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않고 크는 아이는 없다 - 소아과 진료실에서 차곡차곡 쌓아가는 아이와 나를 위한 씩씩한 다짐들
김지현 지음 / 수오서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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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로서의 역할은 아이에게 무조건 최고의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가장 적절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부모와 아이 모두가 건강해지는 육아 실천을 위한 훌륭한 지침서!






  『아프지 않고 크는 아이는 없다』는 아토피 알레르기 치료의 권위자인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김지현 교수의 육아 에세이다. 오랫동안 소아과 진료실에서 아픈 아이들을 진료하며 경험한 시간들을 바탕으로 오늘도 노심초사, 고군분투하는 부모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부모 역할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책이다. 특히 호흡기 질환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들을 비롯해, 아이가 아플 때마다 흔들리고 자책하는 부모들이 중심을 잡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행동의 길잡이가 되어준다. 또 완벽한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엄마들에게 보다 중요한 건 안정적이고 일관된 사랑과 지지를 주는 엄마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육아의 원칙들




  며칠 전, 학교 보건실에서 걸려온 전화에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분명 어제도 전화가 왔었는데…. 다행히 그리 심하진 않은 것 같다고 선생님께서 일단 안심시켜주셨다. 학기 초부터 보건실 전화만 연거푸 세 통을 받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예민해져 있었던 상태였다. 하루는 속이 울렁거리고 구토가 나와서, 하루는 두통 때문에, 하루는 체육 시간에 달리기를 하다 삐끗해서 아이는 보건실을 자주 찾았다. 막상 조퇴를 하고 집에 오면 별 다른 이상이 없어 보이는 아이. 아무래도 학기 초의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 속에서 발생한 심리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었다. 학년이 높아지니 몇 가지 학업 스케줄이 늘어난 것도 심리적인 압박을 느낀 원인이었으리라.




  이 책 속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등장하는데, 저자는 이를 ‘신체증상장애’라 표현한다. ‘신체증상장애’는 심리적 상태가 뇌의 기능과 반응에 변화를 일으키고 이로 인해 여러 가지 건강 이상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 아프지 않은데 거짓으로 이상을 호소하는 꾀병과 달리 아이는 실제로 불편한 증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마침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힘내” “다른 아이도 다 마찬가지야”라는 말 따위로 아이가 느끼는 불안이나 불편함을 외면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시련이나 곤란함을 이겨내는 힘도 매우 중요하지만, 변화된 환경에 적응할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키우는 게 아니라 스스로 크는 것’이라는 책 속의 글귀처럼 이 시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묵묵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나면 아이는 어느 새 더 성장해 있을 테니까….




아이에게는 시련이 필요하다. 그래야 역경을 이기고 극복하는 과정을 배울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부모로서 더 잘하려고 너무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 미안해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과도한 욕심으로 아이를 끌어당길 때, 부모의 기대를 채우지 못하면 아이의 자아 존중감은 상처를 입고, 새로운 일을 시도하고 배우는 것에 겁을 먹는다. 주어진 상황과 시간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게 백 점 부모다. / 35p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부모가 새로운 음식 시도를 주저한다.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까 두려워서다. “빨리 발견해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다”는 의사의 설명이 먹히지 않는다. 우리 팀의 연구 결과를 봐도 부모들의 불안은 이유식을 시작할 무렵에 상당히 높아진다. 그렇지만 용기를 내야 하는 이유는, 불안도가 높은 양육자의 아기들에서 알레르기가 더 많이 생긴다는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다. 부모가 불안하면 아이에게 다양한 음식을 먹이지 못해 이로운 장내 미생물이 줄어들고, 아이의 건강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이다. / 39p



완벽한 부모에 가까워지고자 한다면, 완벽한 부모가 불가능하다는 불편한 진실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오히려 완벽을 추구할수록 긴장과 스트레스가 커지고, 결국 곤경에 빠진다. 과거를 점검하되 자책은 금물이다. 부모도 인간이다. 실수를 하고, 어려움도 겪는 것이 당연하다.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가 좌절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조금씩 나아진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이전보다 나아지고 있어”, “잘될 거야” 스스로에게 말하며 부모의 길을 묵묵히 가는 모습, 그 자체가 아이에게 큰 교훈이다. / 172p



