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문화 순례 - 세비야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김창민 엮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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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제목과는 달리, 내용은 아주 유익하고 재밌다.

스페인에서 유학한 교수들이 문화와 역사 각 부분을 나눠서 쓴 책이라 그런지 밀도가 있고 내용도 전문적이라 스페인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제목만 좀 더 멋지게 바꾼다면 훨씬 많이 읽힐텐데 아쉽다.

스페인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궁금한 사람이라면 강추하는 책.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바지만, 좋은 책을 쓰기 위해서는 일단 자신이 쓰는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 것 같다.

너무나 많은 출판물 속에 살고 있어 오히려 좋은 책을 고르기가 더 힘들어지는 세상이다.

그럴 듯한 사진 좀 싣고 책 디자인 화려하게 하고 광고 좀 붙여서 문구만 멋지게 뽑으면 베스트셀러가 나오는 요즘 시대는 마치 책 공해 속에 사는 것 같아 좋은 책을 고르기 위한 안목이 특히 필요한 듯하다.


1. 첫 부분에 나온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시대와 현대사의 프랑코 독재 시대, 그리고 카탈루냐와 바스크로 대표되는 민족주의 운동 부분이 가장 유익했다. 

특히 민족주의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리고 이 두 지역의 움직임이 어떻게 다른지 명확히 구분할 수 있게 된 좋은 시간이었다.

간단히 말해 카탈루냐는 상업주의 전통으로 인해 개방적이고 문화적이며 근대적인 오늘날의 가치관과 잘 들어맞지만, 바스크 지역은 전통사회로의 회귀를 추구하는 보수주의 때문에 현대 민주주의와 대립하여 폭력적인 양상을 띈다는 것이다.

또 카스티야 중심으로 정치가 발전했으나 오랜 국토회복과정 동안에 군사적 덕목이 중시되어 보수적이고 종교적이며 권위주의가 팽배했다.

프랑코 사후 민주주의 국가로 회귀할 수 있었던 것을, 책에서는 스페인 내전의 아픔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국민들의 열망 때문에 타협한 덕이라고 한다.

좌우 대립이 매우 날카로운 한국 사회에서 눈여겨 볼 대목 같다.

정의를 구현하는 것보다 (절대적인 정의가 과연 있을까?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명확한 정의가 과연 인간 사회에서 존재할까?) 내전을 피하고 평화로운 나라를 만드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2. 스페인의 회화사도 유익했다.

도판도 많이 실려 있어 좋았다.

벨라스케스에서 고야에 이르기까지, 또 피카소와 달리, 미로 등으로 대표되는 현대 미술가들의 활약상도 흥미롭게 읽었다.


3. 건축 부분을 맡은 분은 학자가 아니라 그런지 분석적이기 보다는 유명 건축물을 나열하는데 그쳐 아쉬웠다.

영화사 부분은 흥미롭게 읽었다.

"오픈 유어 아이즈"를 아주 지루하게 봤던 기억만 나는데 중요한 영화였던 모양이다.


4. 마지막에 관광과 축제를 정리한 부분도 인상적으로 읽었다.

스페인 하면 관광대국인데 조상한테 받은 덕분으로 끝이 아니라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관광산업에 큰 투자를 하고 그 결과물로 오늘날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하는데, 동북아 끝에 붙어 있어 여전히 세계와 큰 교류가 없는 고립된 이미지가 강한 나라라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다.

프랑스만 해도 문화유산이 넘쳐나고 스페인은 태양이 내리쬐는 자연환경도 있고 여러 문화권의 유산이 공존하며 프라도 미술관의 엄청난 작품들이 큰 자산인데 한국과 비교는 어려울 것 같다.


스페인은 신혼여행지로 간 곳이라 책을 읽을 때마다 특별한 기분이 드는 나라다.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다.


<오류>

89p

이 전쟁은 1833년 페르난도 7세가 세 살 먹은 손녀(이사벨)을 후계자로 남기고 죽자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전통주의자들이 여성의 왕위 계승을 배제하는 살리법에 호소함으로써 이 아이의 왕위 계승을 저지하고, 대신 페르난도 7세의 동생이며 '편협하고, 경건하고 고집이 센 전통주의자' 돈 카를로스 마리아 이시드로를 추대하려고 함으로써 일어났다.

