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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로마를 만들었고, 로마는 역사가 되었다 - 카이사르에서 콘스탄티누스까지, 제국의 운명을 바꾼 리더들 ㅣ 서가명강 시리즈 20
김덕수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11월
평점 :
과거의 로마에서 현재의 오늘을 들여다보다!
리더란 무엇이고 그들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는 책!
“리더 한 사람으로 인해 나라가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 훌륭한 리더는 그 자신에게도, 국민에게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로마의 역사가 말해준다.” 『그들은 로마가 만들었고, 로마의 역사가 되었다』의 저자인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김덕수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로마 문명이 서양 문명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로마의 성장은 로마 인민 전체의 업적이기도 하지만 탁월한 리더십으로 로마를 이끈 리더들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 중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4인의 리더는 로마를 강력한 국가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이들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새로운 리더를 선출해야 하는 귀중한 시기 앞둔 지금, 4인의 리더들이 남긴 업적과 패착, 교훈과 질문은 우리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제공한다.
리더란 무엇인가
자유를 파괴한 독재자인가, 로마를 강력한 지중해의 제국으로 발전시킨 영웅인가. 정치가로서 탁월한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로 손꼽히지만 권력욕에 눈이 먼 폭군으로 양면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그의 이름은 바로, 카이사르다. 영어식 이름인 줄리어스 시저로도 널리 알려진 이다. 그는 ‘로마를 건국한 율리우스 씨족’이라 하여 이른바, 로열패밀리의 후손으로 태어났지만 정치적으로는 아직 무명에 가까웠다. 정치가로서 카이사르의 리더십이 본격적으로 발휘된 것은 ‘제1차 삼두정치’가 채결된 이후였다. 당시 동방에서 전공을 세운 폼페이우스, 재력 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크라수스가 군사적 명예를 빌미로 나라를 쥐고 흔드는 것에 원로원에서 거부감을 가지자, 이 틈을 타 카이사르가 중개자로 나서 로마를 분할 통치하기로 담합을 맺은 것이다. 이후 크라수스가 죽고 막강한 군사력으로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에 입성해 폼페이우스를 몰아내고, 카이사르는 마침내 자신의 시대를 맞이했다.
카이사르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그가 가장 먼저 내건 구호는 ‘클레멘티아(관용)’였다. 그는 내전 중에 자신을 적으로 삼았던 사람들도 지속적으로 적대 행위를 하지 않으면 너그러이 포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달력을 개정해 태양력을 사용하고, 자신의 명성을 빛내기 위한 대대적인 공공건축 프로젝트도 추진했다. 하지만 정치권력과 명예를 지나치게 추구한 나머지 기존에 없던 10년 임기의 독재관을 만들더니, 평생을 임기로 하는 종신독재관으로 스스로 취임하는 패착을 두기도 한다.
그렇게 카이사르는 공화정의 전통을 파괴하고 권력을 독점해 자유를 압살했다는 이유로 60여 명의 원로원 의원들,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롱기누스 등의 공화정파에 의해 비참하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이때 카이사르를 살해하는 데 가담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와 연인 사이였던 세르빌리아의 아들로, 단테가 자신의 저서 『신곡』에서 지옥의 가장 아래층에서 사탄의 입으로 사용된 최악의 죄인 중 한 명으로 꼽기도 했다. 이탈리아를 찬탈한 파시스트 무솔리니가 로마 진군 10주년을 기념하여 카이사르에게 광장을 바치고자 동상을 세운 데서 알 수 있듯 누군가는 그를 독재자로 기억하지만,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위해 노력을 기울인 영웅으로 기억할 수도 있다는 점은 크게 역사의 양면성까지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지금은 우리가 돌아가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저 다리를 건너는 순간 모든 문제는 칼로 해결한다.” 그들이 잠시 주춤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한 유령이 나타나 나팔수의 트럼펫을 빼앗아 불며 강 건너편으로 갔다. 그러자 카이사르가 외쳤다. “신들이 향한 곳, 적들의 불의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자. 주사위는 던져졌다.” / 18p