힘들 때마다 별것 아닌 “다행이야”라는 한마디가 큰 도움이 된다. ‘의미 찾기 게임’처럼 회복탄력성을 끌어 올려주는 주문이다. 나 역시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야”, “보호자의 마음까지 알게 되어 다행이야”라고 자주 말한다. 아이에게 실망하는 순간에도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어 다행이야”라는 말을 계속해서 외운다. 힘든 일로 고민할 때 “이 일로 더 씩씩해져 다행이야” 되뇌다 보면, 의미 있는 일들만 생기는 마법이 펼쳐진다. / 177p










  아프지 않고 크는 아이는 없다. 부모인 우리는 심리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아이가 아픔을 느끼고 그것을 표현할 때, 죄책감과 과도한 불안에 사로잡히거나 그것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아이가 태어날 때 가졌던 첫 마음으로 돌아가 부모 역할의 균형을 찾고 가족 모두에게 적절한 선택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것이 완벽한 부모가 아닌 함께 성장하는 부모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이 책의 메시지를 많은 부모들에게 권해주고픈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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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의 노래 - 2023 부커상 수상작
폴 린치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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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꼭 읽어야만 한다!

국가 폭력으로부터 철저히 내몰린 한 가족의 분투를 섬세하고 강렬한 시적 언어로 완성해낸 수작!





  어느 날 주인공인 아일리시의 집에 사복경찰이 찾아와 남편인 래리를 찾는다. 국민연합당이 집권한 후, 아일랜드는 9월부터 발효된 비상대권법에 따라 소위 반동분자들, 즉 국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이들을 주시하던 중이었다. 이를 규탄하기 위해 거리에 나섰던 교원 노동조합원들이 속속들이 구금되는 가운데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래리 역시 그들과 함께 끌려간다.



  아일리시는 변호사를 접견하고, 불법 구금에 대해 항의해보지만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되고 더 이상 래리의 행방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그런 와중에 큰아들인 마크는 강제 징집 통지서를 받고, 막내아들의 여권 발급까지 거부당하는 것도 모자라 생명공학 회사 고위 관리직이었던 직장까지 잃게 된다. 국가와 개인의 운명을 움켜쥔 폭력의 수레바퀴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흘러가는 가운데, 과연 아일리시와 가족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다시 원래의 삶을 되찾을 수 있을까.





국가는 우리를 내버려둬야 해요, 마이클, 

괴물처럼 한 가정에 들어와서 아버지를 움켜쥐고 삼키다니, 하물며 아이들한테 이걸 어떻게 설명해요, 

자기들이 살고 있는 국가가 괴물이 되었다고 

말이에요. / 51p




  2023년 부커상 수상작 『예언자의 노래』는 전체주의에 휘말린 아일랜드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여성의 비극을 담은 소설이다. 작가인 폴 린치는 전체주의의 망령이 국가와 개인을 어떻게 지배하고 또 무너뜨리는지를 놀랍도록 속속들이 묘사한다. “우린 전통에 속하지만 전통은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것일 뿐 그 이상은 아니야-과학자나 교사, 기관, 만약 기관의 주인을 바꿀 수 있다면 사실의 주인도 바꿀 수 있어, 신념 체계를, 합의된 것을 바꿀 수 있고 그게 지금 그들이 하는 일이야”라던 소설 속의 대사처럼, 이제껏 튼튼하다고 믿어왔던 법의 체계가 국가의 절대 권력에 제압당하면 국가와 개인이 어떠한 혼란에 빠질 수 있고, 고립될 수 있는지를 통렬하게 보여준다.





