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냐고, 철학이 내게 물었다 - 30인의 철학자가 오늘 나에게 건네는 철학의 말들
임재성 지음 / 필름(Feelm)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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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완벽한 답을 찾는 시험지가 아니라, 스스로 써 내려가는 원고다!

세상에 지친 우리에게 철학하는 삶을 권하는 아주 친절한 철학 에세이!

 




  괜찮은 줄 알았는데, 괜찮지 않았나보다. 이 책의 제목을 본 순간, 이건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걸 보면. 최근 들어, 무작정 괜찮다고 달래거나 애써 외면해 왔던 감정들이 나도 모르게 불쑥불쑥 튀어나와 주체가 안 될 정도로 무너지는 순간들을 경험하고 나니, 지금의 내겐 막연한 위로보다는 구체적인 질문과 나와의 진지한 대화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시작한 책 읽기는 고요하고 때로는 집요하게 나를 응시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조용히 앉아 자신을 성찰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 파스칼

 



오늘의 삶과 연결하는 살아있는 철학

 



  철학서가 이렇게나 친절하고 다정할 수 있을까. 괜찮냐고, 철학이 내게 물었다는 우리의 삶과 가장 가깝게 닿아있는 질문들을 철학으로부터 해답을 구하는 책이다. 방황, 불안, 공허, 후회와 같은 감정들로부터 매 순간 나를 지키고, 지친 마음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삶의 기술로써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혜안을 제시한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삶을 살고 고민의 결 또한 다르다. 내 상황에 맞는 철학자의 사유를 나의 문제에 비춰볼 때 철학은 더 이상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삶에 바로 닿는 현실적인 지혜가 된다.

그러나 스쳐 지나가듯 읽은 철학자의 사유는 내 삶을 바꾸기 힘들다. 단순히 좋은 말이네!” 하고 덮어버리는 독서로는 내면의 변화를 끌어낼 수 없다. 철학은 머리로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마음으로 받아들여 삶 속에서 실천될 때 비로소 힘을 발휘한다. / 7p

 



깨닫지 못한 사유는 곧 잊히고, 우리는 다시 같은 고민 앞에 서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해가 아니라 지속이다. 사유가 생각에 머물지 않고 삶의 습관으로 이어질 때, 철학은 나를 붙잡아 준다. 일상의 선택과 태도 속에 스며든 사유만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삶의 중심을 지켜준다. / 8p

 









  삶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예측할 수 없는 미래 때문에 불안할 때, 끊임없는 경쟁과 성취에 압박감을 느낄 때 아우렐리우스, 세네카, 에픽테토스, 몽테뉴를 떠올려보자. 이들 철학자들은 외부를 바꾸려 애쓰기보다 나의 생각과 태도를 다스리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일은 결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살아갈 수 있는 전부이다.”라고 말했던 세네카처럼, 저자는 이미 지나간 과거의 후회나 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에 사로잡히기보다는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태도와 선택에만 오롯이 집중한다면 그 어떤 외부의 소음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이 그대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보다, 그대가 자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네는지에 더 귀 기울여야 한다. / 47p

 



감정을 언어로 명확히 표현하는 것은 감정 관리의 강렬한 도구다. 막연한 불쾌감도 나는 무시당했다고 느껴 화가 났다라고 구체화하면, 감정은 더 이상 나를 흔드는 모호한 힘이 아니라 다룰 수 있는 문제로 바뀐다. 명명된 감정은 이미 절반은 다스려진 것이다.

감정을 다스린다는 것은 억압이나 회피가 아니라, ‘이해를 통한 자유에 이르는 과정이다. 외부 사건은 바꿀 수 없지만, 그 사건이 내 안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어떤 반응으로 이어질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이 선택의 힘을 손에 쥐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감정의 노예가 아닌 삶의 주인이 된다. / 55p

 



피할 수 없는 고난이라면, 거부보다 수용이 더 큰 힘을 준다. 거부와 저항은 마음을 소진시키지만 수용은 내면을 단단하게 만든다. 한 번 고난을 겪어본 사람은 그 무게와 깊이를 알기에 다음 고난 앞에서 덜 흔들린다. 그것이 삶이 주는 면역력이다.

