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천 기담
남유하 지음 / 소중한책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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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세상이 결코 안온하지 않다는 것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문학잡지 『Axt』에서 남유하 작가의 작품을 먼저 만난 적이 있다. 고독사박물관을 배경으로 한 단편작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이란 작품이었다. 고독과 죽음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라는 소재가 흥미로워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쩌면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은 이야기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남유하 작가의 매력은 이번 『양재천 기담』에서도 빛을 발한다. 시종 이상야릇하고 기묘하지만, 실제 양재천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들에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니까.





이토록 기묘하고 잔혹한 일상의 순간들



  무엇에 홀린 듯한 붉은 눈의 여인과 다섯 마리의 고양이들. 『양재천 기담』의 표제작 「살」은 버스 정류장에서 새끼 고양이를 죽이고부터 시작된 기이한 일들에 관한 이야기다. 다른 생명을 죽이는 기분은 어떨까. 평소 살(殺)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을 갖고 있었던 주인공은 그냥 놓아두면 굶주림에 시달리다 죽을 것 같은 새끼 고양이를 보자 죽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그리고 순식간에 이를 실행하고야 만다.



  바로 그때부터, 주인공의 신상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몸에 알 수 없는 상처가 생기고, 주변 사람들이 고양이의 영혼에 씐 듯한 환영을 본다. 이윽고 살의에의 충동이 도로 살이 되어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참극을 보며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너도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죽이고픈 충동을 느껴본 적이 있지 않느냐고. 내 안에 어떤 흉기가 있을지 혹시 너는 아느냐고.



죽이고 싶다.

그 순간 제 머리에 든 생각입니다. 벼락에 맞은 느낌이 이럴까요? 뭔가 번쩍하면서 회백질에 저 다섯 글자가 새겨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글자들은 기생충처럼 구불거리며 변형되더니, 어느새 ‘죽여야 한다’로 바뀌었습니다. / 「살」 중에서 8p



애당초 고대이집트에서 전해진 미신일 뿐, 고양이 목숨이 아홉 개라니 얼토당토않은 말이잖아요. 그렇지만, 고양이에게 영혼이 있다면요? 조금 전 제가 들은 게 환청이 아니라 제 주변을 맴돌고 있는 고양이 영혼의 비웃음이라면요? 고양이의 영혼이 세상을, 다름 아닌 저의 세상을 파괴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하찮은 미물 주제에, 감히 내게 도전하다니. / 「살」 중에서 34p













  실제로 어딘가에서 일어날 법한 도시의 괴담 같은 이야기는 계속된다. 분명 어제 간 곳인데 다음날이 되자 언제 있었느냐는 듯 사라져버린 건물(「품은 만두」),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된 사람들(「고강선사유적박물관」), 낯선 사람이 건넨 호의가 뜻밖의 사태를 몰고 오는 비극(「기억의 커피」), 무심코 사유지를 침해한 대가가 나비효과가 되어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사유지」)까지. 무언가를 욕망한 대가로, 누군가에게 적의를 품은 대가로 평온했던 삶이 뒤틀리고 위협받고, 무너지는 광경을 남유하 작가는 거침없이 상상한다.





그 집을 나오기 두어 달 전 주말이었다. 함께 밥을 먹던 A가 멍한 얼굴로 “…돌아가야 해.”라고 한 것이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나는 곧바로 무슨 말이냐고 반문했지만, A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며 시치미를 뗐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 가라앉은 목소리… 남편과의 첫 만남, 헤어질 때 그가 했던 말과 정확히 일치했다. 이번에는 어디로 간다는 건지 알아야 했다. / 「고강선사유적박물관」 중에서 90p



어떤 이의 음식 씹는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면, 너는 그 사람을 증오하고 있는 거야. / 「시어머니와의 티타임」 중에서 113p



“고작 사유지일까?”

