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번역합니다 - 고독해서 즐거운 번역가의 일
이진 지음 / 수오서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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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단순한 언어의 치환이 아닌,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는 작업이다!

30여 년간 나만의 방식으로 삶의 용적을 넓혀온 이진 번역가의 성실한 직업 탐구기!




  해외 저작물에는 으레 번역가의 이름이 들어간다. 요즘은 저자 못지않게 번역가의 경력을 보고 책을 선택하는 독자들이 늘어났다고는 하나, 여전히 대다수의 독자들은 이를 쉽게 지나치곤 한다. 게다가 번역은 한 언어로 쓰인 글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작업이기에 늘 원작의 그늘에 가려져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표지에 새겨진 ‘이진 옮김’이라는 네 글자는 그가 내린 최선의 판단이자 책임의 무게다. 밤낮으로 문장과 행간의 의미를 헤아려 치열하게 고뇌한 또 다른 창작가의 분투이기에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다.


 


그 광막함을,

나는 너무도 사랑한다

 


  『아직도 번역합니다』는 30년간 번역가로 활동해 온 저자의 번역에 대한 철학을 담은 에세이다. 무엇보다 섬세함이 요구되는 번역의 세계에서 고독한 섬처럼 묵묵히 골몰했던 시간과, 워킹맘으로 일과 가정 사이에서 고군분투해야 했던 날들의 소회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특히 오랜 세월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해 온 사람에게 깊은 경외심을 느끼곤 하는 내게, 번역을 하면 할수록 ‘안다’기보다 ‘모른다’는 것에 가까워진다는 그녀의 고백이 무척 흥미롭다. 이쯤 되면 막힘없이 번역하며 마감에도 의연할 만도 한데, 실상은 여전히 단어 하나에 울고 웃으며 머리를 싸맨다던 번역가의 푸념이 진솔하게 다가온다. 그런 가운데서도 완벽하지 않음이야말로 번역의 숙명이며, 그 숙명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이 일은 오직 고통뿐일 거라는 성찰이 깊은 울림을 준다. 번역은 늘 원작의 한 걸음 뒤에 서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와 광막함을 사랑해 마지않는 그녀의 태도야말로 지난 30년의 기나긴 노동을 버텨내게 한 힘은 아니었을까.

 



작가의 의도와 원문의 의미를 잘 살려 가독성 있게 번역해서 독자들이 내용을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은 번역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겠지만, 실제 번역 현장에서 왜 이 번역이 저 번역보다 좋은지는 설득의 영역이 아닌 경우가 많다. 확연히 좋게 느껴지는 번역과 확연히 나쁘게 느껴지는 번역은 분명 존재하지만, 번역은 오역이 아닌 한 상당 부분 취향의 문제인 게 사실이다. / 23p


 


비록 현실 속에서 알아주는 이가 많지 않아도 한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독으로 번역한다는 건 분명 엄청난 권력이다. 그래서 때때로 내가 가진 어마어마한 권력을 음미하며 조용히 웃는다. 그리고 부디 내가 작품을 살리는 번역가이기를, 나도 모르는 사이 작품의 숨통을 끊어놓는 것으로 권력을 남용하거나 악용하는 번역가가 아니기를 간절히, 아주 간절히 바란다. / 29p

 



소설 전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괴물의 등짝처럼 느껴진다. 나는 어떻게든 녀석을 살살 구슬려서 돌아 앉히고 녀석과 친해져야 한다. 녀석의 모든 것을 파악해야만 한다. / 51p

 









  AI 시대에 가장 먼저 사라질 직업 중 하나가 번역가라고 한다. 실시간으로 영상이 자동 번역되고, 그 어떤 언어든 ‘번역’ 버튼 하나면 순식간에 의미가 통하는 세상에서 번역가들의 입지가 점점 더 좁아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어쩌면 저자는 더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제아무리 AI가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을 수 있는 시대라 하더라도, 다른 언어의 세상을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가 존재하는 한 인간만이 지닌 문학적 감수성까지 AI가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효율적이지만 인간 번역가의 고독한 작업이 여전히 숭고한 이유다.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들의 고독은 텅 빈 고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고독은 활자와 문자와 문단과 페이지로 빠르게 채워진다. 밀도 높은 고독의 한가운데서 그들은 오히려 에너지를 충전한다. 몸과 마음이 가장 맑은 새벽 시간을 오롯이 내가 좋아하는 일에 쓸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호사다. 그런 호사를 수십 년 누리며 살아왔다는 것만으로도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 67p