고난 속에는 배움이 숨어 있다. 무너뜨리는 독이 아니라 성장시키는 스승이다. “이 고난을 통해 나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고통은 의미로 바뀌고 우리는 한 걸음 더 성숙해진다. / 123p

 










  이 외에도 책은 왜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면 빅터 프랭클의 철학을, 나이 듦이 아쉽고 속상할 때면 키케로의 철학을, 고난의 무게에 짓눌릴 때면 니체의 철학을, 삶이 공허하다고 느낄 때는 하이데거의 철학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내 삶과 마음이 온전치 않다고 느낄 때 이들의 철학을 빌어 나만의 생각을 펼쳐나가는 연습을 해보다 보면, 고통은 의미로 바뀌고 우리는 한 걸음 더 성숙해지지 않을까.

 



많은 것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많은 것을 기꺼이 받아들여라. / 160p

 



짐을 덜어달라 기도하지 말고, 그 짐을 감당할 강한 어깨를 달라 기도하라. / 169p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숙고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자신의 존재와 행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성찰하지 않는다면 타인의 기대와 사회의 흐름에 휩쓸린 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때 자기 성찰은 거창한 의식이 아니라, 매일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작은 습관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가치를 따라 살아가고 있는지, 매일의 사소한 성찰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는 책의 메시지를 잊지 말아야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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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기세 - 지치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용기
서울라이터 박윤진 지음 / 윌북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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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기세가 일과 일상의 균형을 만든다!

배우고 실패하고 다시 시작하며 성장하는, 연약하면서도 끈질긴 존재들을 위한 위로와 희망!





  다정과 기세라니.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단어의 조합이 이렇게나 절묘하다. 생각해보면 다정함이란 것은 감정의 영역이라기보다 태도의 영역에 가까워서, 내가 사랑하는 일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힘은 결국 일과 일상 그리고 나와 타인과의 관계를 다정하게 보듬는 태도와 의지에 있다는 것을 저자는 낯설지만 이처럼 간결한 언어로 표현한다. 다정한 기세는 그런 책이다. 오늘도 어쩔 수 없는 좌절과 마음의 소란을 버텨내며 다정한 기세로 성실히 달려온, 진짜 실력과 내공을 가진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한 분투를 담은 믿음직한 선배 같은 책. 읽다보면 안온하지 않았던 나의 하루도 긍정하게 되는 바로 그런 책.

 



힘내지 않아도 힘은 쌓여가고 있으니 작은 걸음으로 나아갑시다.”

 / 표지 중에서

 



  박윤진은 20년 경력의 프로 카피라이터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처음 광고 업계에 몸을 담기 시작한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제일기획과 대홍기획을 거쳐 서울라이터라는 브랜드를 론칭해 홀로서기까지, 책은 그녀가 프로 직업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은 각종 시행착오와 그 안에서 깨달은 여러 삶의 노하우들을 전한다. 이 책은 결코 성공을 쫓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고 싶다면 그 답은 의외로 일을 하는 것이라던 그녀의 말처럼 사회가 원하는 명함이 아닌, 보다 나답게 살며 일과 일상을 균형감 있게 돌보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덕분에 저마다 삶의 무게는 다르지만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는 이유로,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너는 아마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거야.

너의 땀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있어.

네가 누군가의 땀을 보고

힘을 얻었던 것처럼.

땀은 흘러서 끝나는 게 아니야.

땀은 너 혼자만의 것이 아니야.