당신은 과학자를 자처하면서 존재하지도 않는 권리를 믿는군, 당신이 말하는 권리를 입증할 수 없어요, 그건 국가가 정한 허구예요, 국가가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않는지 필요에 따라서 결정하는 건 국가입니다, 물론 당신도 알겠죠. / 83p



제복을 통해서 국가가 말하고 있다, 그녀는 두 사람이 민간인 본장을 하면 어떨지 상상한다, 거리에서 마주치면 돌아보지도 않고 지나칠 것이다. / 145p



제 말 좀 들어주세요, 난 이제 자유가 없어요, 엄마가 이해해야 돼요, 우리가 저들에게 굴복하면 생각할 자유도, 행동할 자유도, 존재할 자유도 없어져요, 난 그렇게는 못 살아요, 저한테 남은 자유는 싸우는 것뿐이에요. 아일리시는 아득한 정상에서 떨어졌다, 말이 흩어져 땅으로 녹아든다, 그녀가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 어둠 속에서 서둘러 아들을 찾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의지만이, 마크의 의지만이 보인다, 그것이 육체를 이탈한 빛처럼 그녀의 앞을 지나간다. / 163p











  아마도 몇 달 전쯤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이토록 숨 막히고 절망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시스템과 사법체계가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직접 목도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이야기가 지구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불행한 사고쯤으로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폴 린치는 주인공인 아일리시의 분노와 절박함, 고통과 상실을 빌어 우리에게 말한다. 이것은 현실이고, 당연히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이제 알겠어요, 내가 자유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은 오직 노력이었나 봐요, 자유는 애초에 없었나 봐요,”라던 모나의 대사가 환기하듯, 자유는 마땅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호해야 하는 결연한 의지임을 우리는 무겁게 마주해야 한다고.





너무 피곤해서 잠도 오지 않는다. 아일리시는 안락의자에 앉아서 블라우스로 사진을 닦으면서 비웃듯 지나가는 과거의 행렬을 바라본다, 래리에게 공습에 대해서 속삭인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의 무게에 그의 눈썹이 늘어지는 것을 바라본다, 그의 손이 수염을 당긴다, 래리는 분노에 압도당하여 주먹을 쥐지만 그 분노는 세상의 조롱 앞에서 무력해진다, 이 집은 더 이상 집이 아니다. / 302p



예언자가 노래하는 것은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과 앞으로 일어날 일과 어떤 사람에게는 일어났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일의 종말이다. 세상은 어느 곳에서는 늘 끝나고 또 끝나지만 다른 곳에서는 끝나지 않는다. 세상의 종말은 늘 특정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세상의 종말이 당신 나라에 찾아가고 당신 동네를 방문하고 당신 집의 문을 두드리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이 머나먼 경고, 짤막한 뉴스, 전설이 되어버린 사건들의 메아리일 뿐이다. / 355p










  국가 폭력으로부터 철저히 내몰린 한 가족의 분투를 섬세하고 강렬한 시적 언어로 완성해낸 수작이다. 불안정한 시국의 시의성 탓인지 내내 같은 통증을 느끼며 읽은 듯한 생생한 경험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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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씨아저씨네, 차별 없는 과일가게 작고 단단한 마음 시리즈 2
공석진 지음 / 수오서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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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철학과 신념을 담은 브랜드를 만드는 방법에 대하여!







  네이버에서 ‘공씨아저씨네’를 검색하면 독특한 사이트 부제가 눈에 띈다. <상식적인 과일가게>. 과일과 상식이라는 단어가 과연 어울리는 것이었던가 의아함이 드는 순간, ‘맛있는 과일의 비법은 없습니다. 잘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수확하는 상식을 지킬 뿐입니다’는 글귀가 마음에 와 박힌다. 해당 품종이 가장 맛있을 때, 가장 잘 익은 순간을 기다리고 기다려 자연 본연의 모습과 맛 그리고 향이 살아 있는 과일을 판매하고자 하는 마음이야 지극히 당연한 것일 텐데, 이것을 ‘상식’으로 정의하고 보니 여러 의문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요즘처럼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제철 과일이 다 무슨 소용이야, 맛있으면 되는 거지.’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고, 예쁜 과일이 상품성이 좋은 건 당연한 거 아니야?’ 어느 순간 무색해져버린 제철 과일의 의미와 한눈에 상태를 보기에도 어려울 정도로 겹겹이 완충제로 포장된 과일들, 마찬가지로 상품성 좋은 예쁜 농산물만 대우받는 현실…. 이러한 시장 속에서 ‘상식’의 가치를 강조하고 이를 전하려는 공씨아저씨네 장사 철학이 사뭇 궁금해진다.




“나에겐 살아가는 방식이 곧 장사하는 방식이고, 

장사하는 방식이 곧 살아가는 방식이다.”