-> 이사벨 2세는 페르난도 7세의 손녀가 아니라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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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 Art Classic 10
유스투스 뮐러 호프스테데. 콘스탄티노 포르쿠 지음, 이지영 옮김 / 예경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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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화가가 루벤스와 티치아노이다.

루벤스 역시 티치아노를 무척 존경했다고 한다.

바로크 시대의 역동적이고 강렬한 명암 대비 기법을 시작한 대가라고 하면 카라바조가 대표적일텐데, 그림이 너무 어둡고 강렬해 밝은 분위기의 루벤스가 더 마음이 간다.

여신들 관능미나 그리는 타락한 화가라는 네티즌 평을 보고 마음이 아팠던 생각이 난다.

이렇게 강렬하고 역동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의 신체를 그리는 위대한 화가가 모두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퇴물 취급받는다는 게 속상했다.

그림의 본질이야말로 색채인데, 루벤스의 작품은 정말 화면에서 빛이 난다.

값비싼 물감들을 아낌없이 화폭에 쏟아 부었던 모양이다.

꿈틀거리는 역동적인 신체의 동작들을 어쩜 저렇게 생생하게 그려내는지.

아무리 찬사를 거듭해도 부족한 느낌이다.

보통 이런 번역서들은 문체가 어색하기 마련인데, 역자가 번역을 참 잘해서 한 눈에 들어온다.

책의 저자 역시 현학적인 설명보다는 루벤스라는 화가의 생애와 넘치는 인간적 매력, 그리고 작품의 위대함에 대해 친절하고 알기 쉽게 묘사해 준다.

도판은 정말 감탄할 정도로 훌륭하다.

미술전문 출판사라 역시 다르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림의 위대함과 넘치는 매력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인간적으로도 참 훌륭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외교관으로서도 승승장구해 기사 작위도 받았고, 피카소처럼 사업적 재능도 뛰어나 공방을 운영하면서 부를 이룬다.

무엇보다 두 아내와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여자인 내 입장에서 제일 마음에 든다.

첫번째 아내와도 매우 화목했고 그녀가 일찍 죽자 크게 상심하면서 애도했다.

두번째 결혼은 무척 파격적으로 50대의 나이에 16세의 헬레나 푸르망을 맞는다.

우리나라로 치면 영조와 정순왕후의 국혼과 비슷한 경우랄까?

이렇게 어린 아내와도 사이가 무척 좋았는지 10년의 결혼생활 동안 자녀를 다섯 명이나 낳는다.

또 안트베르펜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난 이 어린 신부를 미의 여신으로 화폭에 자주 등장시킨다.

나이를 초월한 애틋한 부부관계가 아닐 수 없다.

말년에 통풍으로 오른손을 쓸 수가 없을 정도로 망가져 마지막 자화상에서는 장갑으로 가리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르누아르가 류마티즘으로 노년에는 손에 붓을 묶어서 그렸던 일화가 생각난다.

귀가 들리지 않는 음악가와, 손을 쓸 수 없는 화가라니 인생은 정말 비극 그 자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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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 전쟁을 그리다 - 화가들이 기록한 6.25
정준모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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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책일까 봐 약간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쉽게 쓰여져 술술 넘기면서 금방 읽어버렸다.

6.25 당시 전쟁과 아무 상관도 없는, 어찌 보면 평범한 민간인들이었던 화가들이 양쪽 정부에 동원되어 숙청당하고 고통을 겪었던 사정을 이야기한 책이다.

저자의 주관이나 평가가 많이 들어가지 않고 당시 화가들의 증언과 신문 기사 등을 주로 인용하여 한 편의 다큐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피난을 간 화가들이 부산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또 거기서도 노숙을 하고 행상을 하면서도 변변한 화구 하나 없이 포기하지 않고 예술혼을 불태우는 모습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우리는 얼마나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는가.

이 분들은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피지배인으로써 오랫동안 고통받다가 겨우 독립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전쟁의 고통 속으로 빠진 셈이니 가장 불행한 세대가 아닐 수 없다.

외적의 침략도 아닌 내전으로 말이다.

전쟁을 일으킨 북한 김일성 정권에 대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의 원흉에게, 친일파를 처단하고 민족 주체성을 살렸다는 오늘날의 일부 평가가 과연 가당키나 한가.

북한에 두고 온 가족과 강제로 헤어져 사는 이산가족의 슬픔도 화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중섭만 불우한 줄 알았더니 다들 힘든 세월을 보냈었던 모양이다.