너는 분명, 누군가의 태양. - 포카리스웨트 TV 광고(2025) / 25p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고유의 직업병이 있다. 음악가는 좋은 음악을 가만히 듣지 못하고 드라마 작가는 드라마를 편하게 보지 못한다. 심리상담사는 친구의 하소연을 자꾸만 분석하고 피부과 의사는 작은 잡티 하나에도 손이 근질거린다. 오랜 시간 같은 동작을 반복하면 굳은 살이 생기듯 직접도 우리 몸과 마음이 깊은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때로는 피곤하고 괴롭지만 직업병이 있다는 건 사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 47p

 










  변변찮은 재주지만 나 역시 글을 쓰는 사람이라서, 매번 창의적이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을 다루는 그녀만의 노하우가 궁금했다. 그런데 그녀는 의외로 창의성은 중복 신경망의 과부하가 만들어낸 별종 신경이라서, 별종 신경이 만들어질 때까지 신경망을 과부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니까 반복적으로, 꾸준히, 오래가 답이라는 것이다. 식단 관리를 하듯 좋은 콘텐츠들을 섭취하고 쓰는 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공간에 계속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20년 동안 현장에서 일하는 전문가도 매일 갈고 닦는다는데 나라고 무슨 다른 도리가 있겠나. 덕분에 꾸준히 계속하는 힘을 또 한번 믿어보려 한다. 하루하루 쌓은 힘이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거라고.

 



세상엔 천재가 너무 많지만 언젠가는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수많은 천재 중 하나로 여겨질 날이 찾아올지 모른다. 그러니 자신을 믿고 꾸준한 노력을 계속해나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가장 쉽지만 효능 있는 재능은 꾸준히 쓰는 힘이다. 쓰고 고치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실력이 쌓이고 내공이 커지는 법이다. 여느 글쓰기처럼 카피도 쓰면 쓸수록 반드시 는다. 좋은 카피는 수많은 문장 사이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한 줄이고, 수없이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지층처럼 쌓인 노력이 만든 결과물이다. 더 나은 답을 찾기 위해 꾸준히 쓴 오래 걸린 말. 카피라이터는 그 말을 찾는 사람이자 끝까지 써내는 사람이다. / 57p

 



머지않아 우리 모두는 각기 다른 라는 브랜드로 살아야 할지 모른다. 아니, 날 때부터 다르게 태어났으니 이미 나라는 브랜드는 그때부터 시작됐을 수도 있다. 퍼스널 브랜딩은 그 자체로 성장하는 과정이다. 내가 모르던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끊임없이 탐구하게 되니 말이다. 자신을 중심으로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지, 세상에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지에 대한 답을 먼저 찾아보자. 이 모든 질문에 답을 찾았다면 당신의 퍼스널 브랜딩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 70p

 










  우리는 모두 뒤집힌 양말 같은 존재라는 책 속의 글귀가 마음에 맴돈다. ‘겉면에는 웃는 얼굴, 화려한 꽃, 귀여운 강아지 그림이 수놓아져 있지만 정작 그 속을 뒤집으면 서로 엉켜 있는 색색의 실밥들이 드러나는 양말처럼 우리는 모두 속으로는 엉키고 꼬인 실밥들을 숨기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하고. 그러니 좀 더 다정해져야지. 서로의 엉킨 실밥을 자주 들여다보고 보이지 않는 것들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마음먹게 된다.

 



몇 해 전 읽은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가 떠오른다. 진화에서 살아남는 건 가장 강한 존재가 아니라 가장 다정한 존재, 잘 협력하는 개체고 그들이 더 오래 살아남고 더 많은 후손을 남긴다는 내용이었다. 그 말이 옳았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았다. 사람뿐만이 아니다. 다정한 대화, 다정한 음식, 다정한 마음과 시간이 결국 살아남았다. 마음을 열고 친절을 나누면 분명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 148p

 



  좋아서 시작한 일이건만 밀려드는 업무와 몰아치는 시간을 버텨내는데 급급할 때면, 삶의 균형이 무너져 당장이라도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힘을 내볼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싶을 때면 그녀가 내게 건네었던 이 사려 깊은 언어들을 떠올려봐야겠다. 이왕이면 다정한 기세로 살아보자고 한번 더 다짐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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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열린책들 세계문학 295
허먼 멜빌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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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틀비는 나에게 있어서 잊을 수 없는, 가장 특별한 캐릭터 중에 하나가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부조리한 문제들을 상징적으로 다룬 허먼 멜빌 문학의 정수!