  10년 이상을 이어온 브랜드에 담긴 고유한 이야기를 전하는 ‘작고 단단한 마음’ 시리즈 두 번째 책은 『공씨아저씨네, 차별 없는 과일가게』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과일장수로 전향한 저자가 1인 기업인 온라인 과일가게 ‘공씨아저씨네’를 연 뒤,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한 발 한 발 성장해가는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또한 이 책은 과일을 통해서 바라본 세상 이야기이기도 하다. ‘멋’이 ‘맛’을 이길 수 없다는 공씨아저씨네만의 확고한 신념을 유지하게 된 이유, 플라스틱 완충제나 광고지를 최대한 안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 명절 같은 특수를 노려 조기 수확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는 이유, 단맛만 추구하는 유행을 지양하려는 이유 등을 통해 과일 유통업계에 깃든 외모 지상주의를 비판하고, 포장 쓰레기로 환경이 파괴되는 구조를 염려하며 농민과 자연이 건강해질 수 있는 유통 생태계를 조성하려 한다. 때문에 파는 과일이 적고, 파는 시기도 제한되어 문을 연 날보다 문을 닫은 날이 더 많은 이상한 가게지만 그만의 특별한 신념을 응원하게 된다.





궁극적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시장에서 B급과 못난이라는 워딩을 포함, 과일의 외형을 언급하는 모든 수식어를 걷어내는 일이다. 사과는 그냥 사과, 감귤은 그냥 감귤이면 충분하다. 등급을 나누는 것이 꼭 필요하다면 외형적인 기준은 아니었으면 한다. 친환경 재배 농산물과 일반(관행) 재배 농산물과 같이 재배 방법에 따른 차이, 또는 와인처럼 포도의 재배 기후와 토양 차이에서 오는 맛의 희소성 때문에 나뉘는 등급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하지만 단지 외형적 기준에 의한 등급 분류 방법은 하루 빨리 시장에서 사라지는 게 맞다. / 25p



온라인 거래를 하지 않던 잠재력 있는 농민을 찾아서 함께 성장하는 것이 신규 유통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인 생각일까? 그러나 그것이 시장 전체를 키우는 방법이고, 자본주의 논리에만 매몰되어 무분별한 가격 경쟁이 벌어지는 걸 막을 수 있으며, 생산자와 유통인 그리고 소비자가 상생하는 건강한 유통 생태계를 만드는 방법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 35p



맛있는 과일을 계속 먹기 위해서는 과일 농사를 짓는 농민의 존재가 먼저다. 그러자면 그들이 건강해야 하고 삶의 질이 담보되어야 한다. 농업 현장의 시간표대로 수확하고 배송하는 것이 우리가 더 맛있는 과일을 오래 먹을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 78p















  공씨아저씨네 온라인 사이트에서 인상 깊었던 것 중에 하나는 상품 카테고리가 ‘이기철 농민 作 - 천혜향’ ‘ 김종현 농민 作 - 한라봉’ ‘염규황 농민 作 - 대저 토마토’와 같은 형식으로 표기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과일을 단순한 상품이 아닌 농민이 온 정성을 기울여 만든 작품으로 대하는 공씨아저씨네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 배경에는 역시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가’를 항상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천하려 했던 태도에 있었던 게 아닐까. 이것이 15년 차 공씨아저씨네가 변화하되 소신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나는 왜 일하는가,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일의 본질과 자신만의 철학을 구하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길 바라며 적극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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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넘 숲
엘리너 캐턴 지음, 권진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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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의 사회적 이슈와 갈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소설!

거대 자본주의의 민낯과 그 속에서 훼손된 여러 가치들을 돌아보게 하는 흥미로운 작품!