 









  타이타닉호에서 끝까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악사처럼 되고 싶다던 저자의 말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평생을 사랑해 마지않던 일에 대한 예의일 것이라는 말까지도. 덕분에 앞으로 사게 될 모든 책에서 ‘옮긴이’의 이름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게 될 것 같다. 오랜 시간 한 길을 걷느라 매너리즘에 빠진 직업인들, 일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는 워킹맘들, ‘번역가’라는 직업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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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신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1~2 세트 - 전2권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현정수 옮김 / arte(아르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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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하지만 영리하고, 가볍지만 치밀하다!

슈퍼 집사 가게야마와 재벌가 영애 형사 레이코 조합의 좌충우돌 미스터리 수사극!





  오늘도 어김없이 구니타치 경찰서 관내에는 교묘한 트릭으로 위장한 강력 사건들이 펼쳐진다. 중견기업 창업가 장남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 골동품 마니아의 창고에서 발견된 시신과 다잉 메시지를 둘러싼 미스터리, 세 건물과 의문의 추락사를 둘러싼 미스터리, 살해된 간호사의 방에 놓여 있던 다섯 개의 자명종을 둘러싼 미스터리, 평소 호통과 하대가 습관이던 연예기획사 대표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까지. 히가시가와 도쿠야가 무려 9년 만에 선보이는 『신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는 살인 사건으로 하루도 잠잠할 일이 없는 구니타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유머 미스터리극으로, 재미와 추리의 쾌감을 모두 사로잡은 매력적인 추리소설이다.

 



  우리의 주인공 호쇼 레이코는 은행, 전기, 철강, 의류 계열부터 인쇄, 출판업까지 주름잡는 그 유명한 ‘호쇼 그룹’ 총수의 외동딸이지만 구니타치 경찰서의 현직 형사로 활약 중인 두 얼굴의 아가씨다. 한편, 호쇼가를 모시는 집사 가게야마는 촌철살인 같은 독설로 번번이 레이코의 속을 긁기 일쑤지만, 구니타치 경찰서 관내에서 까다로운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프로 형사를 능가하는 추리력으로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여기에 레이코의 상사이자, 늘 순백의 슈트 차림으로 굉음의 스포츠카를 타고 사건 현장에 나타나는 자아도취 캐릭터 가자마쓰리 경부와 눈치 없는 어리버리 신참 형사 와카미야 아이리까지. 4인 4색의 주인공들이 펼쳐보이는 좌충우돌 미스터리 추리극은 엉뚱하지만 영리하고, 가볍지만 치밀하다.

 



하지만 솔직히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이번 사건의 포인트는 무엇일까. 역시 밀실인가? 하지만 그 수수께끼는 이미 풀렸다. 그러면 다잉 메시지? 그것은 명백히 나카다 유이치로를 가리키고 있다. 그 밖에 다른 생각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지만 어째서인지 레이코는 좀처럼 납득할 수가 없었다. / 121p




과연, 확실히 새로운 발견이 있을지도 모른다. 가게야마는 호쇼가의 고용인이지만, 범죄 수사 방면으로는 프로 형사를 능가하는 추리력을 지닌 남자다. 다만 그 추리와 맞바꾸어 지금까지 레이코가 몇 번이나 불합리한 굴욕을 맛봤던 것도 사실이다. 가능하면 이 남자의 힘을 빌리지 않고 사건을 해결하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거짓 없는 본심이었다. / 122p




“아뇨, 너무 깊게 생각한 게 아닙니다. 오히려 아가씨 쪽이 너무 생각이 없으십니다. 실례입니다만, 아가씨!”

그렇게 말하며 가게야마는 소파에 앉은 레이코의 귓가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더니 명석한 어조로 말했다.