  “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세상에! 바틀비, 이 사람 어쩌면 좋지? 오늘도 기어이 고용주의 부탁과 명령에 하고 싶지 않다고 거절하는 이 남자. 때로는 다정하게 설득해보고, 때로는 내쫓겠다고 윽박도 질러보건만 그는 오로지 필경사라는 자신의 본분에만 충실할 뿐이다. 심지어 어느 시점부터는 필경 일조차 내려놓고 특유의 파리한 얼굴로 우중충한 벽돌 벽만 바라보고 있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더욱이 무언가를 하지 않겠다는 그의 선언은 19세기 중반의 뉴욕이 배경인 현실과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태도와도 배치된다. 왜 그는 한사코 하지 않기를 택하는 걸까. 어째서 그는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사회의 질서를 거부하고 이해를 구하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걸까. 그는, 대체 왜.

 



구인 광고를 보고 찾아온 그 젊은이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병약해 보일 정도로 파리하지만 곱상한 얼굴, 누가 봐도 선한 느낌을 주어 오히려 연민을 불러일으킬 것 같은 단정한 태도, 그리고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을 것 같은 쓸쓸한 인상! 바로 바틀비였다. / 필경사 바틀비중에서 23p

 



  그러고 보면 바틀비는 자기 삶에 대한 어떠한 적극성도 취하지 않는다. 그냥 그 자리에 있을뿐이다. 소설은 끝끝내 바틀비가 왜 그러기를 택했는지 이렇다 할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다만, 고용주가 들은 어떤 짤막한 소문을 통해 짐작해 볼 뿐이다. 그 소문이란, 바틀비가 워싱턴의 배달 불능 우편물 취급소에서 근무하다 조직 개편에 따라 갑자기 해고되었다는 것인데, 그의 일과라는 것이 배달되지 못한 죽은 편지들을 다루고 그것을 분류해 불길 속에 넣는 작업이었다고 한다.

 



  어쩌면 수신되지 못한 편지 속에는 이따금 누군가를 돕는다고 보낸 지폐도 있고, 반지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 편지가 진즉에 닿았더라면 그 돈으로 오늘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용기와 희망을 가지라는 지인의 따뜻한 말에 다시 살아갈 힘도 얻었을 테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무용이 되어버린, 가닿지 못할 편지를 소각해야 했던 바틀비의 심정이란 어떠한 것이었을까를 상상해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택한 그의 태도는 삶에 대한 환멸과 허무함에 대한 한 인간으로서의 절규이자 반항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바틀비가 떠날 거라고 가정한 것은 정말 멋진 생각이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건 내 생각이지 바틀비의 생각이 아니었다. 문제의 핵심은 내가 그가 떠나리라고 생각했느냐 안 했느냐가 아니라, 바틀비가 그럴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였다. 바틀비에게는 어떤 전제나 가정보다 그럴 마음이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였다. / 필경사 바틀비중에서 58p



어디서도 한마디 말조차 새어 나오지 않았다. 철제 동물 같은 기계들이 움직이며 계속 나지막하게 뱉어 내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공장 안 분위기를 압도할 뿐, 다른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인간의 목소리는 아주 멀리 추방된 것 같았다. 이곳에서는 인간들이 자신의 노예라고 호언장담하던 기계들이 보란 듯이 서 있고, 인간들이 비굴하게도 그 기계들을 섬기고 있었다. 노예들이 술탄을 섬기듯, 끽소리 못하고 굽실거리며 기계들을 섬기는 인간들. 기계의 부속품인 회전 기어? 아니, 이곳 처녀들은 그보다도 못한, 심지어 회전 기어의 이에 지나지 않는 존재였다. / 총각들의 천국, 처녀들의 지옥중에서 124p