근대화가들에 대한 전시회 도록들을 여러 번 봤더니 익숙한 이름들이라 쉽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인상깊은 구절>

147p

부산 화가들에게는 그들 나름대로 서울 화가들이 내려와 쉬지 않고 그룹전이나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는 것이 설쳐대는 모양으로 비춰졌던 것도 있었고 미국대사관이 서울에서 온 작가들의 그림을 사준 것이 심기를 상하게 한 이유도 있었다. 게다가 김환기는 여러 모임에 주동이 되었기 때문에 가장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228p

김용환은 6.25 전쟁이 시작된 후 피난을 가지 못하고 서울에 남아 인민군에 의해 삐라를 만드는 일에 동원되었던 이력 때문에 9.28 수복 당시 다시 국군에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러나 출중한 만화실력으로 인해 육군본부에 배속되어 대북 선전만화와 삐라의 원화를 그리는 일을 맡게 되고 목숨을 건지게 된다.

"그리다 뿐이겠소? 뭐든지 시키는 대로 그릴 테니 종이와 붓만 가져다 주시오. 내 앞에는 즉시 종이와 붓과 먹물이 준비되었고, 나는 곧 붓을 들었다. 만화 아이디어 걱정은 필요없었다. 지금까지 괴뢰군 사령부에서 그렸던 그림을 반대로만 즉, 이승만이 김일성을 압록강 저쪽으로 몰아내는 그림으로 바꿔 그리면 되는 것이었다."

263p

당시 정훈 부장 이선근은 종군문화예술인들의 활동을 이념 창조자라는 입장에서 파악했다. 문화인들의 작품을 통해 국민들의 애국심과 전의를 고취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종문의 경우 현대전에서 선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선전전을 문화적 기술로서 전쟁을 수행하는 하나의 전투수단으로 보았다. 곽종원은 '행동적 휴머니즘'을 내세우면서 경험과 그로부터 출발하는 새로운 창작방법의 채용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소설가 김동리는 전쟁과 문학이 결부되면 전쟁은 문학의 한 소재에 불과하며 반대의 경우에는 문학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무기 또는 도구로서의 의의를 가진다고 정리한다. 나아가 전쟁에서는 이념이 매우 중대한 무기이며 위력을 발휘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문학과 예술이 정신적 무기로 간주된다고 하였다.

(문학이나 그림이 전쟁의 한 도구가 된다면 예술로서 무슨 가치가 있을까? 공산주의 체제에서 예술이 몰락한 것도 이념의 수단으로 이용됐기 때문이 아닌가? 어쩔 수 없이 예술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는 예술지상주의가 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247p

이 중 무엇보다도 큰 종군화가단의 이점은 어려운 시기에 생계유지의 수단과 신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안전망 확보였다. 특히 월남한 예술가들의 경우 소위 '빨갱이' 또는 '간첩'으로 몰리면 대책이 없었기 때문에 생면부지의 땅에서 가장 확실하게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종군화가단증뿐이었다.

 일부 젊은 작가들의 경우 군복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부수적 수입을 얻을 수 있고 때로는 권력까지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너나없이 종군화가단의 문을 두드렸다.

299p

그녀는 이 책에서 "한국에서 우리는 대비하지 못한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승리는 많은 비용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패배의 대가보다 훨씬 쌀 것이다"라는 명문으로 많은 이들에게 승리를 독려했고 맥아더 장군과의 단독인터뷰를 통해 미군이 파견될 것이라는 사실을 최초로 보도해서 특종을 만들어냈다.

305p

2차 서울탈환은 희생을 최소화하며서 비교적 순조롭게 성공했는데 이것은 당시 중공군이 병참공급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정도의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데 이유가 있다. 6.25 전쟁에서 예상보다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중공군은 3월 11일 이미 서울에서 자진철수하기로 결정한 상황이었으며 비교적 손쉬울 것이라 보았던 용문산지구 북한강 전투까지 육군 6사단에 대패한 것을 계기로 휴전회담을 진지하게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이 승리로 인해 국군은 약체라는 이미지가 상쇄되었고 UN군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계기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중부전선을 동서로 나누어 공격과 방어를 하고자 하는 중공군과 북한군의 전술을 차단하면서 서울에 미칠 군사적 위협을 사전에 제거했기 때문에 다방면으로 큰 의의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이 승리가 중공군과 인민군 측이 우리 쪽에 휴전회담을 제의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317p

한편으로는 작품을 제작한 김환기와 남관, 김병기 모두 이후 미국이나 프랑스로 떠난 것을 보면 이들이 작품의 해외전시를 빌미로 전쟁 중에 해외로 나갈 기회를 만들고자 한 것은 아닌가 추측도 해본다.