“머리는 모자를 쓰기 위해 있는 게 아닙니다.” / 269p

 











  한 편의 시트콤을 보는 듯한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도 트릭, 밀실 살인, 다잉 메시지, 클로즈드 서클과 같이 미스터리 장르의 클리셰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감까지 놓치지 않는 작품이다. 어쩌면 평소 미스터리를 즐기지 않는 독자들마저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큰 장점이 아닐까. 일단, 그냥, 무조건, 재미있다.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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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 과잉 시대, 당신의 뇌가 무너진다 - 디지털 기기의 유혹과 과잉 자극은 어떻게 뇌를 오작동시키는가
리처드 사이토윅 지음, 김광국 옮김 / 알레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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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자극이 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과 신경학적인 문제들!

기술 문명과 도파민 홍수 속에서 병들고 중독되어 가는 우리에게 전하는 아주 강력한 경고!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을 던지듯 내려놓고 말았다. 한쪽 모니터에는 과제 작성 프로그램을 띄워 놓고, 다른 한쪽 모니터로는 내내 기다리고 있었던 라이브 영상을 막 틀어놓은 참이었다. 이미 아이패드에서는 몇 시간 전부터 ‘잔잔한 카페 음악’이 무한 재생되고 있었던 가운데, 손에 들린 스마트폰에서는 새벽에 도착해야만 하는 음식 재료가 장바구니에 하나둘씩 담기고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나는 이 디지털 기기의 과부하에 당연한 듯 길들여지고 있었던 것일까. 어쩌면 나는 이 모든 것들을 동시에 다 해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누가 공부하면서 스마트폰을 해?!” 하고 아이에게 다그치던 내 모습이 무척 한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디지털 스크린 미디어는 인간의 석기 시대 뇌를 20만 년 동안 지속되어 온 자연스러운 발달 경로로부터 얼마나 멀어지게 만드는가?” / 302p

 


  계속되는 푸시 알림과 SNS 알림에 저항없이 스마트폰으로 손이 향하고, 재미있는 드라마를 몰아보느라 밤을 지새우거나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디지털 기기에 몰두하는 일쯤은 대수롭지 않아진 이들이 어디 나뿐일까. 이처럼 알고리즘의 노예이자 폼비(폰과 좀비의 합성어)가 되어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이 책은 과감히 경고한다. “첨단 기술의 정교한 공세에 우리의 뇌가 무력하게 병들어가고 있다”고.

 









  신경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저자 리처드 사이토윅은 우리가 스마트폰 푸시 알림을 무시하지 못하는 이유에서부터 집중력 상실, 무해해 보이는 스와이프 행위의 중독성, 멀티태스킹이 효율적일 것이라는 환상, 과도한 디지털 스크린 노출로 인한 유사 자폐증 증상, 포모(FOMO) 증후군으로 인한 극심한 불안감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자극이 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과 신경학적인 문제들을 뇌과학의 관점에서 살펴본다. 이를 통해 첨단 기기의 정교한 메커니즘이 어떻게 뇌의 에너지를 빠르게 소모시키고, 뇌의 보상 체계와 감정 조절 및 충동 조절 회로를 마비시키는지 알고 나면, 디지털 스크린 중독은 단순히 스마트폰을 좋아하는 나쁜 습관이나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라 심각한 질환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장시간 디지털 스크린을 시청하는 행위는 중독의 핵심 측면이기도 한 충동 조절을 관정하는 전두엽 같은 뇌 영역의 미세 해부학적 조직의 부피 감소와 발달 지연으로 이어진다. 모든 사람이 디지털 스크린 의존증과 같은 행동 중독이나 물질 중독에 취약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종류의 중독은 유전될 가능성이 약 50퍼센트나 될 만큼 강력하다. 따라서 부모가 자발적으로 디지털 스크린에 오래 빠져 있으면 아이들도 디지털 스크린 의존증에 굴복할 확률이 더 높다. / 44p

 


우리가 스트레스를 그럭저럭 잘 처리할 수 있는 것은 회복 탄력성이라는 특질 덕분인데, 항상성(안정적인 내적 환경을 유지하려는 모든 유기체의 생물학적 성향)을 벗어나게 하는 요구는 모두 스트레스를 일으키기 때문에 이 회복 탄력성에 감사해야 한다. 그런데 항상성의 평형을 무너뜨려 산만하게 하는 강력한 후보가 바로 디지털 스크린이다. / 69p

 