「인간의 필요에 응하며 재생하는, 계급 차별이 없고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직접 민주주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보호할 것, 최대한 자본주의 구조 밖에서 활동할 것, 연대와 상호 협조를 실천할 것.」 / 156p





  게릴라 가드닝 단체인 ‘버넘 숲’은 시내 곳곳에 방치되어 있거나 버려진 땅에서 작물을 재배하고, 그곳에서 얻은 수확물을 회원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거나 일부는 판매하여 다시 작물을 재배하는 비용을 마련하는 풀뿌리 공동체였다. 누군가는 이들을 이상적이고, 정의롭고, 필요한 일을 하는 단체라 여기기도 했지만, 대부분 추수하는 작물의 상당량이 공유지나 주인이 쓰지 않는 땅에 허락 없이 심은 것들이기 때문에 더러는 비밀스럽고, 이단적이고, 공상적인 사회개량주의자들이라 여기곤 했다. 버넘 숲의 설립자이자 원예가인 미라 번팅은 방치된 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최대한 자본주의 구조 밖에서 연대함으로써 사회 변화를 이뤄나가자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었지만, 좀 더 지속가능성이 있는 단체의 발전을 위해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진과 산사태로 고립된 뉴질랜드 코로와이 구릉지대의 손다이크는 미라가 꿈꾸는 버넘 숲의 생존과 미래를 실현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적어도 봄까지는 버려져 있을 가능성이 있는 이 좋은 땅에서 들키지 않고 한 철 분량의 작물을 심을 수만 있다면 거기서 거둔 수익으로 버넘 숲의 재정적 자립 기회를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여 들키더라도, 생산적이고 사려 깊고 땅을 존중하며 선한 가치를 실현하려는 버넘 숲의 사명과 비전을 증명할 수 있다면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낼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게 손다이크를 답사하던 도중 미라는 또 다른 목적으로 손다이크에 온 드론 제조업자이자 CEO인 로버트 르모인과 마주친다. 손다이크에서 비밀스러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던 로버트는 미라가 들려주는 버넘 숲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이를 이용하기 위해 거부하기 힘든 제안을 하는데…. 로버트가 숨기고 있는 비밀은 무엇일까, 미라는 버넘 숲을 지켜낼 수 있을까.




  『버넘 숲』은 버려진 땅에서 작물을 가꾸는 게릴라 가드닝 단체인 ‘버넘 숲’이 드론 제조업자이자 억만장자인 로버트 르모인과 뜻밖의 공모를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갈등과 파국을 다룬 스릴러 소설이다. 급진적이고 무정부주의적인 성향의 버넘 숲 일원과, 자본과 기술을 이용해 개인과 기업의 이익을 최우선시 하는 로버트를 중심으로 각기 다른 사회적 진영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서로를 이용하고, 결탁하고, 각자가 쥔 정보를 은폐하는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위기가 시종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작품이다.





비밀리에 모니터링해 오면서 르모인이 알게 된 많은 것 중 하나는 대부분의 경우 자연스럽게 섞이려 할수록 남의 이목을 더 끈다는 사실이었다. 훨씬 더 좋은 위장은 뻔한 고정 관념에 어울리는 의상을 골라 보란 듯이 입고 다니면서 사람들 생각이 대체로 고정될 때까지 일부러 그들의 판단과 편견을 부추기는 행동이다. 그러고 나면 거의 무엇이건 마음대로 해도 된다. 사람들의 의견을 형성할 때는 빠르지만 그 의견을 바꿀 때는 느리기 때문에-격언을 살짝 바꿔 말하자면-자기가 본 게 무엇인지 이미 결정한 사람보다 더 눈먼 사람은 없었다. / 121p



그 자연 보호 프로젝트는 그저 연줄을 통해 이익을 얻고 자기 사업을 돋보이게 하고 장비를 가지고 놀고 억만장자의 후광에 편승하려는 수단에 불과했다. 다비시는 자연 보호론자가 아니었다. 그냥 자기 잇속만 차리는 평범한 기회주의자인데, 오로지 정치적 편의와 운발로 기사 작위를 받았던 것이다. / 449p











  ‘스릴러’라는 장르적 속성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동시대의 이슈와 갈등을 다룬 일종의 사회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베이비부머 세대를 대표하는 부모 세대를 향한 반감과 박탈감, 공공재의 민영화와 기술 만능주의를 향한 우려, 민주주의자로 가장한 숨은 파시스트들과 그들이 벌인 정치적 야합을 향한 날선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집단 감시는 전체주의적이고 억압적이죠. 억만장자 계급은 그 존재만으로 연대를 잠식합니다. 그건 근본적으로 지속 불가능하고 시대에 역행하고 정의에 반해요. 시민권을 팔고 사면 안 됩니다. 저항 행위가 의뢰 가능한 일이 되어서는 안 돼요.”라던 토니의 목소리는, 거대 자본주의의 민낯과 훼손된 우리 사회의 여러 가치들을 돌아보게 한다.