카이사르가 남긴 여러 업적 가운데 태양력의 도입은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카이사르가 태양력을 도입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집트에 체류하면서 얻은 성과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플리니우스는 『자연사』(18권, 210~212장)에서 알렉산드리아의 천문학자 소시게네스가 이 일에 도움을 주었다고 말한다. 소시게네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아마도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의 학술 고문 중 한 명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쨌든 달력 개정을 통해 시간마저 합리적으로 통제하려 했던 카이사르의 노력이 우리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준 셈이다. / 55p
카이사르 암살의 핵심 주모자 중 또 한 사람인 카시우스 롱기누스 역시 이를 기념하는 주화를 만들었는데, 그 또한 자신의 얼굴과 이름, 그리고 브루투스와 마찬가지로 IMP라는 칭호를 새겨 넣었다. 당시 장군들은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군사적 업적을 세우면 이를 기념하기 위해 주화에 그 내용과 자신의 얼굴, 이름, 칭호 등을 새겨 넣었다. 그리고 이렇게 주조한 주화를 병사들에게 나누어주었는데, 이는 일종의 유행처럼 이루어졌다. / 65p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와 연합했던 제1차 삼두정치처럼, 안토니우스와 레피두스와 손을 잡아 ‘제2차 삼두정치’로 세를 키운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다. 카이사르 가문에 입양되어 죽은 카이사르의 명예와 가문의 명성을 짊어질 운명을 맞이한 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스무 살이었다. 하지만 제2차 삼두정치는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대립과 경쟁 양상으로 치달은 뒤, 그 유명한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을 물리치면서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이에 옥타비아누스는 ‘존엄한 자’를 의미하는 ‘아우구스투스’라는 새로운 칭호로 불리며 국부의 자리에 올랐다. “나는 벽돌의 도시를 보아왔으나 대리석의 도시를 남겨주었노라”고 자부할 수 있었을 만큼, 로마는 그의 통치시기에 놀랍도록 성장하여 500년이라는 황금시대를 맞이했다. 무엇보다 그는 정책 반감을 최소화하면서 실제로는 통치권을 유지하는 탁월한 리더십을 보였다고 한다. 나랏일을 위해 자신의 재산까지 아낌없이 쏟아 부은 점도 인상적이다. 하지만 아들이 없었던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와 같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기 않기 위해 딸 율리아를 여러 남자와 정략결혼을 시키는 패착을 두었으니, 가족을 정치적 도구의 희생양으로 삼게 한 점은 씁쓸함을 남긴다.
그의 명언 중에 ‘대담한 장군보다 신중한 장군이 더 낫다’라는 말이 있다. 용감무쌍한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평소 그의 좌우명은 ‘천천히 서둘러라’라는 말이었다. 서로 모순인 이 표현을 우리식으로 풀이하자면 ‘급할수록 돌아가라’ 정도일 것이다.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꾸준히 한 단계 한 단계 이루어나갔다. 그는 비할 바 없이 많은 업적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 / 124p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듯, 노예 출신으로 황제의 자리까지 오른 이가 있었으니 그가 디오클레티아누스다. 그가 황제에 올랐던 3세기 때의 로마는 황제가 채 2년도 자리를 보전하지 못할 정도로 폭력이 난무하고 형제가 살육을 서슴지 않았던 군인 황제 시대였다. 정치는 혼란에 빠지고 대규모 이민족의 침입이 이어져 나라가 불안정하던 시기에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어렵지 않게 출세 길에 오를 수 있었다. 그가 카루스 황제의 근위기병대장으로 발탁되어 많은 전공을 세우고 최고 정무관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능력이 있다면 제국의 어디 출신이라도 황제가 될 수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로마를 동로마와 서로마로 나누어 각각을 황제와 부황제가 맡아 같이 협의하여 통치하는 4제 통치 체제를 수립했다. 또 화폐 안정화와 세제 개혁을 단행하여 나라를 안정시킴으로서 위기에 처한 3세기 로마 제국의 구원투수로 등극했다. 그렇게 막강한 권력을 구축해놓았지만, 그는 뜻밖에도 즉위 21년째 되던 해에 퇴위를 선언했다. 죽을 때까지 권력욕을 놓지 못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여느 리더들과 달리, 고향에서 채소를 키우며 노후를 보내기로 한 그는 살아생전에 스스로 퇴위를 선언한 최초의 황제라는 점에서 남다름이 느껴진다.