그의 연구팀은 스마트폰의 화면을 스와이프하기만 해도 뇌의 감각 피질 중에서 손 영역에 해당하는 표상이 재배선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 효과는 투입된 운동량에 비례하기 때문에 스와이프는 단순히 상관관계가 아니라 인과 관계로서 신뢰할 만한 지표가 된다. 다시 말해, 스와이프를 많이 할수록 뇌 회로, 특히 동기와 보상의 기반이 되는 회로가 더 많이 재편된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어떤 동작이 습관화될수록 이를 표상하는 데 필요한 운동 피질의 영역이 줄어들게 된다. 즉,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감각 과부하에 스스로를 길들인다는 뜻이다. / 75p

 











  자녀의 디지털 스크린 중독은 부모들에게 있어 최근 몇 년간 가장 뜨거운 화두 중에 하나다.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일상 깊숙이 자리 잡은 디지털 기기는 학습과 소통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과도한 노출은 아이들의 뇌 발달, 시력, 수면, 그리고 정서 조절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책에서도 이를 매우 우려하는데, 청소년들의 경우 해가 진 후에 노트북이나 다른 디지털 기기 스크린 앞에서 단 한 시간만 보내도 멜라토닌 생성이 23퍼센트나 억제된다고 한다. 빛에 대한 선천적인 과민성이 수면 시작을 새벽녘까지 지연시키고 이것이 반복되면 늘 잠이 부족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수면 부족은 세포 노화에도 매우 치명적이다. 수면 시간이 짧아지면 염색체 말단에 위치한 말단소립인 텔로미어라는 세포의 노화 속도가 빨라져 노인성 질환의 발병과 수명 단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홉 살 짜리 아이들의 텔로미어는 수면 시간이 한 시간씩 줄어들 때마다 비슷한 또래 아이들에 비해 1.5퍼센트씩 짧아지더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인생의 출발선에서부터 텔로미어가 짧아진 상태로 삶을 시작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일 리가 없다’는 이 책의 경고를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유다.

 



스크린 앞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그 행동은 더 강화된다. / 258p

 



  이 책은 과학적인 관점에서 디지털 스크린 중독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집중력을 되찾고, 능동적인 사용자가 되기 위한 실천적인 방안들까지 함께 고민한다. 그 중에서도 타이핑 대신 손으로 글쓰기를 강조하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에 손을 뻗는 대신 꿈 일기 쓰기를 제안하는 방법이 인상적인데, 이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스스로를 통찰할 수 있는 시간의 중요성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자극보다는 침묵과 고요함을, 스크린보다는 자연을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시간과 문화를 만들어봐야겠다. 무엇보다 디지털 자극이 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과 신경학적인 문제들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중독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일 것이다. 디지털 스크린으로부터 삶의 주도권을 되찾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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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은 흐른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0
이미륵 지음, 안삼환 옮김 / 민음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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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근대사의 격변과 조국의 정서를 담담하고 우아한 문체로 완성해낸 기념비적인 작품!





  망국의 현실을 섬세하고 절제된 언어로 써내려가는 어느 조선인의 뒷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른다. 그의 이름은 이의경. 독일식 이름은 Mirok Li. 부처님의 제자인 미륵불에게 49일간 불공을 들인 뒤에 가진 아이라 하여 어릴적부터 미륵으로 불리게 되었다던 그는 3·1운동에 가담한 뒤 일제의 수배를 피해 독일로 망명해야 했다. 하지만 그 먼 이국의 땅에서도 이미륵은 한국을 배경으로 한 단편과 산문을 꾸준히 독일어로 써왔고, 『압록강은 흐른다』는 놀랍게도 1946년 독일 문단이 그해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살아 생전에는 끝내 한국 땅을 밟지 못했으나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마침내 우리에게 당도한 이 문학적 귀환은, 28년의 역사를 지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0권 출간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할 만하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지금은 나쁜 시대가 왔다고 한다. 그럴 때 넌 말해라, 나쁜 시대가 아니라, 그것은 지금 막 시작한 새 시대일 뿐이라고. 눈이 많이 내린 긴 겨울 뒤에 찾아오는 봄과 비슷하다고. 진달래가 피고 뻐꾹새가 울지. 그렇게 나는 우리의 시대를 느끼는 거야.” / 87p

 