343p

"불란서에서의 그것과 일본에서 유행된 그것은 퍽 장식적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그런 장식적인 것은 필요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체험한 그것을 화면에 나타내되 휴머니즘을 무시하지 않고 사실적인 것 또한 무시하지 않은 추상이 나와야 된다고 봅니다. 동양화란 원래가 추상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보다 암시적이지요. 말하자면 공간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서양화는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공간에서 발달된 것입니다."

 한국 화단에서 가장 긴요한 문제는 새로운 미의 창조이며 새로운 미술이 추상임을 상정하였고 김병기는 '추상회화의 문제'를 통해 현대미술의 양식은 추상적 경향이라고 정의한 후 "원래 회화는 하나의 추상"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비형상 회화는 실제 세계와는 하등의 관련을 맺지 않는 것이며, 완전히 관념세계에의 탐구이며 형이하의 현상세계와 절연되어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352p

남북한의 정치가들에게 6.25 전쟁은 '전쟁'이라는 공포를 통해 적절하게 국민들을 통제하고 제어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남북한이 공히 그렇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 사회의 구성원 중 일부는 이런 상황이 남한에서만 존재했던 정치 상황인양 몰아가고 비판한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자면 남과 북이 끔찍한 전쟁의 트라우마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며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은 6.25 전쟁 기간 중 일어난 참혹했던 양민학살을 평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353p

일부 재주 좋은 작가들에게는 치열했던 전쟁이라는 특이한 삶의 조건은 실력가들에게 줄을 대고 화단정치를 통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기회였다. 그러나 이런 처세술조차 없었던 작가들은 광복동의 다방가에 모여 앉아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그리고 이들은 고통스러운 삶을 잊기 위한 목적으로 작품을 하였다. 그리하여 전쟁이라는 전대미문의 비극 앞에서도 그들은 순수주의와 자연주의를 노래했으며 용기있는 데카당한 실존의 흔적을 남기려 애쓰는 지사적인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일군의 작가들은 낭만주의, 퇴폐주의에 빠져들어 기인적인 삶을 통해 세상에 대한 울분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많은 경우야 어찌되었던 간에 전시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이들이 이러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것은 화가 또는 문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경의와 편의를 얻었던, 예술가들을 사회가 존경하고 예우하던 유일한 시기가 이때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모든 예술가들은 그들의 신분만으로 보호의 대상이 되었으며 하다못해 배급에서도 우선권이 주어졌다. 종군작가라는 이름으로 입대를 면제받을 수 있었으며 많은 작가들이 종군화가단에 들어가서 특권을 누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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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장인들의 아틀리에
이지은 지음, 이동섭 사진 / 한길아트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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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다른 책들이 워낙 유익하고 재밌어 기대를 했는데 처음 출간한 책이고, 주제가 여러 아틀리에를 소개하는 일종의 탐방 에세이라 그런지 내용이 부실하고 산만해서 아쉽다.

사진도 전문 작가가 동행한 만큼 기왕이면 컬러로 실었으면 장인들의 수공예품이 훨씬 더 빛을 발했을 것 같아 아쉽다.

장인이라고 하면 막연히 갓 만드는 노인, 옹기장이 이런 한국적 이미지만 생각했는데 프랑스에도 전통 공예가들이 대량 생산의 시대에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전통을 잇고 있었다.

열 다섯 명의 각종 수공예 분야의 장인, 이를테면 마스터들이 소개된다.

유럽 장인은 가구 만드는 에베니스트만 생각했는데 이 책에 다양한 분야 사람들이 등장한다.

파이프 오르간, 종, 안경테, 상아 공예품, 시계의 무브먼트, 클라브생, 직물 짜는 사람, 활자 인쇄공, 부채 등등 온갖 종류의 수공예가 소개되어 흥미롭다.

사라지는 것은 참 아쉽다.

갑작스런 근대화의 길로 들어선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생명력을 잃어가기는 유럽 전통문화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명품이라는 이름으로 자본주의와 손잡은 가방이나 구두가 놀라운 변신에 성공했다고 할까.

