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횔덜린의 광기 - 거주하는 삶의 연대기 1806~1843
조르조 아감벤 지음, 박문정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7월
평점 :

천재와 광인 그 사이에서, 가장 깊고 아픈 방식으로 자신만의 독보적인 목소리를 드러낸 위대한 예술가!
독일을 대표하는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삶과 작품 세계를 사유하는 시간!
프리드리히 횔덜린은 헤르만 헤세와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 독일 현대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독일의 대표 시인이다. 이른바 ‘천재 시인’ ‘시인들의 시인’라 추앙받으며 가장 현대적이고 가장 창의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횔덜린. 하지만 유럽 문학사상 가장 비극적인 시인이자 광기의 시인이라 불리기도 했다는데, 그 이유가 사뭇 궁금하다. 문득 예술가라면 반드시 갖고 싶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갖고 싶은 치명적인 재능 같은 것이 연상되기도 하고, 우리 문학 사상 가장 혁신적이고 난해한 시인으로 불렸던 이상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무엇이 그로 하여금 천재이자 광인으로 불리게 했을까. 이 책은 이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집은 신성한 광기이다.” / 40p
한 사람의 삶을 정확히 반으로 나눌 수는 없겠지만, 횔덜린의 삶은 의외로 극명하게 갈린다. 1770년부터 1806년까지 36년간은 정치와 철학 등 세상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살아왔다면, 인생의 후반기인 1807년부터 1843년까지 36년 동안은 이따금 찾아오는 사람은 만나지만 마치 자기와 세계 사이를 단절하는 벽이 존재하는 것처럼 세상 밖으로 자신을 완전히 밀어버렸다. 유럽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는 조르조 아감벤이 이 책에서 주목하고 있는 부분도 1806년 이후, 횔덜린이 광인으로 불리기 시작했던 시기다.
이 무렵, 횔덜린은 작품에 있어서도 “하나의 생각에 집중하고, 그것을 명확히 하고, 발전시키고, 유사한 다른 생각들과 연결하고, 외견상 가장 멀리 있는 것들을 일관된 흐름 속에 녹여내는 능력을 상실했다.”는 평가가 잇따랐다고 한다. 실제로 횔더린과 철학에 대한 깊은 열정을 공유했던 셸링은 ‘섬세하게 조율된 악기가 파괴’된 것 같았다 묘사한다. 하지만 또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대단한 통찰을 지닌 예언가처럼 보이기도 했다는 점에 있어서 평가가 양극단을 오가곤 했는데, 흥미롭게도 조르주 아감벤은 횔덜린의 광기를 정신착란이 아닌 의도된 설계로 해석한다.
시인으로서 그는 시인의 모습을 하나의 통일된 정체성으로 구성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희극적으로 분열된 상태 그대로 드러낸다. 횔덜린은 자신을 찾아온 방문객들 앞에서 끊임없이 시인의 역할 안팎을 넘나들며, 매번 그가 시인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게 만든다. 여기서 ‘낭만적 아이러니’는 극단으로 치닫고 동시에 해체된다. / 332p


