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멸의 조선사 - 지배 권력에 맞선 백성의 열 가지 얼굴 지배와 저항으로 보는 조선사 2
조윤민 지음 / 글항아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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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자의 전작 "성과 왕국"을 재밌게 읽어서 고른 책인데 기대에 부응한다.

보통 아마추어 작가들은 야사 위주의 에피소드를 편집해서 쓰기 마련인데 (김종성씨나 박영규씨) 이 책은 사료 참조도 성실하고 역사 비평 의식도 수준있어 읽어볼 만하다.

제목답게 주로 조선 하층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세습노비제의 폐해와 백성들 사이에서도 천대받는 최하층민 백정 이야기 등을 인상깊게 읽었다.

특히 백정이 단지 북방 유목민의 후손이 아니라 도살업을 천시하고 사회 낙오자들이 섞여 들어가다 보니 최하층민으로 굳어졌는데 인종주의적 관점이 더해져 차별이 더욱 심했다는 주장에 수긍이 간다.

기술을 천시하고 작은 농업 생산력을 소수의 양반 계층이 착취하는 구조였던 조선 사회에서 수공업자나 상인들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을지 안타깝다.

500년 동안 정치적 안정은 얻었을지 모르나 근대사회에는 맞지 않은 국가였던 셈이다.

양반 계층을 대신할 계급이 생기지 못하고 너나 할 것 없이 양반이 되기 위해 애쓰다 보니 일본에 의해 망하기 직전까지도 여전히 조선은 구체제 봉건 사회였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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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가 사랑한 천재들 - 카프카에서 스메타나까지 도시가 사랑한 천재들 2
조성관 지음 / 열대림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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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출간된 책이라 큰 기대를 안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알차고 재밌다.

기자들이 쓴 책은 전문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가급적 안 읽으려고 하는데 이 책은 정말 괜찮다.

문장력도 좋고 무엇보다 자기가 쓰려고 하는 주제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고 있어 독자들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해 준다.

카프카나 드보르작, 스메타나 등은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아마데우스>를 만든 영화감독 밀로스 포먼이나 밀란 쿤데라, 바츨라프 하벨 등은 이 책을 통해 제대로 알게 됐다.

하벨의 경우는 체코 현대사까지 덤으로 알 수 있었다.

<프라하의 봄>은 영화로 먼저 접했고 무슨 내용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원작을 다시 읽었는데 여전히 내게는 너무 어려운 책이었다.

노벨상에 추천되는 작가라 그런가 줄거리 중심으로 읽는 나 같은 독자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웠다.

다만 저자의 소설론에는 많이 공감했다.

자전적 소설을 지양하고 소설의 주인공은 작가가 아닌 실존적 고민을 하는 또다른 실험적 존재라는 것.

사생활을 공개하지 않고 작가와 주인공은 전혀 다른 존재라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바다.

어떤 책에서 밀란 쿤데라가 체코의 현실을 외면하고 프랑스로 망명했다고 비난하는 투의 글을 읽은 적 있는데 시대참여 정신과 예술로서의 소설은 별개의 문제 같다.

문화예술 전통이 거의 없는 한국과는 확실히 서구 문화권은 다른 것 같다.


<오류>

121p

사회 현실에 무관심한 삶을 살았던 그는 예테보리에 살면서 민족의식에 눈을 떴다. 1960년대에 들어 조국 체코의 상황은 급변했다. 스메타나는 1961년 3월 31일자 일기에 심경을 이렇게 적었다.

-> 1960년이 아니라 186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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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덴.마이얼링.아이젠슈타트.툴른 풍월당 문화 예술 여행 4
박종호 지음 / 풍월당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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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빈 이야기.

저자의 전작 <빈에서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와 겹치는 느낌도 들고, 이 책에서는 개인의 소회보다는 정보 전달에 초점을 맞춰 한편의 에세이로서는 많이 아쉽다.

대신 빈 곳곳의 카페와 왕궁, 건물 등을 애정어린 눈으로 소개한다.

빈의 카페는 무려 100년의 전통을 자랑한다.

과연 문화예술의 도시답다.

