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엄마의 20년 - 엄마의 세계가 클수록 아이의 세상이 커진다
오소희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12월
평점 :
세상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더 크게 키워주는 법!
아이만 돌보느라 정작 자신은 돌보지 못하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을 위한 책!
나는 두 아이의 엄마다. 현재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엄마들을 수식하는 각종 단어들 가운데 아들 둘이라 ‘목메달’, 경력이 단절된 여성을 뜻하는 ‘경단녀’, 집에서 육아를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전업맘’이란 타이틀을 달고서. 아들만 둘이라 딸을 더 낳아야하지 않겠느냐는 생판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말까지 꾸역꾸역 들어가며, 집에서 놀면 뭐하겠느냐고, 아이 조금만 더 키우고 직장에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경제적인 활동이 없으면 노는 사람처럼 치부하는 세상의 온갖 불편한 시선을 감내해가며 말이다. 그래서 커피 만드는 일을 배워보고 싶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더니 아이의 어린이집 등·하원 시간에 맞춰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내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고, 어린이집 휴일에는 아이를 맡기느라 또 여기저기 눈치를 봐야하는 속사정은 ‘이렇게 하면서까지 일을 해야 하나’ 하고 자괴감만 늘어갔다.
그런 가운데 유일하게 나의 숨통을 트이게 한 것은 ‘책’이었다. 줄곧 책이나 글을 쓰는 일과 관련된 일을 해왔기에 출산 후 손을 놓고 지내는 것이 내내 아쉬웠던 찰나에, 책을 읽고 나름의 생각을 서평으로 정리해 블로그에 올려보기로 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특히 평소 책편식이 심했던 터라 소설책만 줄곧 읽기보다는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해보게 되면서, 출판사가 운영하는 각종 블로그와 SNS를 통해 서평단이나 서포터즈를 모집하는 공고를 보고 하나씩 도전해본 것이 좋은 계기가 되었다. 혼자였다면 절대 읽지 않았을 책을 의무적으로라도 읽게 되고, 책과 어울리는 예쁜 사진을 찍기 위해 야외로 나가거나 카페로 가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핑계도 생겼다. 내가 쓴 서평이 우수 서평으로 채택되는 신기한 경험도 하고, 출판사의 마케터님들로부터 서평 제의도 받고,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뜻밖의 좋은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건 더더욱 행운이었다.
덕분에 나는 요즘, 삶의 활력뿐만 아니라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던 자존감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음을 느끼는 중이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아이가 스스로 책을 가져와 내 옆에 앉아 읽으려 하고, 신랑도 내가 읽고 있는 책에 관심을 기울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책 문화가 가족 문화로 형성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엄마의 20년』의 오소희 작가 역시 이렇게 말했다. “‘엄마’라는 이름의 당신, 당신의 인생은 소중합니다. 당신에게 기회를 주세요. 돈을, 시간을, 열의를, 당신을 성장시키는 데 쓰세요. 운동이든, 독서든, 꾸준히. 당신을 든든히 지켜줄 당신의 세계를 가꾸세요.” 라고. 비록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준 이 소소한 기회가 ‘엄마’라는 자리에서 요구되는 세상의 수많은 기준으로부터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게 하고, 정서적인 안정과 새로운 유형의 에너지를 얻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변화는 시작된 것이니까.
엄마라는 자리는 끝이 아닌, 시작입니다
당신은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무궁무진한 능력을 가졌습니다.