괴물이 내 생각을 읽은 듯 물었다. 사소한 잘못이 반복되고, 그 잘못이 누적된다면 결국 큰 죄의 무게와 같아진다. 지난 6년의 세월을 정산하면 고작 사유지라고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건 가혹하다. 사유지를 이용한 대가는 핑계일 뿐, 괴물의 권태로 인한 질 나쁜 장난 아닌가. / 「사유지」 중에서 271p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세상이 결코 안온하지 않다는 사실을 내내 의식했던 것 같다. 언젠가 내 일상도 이렇게 순식간에 무너져버릴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두려움에 그저 가볍게 읽고 넘길 수만은 없었다. 그만큼 남유하 작가는 도시의 병증을 예리하게 포착해냄과 동시에 그 안에서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공포의 실체를 기이하고 환상적인 서사로 엮어나가는 재주가 탁월한 듯하다. 아직 여름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무더운 이 여름에 꼭 어울릴만한 책을 찾으시는 분들에게 『양재천 기담』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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횔덜린의 광기 - 거주하는 삶의 연대기 1806~1843
조르조 아감벤 지음, 박문정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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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와 광인 그 사이에서, 가장 깊고 아픈 방식으로 자신만의 독보적인 목소리를 드러낸 위대한 예술가!

독일을 대표하는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삶과 작품 세계를 사유하는 시간!





  프리드리히 횔덜린은 헤르만 헤세와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 독일 현대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독일의 대표 시인이다. 이른바 ‘천재 시인’ ‘시인들의 시인’라 추앙받으며 가장 현대적이고 가장 창의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횔덜린. 하지만 유럽 문학사상 가장 비극적인 시인이자 광기의 시인이라 불리기도 했다는데, 그 이유가 사뭇 궁금하다. 문득 예술가라면 반드시 갖고 싶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갖고 싶은 치명적인 재능 같은 것이 연상되기도 하고, 우리 문학 사상 가장 혁신적이고 난해한 시인으로 불렸던 이상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무엇이 그로 하여금 천재이자 광인으로 불리게 했을까. 이 책은 이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집은 신성한 광기이다.” / 40p




  한 사람의 삶을 정확히 반으로 나눌 수는 없겠지만, 횔덜린의 삶은 의외로 극명하게 갈린다. 1770년부터 1806년까지 36년간은 정치와 철학 등 세상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살아왔다면, 인생의 후반기인 1807년부터 1843년까지 36년 동안은 이따금 찾아오는 사람은 만나지만 마치 자기와 세계 사이를 단절하는 벽이 존재하는 것처럼 세상 밖으로 자신을 완전히 밀어버렸다. 유럽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는 조르조 아감벤이 이 책에서 주목하고 있는 부분도 1806년 이후, 횔덜린이 광인으로 불리기 시작했던 시기다.




  이 무렵, 횔덜린은 작품에 있어서도 “하나의 생각에 집중하고, 그것을 명확히 하고, 발전시키고, 유사한 다른 생각들과 연결하고, 외견상 가장 멀리 있는 것들을 일관된 흐름 속에 녹여내는 능력을 상실했다.”는 평가가 잇따랐다고 한다. 실제로 횔더린과 철학에 대한 깊은 열정을 공유했던 셸링은 ‘섬세하게 조율된 악기가 파괴’된 것 같았다 묘사한다. 하지만 또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대단한 통찰을 지닌 예언가처럼 보이기도 했다는 점에 있어서 평가가 양극단을 오가곤 했는데, 흥미롭게도 조르주 아감벤은 횔덜린의 광기를 정신착란이 아닌 의도된 설계로 해석한다.





