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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함께 춤을 - 시기, 질투, 분노는 어떻게 삶의 거름이 되는가
크리스타 K. 토마슨 지음, 한재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12월
평점 :

부정적인 감정은 내 삶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신호다!
감정의 본질과 맥락을 이해하고 균형 있게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하는 책!
색색의 꽃들로 가득한 멋진 정원이 있다고 상상해 보자. 이 아름다운 정원을 위해 정원수는 매일 성실하게, 정성을 다한다. 그럼에도 집요할 정도로 날마다 나타나 정원을 망치는 녀석이 있었으니, 바로 잡초다. 잡초는 뽑고 또 뽑아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조금만 방심하면 오히려 더 무성하게 자라나있다. 게다가 다른 식물에 해를 가하기 때문에 정원수에게 있어 잡초는 자신을 괴롭히는 골칫거리 같은 존재다.
『악마와 함께 춤을』의 저자인 크리스타 K. 토마슨은 책의 서두에서 이것이 바로 나쁜 감정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이라고 지적한다. 잡초는 제거하거나 통제해야 할 대상이란 것, 즉 나쁜 감정 역시 좋은 삶을 가로막는 장애물이기 때문에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저자는 나쁜 감정은 잡초가 아니라 ‘지렁이’라고 강조한다. 끈적거리고 징그러운 모습으로 흙 속을 휘젓고 다니지만 실은 지렁이가 존재한다는 건 정원이 조화롭고 풍성하게 번성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토양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지렁이가 정원에 꼭 필요한 존재인 것처럼, 나쁜 감정 역시 좋은 삶의 중요한 일부라고 이 책은 말한다.
우리가 질문해야 할 건
삶이 왜 안락의자 같아야 하냐는 것이다. / 66p
시기와 질투 그리고 경멸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어떻게 하면 잘 다스리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골몰하고 있는 현대인들이라면, 부정적인 감정이 내 삶을 아끼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꽤 오랫동안 나쁜 감정들을 절제하고 잘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이성적이고 긍정적이며 합리적인 사람이라 여겨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인류의 진화 과정 속에서 나쁜 감정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생존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고, 나쁜 감정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주장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감정이 어떠한 맥락으로 작동하는지 감정을 주제로 한 다양한 철학자들의 생각을 살펴보고, 어떻게 하면 부정적인 감정과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을지를 제시한다.
사람들은 나쁜 감정이 “비생산적이다.” “에너지를 빼앗는다.” 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이런 말들은 하나같이 부정적인 감정이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고 가정한다. 감정 위생은 당신이 평화로운 내면의 성소를 가졌다면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다른 모든 걸 다룰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당신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은 오로지 당신이 상황을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쁜 감정을 없애려면 더 긍정적인 생각을 하거나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이들에 따르면 나쁜 감정을 계속 느낀다면 그건 당신 잘못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 95p
우리가 나쁜 감정에 대해 갖는 의심은 대부분 내가 ‘감정의 이중 잣대’라고 부르는 것 때문이다. 감정의 이중 잣대란 긍정적인 감정에는 절대 부여하지 않는 속성을 부정적인 감정에 적용하는 것을 일컫는다. 일례로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에 너무 깊이, 자주 빠져들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기쁨이나 감사함을 느끼는 것을 경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91p
나쁜 감정은 자기애의 표현이며, 그건 우리가 자신의 삶과 자신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 때문에 나타난다. 이웃의 아름다운 집을 부러워하는 건 나도 그런 집을 갖고 싶기 때문이며, 그것은 성공을 정의하는 한 방법이다. 제일 싫어하는 동료의 비아냥에 화를 내는 건 내가 그런 취급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이 나를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106p


그 중에서도 저자는 몽테뉴의 철학을 인상 깊게 다룬다. 몽테뉴는 자기 이해란 “자신을 잘 다듬어 장식하는 게 아니라 자기 내면의 광야를 탐험하는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골방’이라는 은유를 사용하는데, 우리는 자신만을 위한 골방을 따로 마련하고 그곳을 완전히 자유롭게 유지하며 그곳에서 진정한 자유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소리를 지를 때도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닿지 않는 곳, 즉 골방에 들어앉은 듯 자신에게 집중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상황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봄으로써 지금의 내 감정이 상황에 적절한지,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를 스스로 솔직히 살펴보는 시간은 매우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부정적인 감정에 압도될 때면 몽테뉴가 제안한 골방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
(자아는) 연약하고 불안정한 존재다. 자아를 사랑한다는 건 항상 불안전하고 불안정한 존재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존재를 사랑하는 법은 알기 어렵다. 우리가 직면한 진정한 도전은 그런 존재를 솔직하게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변명하지도 옹호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우리는 불완전하고 위태로운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자기애야말로 나쁜 감정과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한 열쇠다. / 114p
어떤 이들은 분노를 안고 살아가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로드는 분노를 표출하기를 두려워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표현하지 않은 분노는 오용되고 잘못된 방향으로 향한다. 여성은 건전한 방식으로 화를 내는 법을 배우는 경우가 드물다. (…)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분노에서 멀어지면 통찰력에서 멀어진다.” / 145p
분노와 관련된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분노를 타인의 문제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다른 사람이 나를 괴롭힌다고 비난하며 급발진하는 건 분노에 대처하는 한 방식이다. 예를 들어 커피숍에서 내 앞에 있는 사람들 탓을 하며 기다림에 대한 분노를 그들에게로 돌린다. 하지만 깨진 유리잔 사례처럼 나의 괴로움은 실제 괴롭힘을 당해서가 아니라 다른 것에서 비롯될 수 있다. 분노를 해결하는 방법은 내 분노를 ‘교정’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다.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 데 누군가의 책임이 있다고 가정하지 말고, 그저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를 스스로 솔직히 살펴야 한다. / 152p


부정적인 감정에 낙인을 찍지 않고 감정을 균형 있게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하는 신선한 책이었다. 그간 부정적인 감정들이 나를 괴롭힐 때마다 자칫 성격적 결함으로 비춰질까 두려워 억누르기에 급급했던 나로서는, 부정적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된다는 이 책의 제안이 낯설고 여전히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당연하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억지로 제어하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는, 내가 왜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가에 집중하는 게 좀 더 나은 방향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중에 이미 출간된 마음챙김이나 감정 조절에 관한 책들에 비하면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감정의 본질과 맥락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 책이었다. 이 책을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