 


하지만 매일 하루 세끼 다 먹이는 건 아니잖소. 젤리가 걸인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구호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냥 돈 좀 주고 사는 향료가 들어가지 않은 소고기나 빵 같은 것, 손이 많이 안 가고 간단히 해 먹을 수 있는 그런 게 더 낫지 않을까요?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밍밍한 소고기나 빵을 먹지 않아요. 황제들, 섭정 왕세자들, 국왕들, 야전 사령관들이 그런 소고기나 빵을 먹겠습니까? 그래서 보신 것처럼 남은 음식이 다 저런 것들이죠. 혹시 국왕들이 남긴 빵 부스러기와 다람쥐가 먹다 남긴 부스러기가 같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빈자의 푸딩, 부자의 빵 부스러기중에서 170p

 










  이 외에도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 속에는 허먼 멜빌이 쓴 여러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멜빌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문명이 발달한 현대 사회 속 불행한 타자를 둘러싼 문제, 해결되지 않는 사회적·윤리적 딜레마라는 윤희기 역자의 말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부조리한 문제들을 상징적으로 다룬 작품들이 인상적이다. 이제껏 허먼 멜빌의 대표작인 모비 딕만 알고 있거나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단편 소설집을 꼭 읽어보시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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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리 - 2024 공쿠르상 수상작
카멜 다우드 지음, 류재화 옮김 / 민음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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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잊고 싶은역사가 되어버린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

지난한 폭력의 역사로부터 잃어버린 목소리를 회복하는 눈부신 역작!





  이거 보여? 난 멈추지 않는 커다란 미소를 짓고 있어. 난 벙어리, 아니 거의 벙어리야.

  얼핏 천진난만해 보이는 말투지만 누구라도 그녀의 미소를 보고 나면 이내 마음이 불편해지고 마는 그 이름, 오브. 새벽을 뜻하는 그 이름처럼 그녀의 시간은 이십 년 전, 다섯 살이었던 19991231일의 새벽녘에 멈춰버렸다. 그날 오브는 이슬람 무장단체의 습격을 받아 목이 그어지는 참극을 맞았지만 가족 중 유일하게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충격의 여파로 성대를 잃고, 목에 삽입한 튜브로 호흡하며 살아야 하는 운명만큼은 피할 수 없었다. 다행히 지금의 엄마인 독신 여성 변호사 하디자에게 입양되어 현재는 해안 도시 오랑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며 살고 있지만 그녀는 자신의 목에 남겨진 학살의 흔적을 단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런 오브를 향해 하디자는 곧잘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넌 한 권의 책이라고. 전쟁과 학살의 흔적을 이야기하는 살아 있는 증거라고.




, 넌 한 권의 책이야.” 엄마는 내게 맹세하듯 말하곤 했어. “진짜 책.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이야기하는 책. / 20p

 


유일무이한 책이며, 성급한 살해 속에, 성급한 밤 속에 쓰인 책이라 할 나를. 망각으로부터 보호되어 알제리의 진짜 전쟁의 진짜 이야기를 지켜 내는 책인 바로 나를 말이야. 물론 넌 모르겠지, 하나의 삶 속에 얼마나 많은 자갈이 들어 있는지. / 36p

 


오랑은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잊기 위해 만들어진 도시야. 몇 년 전 신의 도살자들이 일으킨 전쟁의 흔적은 여기에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 나 말고는 말이야. 마치 탯줄처럼 감기고 풀리면서 널 감싸고 있는 나의 이 기나긴 이야기 말고는. 건물 아래서 행여 나와 마주차기라도 하면 나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것도 아마 그래서일 거야. 내 목의 구멍을 통해 알제리 내전으로 죽은 수십만의 사람들이 자신들을 노려보는 것 같다고 느끼는 걸 눈치챘는지도 모르지. / 51p

 









