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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의 노래 - 2023 부커상 수상작
폴 린치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1월
평점 :

이 소설은 꼭 읽어야만 한다!
국가 폭력으로부터 철저히 내몰린 한 가족의 분투를 섬세하고 강렬한 시적 언어로 완성해낸 수작!
어느 날 주인공인 아일리시의 집에 사복경찰이 찾아와 남편인 래리를 찾는다. 국민연합당이 집권한 후, 아일랜드는 9월부터 발효된 비상대권법에 따라 소위 반동분자들, 즉 국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이들을 주시하던 중이었다. 이를 규탄하기 위해 거리에 나섰던 교원 노동조합원들이 속속들이 구금되는 가운데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래리 역시 그들과 함께 끌려간다.
아일리시는 변호사를 접견하고, 불법 구금에 대해 항의해보지만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되고 더 이상 래리의 행방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그런 와중에 큰아들인 마크는 강제 징집 통지서를 받고, 막내아들의 여권 발급까지 거부당하는 것도 모자라 생명공학 회사 고위 관리직이었던 직장까지 잃게 된다. 국가와 개인의 운명을 움켜쥔 폭력의 수레바퀴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흘러가는 가운데, 과연 아일리시와 가족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다시 원래의 삶을 되찾을 수 있을까.
국가는 우리를 내버려둬야 해요, 마이클,
괴물처럼 한 가정에 들어와서 아버지를 움켜쥐고 삼키다니, 하물며 아이들한테 이걸 어떻게 설명해요,
자기들이 살고 있는 국가가 괴물이 되었다고
말이에요. / 51p
2023년 부커상 수상작 『예언자의 노래』는 전체주의에 휘말린 아일랜드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여성의 비극을 담은 소설이다. 작가인 폴 린치는 전체주의의 망령이 국가와 개인을 어떻게 지배하고 또 무너뜨리는지를 놀랍도록 속속들이 묘사한다. “우린 전통에 속하지만 전통은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것일 뿐 그 이상은 아니야-과학자나 교사, 기관, 만약 기관의 주인을 바꿀 수 있다면 사실의 주인도 바꿀 수 있어, 신념 체계를, 합의된 것을 바꿀 수 있고 그게 지금 그들이 하는 일이야”라던 소설 속의 대사처럼, 이제껏 튼튼하다고 믿어왔던 법의 체계가 국가의 절대 권력에 제압당하면 국가와 개인이 어떠한 혼란에 빠질 수 있고, 고립될 수 있는지를 통렬하게 보여준다.
당신은 과학자를 자처하면서 존재하지도 않는 권리를 믿는군, 당신이 말하는 권리를 입증할 수 없어요, 그건 국가가 정한 허구예요, 국가가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않는지 필요에 따라서 결정하는 건 국가입니다, 물론 당신도 알겠죠. / 83p
제복을 통해서 국가가 말하고 있다, 그녀는 두 사람이 민간인 본장을 하면 어떨지 상상한다, 거리에서 마주치면 돌아보지도 않고 지나칠 것이다. / 145p
제 말 좀 들어주세요, 난 이제 자유가 없어요, 엄마가 이해해야 돼요, 우리가 저들에게 굴복하면 생각할 자유도, 행동할 자유도, 존재할 자유도 없어져요, 난 그렇게는 못 살아요, 저한테 남은 자유는 싸우는 것뿐이에요. 아일리시는 아득한 정상에서 떨어졌다, 말이 흩어져 땅으로 녹아든다, 그녀가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 어둠 속에서 서둘러 아들을 찾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의지만이, 마크의 의지만이 보인다, 그것이 육체를 이탈한 빛처럼 그녀의 앞을 지나간다. / 163p



아마도 몇 달 전쯤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이토록 숨 막히고 절망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시스템과 사법체계가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직접 목도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이야기가 지구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불행한 사고쯤으로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폴 린치는 주인공인 아일리시의 분노와 절박함, 고통과 상실을 빌어 우리에게 말한다. 이것은 현실이고, 당연히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이제 알겠어요, 내가 자유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은 오직 노력이었나 봐요, 자유는 애초에 없었나 봐요,”라던 모나의 대사가 환기하듯, 자유는 마땅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호해야 하는 결연한 의지임을 우리는 무겁게 마주해야 한다고.
너무 피곤해서 잠도 오지 않는다. 아일리시는 안락의자에 앉아서 블라우스로 사진을 닦으면서 비웃듯 지나가는 과거의 행렬을 바라본다, 래리에게 공습에 대해서 속삭인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의 무게에 그의 눈썹이 늘어지는 것을 바라본다, 그의 손이 수염을 당긴다, 래리는 분노에 압도당하여 주먹을 쥐지만 그 분노는 세상의 조롱 앞에서 무력해진다, 이 집은 더 이상 집이 아니다. / 302p
예언자가 노래하는 것은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과 앞으로 일어날 일과 어떤 사람에게는 일어났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일의 종말이다. 세상은 어느 곳에서는 늘 끝나고 또 끝나지만 다른 곳에서는 끝나지 않는다. 세상의 종말은 늘 특정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세상의 종말이 당신 나라에 찾아가고 당신 동네를 방문하고 당신 집의 문을 두드리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이 머나먼 경고, 짤막한 뉴스, 전설이 되어버린 사건들의 메아리일 뿐이다. / 355p


국가 폭력으로부터 철저히 내몰린 한 가족의 분투를 섬세하고 강렬한 시적 언어로 완성해낸 수작이다. 불안정한 시국의 시의성 탓인지 내내 같은 통증을 느끼며 읽은 듯한 생생한 경험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