자는 출세하고 보호받을 것이다.’ 라던 프랑스 대사의 묘사에서 알 수 있듯, 이제 크롬웰은 법안을 상정하고 왕과 왕실의 자금을 관리하는 것은 물론, 수도원을 개혁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폐쇄할 권한까지 거머쥐며 막강한 권력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미천한 신분인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영국 왕실의 최상층에 오르는 이 신분 상승 스토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잔인하고 교활한 성격으로 묘사되었던 여타의 작품과 달리, 행정의 귀재로 중세 궁정의 복잡한 정치사를 타협 없이 이끌어갔던 토머스 크롬웰의 유능함과 명민함에 주목한 점도 극의 몰입도를 더한다. 갖은 위협과 모욕으로부터 철저하게 감정과 얼굴을 단속해가며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해야만 하는 정치가로서의 숙명과 분투를 이토록 생생하게 묘사해낸 작품이 또 있을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신랄하고 날카롭게 권력의 구조와 속살을 샅샅이 탐색해가는 힐러리 맨틀의 필력 덕분에 우리는 진정 수준 높고 세련된 정치 드라마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왕이 원하는 건 쟁기를 끌 황소가 아니다. 왕의 총애를 놓고 벌이는 전쟁에서 정면으로 승부하고 부상당하고 불구가 되기를 자처하는 야생의 짐승이다. 그가 가드너와 잘 지낼 때보다 그러지 못할 때 국왕과의 관계에서 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음은 불 보듯 뻔하다. 분열시켜 지배하라. / 58p


그러나 자기정당화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구구절절 설명해서 좋을 것도 없다. 옛이야기를 늘어놓는 건 나약한 것이다. 과거는 감추는 것이 현명하다. 설령 감출게 전혀 없더라도. 사람의 힘은 어스름 속에서, 보일락 말락 하는 손의 움직임에서, 의미를 짐작할 수 없는 표정에서 나온다. 엄연히 있어야 할 사실이 빠져 있을 때 사람들은 겁을 먹는다. 당신이 벌려둔 간극에 자신의 공포와 망상과 욕망을 쏟아붓는다. / 115p


세상을 움직이는 건 성벽 안이 아니라 회계실이고, 나팔소리가 아니라 주판알이 딸깍거리는 소리고, 총포 장치가 긁히고 딱딱거리는 소리가 아니라 그 총포와 제작업자와 화약과 탄환의 값을 치를 약속어음에 깃펜으로 서명하는 소리라고. / 143p


“사람들을 실망시킬 수 없어서 그랬다는 거요?” 그가 묻는다. 그녀는 동의한다. 맞아요, 실망시킬 수 없어요. 일단 시작하면 계속 가는 수밖에 없어요. 돌아가려고 하면 저들이 도륙할 테니까. / 318p


사람들의 운명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다. 좁은 방안의 두 남자에 의해. 대관식도, 추기경단의 교황 선출 회의도, 화려한 볼거리도, 행렬도 잊어라. 세상은 이런 식으로 바뀐다. 테이블 위를 오가는 수판, 깃펜의 놀림 한 번으로 달라지는 구문의 위력, 한숨을 쉬며 지나는 여자와 공기 중에 길게 남은 오렌지 꽃잎 혹은 장미수의 향기. 침대 커튼을 당겨 닫는 그녀의 손, 살과 살을 맞대며 내는 은밀한 신음이 세상을 바꾼다. / 475p












  앤 불린과 헨리 8세를 중심으로 왕실의 치정과 애욕에만 집중하다보면 이 책의 진정한 매력을 발견하기 어렵다. 도륙당하지 않으면 도륙해야만 하는 비정한 현실 속에서 수장령( 영국 국왕을 영국 교회의 최고 수장으로 하는 법)을 관철시키려는 자(크롬웰)와 막으려는 자(토머스 모어)의 집요한 수 싸움이야말로 2권에서 가장 압권인 장면이니 이에 주목해 읽어보시길 바란다. ‘메리’, ‘토머스’라는 이름의 주인공들이 대거 등장해 야바위하듯 정신을 혼란케하고, 낯선 중세 영국사가 또 한번 나를 압박하니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지만, 그래서 그 곤란함을 너끈하게 이겨낼 수 있었더라면 훨씬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을 남기지만 그래도 읽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시체’가 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크롬웰과 앤 불린의 대결이 다음 작품인 『시체들을 끌어내라』를 통해 이어진다고 하니 이 역시 서둘러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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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입니다 - 수동적으로 공격하는, 보이지 않는 악인들에 대하여
데비 미르자 지음, 김미덕 옮김 / 수오서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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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나를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다정함을 가장한 우리 주변의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의 존재를 감지하게 하는 심리서!






  정신분석학적 용어로 나르시시스트는 자기애성 인격 장애를 가진 사람을 일컫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부 자기애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높은 수준의 자아도취 성향을 지녔음은 물론, 공감 능력 부족과 과대망상 등 여러 병리학적인 증세와 문제점을 지닌 것으로 분석된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이 가리키는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란 과연 무엇일까?