  하지만 침묵을 강요하고 비극의 역사를 지우려는 국가의 시도 앞에서 오브는 거슬리는 존재일 뿐이다. 꾸밈을 금지하는 남성 중심의 알제리 사회에서 그녀의 미용실 또한 경계와 적대의 대상일 뿐이다. 마치 예견된 미래처럼, 처참하게 유린당한 미용실의 흔적을 바라보며 오브는 여성에게는 너무나 가혹하기만 한 이런 세상에서 과연 뱃속의 아이인 후리를 낳아도 되는지 깊은 의구심에 빠진다. 결국, 오브는 자신이 두 발을 딛고 사는 이 땅의 현실과 고통의 실체를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해 학살의 현장이었던 고향으로 떠날 결심을 한다. 그렇게 상처의 근원 한가운데로 깊숙이 걸어들어감으로써 19991231일에 멈춰버린 오브의 시계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때 난 다들 더 이상 우릴 기억하는 걸 원치 않는다는 걸 깨달았지. 숫제 우리에게 우리의 기억을 의심해 볼 것을 요구했어. 온 나라가 그 상처를 치유하는 대신, 오히려 지우고, 의심하게 했지. 그리고 그걸 당연한 흐름으로 만들어 버렸어. , 그래 맞아! 솔직히 말하면, 나도 의심하기 시작했어. 그러면서 점점 더, 아무 일도 일어난 적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어. 내 목에 난 구멍이, 내 안에서 제 꼬리를 무는 그 언어로 말하는 것만큼 그건 그리 끔찍한 일이 아니었다고 믿으려 애썼어. 보다시피 기억이란 항상 물 위에, 모래 위에, 그러니까 변하고 흩어지는 물질 위에 쓰이는 거니까. / 155p

 


내 딸아, 설령 네가 우리처럼 대화할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중요한 걸 말하기 위해서야. 이 나라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껄이고, 수다와 목소리로 넘쳐나지만, 중요한 건 너의 목소리야, 네가 속삭일 때조차. 하느님께서 너를 속삭임으로 만드신 건, 네가 말할 때 우리 모두를 침묵시키기 위해서야. / 260p

 


아무 손도 대지 않은 진실의 가장자리에서, 나는 마침내 몸을 던질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 이번에는 내 속으로 잠수하듯 뛰어들어, 내 상처를 다시 열고, 꿰맨 자국을 뜯어야 했다. 그리고 내 미소속으로 뛰어들어, 그것이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알아내야 했다. 그래, 네가 내게 목소리를 되돌려줄 거야, 난 속으로 속삭였다. 나는 한 권의 책이야, 행복한 결말을, 아니 적어도 진실한 결말을 찾고 있는. / 502p

 










  소설 후리는 이른바 검은 10이라 불리는 알제리 내전의 희생자와 생존자들의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기록되지 못한 기억들을 문학이라는 언어로 회복한 눈부신 역작이다. 폭력과 권력은 얼마나 쉽게 개인의 아픔을 묵과하는가. 신앙이 정치와 결탁하면 얼마나 포악무도해질 수 있는가.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사는 것이 수치가 되어버린 생존자들의 고투와 상흔을 유려하고 시적인 문장으로 보듬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 책을 적극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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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디톡스 - 도파민 중독에서 주의력 저하, 불안까지 디지털 과부하로부터의 해방
폴 레오나르디 지음, 신솔잎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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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중독과 불안을 끌어안고 사는 당신에게 꼭 필요한 책!

