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에서 - 맛, 공간, 사람
크리스토프 리바트 지음, 이수영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초기의 레스토랑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식과 사회 문화 생산을 주도한 레스토랑을 해석하다!

 

 

 

 

   미식, 외식 문화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특히, SNS를 통해 이른바 ‘맛집’을 공유하고 소비자 스스로 문화를 주도해가는 분위기가 날로 높아져가고 있다. 이제 ‘먹는다’는 것은 단순한 욕구의 행위를 넘어서 시대와 문화를 ‘향유’하는 포괄적인 의미를 내포하기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 있어서 뉴욕의 칼럼니스트 애덤 고프닉이 ‘마치 새로운 종교나 스포츠, 신분 증거, 섹스 대용, 윤리적 의식으로 여겨진다’고 이에 대해 논한 말은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린다.

 

 

 

   우리는 한 사회와 세계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정서와 가치관 그리고 생활습관 등이 응축되어 있는 대표적인 문화코드로써 이에 대한 이해가 다채로운 각도에서 동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중에서 ‘레스토랑’은 우리에게 있어 의미가 한정적이기는 하지만, 서양의 미식 산업을 주도하고 현대인들에게 대중적인 공간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으며 ‘음식점’이라는 포괄적인 의미로 접근한다는 가정 하에 이를 문화사회학적 관점에서 기술한 책이 있어 흥미를 끈다. 『레스토랑에서』는 독일 출생으로 역사학 및 각종 문화사를 전공으로 하고 있는 저자가 파리의 첫 고급 레스토랑과 같은 초기 레스토랑에서부터 전후 시대를 거쳐 맥도널드에 이르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레스토랑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조망한 책이다. 책에 접근하기 전에 유의해야 할 것은 단순히 레스토랑의 역사를 다루는 기술 및 이론서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책은 주방 직원과 요리사, 웨이터와 철학자, 미식가와 사회학자 등을 통해 그들이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펼치는 행동과 의식을 관찰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화들을 조합, 나열한다는 데 특징을 두고 있다. 더욱이 겉으로 보기에는 우아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치열한 삶의 면면들이 존재하는 곳임을 눈여겨보면 좋을 듯하다.

 

 

 

 

 

 

레스토랑, 지식 사회의 실험실이 되다

 

 

   유럽 레스토랑의 역사는 사람들이 배를 곯지 않게 되면서, 또는 배가 고프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표면적으로 파리의 초기 레스토랑은 시민 계층의 여론을 형성하고 엘리트들의 살롱이자 교양 있는 계층의 사교 모임에 가까웠던 카페와 유사하게 등장하였으나, 보다 개인과 그들의 욕구에 집중하여 사적인 공간에 가깝게 활용된 덕분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때 미식 전문가의 활동과 대충 매체의 세계가 확대됨으로써 음식물 섭취라는 육체적 행위를 미학적이고 지적인 활동으로 변화시키는데 기여했다. 또한 율리우스 벨렌도르프가 메뉴판의 상징과 기능성에 주목하면서 이를 구체화한 것이 오늘날에까지 이르렀다. 레스토랑의 홀과 주방을 개혁한 에스코피에로 인해 구이, 소스, 제과, 찬 요리 담당 등 각자 분야를 구분해 보다 조직적이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개선되기도 했다. 최고의 레스토랑을 찾아 별점을 주는 것으로 유명한 ‘미슐랭 가이드’가 사실은 타이어 회사의 이름(미쉐린)이고, 타이어 구매 고객에게 무료로 배포한 안내서가 그 기원이었다는 점은 매우 의외였다.

 

 

 

   20세기 초에 들어서면서 레스토랑의 엘리트적이고 귀족적인 요소는 밀려났다. 최초의 페스트푸드 체인점의 등장은 햄버거를 주 상품으로 한 화이트 캐슬의 선점에서 비롯되었다. 화이트 캐슬은 의심스럽게 여겨지는 다진 고기의 깨끗함과 안전성을 거듭 강조하는 시스템을 전면에 내세우고, 하루에 20~24개의 햄버거를 먹어도 건강 상태가 양호한 사례를 들며 곳곳에 선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런던에 값싸고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는 런던 최초의 급식소들이 설치되었는데, 윈스턴 처칠은 ‘브리티시 레스토랑’이라는 이름을 씀으로써 사람들이 괜찮은 식사를 제공받는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이는 주로 집에서만 식사를 하던 영국인들이 외식에 익숙해지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오사카 출신의 레스토랑 소유자 요시아키 시라이시는 이동식 화장실 발명가로, 맥주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착안해 오늘날 회전식 초밥을 고안해낸 점도 흥미롭다. 고와 미요의 ‘누벨 퀴진 10계명’으로 인해 레스토랑에서 무절제한 것들이 배제되고, 저칼로리의 효율적인 요리로 변형을 꾀하기도 한 점 역시 새로운 시대를 반영한 결과로 작용했다.