시인으로서 그는 시인의 모습을 하나의 통일된 정체성으로 구성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희극적으로 분열된 상태 그대로 드러낸다. 횔덜린은 자신을 찾아온 방문객들 앞에서 끊임없이 시인의 역할 안팎을 넘나들며, 매번 그가 시인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게 만든다. 여기서 ‘낭만적 아이러니’는 극단으로 치닫고 동시에 해체된다. / 332p














  즉, 중요한 것은 진짜 미쳤는가 미치지 않았는가가 아니라 이 예술가에게 있어 광기는 거주할 수 있거나 혹은 거주해야 하는 어떤 장소 같은 것으로, 횔덜린 후기 시의 특징으로 보이는 극단적인 병렬 구조와 논리적 인과 관계가 부재하는 형식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보다 더 깊은 차원의 이야기를 마주하게 한다는 것이 아감벤의 설명이다.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분들을 위해 옮긴이의 표현을 빌려오자면, 밤하늘의 별자리를 연상하면 좋을 것 같다. 별들은 물리적으로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마음속에서 그 선을 이어 거대한 이야기를 만들고 또는 무한한 연결을 만들어내듯, 횔덜린 역시 연결성의 부재 속에서 보다 무한한 연결을 바라보았던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주체적으로 구성하고 논리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들에 대한 재고로, 어쩌면 횔덜린의 광기는 바로 이러한 우리의 믿음에 균열을 가하는 적극적인 태도가 아니었을까.




게오르그 헤르베그는 『사라진 사람』이라는 글을 횔덜린에게 헌정한다. “독일은 진정한 젊음의 시인에게 크나큰 빚을 지었다. 독일 때문에 그가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 통탄할 현실에서, 우리의 수치심이 극에 달하기 전에, 우리보다 앞서 나아가 전투의 노래를 부르도록 부름 받았던 그가 이제 성스러운 광기의 밤으로 스스로를 구원했다…… ‘젊음이 믿는 것은 영원하다’라고 뵈르네는 말했고, 이 말은 횔덜린에게서도 찾을 수 있는 진리이다…… 고대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에게 그는 그 어떤 문헌학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횔덜린은 세상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았고, 또 그것이 얼마나 초라해졌는지를 견딜 수 없어 했다.” / 264p



“횔덜린은 모든 것이 리듬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모든 인간의 운명도 하나의 천상의 리듬이고, 모든 예술 작품도 하나의 리듬이며, 모든 것이 신의 시적인 입술에서 흘러나온다고 말했다. 그리고 인간의 정신이 이에 순응할 때, 운명은 변형되고 그 안에서 천재성이 드러나며, 시를 쓰는 것은 진리를 향한 투쟁과 같다고 했다. 때로는 조각가처럼, 언어가 육체(시의 형태)를 붙잡는 유연하고 강인한 정신으로, 때로는 영적인 정신으로…… 그의 말은 나에게 마치 신탁과 같다. 그는 신의 제사장처럼 광기에 사로잡혀 신의 뜻을 말하지만, 분명 모든 세속적인 삶이야말로 광기이다. 세상이 그를 이해하지 못하니까 말이다.” / 266p



횔덜린의 ‘거주하는 삶’은 ‘거주하는 존재로서의 삶’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련의 자발적이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행위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습성과 습관들에 의해 매 순간 영향을 받는 일종의 삶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횔덜린은 어느 시점부터는 자신에게 붙여진 ‘광기’라는 꼬리표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심지어 의도적으로 과장하기까지 한 듯 보인다. (…) 횔덜린의 ‘거주하는 삶’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대립을 무력화하고, 이 둘을 어떤 합일도 없이 정지된 위치에 중첩시킨다. 아마도 이것이 시인이 자신의 철학에 남기고자 하는 정치적 유산일지도 모른다. 공과 사의 구별이 사라진 우리에게 그의 삶은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 그의 삶은 그의 시대가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사유할 수 없었던 어떤 것을 향한 예언이다. / 339p














  그러고 보니 캄캄한 밤하늘, 아슬아슬한 외줄 위에서 반짝이는 새를 좇는 표지의 노인에게서 횔덜린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새를 잡으면 자신은 컴컴한 밤하늘 어딘가로 추락하게 되는 아이러니, 하지만 그러한 아이러니를 기꺼이 끌어안으려는 노인의 집념이야말로 이 책에서 내가 느낀 횔덜린에 대한 인상이다.