미라는 옳고 그름이 명료하게 구분된다는 견고한 믿음을 가지고 성장했고, 어른 대접을 받는 게 아이 취급을 받는 것보다 낫다는 걸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외로운 기분이 들 때면 부모님에게 자신의 존재는 그저 파티 여흥 거리 같은 것, 즉 훌륭한 양육의 눈부신 증거, 미래의 믿음과 분별력이 아니라 당신들의 믿음과 분별력의 산 증거 같은 것 아닐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미라는 때로 사기 치는 듯한 괴로운 기분, 자기가 가장 쉽게 하는 일로 가장 높이 평가받는다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 71p



셸리는 자기는 늘 지는 쪽에 있을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데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었다. 뉴질랜드는 셸리가 투표권을 가지기 전부터 중도 우파가 지배하고 있었고, 셸리는 소위 대립한다는 정당들 그 어디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부모님 세대 사람이 주택 소유나 해외여행, 뜻밖의 소득, 교육 자체를 위한 교육, 치열한 경쟁 속에서 두 번째 기회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하는 걸 들을 때마다 숨 막히고 추한 패배감이 치밀어 올랐다. / 342p











  섹스 스캔들이 일어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소년 소녀들의 불안과 흔들리는 학교의 모습을 매우 사실적이면서 정교하게 그려낸 전작 『리허설』이 그러했듯, 엘리너 캐턴은 이번 작품에서도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 그리고 테크놀로지와 환경이라는 민감한 이슈와 사회적 갈등을 대담하게 돌파해가는 능력이 탁월한 작가임을 입증했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신념이 어떻게 시험당하고 또 어디에서 무너지는지를 통렬하게 보여주었다는 데에서 섬뜩하고도 무서운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이 책을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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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팩트 커피, 커피 하는 마음 작고 단단한 마음 시리즈 1
김종진 지음, 김종필 사진 / 수오서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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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끝내 버텼고, 그럼으로 인해서 나아간 사람들의 이야기!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묵묵히 매뉴팩트 커피 브랜드의 가치를 지키고, 나누며, 앞으로 나아갔던 마음을 담은 책!






  끝끝내 버텼고, 그럼으로 인해서 나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들에 유독 이끌리는 건 매순간이 얼마나 치열했을지 모르지 않을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 내키지 않은 일도 감내하며, 수많은 감정의 낙차를 뒤로 하고 조금 더 버틴 오늘이 또한 성장이 되겠지, 하고 믿어봄으로써 부단히 마음을 삼켰던 존재들이 눈에 밟히는 요즘이다. 아마도 이 책 덕분에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마음’들을 더욱더 응원하게 된 것 같다. 작은 듯 보여도 무엇보다 단단한 그 마음들을.





10년이 넘는 시간,

오늘도 같은 자리에서 커피를 내립니다



  직접 가서 맛보고 글로 남길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검색을 통해 눈으로 먼저 본 ‘매뉴팩트 커피’ 연희동점은 확실히 유니크한 매력이 있는 곳인 것 같다. 요즘에는 사람 발길이라고는 전혀 닿지 않을 곳에까지 카페가 우후죽순 생겨나는 분위기지만, 10년 전에 이곳을 방문했다면 정말 고개를 갸웃거렸을 듯하다. 『매뉴팩트 커피, 커피 하는 마음』은 바로 ‘매뉴팩트 커피’의 대표인 김종진, 김종필 형제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묵묵히 같은 자리에서 매뉴팩트 커피 브랜드의 가치를 지키고, 나누며, 앞으로 나아갔던 마음을 담은 책이다. 좋아하는 일로 먹고사는 것의 기쁨과 슬픔, 커피 한 잔이 만들어지는 풍경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사람들, 업을 지속하며 변하되 변하지 않아야 하는 마음들에 대해 전한다.