  회복력 코치이자 작가로 오랫동안 정신건강 분야를 연구해온 저자 데비 미르자는 나르시시스트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바로 외현적 나르시시스트와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다. 외현적 나르시시스트는 말 그대로 눈에 보이고,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남들에게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과시하는 유형의 사람이다.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유형을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는 위장을 잘하고 교묘해서 진단하기 어렵다. 외현적 나르시시스트와는 달리 타인의 평판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자신의 나르시시스트 특성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들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받고, 매력적이고 친절하며, 겸손하고 공감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공감 능력이 없지만 공감적으로 행동하는 방법을 연기한다.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은밀한 전술을 사용하여 관계를 통제하고, 조종하여 장악한다.










“누군가가 은밀하게 공격적일 때,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계산적이고 

비밀스러운 수단을 사용하거나 

공격적인 의도를 숨긴 채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조작한다.” 

- 조지 K. 사이먼, 《양의 탈을 쓰다》 / 40p




  『그 사람은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입니다』는 다정함을 가장한 우리 주변의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의 존재를 감지하고, 뒤틀리고 혼란스러운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심리책이다. 연인, 가족, 친구, 직장 내에서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들에 의해 피해를 입은 이들의 실제 사례를 분석하고, 이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타인을 통제하고 조종하는지 정밀하게 살펴본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 파트너가 당신을 대하는 태도가 이제는 당신에게 일상(정상)이어서, 그 태도가 눈에 띄지 않는다. 폄하가 너무나 교묘해 당신은 지속적인 폄하를 깨닫지 못하며, 당신이 느끼는 감정이 학대자와 함께 사는 트라우마의 결과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 53p



나르시시스트는 당신으로 하여금 ‘내가 뭘 잘못했나’ 궁금하게 하려고,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는 기분, 시선, 겉으로는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지만 당신 스스로를 나쁘게 느끼게 하는 발언을 통해 당신을 통제하려 한다. 당신은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지만 나르시시스트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폄한 당계에서 피해자는 스스로를 믿지 못하도록 프로그램에 짜맞춰진다.

또한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는 실제로 그들 자신의 문제인 일을 당신 잘못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 당신의 가치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이를 ‘투사’라고 한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문제를 당신에게 투사하고, 당신은 이를 눈치채지 못한 채 결국 비난받는다. 피해자의 정서적 요구는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에게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자신의 욕구, 요구, 우선순위만이 중요하다. / 57p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들이 지닌 일련의 특징들 속에서 가장 소름끼치는 것은 이들이 ‘두려움’을 상대와 공유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종한다는 점이다. “당신이 바람을 피울까 두려워.” “당신이 너무 예민해서 걱정 돼.”라는 말로 두려움을 드러내면서 자신이 가진 문제를 도리어 상대에게 투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것이 워낙 교묘해서 상대가 ‘정말 나한테 문제가 있는 건가’ ‘내가 이 관계를 망치고 있는 것인가’ 하고 자책하게 된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우리로 하여금 엄청난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게 하지만, 동시에 우리 스스로에 대해 끔찍한 감정을 품게 만든다는 것이 괴이하고 섬뜩하다.




  여기에 나르시시스트가 부모라면 더더욱 끔찍하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도움을 주고 걱정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녀의 의지와 행동을 무시하고 가르치려는 이들의 태도는 자녀가 상황을 해결할 힘이 자신에게는 없다고 믿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그렇게 자신이 일을 잘 못하고 있다는 미묘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나르시시스트 부모로부터 받다보면 삶에 무기력해지고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당신이 자신을 탓하게 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당신 삶 속에서 만난 내현적 나르시시스트가 끊임없이 당신에게 책임을 돌리거나 암시했기 때문이다. 둘째, 당신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며,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싶지 않은 자기 성찰적인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와 얽혀 일어난 일로 당신이 받는 대우는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당신의 아름다운 특성이 착취당하고 해를 입었으며, 자신을 의심하게 만드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 254p












  이 책은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와 얽혀 일어난 일로 당신이 받는 대우는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교묘하게 꾸며진 말들로 인해 너무 많은 비난을 받아왔거나 스스로를 자책했다면 이제는 그들로부터 벗어나 나 자신이 얼마나 특별한지 진실을 들여다보자. 아울러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관계가 있다면 그 속에 내현적 나르시시스트가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자.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들이 의외로 우리 주변에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타인과의 관계에 휘둘리거나 더 이상 자신을 자책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가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진실을 투명하게 들여다보고, 피해자들이 심리적 고통으로부터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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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미스트 바운드 1~2 세트 - 전2권 미스트 바운드
대릴 코 지음, 정보라 옮김 / 올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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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기억을 찾기 위해 신비한 나라 ‘미스트’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

환상문학만의 특별한 감수성과 매력을 잘 담아낸 작품!