당신에게 기회를 주세요. / 17p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를 통해 대한민국 엄마들이 꼭 한 번 만나고 싶어 하는 여행 작가이자 엄마 작가인 오소희의 신작 『엄마의 20년』은 아이를 돌보느라 정작 자신은 돌보지 못한 엄마들을 위한 책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세계여행’이라는 새로운 여행 장르를 개척한 여행자답게 ‘평범하지 않은’ 육아 방식으로 그간 많은 엄마들과 소통하며 그들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주고자 노력해왔던 그녀다. 실제 강연장에 나가면 그녀가 엄마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나를 찾고 싶어요”였다고 한다. 하지만 얘기를 들어보면 상당수가 ‘가정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지레 포기를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어째서 대한민국 엄마들은 왜 이구동성으로 ‘나’를 찾고 싶다고 할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나’를 잃어버리게 만들었을까? 책은 바로 이러한 질문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녀는 엄마들이 ‘나’를 잃어버렸는데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지 못하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한다. 남성 중심적인 사회. 그리고 입시 중심적인 사회.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활동은 낮은 임금, 보육시설 미비 등 다양한 장애물에 걸려 차단당한다. 입시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활동은 대학입시까지 무려 20년을 아이에게 붙잡혀 차단당한다. 이렇게 두 번 차단당하고 나면 금방 50대가 넘어버린다. ‘내 세계’를 적극적으로 가꿀 가능성은 바닥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 남성 중심 사회에 균열을 낼 수 있을까? 이 공고한 입시 교육 사회의 현실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그녀는 가능하다고 단언한다. 꼭 당장 돈을 버는 활동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사이 엄마가 카페에 가서 책만 꾸준히 읽어도, 매일 등산만 열심히 해도, 그 활동은 결국 의미 있는 사회적 활동이 되어 남성 중심 사회에 균열을 가할 수 있다고 말이다. 엄마 스스로 자신의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아내고 “내 육아 목표는 OO야. 대학이 아니야!”라고 당당히 선언할 수 있다면 불행한 입시육아를 거부할 힘이 생긴다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가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엄마의 성장을 삶의 중심으로 바꿔야만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엄마의 세계가 클수록 아이의 세상이 커진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엄마가 베이커리를 배우면 아이는 빵을 많이 먹으며 자랄 것이고, 엄마가 노래를 배우면 아이는 엄마의 흥얼거림을 따라 하며 자랄 겁니다. 엄마가 노력하는 동안, 아이는 그 일부를 자기 세계에 하나씩 가져가는 것이죠. 그거면 충분합니다. 엄마가 아이의 세계를 전부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 아니에요. 엄마가 탐색하는 전 과정이 아이에게는 다양한 체험이 되기에, 엄마가 ‘THE 가치’를 좀 뒤죽박죽 찾아내도, 찾아낸 시기가 좀 늦어진다 해도 괜찮습니다. 저처럼, 아이를 낳은 뒤에야, 아이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찾아내도 괜찮아요. / 63p
내가, 내 가정에서부터 먼저, 성적분리불안을 끊어내고 더 중요한 가치를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당장 아이 앞에 놓인 접시에 반찬 한 가지라도 더 놓아줘야 한다는 강박부터 내려놓읍시다. 부모가 반찬 한 가지에 연연하면 아이도 평생 반찬 생각밖에 못 해요. ‘큰 시야’가 ‘큰 가정’을 만들고 ‘큰 아이’를 만듭니다. / 83p
가족을 앞에 세우고 자신은 뒤에 서는 철저한 보조자의 역할. 그것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가로막힌 사회에서 친정엄마에게 허용된 유일한 사회적 역할이었습니다. 그래서 친정엄마는 자신의 욕구를, 남편과 자식이 쓸 화장실 청소보다도 더 나중으로 미루고 돌보지 않았어요. 자신이 이루지 못하는 꿈을 자식이 이루어주길 바랐지요. 생활은 고되고 자아는 돌볼 겨를이 없으니 지친 감정을 (무서운 남편이나 귀한 아들 말고) 만만한 딸들에게 퍼붓는 일도 흔했습니다. 수많은 딸들이 수시로 엄마의 ‘감정 펀칭백’이 되었을 뿐 아니라, 엄마의 꿈을 대신 이루어주는 역할까지 해내야 했어요. / 118p