귀갑이나 상아 등은 자연보호 규약 때문에 아예 구할 수도 없어 100여 년 전에 유통되던 재료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공예 관련 일을 하는 저자의 따뜻한 시선이 돋보이는 예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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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세계사 - 일본, 유럽을 만나다
신상목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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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전작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도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 이 책은 더 재밌다.

역사 전공자도 아닌데 어쩜 이렇게 깊이있는 관점을 가지고 책을 쓸 수 있는지 저자의 분석력에 놀랄 뿐이다.

세계사라고 해서 너무 거창하게 주제를 잡은 게 아닌가 우려했으나 책을 열어 보니 서양이 어떻게 대항해 시대를 시작했는지부터 배경 설명이 잘 되어 있고, 일본이 왜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에 성공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분석이 돋보인다.

저자는 참 쉽게, 그리고 깊이있게 글을 잘 쓴다.

전직 외교관이라고 하는데, 류광철씨 책을 보는 느낌이다.

일본에 대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가 일본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알지 못하는지, 일본이 얼마나 한국과 다른 사회인지, 또 그 저력이 얼마나 큰지 깜짝 놀라게 된다.

여전히 일본에 대한 역사적 인식은 아스카 시대에 문화를 전수해 주던 때에 머물러 있던 것 같다.

그 후로는 왜구와 임진왜란, 식민지배가 끝인 것 같다.

매우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일본과 전통 가치관에 함몰된 한반도의 차이는 왜 생긴 것일까?

정말 반도와 섬나라의 차이일까?

고대사에 대한 책을 읽을수록 한반도의 작은 나라가 중국이라는 엄청난 제국에 함몰되지 않고 주체적인 민족성과 나라를 유지해 온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 일본은 그마저도 바다 건너 있었기 때문에 중화제국의 거대한 구심력으로부터 일정 부분 벗어나 독자적인 길을 갈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포르투갈 역시 마찬가지다.

대항해 시대라고 하면 에스파냐만 생각했는데 저자는 그 시작점에 포르투갈을 놓는다.

이베리아의 작은 반도 국가는, 에스파냐라는 큰 제국에 막혀 살기 위해 바다로 눈을 돌린다.

저자는 미지의 바다로 배를 띄워 항로를 발견한 이들의 도전정신을, 오늘날의 화성 탐사에까지 비유한다.

바다 끝으로 가면 낭떠러지가 있어 악마의 입 속으로 들어간다고 믿었던 시대에, 아무 지식도 없이 무역을 위해 배를 띄운 이들의 모험심과 용기는 참으로 대단하다.

대항해시대라고 하면 아프리카 노예나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몰락에만 초점을 맞춰 경제적, 사회적 동인은 크게 다루지 않았던 것 같은데 저자는 왜 그들이 바다로 나섰는지 그 동력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한다.

오늘날이 서양 위주로 세계화 된 것도 그들의 모험심이 경쟁력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은 2천 년 전에 벌써 대제국을 이루고 통일 국가가 되어 주변국을 조공 체제 안에 묶어 두고 번영했으나 그 안에 안주했기 때문에 근대화에 실패하고 2류 국가로 몰락한 듯하다.

어떻게 해서든 아시아의 물자들을 구해 와 교역을 통해 이득을 보려고 애쓰는 경제적 욕구가 강하고 모험심이 충만한 개방적인 사람들이 주를 이룬 유럽이 결국은 세계화에 성공하고 오늘날 선진국이 됐다.

일본 역시 아시아의 다른 오래된 전통 국가들과는 달리, 나라의 문을 열고 적극적으로 유럽인들의 통상 제안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장 먼저 근대화에 성공한다.

메이지 유신이 어느날 갑자기 페리 제독이 배를 몰고 와서 뚝딱 이뤄진 게 아니었다.

서양과의 통상이 얼마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새삼 알고 놀랐다.

오늘날의 세계는 인터넷과 자본주의 시장에 의해 더욱더 개방되고 있으니, 전세계에서 거의 가장 늦게 근대화된 나라가 세계 10위 권의 무역국가가 된 것도 놀랍고, 앞으로도 보다 적극적으로 문호를 열고 모험심을 갖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대항해 시대부터 자본주의의 발생, 일본의 근대화까지 너무나 잘 짜여진 재밌는 역사책을 읽었다.

적극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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