  “아메리카 대륙의 틀링기트 부족 사람들에 따르면, 아주 옛날에 사람 고기를 야식으로 즐겨 먹는 거인이 살았단다….” 옛날 이야기다! 알렉시스에게 있어 할아버지는 마술 양탄자와도 같은 존재다. 순식간에 멀고도 엄청난 세상으로 데려가 주는 마술 양탄자. 알렉시스는 할아버지의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환상의 나라로 여행을 떠날 때면 외국으로 출장을 간 아버지를 따라 또 다시 이사를 가야만 하는 괴로움과 불안감을 잊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늘 유쾌한 모습으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항상 말하지만 그냥 믿으면 된단다. 믿음을 가져, 그러면 모든 것이 진짜가 돼!”





‘아, 공주님, 하지만 이야기는 꿈을 키우는 밭이며, 

꿈이야말로 희망이 머무르는 봉오리이지요.’ / 29p





  여느 때처럼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산책을 하던 중, 갑자기 담요처럼 두꺼운 청회색 안개가 이들을 감싸기 시작한다. 언뜻 숲이 이전과는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무렵, 할아버지가 황급히 알렉시스를 집으로 재촉한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헐레벌떡 뛰던 알렉시스는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에 부딪쳐 미끄러진다. 그때 안개를 헤치고 두 사람 앞에 어떤 조그맣고 낯선 존재가 느닷없이 나타나는데…. 아니?! 지난주에 읽은 이야기책 속의 꼬마 도깨비 케니트? 당황한 알렉시스가 정신 차릴 틈도 없이, 케니트는 화가 잔뜩 난 모습으로 그들이 자신의 집을 부쉈다며 이내 할아버지의 기억을 앗아가버린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케니트가 앗아간 할아버지의 기억은 어떻게 되는 걸까? 할아버지의 기억을 찾기 위해 신비한 나라 ‘미스트’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 『미스트 바운드』는 이렇게 시작된다.






신비한 존재들로 가득한 환상 세계, 미스트




  『미스트 바운드』는 바다 사이렌인 두융과 두융의 주술에 걸린 옴바크족, 독을 묻힌 작살촉을 들고 다니는 낭마이 전사들, 푸르스름한 털복숭이에 멧돼지 같은 긴 송곳니를 가진 오니, 코끼리 형체의 짐승 유메 등의 신비로운 존재와 위험천만한 장소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미스트를 배경으로, 할아버지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갖은 난관을 헤쳐 나가는 주인공의 활약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환상 소설이다. 두 권에 걸친 긴 이야기 속에서도 몰입도 높은 전개가 시종 펼쳐지는 것은 물론, 아시아 신화나 전설 그리고 민담 속 괴물과 요정들이 이야기와 잘 어우러져 어린이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 중에서도 정직함의 가치를, 말보다는 행동의 중요성을,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무엇보다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전하는 책 속의 메시지가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아니, 아니, 착하게 굴어라, 아가야. 가장 작은 존재를 대하는 태도에서 우리의 제일 좋은 모습과 제일 나쁜 모습이 나타나거든.” / 38p



“해 보지도 않으면 절대로 못 풀지.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듯이 마주치는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지만, 세상 대부분은 마주하지 않으면 바꿀 수가 없어.” / 140p



‘정말로 두려워해야 하는 건 두려움 그 자체다.’

할아버지는 고장 난 레코드처럼 이 말을 되풀이하곤 했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아가는 거야. 계속, 계속 나아가야 해.’ / 2권 64p











  알렉시스가 기억풀 재료를 얻기 위해 숱한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었던 힘은 그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녀인 알렉시스에게 사랑을 담아 전한 이야기와 삶의 지혜 속에 존재했다. 이 소설의 빛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냥 지어낸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던 옛이야기가, 그들의 오랜 삶의 경험 속에서 길어 올린 목소리가, 알렉시스로 하여금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가장 큰 힘이자 나아갈 방향을 비추는 빛이 되는 장면들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그래, 조그만 공주님. 늑대 수수께끼의 정답은 대답이 너의 손안에 있다는 것이었어. 네가 믿는 것이 미래이고, 혹은 너의 미래라는 것이지. 그리고 네가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될지는 너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고.” / 2권 152p



“삶이 너에게 돌을 던지거든 그걸로 다리를 지어라, 벽을 쌓지 말고. 너의 그 벽 바깥으로 나올 때가 됐어. 리프, 이제는 네가 뒤로 물러서는 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걸 지어 올려야 해. 그러면 아무 데도 못 가고 붙잡혀 있는 대신 어딘가로 움직일 수 있는 거야. 알리사를 위해서라도 이제 너는 다리를 지어야 해, 리프.” / 2권 180p





  『너의 유토피아』와 『저주토끼』를 쓴 정보라 작가가 왜 이 책에 주목하고 번역하고 싶어했는지 알 것 같다. 근래에 읽은 작품 중에서 환상문학만의 특별한 감수성과 매력을 가장 잘 담아낸 작품인 듯하다. 어른인 나조차도 흠뻑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읽었을 만큼 재미있다.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환상 소설을 찾으시는 분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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