 

 

 

대규모 체인점을 운영하기에는 모두의 입맛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음식이 아직 없었다. 민족적 정체성은 오랫동안 식습관을 결정했다. 그러다가 1920년에서 1930년 사이에 이르러 현대화되고, 유동적이고, 대중 매체의 영향력이 커진 사회에서 그러한 관계가 비로소 해체되었다. 미국은 이제 동일한 것을 소비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 <화이트 캐슬>에서 대량으로 판매한 표준화된 햄버거였다. 화이트 캐슬은 월트 앤더슨이 위치토에서 운영하던 가판점 4개에서 시작된 미국 최초의 패스트푸드 체인점이었다. / 58p

 

 

그로부터 20년 뒤 독일에 문을 연 피자 전문점들은 매년 1억 마르크에 달하는 매출을 올리게 된다. <외국 것>으로 여겨진 음식점들이 독일의 얼굴도 바꾸게 된다. 특히 이탈리아 레스토랑은 삶의 즐거움과 낭만을 표현하는 새로운 형식을 대변했다. 그들은 독일 도시들에 이탈리아적인 것을 들여왔다. 음식과 웨이터, 실내 장식을 통해서 자유와 감성의 새로운 분위기를 독일에 전파했고,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그 <본보기>로 행동했다. / 110p

 

 

 

   레스토랑은 관계를 가꾸고, 고무하고, 지식을 확장하는 역할을 했다. 사람들은 다른 문화와 새로운 유행, 새로운 창의적 형식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이곳을 이용했다. 지식 사회의 실험실로써, ‘감정 요리’에 이르는 심미적인 기능으로써 다층적으로 작용하는 이와 같은 기능은 사회 진단 사이의 연관성으로 확대된다. 이에 대해 조지 리처는 현대 사회의 <맥도널드화>에 대한 연구에서 서비스 분야가 지배하는 사회, 즉 노동과 소비가 표준화된 사회를 보여 준다. 이 사회에서는 서비스의 확대와 규율화로 인간의 감정이 상업화되고 통제된다. 그렇다고 패스트푸드 체인점들을 단순히 효율성과 획일성의 상징으로만 여겨서는 안될 일이다. 이들은 세계 곳곳에 편재하기 때문에 실제로도 세계를 변화시킨다는 거대한 상징성을 지니는 까닭이다. 뿐만 아니라, 레스토랑은 인간의 노동이 존재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각종 사회의 모순과 정치적 과제, 개혁의 이념들도 불러일으킨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이념이 부딪치는 곳

 

 

   레스토랑은 향유과 힘든 노동을 동시에 지닌 이중적인 공간이다. 홀에서는 손님들이 우아하게 비싼 음식을 먹지만, 홀과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주방에서는 쥐꼬리만 한 임금이 지급되고, 육체적 폭력이 가해지고, 불법 이주자들이 고용주의 기분에 따라 무방비로 내몰린다. 조지 오웰, 귄터 발라프, 사루 자야라만은 그들이 살았던 특수한 시기에 이들 노동자들의 삶을 관찰하고, 이러한 불평등한 조건들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이들을 아울러 ‘감정 노동자들’이라 칭하듯, 서비스직 종사자들의 감정은 더는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일하는 조직의 것이고, 그들은 자신들의 감정이 실제로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을 만큼 오로지 고객을 위한 서비스를 강요하는 구조적인 문제 또한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이다.

 

 

 

그런 호텔에서 박봉을 받고 일하는 요리사들은 눈에 띄지 않았고, 존중받지도 못했다. 그들은 하루에 14시간, 15시간, 16시간씩 일했다. 그들 중 대부분은 40살이 되기도 전에 죽었다. 육체적 과로에다 대부분 창문도 없고 공기가 통하지 않는 주방 구조 때문이었다. 요리사들은 광부들보다 많은 직업병에 걸렸다. 그들은 만성적인 산소 결핍과 폐결핵, 정맥류에 시달렸고, 심지어는 영양 결핍인 경우도 많았다. / 32p

 

 

 

   한때 레스토랑의 백인 전용 스탠드는 새로운 흑인 정항 운동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이전의 흑인 단체들은 대부분 인종 범죄나 차별 대우와 같은 일이 생겼을 때 반응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울워스의 백인 전용 스탠드에 앉은 학생들은 실제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손 놓고 있지 않으려는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그저 반응하는 대신 행동에 나섰고, 단순히 스탠드 반대편에 있는 종업원들을 신경질적으로 만드는 일에 그치지 않고, 남부 지역 전체로 확산되는 새로운 저항 운동의 형태를 창조하기에 이르렀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베리스와 데이비드 서튼은 레스토랑을 <포스트 모던의 이상적인 기관>이라고 칭했다. 레스토랑에서는 문화학자들이 관심을 갖는 모든 것, 즉 생산, 소비, 교환, 감각적인 것, 상징적인 것, 지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이 만나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장 피에르 아순도 레스토랑처럼 한 공간에서 내밀한 향유와 사회적, 기업가적 야망을 동시에 연구하기 좋은 곳은 없다고 강조한다. 그만큼 레스토랑은 인간과 인간, 이념과 인간이 부딪치고, 시대와 문화가 겹겹이 쌓인 다층적인 형태의 공간으로 수많은 이야기 거리들을 양산해냈다.

 

 

 

 

 

 

   『레스토랑에서』는 앞서 밝힌 레스토랑을 둘러싼 각종 흥미로운 이야기와 기록들로 재미있게 잘 읽힌다. 다만 긴밀한 서사나 세세한 분석 및 해석이 배제된 채 파편화된 기록들을 쭉 나열만 한다는 점에서는 그 전개 방식에 어느 정도의 적응이 필요한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특별한 사전 지식 없이도 가볍게 잘 읽히고 특히, 상업 공간의 실내 인테리어를 주 업으로 삼고 있는 남편에게 미식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꽤 도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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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7-07-24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스트잇이 얼마나 깊이 읽으셨는지를 보여주네요. 사회학자의 작품인가봐요.

투콤마 2017-08-06 14:41   좋아요 0 | URL
포스트잇 붙여가며 다시 들춰보고 싶은 정보들이 꽤 있었어요^^ 학자지만 책 내용은 쉽게 잘 읽히는 편이었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