  『압록강이 흐른다』는 독립운동가이자 망명자였던 작가 이미륵의 자전적 소설이다. 서당에 다니며 한학을 익히던 유년시절에서부터 신식 학문에 눈을 뜬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독일로 망명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근대사 속에서 고뇌하는 한 자아의 성장기가 오롯이 담겨 있다. 작가 이미륵은 전통과 근대가 끊임없이 충돌하는 순간들을 증언하는 가운데 한 인간이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 안에서 어떻게 변화해가는지를, 또 어떻게 삶과 운명을 이끌어가는지를 담담하게 기록해나간다. 망국의 현실과 비운을 섬세하되 매우 절제된 언어로 써내려간 그의 문체는 역설적이게도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오늘 저는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라고 내가 말했다. “학교 공부가 전부 제게는 낯설었습니다. 오랜 시간 저는 제가 거기서 결코 배겨 낼 수 없을 것처럼 불안했어요. 모든 것이 제가 평소 공부해 오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거든요.”

아버지는 오랜 시간 잠자코 계셨다. “실망했던 것이냐?”라고 아버지가 나중에 물으셨다.

“그 비슷한 감정이었어요. 저는 자꾸만 옛 서당과 우리 집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82p


 

“새로운 학문들이란 그야말로 다른 것이야.”라고 나는 결국 대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서 배우는 것을 예로 들자면, 매일 수천 리를 달릴 수 있는 기차를 만드는 방법이야. 사람들은 달까지의 거리를 추정하는 방법을 배우기도 하고, 조명을 위해 전력을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거야.”

“그 때문에 넌 정말이지 군자는 못 되는 거야.”라고 그녀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다른 시대가 도래한 거야.” / 92p

 


우리 집 행랑채에도 불안이 찾아왔다. 끊임없이 사람들이 오고 또 갔다. 행상들과 거지들이 늘어났다. 쫓겨난 농부들, 파직된 관리들, 이곳저곳 전전하는 피난민들과 유랑민들이 숙식을 요청했다. (…) 추운 겨울이 다 가도록 이런 사정이 지속되었다. 점점 더 많은 거지들과 유랑민들이 왔고 그들로 모든 손님방들이 꽉 찼다. 순옥은 집 앞에 앉아 욕설과 저주를 뇌까렸다. “아, 처참한 시절, 더러운 세상이로다!” / 111p










  낯선 타국에서 이방인으로서, 기억을 언어로 삼고 향수를 문학으로 삼으며 살아갔을 이미륵. 시대의 상처와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킨 이 아름다운 작품을 꼭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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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고객은 왜 야구장에 있을까? - 야구 천만관중시대를 이끈 20대 트렌드 분석서
정은우 지음 / 수오서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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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오늘도 야구장으로 향하는가?

야구를 통해 살펴본 20대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마케팅 전략!

 


 


  티켓 오픈 시간을 5분여 앞둔 시각, 두근두근 마음이 요동친다.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아니 우리 가족 모두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기는 할까. 오늘도 야구 팬들은 마치 전쟁을 치르는 심정으로, 내 자리 하나 사수하기 위한 치열한 피켓팅에 뛰어든다. 아니나 다를까,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전광판에는 오늘도 매진 경기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울려퍼진다. 그야말로 천만관중의 시대를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이렇듯 몇 해 전부터 급격하게 성장한 야구 시장과 흥행 소식은 매번 나를 놀라게 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마흔이라는 나이가 되도록 쭉 야구를 봐왔지만 수십 년의 역사를 이어온 야구가 어째서 지금 이토록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당신의 고객은 왜 야구장에 있을까?』는 바로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 책으로, 야구의 인기 뒤에 숨겨진 야구팬들의 취향과 욕망을 분석해 산업 전반에 적용가능한 마케팅 전략의 핵심을 제시한다.