3세기 로마는 혼란과 무질서의 군인 황제 시대를 겪게 된다. 284년에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등장하게 되는데, 그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황제로서의 지위를 선언한다. 황제가 막강한 힘을 갖지 않으면 장군들의 권력 쟁탈로 인해 혼란과 무질서가 계속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이제 황제는 프린켑스가 아니라 ‘도미누스’라고 선언한 것이다. 도미누스는 원래 노예가 주인을 부르는 칭호로 ‘주인님’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내가 너희들의 주인이다’라는 의미로 도미누스라는 칭호를 사용함으로써 전제정(도미나투스, 도미누스의 체제)을 창시했다. / 144p
이 청동상이 왜 베네치아의 한 성당에 와 있게 되었을까? 1204년 제4차 십자군 전쟁 당시 참전했던 베네치아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해 그곳에 있던 많은 보물들을 약탈해 가져온 전리품 중 하나다. 그렇게 해서 이 귀중한 유물은 아무 상관도 없는 베네치아의 한 성당 모퉁이에 자리하게 되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막시이마누스, 갈레리우스, 콘스탄티우스, 이 네 명의 통치자가 평화를 다짐하며 서로 포옹하고 있는 이 동상은 당시 수립한 4제 통치 체제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자료다. / 157p
대부분의 리더들이 그러하듯, 디오클레티아누스 역시 냉정한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누군가는 그를 3세기 로마제국의 구원투수로 평가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교를 탄압한 폭군으로 더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유피테르 신의 대리인임을 자처하며 로마의 전통 종교 회복을 통해 황제권을 강화하고자 했다. 모든 시민들을 국가 제사 의식에 참여하도록 했고, 이를 거부하는 자들은 태형에 처했다. 또 교회를 파괴하고 그리스도인 집회도 금지시켰다.
이와 달리, 콘스탄티누스는 그리스도교를 공인하고 삼위일체론을 정통 교리로 만드는 등 그리스도교의 형성에 영향을 준 황제로 유명하다. 우리가 세계사를 공부하다보면 꼭 배우게 되는 ‘밀라노 칙령’을 통해 그는 누구나 그리스도교를 믿을 자유가 있으며 아울러 모든 종교의 자유까지 인정했다. 어떤 역사가는 그를 로마의 전통 종교를 무시하고 그리스도교화를 정책으로 삼았다며 ‘만사를 바꾸고 뒤집어 놓은 사람’이라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분열되어 있던 로마제국을 하나로 통일시키고 서양 중세의 그리스도교 천 년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그의 탁월한 리더십은 인정될 만하다.
유일신 사상에 근거한 그리스도교는 하나님 한 분만을 경배해야 한다고 믿었기에 다신교 전통의 로마 사회에서 탄압을 받았다. 그러나 강력한 통치권을 원하는 콘스탄티누스에게 그리스도교의 유일신 사상은 정치적으로 필요해 보였을 것이다. 밀라노 칙령이 발표될 당시 로마제국은 황제권이 동서로 나뉘어 있었고, 서로마 황제 자리를 두고 막센티우스와 내전에서 승리한 바 있다. 다양한 민족과 인종, 문화가 공존하는 로마제국에서 태양이 하나이듯이 하나의 신을 믿고 하나의 황제가 다스려야 한다는 통치 이데올로기에 그리스도교만큼 적당한 종교는 없었을 것이다. / 239p
이처럼 로마를 이끈 4인의 리더들이 남긴 업적과 치세, 그들이 남긴 과업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리더란 무엇이고 그들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뿐만 아니라 수십 세기가 흘러서도 과거의 관습과 그들이 이룬 업적의 일부가 버려지지 않고 그대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점은, 오늘 우리가 한 무언가가 후대에 까지 얼마나 오래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아울러 복잡하게 느껴졌던 로마사를 4인의 리더를 중심으로 이해하기 쉽게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간혹 클레오파트라가 왜 양탄자에 둘둘 말린 채 카이사르를 만났는지, 카이사르에 의해 밀려났지만 폼페이우스 역시 로마사에 있어 주요 인물 중 한 명이기에 그는 누구인지, 책에서 미처 다 다루지 못한 여백은 스스로 채워보는 것도 좋은 독서가 될 듯하다. 또 카라칼라 목욕장이나 기념주화, 베네치아 성당의 청동상, 부활절, 주일 등 이 시대가 남긴 각종 문화유산 뒤에 어떤 스토리가 담겨 있는지 이 책을 통해 확인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독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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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명강’ 시리즈는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질문과 지식, 교양을 한 번에 충족시켜준다는 점에서 늘 흥미롭지만 이번 책은 특히나 더 재미있게 읽었다. 무엇보다 대선을 앞둔 시기인 만큼 이 책을 통해 내가 원하는 리더는 어떤 유형인지, 잘 분별하여 안목을 기르는 데 도움을 얻으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많은 분들께 추천 드리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