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아프지 마라 -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웠던 삶의 순간들에게
나태주 지음 / 시공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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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살아가며 시간과 자연 그리고 사람에게서 배우게 되는 것들!

삶의 마지막 순간을 눈앞에 둔 나태주 시인이 세상에 전하는 귀중한 문장들!

 

 

 

   나태주 시인의 언어에는 세상을 아름답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따뜻한 믿음이 서려있다. 특별히 시문학에 조예가 깊지 않더라도 누구나 시를 즐기고 공감하며 어지러운 마음을 단정히 살필 수 있는 치유의 힘이 그곳에 있다. 이미 문학인생의 반세기를 맞은 시인이지만, 삶에 대한 웅숭깊은 시선과 어린 아이처럼 특유의 맑은 정신은 지금까지도 한결 같다. 여기에 신작 『부디 아프지 마라』에서는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이자 교육자이자 시인으로서 살아온 지난날을 회고하며, 어느 덧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렀을 때에야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생의 의미들이 묵직하게 담겨 있다. 흘러온 시간을 통해서 남은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느끼고, 죽음이 있기에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생의 끝을 자연스럽게 마주하려 하고,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애틋한 마음을,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는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자 한다. 덕분에 나는 어수선하고 복잡한 지금의 마음을 담담히 여며본다. 또한 단단히 굳어져 있던 마음을 낙낙하게 풀어놓아본다.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도 함께 부축하면서 가야지.

그러면 조금씩 좋아질 거야.

 

 

 

   나는 지난해 겨울, 시인의 책 『당신이 오늘은 꽃이에요』를 읽고 처음으로 시란 것이 우리의 길이 되고, 동무가 되고, 삶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96편에 이르는 이번 산문집 『부디 아프지 마라』에서도 나태주 문학이 지닌 힘, 이를 테면 삶에 대한 진정성을 담은 그의 시선은 변함이 없다. 그 중 ‘시간에게서 배우다’에서는 깊은 산골에서 자란 유년 시절에서부터 늙은 아이 같은 시인이 되기를 바라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생의 순간순간에서 배울 수 있었던 삶의 소중한 가치들이 애틋한 마음과 함께 담겨 있다.

 

 

 

억지로라도 해본다는 것.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한다는 것. 그것은 인생살이에서 필요한 덕목이고 좋은 일이다. 문제는 방향성이고 목표다. 자기에게 맞는 방향을 정하고 자기에게 알맞은 목표를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면서 천천히 끝까지 그 일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실은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 ‘살아간다는 것’ 중에서 61p

 

 

 

 

 

  몇 년 뒤면 내 나이도 어느 덧 마흔이라는 생각이 들자, 부쩍 시간이 흐를수록 하기 어려워지는 것들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일까, ‘남강 선생의 회심’이라는 제목의 글이 유독 인상에 남는다. 남강 이승훈 선생은 오산학교의 설립자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분이다. 그는 원래 평범하게 시장을 돌며 장사를 하는 상인이었는데, 어느 날 장마당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연설을 듣고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한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면서 새롭게 살고자 하는 회심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도산 선생과 면담을 한 뒤부터 그는 젊은 세대들을 기르고 가르치는 사업에 투신하게 되었다. 이렇듯 사람은 일생을 살면서 한 번쯤은 회심의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 나태주 시인은 남강 이승훈 선생처럼, 50살에 회심의 기회를 갖고 통회하면서 『참회록』을 쓴 톨스토이처럼 인생의 터닝포인트에 대해 생각해볼 것을 독려한다. 나는 언제쯤 터닝포인트가 있었던가, 아니 언제쯤 터닝포인트를 가져야 할지를 생각해보고 새롭고도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보라고 말한다. 내 삶에 기회를 줄 것, 지금의 내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말이다.