이렇게 앞서 1부에서 이 사회가 얼마나 조직적으로 아이를 가진 여자는 ‘그걸로 끝’이라는 ‘조연 의식’을 심어놓았는지, 얼마나 교묘하게 아이를 잘 키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과도한 모성 신화’를 유지시켜 왔는지 짚어보았다면,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인생을 잘 가꾸는 법과 그 잘 가꿔진 인생 안에서 ‘양육자’로서의 역할을 잘 해내는 방법 15가지를 제안한다. 이 중 단호하게 ‘내 인생은 나의 것, 애 인생은 애의 것’이라 외쳐볼 것, 가족 단위의 욕망에 짓눌려 살았던 친정엄마로부터 물려받은 낡은 ‘엄마’의 롤모델은 지울 것, 전업맘이라고 해서 나를 홀대하던 습관을 버리고 무조건 화장대로 달려가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할 것, 애 학원비 20만원은 안 아까운데 내 활동비 20만 원은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매일, 자신에게 어떤 감정 상태를 선사할지 스스로 선택할 것, ‘꾸준히’ 할 수 있는 ‘활동공동체’를 만들 것, 가족이 공통으로 향유할 수 있는 가족 문화를 만들 것 등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엄마가 자기 삶을 돌보지 않고 아이에게만 집중하면, 아이도 엄마의 간섭과 통제를 막아내는 데만 집중하고, 성인이 되면 성장과정에서 생긴 불균형을 메우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는 것, 즉 엄마의 삶이 아이에게도 고스란히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같은 맥락에서 ‘나의 활동’은 진정으로 나 자신을 위한 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책을 읽을 때도 육아책을 선택하지 않는 겁니다. 스릴러든 로맨스든 내 취향이 단긴 책을 읽는 거지요. 산을 가더라도 평소에 아이와는 갈 수 없었던 난코스를 가보고요. 사람을 만나기로 했다면 학부모들, 남편, 부모, 시부모, 회사 사람 말고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거예요. 나의 욕망, 나의 관심, 나의 견해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그렇게 딸린 식구라곤 없는 사람처럼, 그냥 잠시 나를 사는 겁니다. 역할을 떠나, 존재를 느끼는 거지요. 그런 순간이 바로 내가 나에게 말을 걸고, 내 말을 들어주는 순간입니다. / 168p
아이에게 엄마의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언제라도 뛰어가 도와줄 거예요. 그러나 뛰어가기 전에 “혼자 해볼 수 있겠니?”라고 한 번 더 물을 거예요. “혼자 해보겠다”고 하면 비록 미덥지 않더라도 ‘믿으면서’ 과감히 물러날 거예요.
아이에게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때에는, 아이가 도움을 청하더라도 정중히 거절할 거예요. 아주 편한 엄마 역할이지요. 내가 내 운전대를 양보하지 않듯, 아이를 조수석으로 밀어내고 대신 운전해주는 짓 같은 건 하지 않는 겁니다. / 226p
모두 영화를 좋아한다면 매주 금요일 밤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영화를 보는 식으로 시작하는 겁니다. 부모와 아이가 순서대로 ‘My week’를 정해 한 주씩 돌아가며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하게 하는 거예요. 이때, 부모가 아이에게 교육적인 영화를 보이려는 흑심을 품으면 이 ‘금요영화관’은 금방 문을 닫을 거예요. 아무리 다른 사람이 고른 영화가 내 취향에 맞지 않아도 군말 없이 같이 봐줘야 합니다. 아무리 유기농만 먹이는 엄마라도 이때는 팝콘과 치킨을 준비하는 거고, 아무리 깔끔한 엄마라도 이때는 거실 바닥에 이불을 펴주는 거지요. 아빠 역시 제아무리 중요한 ‘불금 회식’이 있어도 제때 들어와야 합니다. 아이 시험기간에도 영화관 문은 닫지 않아야 해요. 그래야 이 모임이 지속됩니다. / 250p
언제가 되었든, ‘THE 가치’를 찾기만 한다면, 그런 게 지구상에 있는 줄도 모르고 죽는 부모를 두는 것보단 자식에겐 이득이라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 다시 말해 아이‘를’ 자랑으로 삼는 부모가 되기 보다 아이‘가’ 자랑으로 삼는 부모가 되는 게 우선이라고 말이다. 엄마가 되는 순간 내 삶은 없어졌다고 방관하고 놓아버리는 순간에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는 세상은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라고, 엄마가 자기계발을 하면 아이는 스스로 엄마가 열어놓은 세상보다 더 큰 세상을 보게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여담이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에 나의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덕분에 외할머니의 시간을, 나의 엄마의 시간을 많이 생각했다. 그녀들이 나에게 기꺼이 베풀어준 희생과 헌신에 감사히 여기면서 앞으로 내가 만들어가야 할 시간에 대해서 계속 고민해봐야겠다. 그러는 동안에 내 자존감이 다시 바닥을 찍을 것 같을 때면, 또 아이만 생각하느라 나를 뒷전으로 밀어 둘 것 같을 때면 내 눈에 가장 잘 보이는 책장에서 이 책을 몇 번이고 꺼내서 읽어보리라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