  어쩌다 작품 하나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이 연대기를 먼저 접하게 되었지만, 덕분에 그의 작품 세계가 더욱 궁금해졌다. 끝으로 인상적인 문장이 하나 있어 첨부하려 한다. 횔덜린의 『히페리온』에서 가져온 문장이다. “‘가혹한 말이지만, 진실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독일처럼 분열된 민족은 없습니다. 기술 장인은 있지만 사람은 없고, 사상가들은 있지만 사람은 없고, 귀족과 하인, 젊은이와 노인은 있지만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기는 전쟁터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손과 팔, 그리고 온몸의 지체들이 서로 분리되어 흩어져 있고, 생명의 피가 모래 속으로 흘러가는 그런 전장 말입니다.’ 어쩐지 지금의 대한민국, 우리의 시대에도 통하는 말이 아닐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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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미스터리 2025.여름호 - 86호
박광규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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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곳곳에 미스터리가 있다!

단순한 장르가 아닌, 삶을 사유하는 사고방식으로써의 미스터리를 즐기는 법!





“Life is full of mystery.”

‘2025서울국제도서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스라 하면 나비클럽을 빼놓을 수 없을 듯하다. 작은 부스였음에도 불구하고 미스터리 장르 문학 전문 출판사로써 컨셉에 충실하되 ‘우리의 본질은 무엇인가’ 근원적인 질문으로 되돌아가 독자와 어떻게 소통하고 또 어떤 가치를 제시할 것인가 출판사의 비전을 제시하려는 흔적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홀린 듯이 《계간 미스터리》 여름호를 구매했고 1년 정기 구독도 신청한 상태다. 이번 호에서 한이 편집장은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미스터리로 가득하다”는 이 슬로건은 단순한 장르가 아닌, 삶을 사유하는 사고방식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미스터리를 장르라는 특수성에 가두지 않으려는 나비클럽의 행보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응원을 보낸다.





모두 중요하거나 아무도 중요하지 않다




《계간 미스터리》를 읽는 즐거움 중에 하나는 여러 편의 단편 미스터리를 한번에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 단편이다 보니 작가 개인적으로는 한정된 분량 안에서 설득력 있는 전개와 범행 동기, 단서를 촘촘히 엮어야하는 고충이 있겠으나, 독자의 입장에서는 단숨에 몰입해 속도감과 긴장감을 그대로 쭉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읽는 즐거움이 크다. 먼저 신인상을 수상한 은혜성의 <아로니아 농장 살인>의 경우, 호우경보로 인해 고립된 주인공과 일행들, 그 안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형사인 주인공이 오히려 범인에 몰리는 흥미로운 전개, 설득력 있는 범행 동기로 미스터리의 주요 요건을 아주 잘 갖췄다는 인상을 주는 작품이다. 다만, 각각의 알리바이와 몇 개의 단서를 통해 용의자를 배제하고 나면 단 한 명의 범인이 남는 단순한 결과가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 범행을 실행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읽다보면 분명 재미있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채강은 그를 돌아보았다. 법으로도 풀리지 않는 원망, 세대를 이어 내려오는 오래된 연쇄의 고리를 끊을 방법을 그로서는 알지 못했다. / 은혜성, 신인상 수상작 <아로니아 농장 살인> 중에서 70p




미스터리 장르의 매력은 다음 장을 기대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복잡한 수수께끼를 직면했을 때의 막막함, 그 밑에 숨겨진 진장을 알고자 하는 기대감은 결국 우리가 불확실하고 때로는 두렵기까지 한 내일을 꿈꾸는 것과 동일한 뿌리를 공유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인들이 타인의 비극을 통해 영혼을 정화하는 수동적인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면, 반대로 미스터리는 독자가 타인의 문제와 비극에 합류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분투하는 능동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도 무척 매력적입니다. / <신인상 수상자 은혜성 인터뷰> 중에서 102p