더 나은 디지털 라이프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지침서!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스레드, 유튜브, 은행 앱삭제해야 하는 앱들이 한가득 산적해있는 걸 보며 머리가 뜨거워진다. 무심코 켜고 닫는 사이에 흘려보낸 시간들이 오늘은 또 얼마나 될까, 하고. 하지만 경각심을 느끼고 스마트폰을 잠시 멀리하려고 마음먹기가 무섭게 스마트워치에서 푸시 알람이 울린다. 당장 메시지를 확인하라고. 이쯤 되니 책머리에서 정재승 교수가 한 질문이 뇌리에 콱 박힌다. “당신이 기술을 사용하는가, 아니면 기술에 의해 사용되는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각종 디지털 도구로부터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깊은 피로감을 얻고, 삶의 질이 떨어진다고 느끼지만 현실적으로 디지털 도구를 완전히 차단할 수 없다고 느낀다. 이 책의 저자이자 생산성 향상 전문가인 폴 레오나르디 역시 문제는 디지털 도구와 기기 자체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기술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 통제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고 기기들에서 에너지를 얻는 방식으로 활용하는 법을 배워야한다고 강조한다. 과도한 연결로 소진된 뇌를 구하고, 기술과 더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해법을 얻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 책에 도움을 얻어 보시길 바란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디지털 도구 일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술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 정보의 수동적 수신자나 혁신의 맹목적인 추종자가 아니라 자신의 디지털 경험을 이끄는 능동적인 큐레이터가 되어야 한다. / 351p

 











  2020년대에 들어 1인당 사용하는 디지털 도구가 일평균 34개로 늘어났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저자는 우리가 디지털 회복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일단 사용 중인 도구를 절반으로 줄이고, 정보에 걸맞은 디지털 도구를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어떤 디지털 도구를 사용할지 선택하는 과정에서 소비되는 에너지와 시간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유사한 기술을 요구하는 일들 또는 하나의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활동들을 묶어서 함께 처리할 것을 제안한다. 마찬가지로 AI가 할 수 없거나 해서는 안 되는 업무, AI가 보강할 수 있는 업무, AI가 자동화할 수 있는 업무들을 분리하여 내가 왜 이것을 사용하는지, 얼마나 쓸 것인지, AI를 조직의 워크플로에 통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고민하여 스스로 디지털 주도권을 갖는 것을 목표로 삼을 것을 추천한다.

 



우리의 주의력은 여기저기 분산돼 있다. 우리는 집중력을 잃고 쉽게 산만해진다. 더 빨리 또는 더 쉽게 해내야 하는 일들을 그렇게 처리하지 못할뿐더러 일을 완수한 후에도 질적으로 문제가 생길 때가 많다. 더 교묘한 점은 주의력을 요하는 수많은 일이 우리가 무언가에 집중하는 능력만이 아니라 집중하는 방식 또한 결정한다는 것이다. / 38p

 



비센티가 경험하는 문제는 주의 잔류물현상으로, 현재의 작업에 완전히 몰입하지 못하고 주의력 일부가 다른 영역의 작업에 매몰될 때 발생한다. 워싱턴대학교의 경영학 교수인 소피 리로이는 이렇게 설명했다. “어떤 작업을 완성하지 못했거나 방해를 받았는데 그 업무를 얼른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할 때 주의 잔류물이 생깁니다. 우리의 두뇌는 완료하지 못한 일들을 잘 잊지 못하고 마음 한구석에 내내 담아둬요. 다른 작업에 집중하려 할 때조차요.” / 49p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음 이론이 필요하다. 타인이 상황을 나와 다르게 보고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때 상대의 반응을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고, 공감과 이해로 상대에게 호응할 수 있다. 타인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상황을 고려하는 것이다. 잠시라도 내 안의 추측을 내려놓아야 상대의 경험과 동기를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 196p

 











  두 아이를 키우는 부모이다 보니 부모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보며 아이들은 부모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메시지를 받는다는 책 속의 글귀가 내내 마음에 남는다. 이는 부모가 아이들 앞에서 휴대전화를 얼마나 자주 들여다보는지 스스로 의식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를 위한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정보를 검색하고 일정을 관리하고 빠른 주문에 집중하는 사이, 정작 아이들이 보내는 중요한 신호를 놓치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그간 디지털 중독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실천보다는 불안만 끌어안고 있던 내게 디지털 주도권을 획득하고, 다양하고 실천 가능한 혜안을 제시해준 책이다. 결국 목표는 디지털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유연하게 헤쳐 나가며 그 세계 안에서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것이기에, 디지털 도구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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