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헬리베 붕탄질산… 이건 또 무슨 줄임말인가 싶겠지만 고등학교 화학 시간에 원소 주기율표를 좀 외워본 이들이라면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지 단번에 알 것이다. 수은, 헬륨, 리튬, 베릴륨 등 어렵고 복잡해 보이는 이 원소들의 이름을 외우기 위해서는 무작정 앞글자만 따 노랫말처럼 달달 외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건 지금의 아이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렇게 나를 비롯해 누군가에게는 평생 ‘수헬리베 붕탄질산’으로만 남아 있을 뻔했던 원소 이름들에 관한 흥미로운 책이 출간되었다. 피터 워더스의 『원소의 이름』은 전설과 신화, 역사와 과학을 넘나들며 각각의 원소들의 이름에 얽힌 사연들을 찾아 나서는 책이다. 한때는 연금술사와 마녀의 주술이라 여겨졌던 화학 물질들이 어떻게 근대의 과학으로 바뀌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고유의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 그 여정을 쫓아나가는 과정은 비전공자가 읽어도 상당히 흥미진진하다.
118개 원소의 이름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서
숫자 7은 오래전부터 신비적 의미를 지닌 수로 간주되었다. 일주일은 성경에서 천지창조에 걸린 7일을 반영해 7일로 정했고, 이슬람교에서도 하늘과 지옥이 각각 일곱 층씩 있다고 했으며, 로마는 일곱 언덕 위에 세워졌다. 3000년 이전부터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은 태양,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7개의 천체를 관측했고, 금속 역시 7가지(금, 은, 구리, 철, 주석, 납, 수은)만 존재한다고 믿었던 것은 우연의 일치로 보기 어렵다. 때문에 행성과 금속 사이의 연관성은 떼려야 뗄 수 없게 되었는데 태양은 금, 달은 은, 화성은 철, 수성은 수은, 토성은 납, 목성은 주석, 금성은 구리를 상징하게 되었다. 이는 각각의 금속에 특정 행성을 배정하고, 천체의 기운이 각 금속의 발생과 성장을 촉진한다고 상상했던 고대 철학자와 과학자들의 사고관이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새로운 행성의 발견은 금속의 발견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게 되면서 새로 발견된 금속은 이전 금속처럼 행성에서 이름을 얻는 영광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
오늘날 화학자들이 금을 나타내는 데 사용했던 화학 기호 Au는 금을 뜻하는 라틴어 ‘아우룸aurum’에서 유래했지만, 연금술사들은 금과 태양을 나타내는 기호로 원(완벽한 기하학 도형인)을 사용했다. 그들은 금을 완벽한 금속으로 간주했고, 나머지 금속은 모두 땅속에서 서서히 성숙해가는 단계를 거쳐 마침내 완벽한 경지인 금에 이른다고 생각했다. 웹스터는 『메탈로그라피아 혹은 금속의 역사』에서 이렇게 썼다. “자연의 궁극적인 출산은 모든 금속을 결국에는 완벽한 금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다 자라지 않은 상태에서 때 이르게 지구의 배 속에서 금속을 꺼내지만 않는다면, 자연은 이 목적을 달성할 것이다.” 연금술,사의 목표 중 하나는 교묘한 조작으로 불완전한 금속이 서서히 금으로 발달해가는 이 자연적 과정을 더 빨리 일어나게 하는 것이었다. / 27p
태양과 금 사이의 역사적 연관성은 현재 사실상 거의 잊혔지만 새 원소가 그 연관성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헬륨helium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8장에서 보게 되겠지만, 이 원소에 태양과 연관된 이름이 붙은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다. 헬륨은 1868년에 태양에서 처음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지구 밖에서 처음 발견된 원소인 헬륨은 그리스 신화의 태양신 헬리오스Helios에서 그 이름을 땄다. 마침내 지구에서 헬륨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을 때, 헬륨은 금속이 아니라 비활성 기체로 밝혀졌다. 지금까지 금속이 아닌 원소 중에서 ‘-윰-ium’이란 접미사가 붙은 원소는 헬륨뿐이다. 이 접미사는 나트륨natrium, 크로뮴chromium, 우라늄uranium과 같은 금속 원소에만 붙여왔다. / 29p
가지고 있는 특별한 성질 때문에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얻은 원소들도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코발트다. 독일어로 ‘코볼트’는 악마를 뜻하는데, 실제 코발트는 광부들이 싫어하는 광물로 여겨졌다고 한다. 여기에 포함된 비소 입자가 건강에 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과거 북유럽 사람들의 관습을 기술한 한 책에서는 코발트를 광산 악마에 비유한 목판화가 실려 있으며, “단지 훅 내쉬는 숨만으로 코로나 로사케아라는 동굴에서 광부를 열두 명 이상 죽였다”는 관련 글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니켈 또한 마찬가지다. 전설에 따르면 초기의 독일 광부들은 비소를 포함한 광석을 또 하나 발견했는데, 구리 광석을 닮은 이 광석에서는 어떤 금속도 추출할 수가 없어 고개를 갸웃했다고 한다. 광부들은 고블린의 한 종류인 ‘니켈’이 광석에서 금속을 훔쳐 갔다고 주장하면서, 그 광물을 ‘악마의 구리’란 뜻으로 ‘쿱퍼니켈kupfernickel’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반응성이 약한 일부 금속, 예컨대 금과 은뿐 아니라 심지어 구리도 때로는 순수한 상태, 즉 홑원소 물질로 산출된다. 하지만 반응성이 강한 원소들(철, 주석, 아연 등)은 대개 산소나 황 같은 다른 원소와 결합한 광물 형태로 산출된다. 순수한 금속을 분리하려면, 결합한 딴 원소를 떼어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제련 과정이다. 예를 들면, 초록색 구리 광석인 공작석을 공기 중에서 배소하면, 공작석이 분해되어 검은색 산화구리가 생긴다. 숯(덜 순수한 탄소)과 함께 가열하면, 탄소가 산소와 결합해 일산화탄소와 이산화탄소 기체가 되어 빠져나가고, 순수한 구리 금속이 남는다. 이때 탄소와 일산화탄소 기체가 금속 산화물을 금속으로 ‘환원’시켰다고 이야기한다. / 103p
어쩌면 서로의 이름을 바꿔서 불렀더라면 더 좋았을 원소도 있다. 바로 수소와 산소다. 수소라는 이름이 ‘물을 낳는 것’이란 뜻이라면, 이 이름은 산소에 더 어울리기 때문이다. 실제 산소의 독특한 성질은 수소와 결합해 물을 만드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심지어 라부아지에도 산소가 모든 산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필수 성분이라고 생각했지만 염산이 염소와 수소만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밝혀짐으로써 이 생각은 옳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19세기에 가서 산(적어도 수용액 상태에서는)의 핵심 성분은 수소 이온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수소가 모든 산의 핵심 성분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수소라는 이름은 산소에 붙였어야 더 적절했을 것이라는 의견은 타당해 보인다.