  ‘맥주’를 소재로 연이어 세 편의 단편작을 수록한 점이 눈길을 끈다. 마당에서 키우던 풍산개가 느닷없이 주인을 물어 죽였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로 시작하는 류재이의 <나는 맥주를 좋아하지 않아>는 ‘살인 명령어’라는 범행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점이 인상적이다. 한편, 박향래의 <서핑 더 비어>는 한 가족의 슬픈 비극을 담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서핑을 즐기고 난 뒤 시원하게 수제 맥주 한 잔을 들이키는 장면(정작 서핑은커녕 바다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나란 사람이지만)이 상상돼 읽는 내내 입맛을 달싹이게 되는 아이러니한 작품이다. 한이의 <시초에 맥주가 있었다>는 아파트 경비원과 주민과의 갈등으로 인해 일어나는 파국을 담은 작품으로, 일상 속에서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적의가 얼마나 거대한 나비효과가 되어 돌아오는지 모골을 송연하게 만든다.




공 법무사는 손을 흔들어 보이고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파산신청란에 머물러 있는 커서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오래도록 묻어두었던 감정이 조금씩 되살아나는 걸 느꼈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것. 그건 일종의 직감이자, 무의식에 내재한 경험칙 같은 것이었다. 어딘가에 거짓이 도사리고 있다는 느낌. / 류재이 <나는 맥주를 좋아하지 않아> 중에서 112p




  『링컨 타는 변호사』와 ‘해리 보슈’ 시리즈로 유명한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 세계를 탐구한 특집도 흥미롭다. 마이클 코넬리는 현재 생존 여부 기준으로 영어권 추리작가 중 국내에서 가장 많은 작품이 번역된 작가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순수 출간된 작품만 훑어본다고 해도 분량이 방대하다. 잘 설계된 매력 있는 캐릭터 하나가 이토록 거대한 세계관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부러운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이클 코넬리 같은 역량을 지닌 추리 소설 작가가 많이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법의학자가 대부분 극의 중간이나 초반에 잠깐 등장하여 ‘사망 시각은 몇 시경입니다’, ‘외상 흔적은 없습니다’ 같은 간단한 정보만 전달하고 사라질 때가 많아 아쉽습니다. 법의학자는 단순한 기술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고인의 몸에서 진실을 읽어내고, 고인의 삶과 죽음을 깊이 이해함으로써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니까요. / <법의학자 이호 인터뷰> 중에서 207p



직접적인 사망 원인뿐 아니라 그 사람이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과 개인적인 사정, 더 나아가 사회 구조적인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 후에야 죽음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이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 <법의학자 이호 인터뷰> 중에서 207p











  이 외에도 오이디푸스 마스터플롯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문학을 읽어보는 박인성 문학평론가의 연재글과, 『수상탑의 살인』으로 본격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분석한 무경 작가의 글도 기억에 남는다. 본격 추리소설이라는 말이 등장한 게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점점 세분화되는 장르 문학과 그 추이를 살펴보고 장르 문학을 읽는 눈을 키울 수 있어 좋았던 글이다. 앞으로도 《계간 미스터리》가 장르 문학에 더 큰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칼럼을 많이 개재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장르 문학의 다양성을 사유할 수 있는 매력 있는 계간지로 더욱 거듭나길 바라며 다음호도 기쁜 마음으로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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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이야기
조예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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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하고 잔혹하며 씁쓸하고 아린, 조예은이라는 장르의 맛!

우리가 조예은 소설에서 기대하는 모든 것이 이번에도!





  한입. 그 한입이 잊히지가 않더군요.

  표제작 「치즈 이야기」를 떠올리면 꿈속에서 단 한 번 맛보았던, 다시 맛볼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다던 희지의 고백이 자꾸만 생각난다. 배고픈 마녀에 의해 치즈로 변한 부모님을 먹는 순간 그 허우적대는 모양새가 세상에서 가장 역겨운 노란 벌레 같았다던 께름칙한 부연까지. 고작 일곱 살짜리의 아이가 꾼, 잔혹 동화를 닮은 이 발칙한 꿈으로 시작되는 이야기에 먼저 입맛부터 달싹이게 되는 ‘조예은이라는 장르의 맛’을 나 역시 기다렸으니까.