 



트렌드를 기획으로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무엇이 유행하느냐’가 아니다. ‘이것은 왜 하필 지금 이곳에서 유행하느냐’의 관점이다. 야구로 치자면 40여년 전부터 이 땅에 존재했던 프로야구가 왜 하필 지난해부터 천만관중의 마음을 움직였느냐를 궁금해야 한다. / 33p




같은 공간에서 같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감각을 중요시하는 20대 야구팬들

 



  마케팅 에이전시 대학내일 인사이트 전략본부장인 정은우 저자는 20대 야구팬의 증가야말로 야구 흥행의 주요 원인이라 분석한다. 그 중에서도 20대 여성팬의 증가가 두드러지는데, 2024년 기준 KBO 10개 구단 중 6개 구단이 50퍼센트가 넘는 비율을 차지한다고 한다. 저자는 야구 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에 있어서도 이들 젊은 팬의 증가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새로운 세대의 유입은 단순히 매출이나 영업 이익의 증가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한번 팬이 되면 충성도가 길게 이어진다는 측면에서 산업의 지속가능성과도 연관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대들은 왜 야구에 열광하는 것일까? 이를 파악하기 위해 저자는 단순히 야구장 먹거리나 응원 문화, 스타 선수에 주목하기보다는 ‘지금 이 세대가 무엇을 고민하고 어떻게 선택하는가’의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그 중에서도 20대 야구팬들의 ‘관계갈증’을 향한 욕망이야말로 핵심 키워드가 아닐까 싶다. 실제 야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야구장 주변 주차장 상황이나 날씨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승요가 되어달라”고 피드에 응원 댓글을 다는가 하면, 서로가 가진 굿즈를 나눔하는 모습까지도 자주 볼 수 있다. ‘팬이란 뭔가를 좋아하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또 다른 팬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우치다 다쓰루의 말처럼, 팬이 팬을 모으는 선순환의 구조는 이같은 관계갈증을 향한 욕망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겠다.

 



비단 한국 20대 소비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도 사정은 비슷해서 20대를 중심으로 일상의 소비는 줄이되 나의 경험과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경험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 경험 소비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현상을 두고 선물을 뜻하는 트리트(Treat)와 경제를 뜻하는 이코노믹스(Economics)를 합쳐 트리토노믹스(Treatonomics)라 부른다. 즉 경험에 시간이라는 자원을 투여해 내가 회수할 수 있는 자원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브랜드가 살아남는다. / 98p

 


야구는 현시점 한국에서 오프라인 게더링 파워(하나의 콘텐츠가 모을 수 있는 인파)가 가장 높고 일정하게 보장된 콘텐츠 중 하나다. 그렇다면 그냥 단순히 시합만 콘텐츠화시키기보다 지자체와 경험 공조를 한다면 더더욱 높은 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지 않을까. / 163p

 


야구장에서 팬이 선수에게 실망할 때는 경기에서 지는 순간이 아니라 지더라도 최선을 다하지 않을 때다. 순간 팬들은 ‘나만 간절한가’ 하는 생각으로 실망한다. 기억하자. 연인은 서로의 취향이나 취미가 다르다는 이유로 실망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실망할 때는 각자 꿈꾸는 미래 즉, 기대하는 바가 다를 때다. 좁게는 부부 사이부터 넓게는 국가 공동체까지, 꿈꾸는 미래가 다를 때 우리는 실망하고 반목한다. 브랜드와 팬의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 191p

 


한정판은 단순히 획득의 성취감만 제공하지 않는다. 미네소타대학교 프라빈 아가왈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한정판은 획득의 성취 외에 희소한 제품 구매에 성공한 사람들에게 묘한 소속감을 제공한다. 이런 제품은 SNS의 공유도 활발히 일어나는데, 야구로 치자면 ‘내가 구단을 이만큼 사랑한다’라는 자랑 심리와 ‘나는 선택되었다’라는 우월 심리가 포개져 더욱 활발한 전파가 이뤄진다. 이처럼 구단의 한정판 유니폼 전략에는 매출 외의 상당한 부가 가치가 따라온다. / 219p

 










  뿐만 아니라 단순한 소비보다 나에게 자산처럼 남는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고, 데뷔 첫 승이나 최다 홈런과 같은 서사를 내가 지켜봤고 나도 함께 존재했다는 감각, 이른바 ‘팀아일체’를 통해 의미와 가치를 찾는 20대 소비자들의 욕망을 살펴보다보면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이 어디에 마음이 움직이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당신의 고객은 왜 야구장에 있을까?』는 야구의 시선에서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원리를 분석하고 이를 다양한 분야에 접목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책이다. 야구와 스포츠산업 관계자를 비롯해 트렌드의 동향을 읽고 싶은 콘텐츠 담당자와 마케터라면 이 책에 관심을 가져보시길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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