자본주의 시대에 작은 가게가 100년 이상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문화전통이 아니라면 설명하기 힘든 부분 같다.

한국은 유교적 사회라 위인들이 죄다 학자인 반면, 오스트리아는 문화예술가들이 중심을 차지한다.

확실히 서구 문화권의 예술 전통은 동양 사회와는 매우 다른 듯하다.


<인상깊은 구절>

242p

이제 <베토벤 프리즈> 전체를 다시 정리해보자. 인간은 끝없는 고통과 슬픔 속에서 유혹과 방해를 받으며 살아간다. 그런 인간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은 오직 시와 미술과 음악이다. 나약하고 불쌍한 인간이지만, 예술이 있기에 기쁨도 있으며, 그 속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상대와 행복하게 결합할 수 있다.


<오류>

133p

1671년에 안나 황후가 이곳에 카푸친 수도회의 수도원을 짓도록 했다. 그리고 그녀의 아들 페르디난트 2세는 어머니가 세운 수도원의 지하에 부모님의 관을 보관했다.

->1671년이 아니라 1617년에 마티아스의 황후 티롤의 안나가 후원금을 내서 수도원을 지었다. 그리고 그녀는 페르디난트 2세의 어머니가 아니라 사촌 형수이다. 즉, 남편인 마티아스와 페르디난트 2세는 사촌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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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왜 무너졌는가
정병석 지음 / 시공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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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의 눈으로 본 조선 쇠망사라고 할까?

맨날 정치 얘기만 읽다가 경제사적인 관점을 들으니 무척 신선하고 재밌다.

조선이 500년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특히 양란을 무사히 잘 치뤄내고 왕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한 것은 그만큼 폐쇄적인 사회였고 성리학 이데올로기가 강력하게 사회를 억압했던 탓이라고 한다.

사실 제일 궁금했던 게 노비제, 특히 서양처럼 다른 인종을 노비로 삼거나 전쟁포로, 범죄자나 채무자도 아닌데 같은 민족을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노예로 부릴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노비 세습제가 얼마나 강력한 신분제였고, 조선 사회를 유지한 핵심적인 제도였는지 이 책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런 비생산적인 노예노동에 의존했기 때문에 조선은 안정적이었을지는 모르나 생산력 있는 국가로 발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안빈낙도와 청빈을 강조한 이유가 있었다.

국가 전체가 생산력이 너무 낮아 농민으로부터 양반 사족들이 착취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백성들은 매우 가난했고, 사족 역시 소비적인 생활을 영위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기본적으로 조선은 작은 정부, 즉 낮은 생산력 때문에 세금을 많이 걷기 힘든 구조였던 터라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할 수가 없었다.

철학적인 도덕 국가를 추구했던 탓에 개인의 영리 추구도 죄악시 하여 자발적인 상인 계층도 생겨나기 힘든 구조였다.

서구처럼 시민혁명이 불가능했던 이유도, 사족을 대신할 집단, 이를테면 종교인이나 군인, 상인 계층 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의 경제 구조를 잘 분석한 책이라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오늘날 산업화에 성공하여 세계적인 무역 국가가 된 것을 보면 저자의 주장대로 올바른 제도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껴진다.

당장 북한과의 비교만 봐도 알 수 있다.

저자는 강한 국가의 핵심 사항으로 강력한 법치주의를 들고 있다.

법과 제도를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철저하게 실행하는 운영적 측면을 더 강조한다.

조선이 망한 이유도 거대한 철학 담론에만 집중하다 보니 세세한 각론은 무시했던 탓이라 한다.

작지만 작은 사업장을 운영하면서 느낀 바는, 지킬 수 있는 법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도 책에서 지적한 바지만 게임의 룰은 반드시 지켜져야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는데 룰이 너무 복잡하면 선수들이 다 외울 수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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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을 가다 2 - 레바논ㆍ시리아ㆍ요르단ㆍ리비아ㆍ몰타ㆍ튀니지ㆍ이집트 편
최정동 지음 / 한길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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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을 읽고 몇년 만에 드디어 2권도 읽게 됐다.

2권은 비치된 도서관이 거의 없어 상호대차 시스템을 통해 빌렸다.