어두운 기억을 먹고 피어난 푸른 꽃




  밀란 쿤데라는 모든 소설가들에게는 늘 따라다니는 마법의 오브제들이 있다고 했다. 아마도 조예은 작가에게는 ‘푸른곰팡이’가 아닐까 감히 짐작해본다. 전작인 『트로피컬 나이트』에 수록된 「푸른 머리칼의 살인마」에서는 빵집 주인이 갓 태어난 아이에게 자신이 아는 모든 존재 중 가장 강하고 질긴 생명력을 가진 푸른곰팡이를 떠올려 ‘블루’라고 이름을 지어주는 장면이 있다. 마찬가지로 「치즈 이야기」에서도 푸른곰팡이가 등장하는데 일명 ‘블루 치즈(푸른곰팡이로 숙성한 치즈)’라 불리는 것으로, 주인공인 희지가 언젠가 꿈속에서 맛보았던 (부모님이 변신한) 치즈맛과 꼭 닮은 블루 치즈를 찾아 헤매는 모습이 그러하다.




  유년시절, 희지는 마치 숙성되길 기다리는 치즈처럼 그 방안에 머물러 있었다. 엄마는 희지를 방에 가둔 채 할머니가 쓰던 요강과 텔레비전만을 남겨두고 자주 외출하곤 했다. 그 방에서 희지는 꽤 자주, 오랫동안 방치되고 유기되어 몇 번이고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어쩌면 희지가 꾸었던 꿈속의 치즈 맛은, 먹어보기 전에는 모두가 코를 싸쥐지만 입안에 넣는 순간 황홀경을 느낀다던 잘 숙성된 블루 치즈와 꼭 닮은 그 맛은, 희지의 가장 어둡고 음습한 기억을 먹고 피어난 푸른 꽃의 맛은 아니었을까. 때문에 십오 년 만에 마주한 엄마가 전신마비로 악취를 풍기며 누워있는 방에 들어선 순간 오랜 복수심과 증오로 성숙해진 그 맛이 ‘떠오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쯤에서 ‘바로 꿈속의 그 맛입니다. 제가 어떻게 이 맛을 찾아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하고 독자에게 천연덕스럽게 물었던 희지의 그 대사가 아찔하게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아, 이런…….




성아는 오후 두시지만 새벽 두시나 다름없는 방안에 누워 굳게 닫힌 암막 커튼을 노려보았다. 저 커튼 너머에 있는 것은 살풍경하고 지저분한 골목과 담장처럼 앞을 막아선 맞은편 빌라 벽뿐이었다. 그리고 피곤에 찌든 채 오가는 취객들. 취객과 취객과 취객들. 그런 취객의 머리통을 노리는 무리들. 어쩌면 도시 괴물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보증금을 돌려받고, 무사히 이사를 마칠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터였다. / 「보증금 돌려받기」 중에서 65p



엄마의 ‘공평함’이란 물질적 축하와 정신적 축하를 완전히 구별해 중복되지 않게 부여하는 걸 뜻했다. 둘 모두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포기해야 했다. 그날의 경험으로 나는 깨달았다. 누군가 선점한 것을 다른 한 명은 영영 가질 수 없다는 걸. / 「수선화에 스치는 바람」 중에서 91p



이유? 그런 게 있을까? 나도 한때는 세상 모든 일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 이름이 우승하인 것도, 이름처럼 전국의 각종 육상 대회에서 상을 휩쓴 것도, 하다못해 출전을 앞두고 발목을 접질렀을 때도 전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건 주인공의 극적인 성공을 위한 일시적인 시련에 불과해, 다 이유가 있을 거야,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건 없다는 걸 안다. 있다고 하더라도, 꼭 모든 사건에 대단한 의미가 있지는 않다는 걸 안다. / 「반쪽 머리의 천사」 중에서 143p