즉, 중요한 것은 진짜 미쳤는가 미치지 않았는가가 아니라 이 예술가에게 있어 광기는 거주할 수 있거나 혹은 거주해야 하는 어떤 장소 같은 것으로, 횔덜린 후기 시의 특징으로 보이는 극단적인 병렬 구조와 논리적 인과 관계가 부재하는 형식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보다 더 깊은 차원의 이야기를 마주하게 한다는 것이 아감벤의 설명이다.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분들을 위해 옮긴이의 표현을 빌려오자면, 밤하늘의 별자리를 연상하면 좋을 것 같다. 별들은 물리적으로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마음속에서 그 선을 이어 거대한 이야기를 만들고 또는 무한한 연결을 만들어내듯, 횔덜린 역시 연결성의 부재 속에서 보다 무한한 연결을 바라보았던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주체적으로 구성하고 논리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들에 대한 재고로, 어쩌면 횔덜린의 광기는 바로 이러한 우리의 믿음에 균열을 가하는 적극적인 태도가 아니었을까.
게오르그 헤르베그는 『사라진 사람』이라는 글을 횔덜린에게 헌정한다. “독일은 진정한 젊음의 시인에게 크나큰 빚을 지었다. 독일 때문에 그가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 통탄할 현실에서, 우리의 수치심이 극에 달하기 전에, 우리보다 앞서 나아가 전투의 노래를 부르도록 부름 받았던 그가 이제 성스러운 광기의 밤으로 스스로를 구원했다…… ‘젊음이 믿는 것은 영원하다’라고 뵈르네는 말했고, 이 말은 횔덜린에게서도 찾을 수 있는 진리이다…… 고대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에게 그는 그 어떤 문헌학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횔덜린은 세상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았고, 또 그것이 얼마나 초라해졌는지를 견딜 수 없어 했다.” / 264p
“횔덜린은 모든 것이 리듬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모든 인간의 운명도 하나의 천상의 리듬이고, 모든 예술 작품도 하나의 리듬이며, 모든 것이 신의 시적인 입술에서 흘러나온다고 말했다. 그리고 인간의 정신이 이에 순응할 때, 운명은 변형되고 그 안에서 천재성이 드러나며, 시를 쓰는 것은 진리를 향한 투쟁과 같다고 했다. 때로는 조각가처럼, 언어가 육체(시의 형태)를 붙잡는 유연하고 강인한 정신으로, 때로는 영적인 정신으로…… 그의 말은 나에게 마치 신탁과 같다. 그는 신의 제사장처럼 광기에 사로잡혀 신의 뜻을 말하지만, 분명 모든 세속적인 삶이야말로 광기이다. 세상이 그를 이해하지 못하니까 말이다.” / 266p
횔덜린의 ‘거주하는 삶’은 ‘거주하는 존재로서의 삶’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련의 자발적이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행위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습성과 습관들에 의해 매 순간 영향을 받는 일종의 삶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횔덜린은 어느 시점부터는 자신에게 붙여진 ‘광기’라는 꼬리표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심지어 의도적으로 과장하기까지 한 듯 보인다. (…) 횔덜린의 ‘거주하는 삶’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대립을 무력화하고, 이 둘을 어떤 합일도 없이 정지된 위치에 중첩시킨다. 아마도 이것이 시인이 자신의 철학에 남기고자 하는 정치적 유산일지도 모른다. 공과 사의 구별이 사라진 우리에게 그의 삶은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 그의 삶은 그의 시대가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사유할 수 없었던 어떤 것을 향한 예언이다. / 339p


그러고 보니 캄캄한 밤하늘, 아슬아슬한 외줄 위에서 반짝이는 새를 좇는 표지의 노인에게서 횔덜린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새를 잡으면 자신은 컴컴한 밤하늘 어딘가로 추락하게 되는 아이러니, 하지만 그러한 아이러니를 기꺼이 끌어안으려는 노인의 집념이야말로 이 책에서 내가 느낀 횔덜린에 대한 인상이다.
어쩌다 작품 하나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이 연대기를 먼저 접하게 되었지만, 덕분에 그의 작품 세계가 더욱 궁금해졌다. 끝으로 인상적인 문장이 하나 있어 첨부하려 한다. 횔덜린의 『히페리온』에서 가져온 문장이다. “‘가혹한 말이지만, 진실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독일처럼 분열된 민족은 없습니다. 기술 장인은 있지만 사람은 없고, 사상가들은 있지만 사람은 없고, 귀족과 하인, 젊은이와 노인은 있지만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기는 전쟁터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손과 팔, 그리고 온몸의 지체들이 서로 분리되어 흩어져 있고, 생명의 피가 모래 속으로 흘러가는 그런 전장 말입니다.’ 어쩐지 지금의 대한민국, 우리의 시대에도 통하는 말이 아닐까 싶어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