오줌을 통해 인을 대량 생산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다. 라이프티츠가 헤니히 브란트에게서 직접 얻은 것이 거의 확실한 이 제법은 “한동안 방치한 오줌 약 1톤을 준비하라.”라는 말로 시작한다고 한다. 브란트는 한때 라이프니츠와 그의 후원자들에게 고용되어 군 주둔지에서 공급한 사람 오줌으로 인을 대량 생산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오줌 100톤이 쓰였다고 하는데, 이는 대략 1만 3140리터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16세기에 이탈리아의 의사이자 연금술사인 알레시오 피에몬테세가 쓴 책에는 소금과 오줌으로 염화암모늄을 만드는 방법이 실려 있다고 한다. 준비된 소금 10파운드 위에 건강하고 와인만 마신 사람의 따뜻한 오줌을 약간 끼얹고, 소금이 오줌에 녹아 바닥으로 가라앉게 한 뒤 이 액체를 펠츠를 통해 솥에 따른다. 그리고 나서 솥을 빵 굽는 오븐에 올리고 잘 끓인다. 이 염이 말라붙으면 그 위에 사람 오줌을 조금 끼얹고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는데, 오줌 열 통이 소금 10파운드에 흡수될 때까지 계속하면 염화암모늄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참으로 미련하다 싶을 만큼 이러한 노력과 열성이 있었기에 인류는 놀라운 발견과 과학이라는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아닌지 감탄하게 되는 대목이다.
『물리학과 화학 소론』에서는 황과 인 그리고 여러 가지 금속을 공기 중에서 태우는 실험을 하면서 공기 중 일부가 소비된다는 사실을 다루었다. 또, 공기를 뽑아낸 용기 속에서 가열한 물질은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연소에 공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연소 이전과 이후에 연소 물질 자체뿐만 아니라 공기의 무게까지 잴 수 있는 장비를 고안한 데 있었다. 라부아지에는 늘어난 물질의 무게만큼 공기의 무게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다른 사람들은 질량 변화를 확인하는 데 그친 반면, 그는 그런 반응에서는 전체 질량이 보존되며 단지 재분배될 뿐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보여주었다. / 195p
칼라일과 니컬슨은 이 실험을 통해 놀라운 발견을 했다. 캐번디시와 라부아지에가 보여준 것처럼 정확한 비율로 섞은 원소들로부터 물을 직접 합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기를 사용해 물을 다시 구성 원소들로 분해할 수 있음을 알아낸 것이다. 이 발견은 ‘전기 분해’라는 새로운 기술 시대를 열었다. 전기 분해는 전기를 사용해 화합물을 그 구성 성분으로 분해하는 것을 말한다. / 265p
“이제 이름을 붙여야지.” 피에르는 마치 그것이 어린 이랜(첫 번째 딸)의 이름을 고르는 문제처럼 들리는 어조로 어린 아내에게 말했다. 한 때 마드무아젤 스크워도프스카로 불렸던 마리는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세계 지도에서 사라진 조국이 떠올랐고, 막연하게 만약 이 과학적 사건이 러시아와 독일, 오스트리아-폴란드를 압제한 나라들-에서 발표되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폴로늄polonium’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마리 퀴리는 조국 폴란드의 이름을 따서 그 원소의 이름을 정했지만, 그 당시 폴란드는 독립국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이 선택은 정치적 성명과 같은 것이었다. / 417p
주기율표의 마지막 원소이자 비활성 기체 가족인 18족의 마지막 118번 원소 ‘오가네손organesson’에 이르기까지, 책을 읽다 보면 원소의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과학자들이 자신들이 지닌 지식을 최대한 널리 소통할 수 있도록 최선의 결과를 다한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안에 얽힌 여러 사연과 과정들은 인류의 역사이자 각 시대의 문화를 고스란히 반영한 것으로써, 이러한 책들이 학자들에게만 공유될 것이 아니라 대중에게도 반드시 소개되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과학을 좋아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지식 공유와 재미까지 고루 갖춘 책으로 많은 이들에게 읽힐 수 있기를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