  도시가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히 존재할 현실 밀착 도시 괴담 「보증금 돌려받기」 도 흥미롭다. 집이 나갈 때까지 보증금을 주지 않겠다는 집주인, 유독 여성에게 가혹하고 안전하지 않은 도시의 일상이 가하는 압박은 지독히도 공포스럽다.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내 돈 떼어먹겠다는 놈들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끼게 되는 작품이다. 한편, 모두가 주연이 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비록 주연은 아니지만 모든 삶이 아름답길 희망해보는 「반쪽머리의 천사」는 짜고, 달고, 역하지만 사랑스러운 조예은 식 장르의 맛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외에도 기억하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전하는 「소라는 영원히」, 「두 번째 해연」, 「안락의 섬」도 인상적이다. 괴랄한 듯하지만, 끝끝내 지키고 싶은 것과 그것을 감당해내려는 조용한 결의들을 따듯하게 그려내, 마지막까지 잘 읽었다는 감상을 남기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작품들이다.




진실은 씁쓰름하고 비릿하면서 동시에 중독적인 맛입니다. / 「소라는 영원히」 중에서 182p



남은 시간 동안, 눈을 감고 꿈속 플루와 라미를 생각했다. 안락의 섬과 무의미한 바깥을 생각했다. 삶과 죽음을, 시작과 끝을, 종말과 재건을, 망각과 사랑을 생각했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건 사랑의 기억들. 이 섬에서도 그런 기억은 계속 쌓였으니 나는 아마 그만큼 더 슬퍼질 것이다. 어디선가 하피가, 라미가, 플루가 이렇게 묻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모든 걸 없는 셈 치고 무로 돌아가는 건 너무 슬프지 않아? 기억이란 쇠퇴하지. 그리고 소중한 것은 다시 생겨나.

수수, 우리는 어디에나 있어.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있어. / 「안락의 섬」 중에서 324p




  대체 이 이야기의 끝이 어디로 향할지 종종 숨을 참고 읽느라 힘겨운 반면,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가슴이 저릿해지는 말랑말랑한 이야기까지도 만나볼 수 있는 소설집이다. 이제는 조예은이라는 장르가 되어버린 독특하고 색다른 컬러의 소설을 다양하게 즐기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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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개의 말·프라하, 사라져 가는 시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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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문장은 하나하나 무게감이 남다르다!

밀란 쿤데라, 그 이름만으로도 이미 증명되었을 테지만 그의 존재감을 더 가까이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픈 책!






  소련의 침공으로 자유를 상실한 체코의 시대 상황과 그로부터 폭발한 문학적 감수성으로 미루어볼 때, 밀란 쿤데라는 그 누구보다 체코의 실상을 예민하게 감지한 것이 틀림없다. 격동의 역사에 휘말린 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 『웃음과 망각의 책』이, 역사의 상처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네 남녀의 사랑을 그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그러했듯이. 『89개의 말 · 프라하, 사라져 가는 시』의 서두에서 자신이 번역에 그토록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물리적·언어적 망명 상태에 놓인 현실에서 찾았다. 체코어로 쓴 작품들이 조국에서 판매 금지되자 프랑스로 건너갔지만, 체코어가 가진 어감을 프랑스어 번역으로는 오롯이 전달할 수 없어 괴로웠던 순간들이 그를 더 큰 상실감에 빠지게 하지 않았을까.





어느 날, 피에르 노라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 모든 번역본을 검토할 때, 단어 하나하나에 대해 깊이 숙고할 수밖에 없었을 거야. 그렇다면 자네의 개인 사전을 써보면 어떻겠나? 자네가 중요시하는 말들, 자네를 골치 아프게 하는 말들, 자네가 애착하는 말들을 모은……?” 나는 그의 이 생각에 매료되었다. 그렇게 해서 이 사전이 만들어졌다. / 18p




  이제 모국어가 아닌 프랑스어를 써야만 했던 밀란 쿤데라는 프랑스 역사학자인 피에르 노라의 제안에 따라,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한 단어들을 엮어 작은 사전을 만들기로 한다. 「89개의 말」은 그가 평소 매력적으로 느끼고 애착하는 말들, 쓰기 꺼려하는 말들, 표현의 맛을 살리는 말들 등을 수록하고 있는데, 이러한 단어들이 현실과 작품 세계를 어떻게 투영하고 배격하고 성찰할 수 있게 하는지를 고찰한다.