커피를 내리는 사람은 물과 압력과 시간을 다뤄 커피가 가진 본질을 드러내고 커피가 가진 또렷한 개성을 고객에게 전달한다. 일상에서 쉽게 만나는 커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손을 거쳐 우리 손에 쥐어진다. 좋은 커피는 공정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제 역할을 다할 때라야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커피를 진지하게 하는 이유다. / 16p



기계에서 위잉하는 소리와 함께 적갈색 커피가 흰색 머그잔 내벽을 따라 흘러내리고 칙칙 스팀을 내뿜으면 뭉근한 김이 천장 조명을 향해 떠올랐다. 바리스타는 에스프레소를 담은 컵에 데운 우유를 아주 천천히, 크레마 위에 물감을 풀듯 그려넣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커피는 쟁반 위 소서에 올려졌다. 빠르지만 정확하고 섬세한 그들의 손놀림에 매료되었다. ‘커피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처음으로 열린 순간이었다. / 26p











  한때 저자는 전자공학을 전공했지만 그곳에는 뜻이 없었고, 오직 커피에 관심이 있어 커피에 푹 빠져 시간을 보내기도 해봤지만 현실적으로 커피가게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은 녹록치 않았다고 한다. 진로상담 면담에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지도교수에게 일단 회사에 들어가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나중에 커피가게를 하겠다는 계획을 토로하자 교수는 이런 말을 한다. “꿈을 위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며 10년을 보낸다면 그 잃어버린 10년은 누가 보상해줄까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 일과 관련된 분야에서 몸담고 있어야 합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건 경험이니까요.” 이 말이 던진 파문은 곧 책을 읽는 나에게로도 전해졌다. 때가 되면, 할 수 있을 여건이 되면… 하고 주저했던 수많은 마음들에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놓쳐버렸던 걸까.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지만 여건이 충분히 않아 망설이는 이들에게 이 글을 보여주고 싶은 이유다.





어떤 일이든 숙련의 시간으로 일정 기간을 보내면 숙달이 되고 실력이 생겨야 마땅한데 커피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아무래도 변수가 많은 것이 이유가 아닐까 싶다. 커피는 농작물이라 재배 환경에 따라 수확의 결과가 매해 다르다. 날씨에 따라, 볶는 양에 따라 그리고 로스팅할 때마다 다르다. 물 온도나 에이징에 따라서도 커피는 내릴 때마다 다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이 사랑스러운 건 어쩌다 훌륭한 커피를 만나게 되는 순간이고 그 커피를 고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기대와 설렘 때문이다. / 20p



그날도 테이블엔 커피가 있었다. 전시가 완성되는 과정을 바라보며 그들의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참석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회의가 좋은 결과를 맺는 데 일조한 듯한 느낌이었다. 커피는 대화의 분위기를 말랑하게 하기도 하고 그들의 의식을 또렷하게 하기도 하면서 전시의 결과를 만들어나가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같았다. 커피는 단순한 음료라 생각했는데, 그 너머에 있는, 커피가 갖는 효용의 가치를 처음으로 생각해본 날이었다. / 43p



내가 겪어온 경험의 파편은 몸과 정신 어딘가에 떠돌다 제 쓰임을 다하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고 생각한다. 불필요해 보이는 경험도 다 쓸모를 찾아주었다. 그러다 보니 주어진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고 체계가 정립되었다. 매사에 긍적적으로 최선을 다하자는 좌우명 덕을 지금도 보고 있다. / 53p











   저자는 커피를 그림 그리는 일에 비유하며 커피도 붓질처럼 수천 잔의 커피를 내려 봐야 겨우 조금 알 것 같은 윤곽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이 무엇인지 찾아내기 위해 수많은 양의 커피를 내리고, 운이 좋게 그것을 찾았다면 이를 표현하기 위해 커피를 지속하는 힘이 필요하다고. 무언가를 지속하는 힘이란 이런 건가 보다. 수없는 반복, 그 지난한 시간을 견대는 힘, 그 속에서 설령 길을 잃는다 하여도 더 많은 혹은 새로운 길을 가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시도해보는 것. 이것이 10년이라는 긴 시간에도 변함없이 자신의 브랜드를 지킬 수 있었던 이들의 힘이 아니었을까. 계속될 이들의 이야기에 응원을 보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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