 

 

 

우리도 꽃이다. 꽃이지만 언젠가는 시드는 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름답고 싱싱하게 또 순간순간 반짝이도록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야 한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그 말은 오늘도 우리의 귓전에 입을 대고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겸손하라. 준비하라. 조심하라, 그리고 관대하라. / ‘메멘토 모리’ 중에서 64p

 

 

이제 어쩌는 도리가 없다. 서로 기도하고 염려하고 응원하고 위로하면서 살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그 안에 작으나마 평안이 깃들고 행복이 있겠지 싶다. 우리 서로에게 말해보자. 많이 힘드시지요? 나도 힘들답니다. 이 힘든 고비를 조금만 참고 넘겨보시지요. 그러면 분명 좋은 날, 밝은 날이 올 것입니다. / ‘부디 아프지 마라’ 중에서 80p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재유행하면서 또다시 마음이 뒤숭숭해지는 요즘이다. 이전에는 없던 국지성 폭우와 40도를 육박하는 여름 기온에서 느낄 수 있는 이상 기후, 바다 쓰레기를 먹고 죽은 해양 생물과 늘어나는 멸종 위기의 생물들까지. 올해 들어 부쩍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가 두려워지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테다. 시인도 이를 염려하며 책에 ‘꽃들이 걱정이다’를 남겨놓았다. 예전엔 살구꽃 다음에 복숭아꽃, 그 다음에 앵두꽃, 자두꽃, 배꽃이 순서대로 피었는데 요즘엔 그 모든 꽃들이 폭죽처럼 한꺼번에 피어난다는 것이다. 어디 꽃뿐일까. 예전엔 바닷고기들이 철 따라 순서대로 잡혔는데 지금은 그야말로 제멋대로 잡힌다 한다. 시인은 이에 대해 ‘자연이 성급해진 탓이요 난폭해진 탓이요 근본적으로는 질서가 무너진 탓이다. 이를 따라 우리 인간들도 성급해지고 난폭해졌다. 꽃이 피는 건 좋은 일인데 이제는 꽃 피는 일조차 겁이 난다’고 말한다. 사람의 마음 쓰임, 사람의 사는 일까지 덩달아 거칠어지고 뒤죽박죽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이, 풀꽃에 마음을 둘 줄 아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새삼 많이 그립고 또 그립다.

 

 

 

실상 풀꽃 시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사람을 대상으로 쓰인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예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하면 예쁘고 사랑스럽게 볼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쓴 작품이다. 무릇, 시라는 문장은 있는 그대로 현상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 너머의 소망을 쓰는 글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 ‘풀꽃 시의 현장’ 중에서 112p

 

 

시의 시대가 끝났다고 한탄하는 말은 내가 시 공부를 처음 시작했을 때도 있었다. 1960년대 초반이다. 신문이나 잡지에서는 그 문제를 가지고 대서특필해서 다루기도 했다. 마치 그렇게 하면 다시 시의 시대가 올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것은 그 이후에도 여전했다. 그것은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어떤 경련 같은 것이다. / ‘시를 읽지 않는 시대’ 중에서 168p

 

 

연애가 아이 러브 유라면 결혼은 아이 니드 유다. 정말로 그건 그렇다. ‘사랑’보다는 ‘필요’가 더욱 큰 사랑이고 절실한 사랑인지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지 모른다. 나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나는 당신 없으면 곤란합니다, 나는 당신 없이는 살 수 없어요, 하고 말할 때 그것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이 된다. 삶이 되고 사랑을 넘어선 사랑이 된다. / ‘아이 니드 유’ 중에서 255p

 

 

 

 

 

 

   시인은 시를 쓰면서 살았기에 보다 정신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고, 초등학교 선생으로 일관했기에 어린이다운 어법을 잃지 않았으며, 시골에서 살았기에 자연과 친숙한 사람이 되었고, 자동차 없이 살았기에 서민적인 삶을 더 잘 이해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한다. 또 더 많은 것을 원하거나 꿈꾸지 않아도 되는 지금, 늙은 사람인 것이 좋고 다행이라고 여기기까지 한다. 생의 순간순간에 감사하고 행복을 느끼며 살아온 사람에게서만이 배울 수 있는 진정한 여유와 깨달음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아등바등 살고 있는 우리에게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되새겨보게 하는 대목이다. 늘 내가 가진 뿌리의 깊이를 가늠하면서 살고,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자. 생의 마지막을 앞둔 이 시인에게서 이렇게 나는 또 한 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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