  그 중 유독 ‘미경험’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처음 제목이 실은 ‘미경험의 행성’이었다고 고백한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단 한 번만 태어나며, 결코 이전 삶의 경험을 갖고 다른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없는 미경험자들이다. 젊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결혼하며,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또한 노인들은 자신의 노년을 모르는 천진한 아이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지구는 미경험의 행성이란 말이 어쩜 훅, 와 닿는다. 물론 제목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하길 잘한 것 같지만….





  그가 마법의 오브제로 사용했다던 단어, ‘옷걸이’. 겨우 옷걸이라는 단어에 이토록 의미를 두다니, 처음엔 의아하다가도 몇 줄의 묘사에 이내 마음이 덜컥 낚이고야 만다. “이 옷걸이에는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다. 어딘가 사람 비슷한 모양을 한 그 옷걸이는 꼭 고아 같았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철제 몸통에 우스꽝스럽게 팔을 위로 치켜들고 있는 그 모습은 어쩐지 내 마음에 짙은 불안을 몰고 왔다.” 그리고 좀 더 뒤에 가서는, “……투항하는 병사처럼 두 팔을 높이 쳐들고 있는 그 앙상한 철제 옷걸이.” 그는 『농담』의 표지에, 이 소설의 전체 분위기를 구현하는 것만 같은 이 오브제의 이미지를 몹시도 넣고 싶었다고 전한다. 아, 탁월하다는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지.





예술에서의 아름다움이란,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것이 발하는 돌연한 빛이다. 위대한 소설들이 발하는 그 빛은 세월이 흘러도 어두워지지 않는다. 인간은 늘 인간의 실존을 망각하기에, 소설가들이 이룬 그 발견들은 아무리 오래되어도 부단히 우리에게 놀라움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 22p



모든 소설가에게는 늘 따라다니는 ‘마법의 오브제들’이 있다. 『웃음과 망각의 책』에서는 모자 하나가 무덤구덩이 속으로 떨어져 관 위에 놓인다. “마치 죽은 사람이, 존엄에 대한 부질없는 욕망으로, 엄숙한 순간에 맨머리로 있고 싶지 않았던 듯이” 말이다. / 25p



유럽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이미지는 자꾸만 과거 속으로 멀어져 간다. 유럽인이란 곧 유럽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이다. / 35p



내 책’, 그것은 자기 희열의 음성적 승강기다. / 54p











  다음에 수록된 「프라하, 사라져 가는 시」는 르네상스 말기, 유럽의 미학과 환상 예술의 중심지였던 프라하가 전체주의의 안개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과 고국을 향한 향수를 담은 산문이다. 밀란 쿤데라는 소련 문명이 ‘카프카가 말한 소송들, 하셰크가 말한 어리석음, 야나체크가 말한 감옥들’을 가져오기만 한 게 아니라, 그것들을 예견했던 문화 전체를 소멸시켰음을 애통해한다. 이 나라의 시가, 하나의 위대한 문화 전체가 불타고 있는 전체주의의 광풍 속에서 어떻게 하면 그것에 저항할 수 있을 것인지, 어떻게 하면 끈질기게 다시 시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인지 고뇌했을 그의 외로운 투쟁이 날카로운 언어 너머로 절절하게 다가온다.




시가 사라져 가는,

불길에 휩싸인 종잇장처럼……

베티즈슬라프 네즈발, 「복수형 여인」 / 128p




  밀란 쿤데라의 유고작이자 세월이 흘러서도 사라지지 않는 거장의 광휘가 느껴지는 책이다. 두께가 얇지만 실감하기 어려울 만큼 문장 하나하나의 무게감이 남다르다. 밀란 쿤데라, 그 이름만으로도 이미 증명되었을 테지만 그의 존재감을 더 가까이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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