로마 제국이 주제인데 특이하게 이탈리아 반도 외의 동방 영토에 초점을 맞췄다.

중동 지역인 팔미라, 페트라, 암만, 북아프리카인 튀지니와 리비아, 이집트, 몰타 섬 등이 소개된다.

사진을 무척 잘 찍는 분 같다.

박물관의 작은 유물 사진이 아니고 햇빛 찬란한 야외의 유적 사진이라 더 그런 것 같긴 한데 편집이 잘 돼서 보는 즐거움이 있다.

로마가 이렇게 큰 영토를 가졌나 새삼 놀랍다.

가는 곳마다 개선문과 극장과 신전을 세우고 길을 닦고 수도교를 설치한, 정말 대단한 공학적 민족이다.

기원 전후 건물들이 2천년이 넘는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니 과연 놀라운 나라다.

여행기와 로마 제국 유산에 대한 정보가 잘 녹아들어 600 페이지의 분량이 부담스럽지 않고 잘 읽힌다.

해외 여행이라고 하면 서구권의 미술관이나 궁전, 성당 등만 생각했는데 고대 유적지를 목표로 잡아도 좋을 것 같다.

로마의 동방 영토들이 이슬람 문화권으로 바뀌고 현재의 정치 상황도 불안정하여 문화유적들이 잘 관리되지 않은 부분이 안타깝다.

문화유산 보호라는 개념도 정말 근대의 서구적 산물인 모양이다.



<인상깊은 구절>

134p

하드리아누스 개선문, 또 그 사내다. 솔직히 좀 질린다. 로마세계 어디를 가도 저 사람의 발자국이 찍혀 있다. 남프랑스에도, 영국 북부에도, 그리스에도, 시리아 사막과 이 중동의 도시에도 그의 이름을 딴 군사시설과 동상과 개선문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비행기도 고속열차도 없던 고대에 그는 차근차근 제국을 둘러보며 방어를 튼튼히 하고 주민을 다독이고 또 휴식을 취했다. 취미를 직업으로 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하지만 하드리아누스는 여행을 좋아했고 그의 직업은 제국의 안녕을 책임져야 하는 황제였다. 여행을 즐기지 않았다면 결코 그렇게 멀고 긴 여행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469p

고대의 건축물을 보며 가끔 착각한다. 눈앞의 신전이나 개선문, 다리 같은 유적이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모습대로 유지되어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가 마주하는 옛 유적들은 대부분 오랜 시간에 걸친 발굴과 보존과정을 거친 것들이다. 특히 이집트가 그렇다. 이집트는 나일 강과 사막으로 이루어진 땅이다. 대부분의 유적은 강을 따라 들어섰는데 긴 세월이 하르는 동안 모래와 나일 강의 진흙에 묻혔다. 그랬던 것들이 19세기에 들어와 하나씩 발굴되어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522p

고대 로마인이 이집트인과 가장 달랐던 것은 생사관일 것이다. 기독교 이전의 로마인은 저승과 영혼의 불멸에 대해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에피쿠로스 파는 영혼의 불멸을 전혀 믿지 않았으며 스토아 파도 별로 믿지 않았다. 로마의 공식종교는 그런 질문 자체를 피했다. 죽음이란 아무것도 아니고 영원히 잠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견이 가장 널리 퍼져 있었다. 죽은 뒤에도 어딘가에 귀신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허황된 이야기로 치부되었다. 그래서 로마인의 죽음에 대한 태도는 담백했다. 육체가 노쇠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신의 심장에 칼을 찔러넣을 힘이 남아 있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남자다운 행동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유명했던 고대 로마인의 무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 한줌의 재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564p

"나는 그리스인들에겐 그들만이 언제나 가장 현명한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유대인들에겐 그들이 가장 순수한 자들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논증하려고 애썼다."

 세계 제국 경영자가 짊어졌던 짐이 묵직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추상적인 내용만 가득한 것은 아닙니다. 책임감으로 가득한 한 사내가(하드리아누스 황제) 황량한 라인 강 하구에서 배를 타고 북해의 차가운 바람에 수염을 휘날리며 브리타니아로 향하는 모습이 빛바랜 수채화처럼 떠오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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