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1 - 개정판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도무지 공감이 가지 않는 소설이다

한 번은 읽고나서 비판을 하던가 해야 하는데, 중간에 덮고 말았다

나랑은 안 맞는 책이다,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양귀자의 "모순"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양귀자라면 이상 문학상도 수상하고, 나름대로 인정받은 (즉 실력있는)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모순"이라는 책이 전형적인 통속 소설에 불과해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훌륭한 작가라고 해서 그가 쓴 모든 책들이 다 훌륭할 수는 없겠지

그렇지만 최소한 어느 정도 수준은 되야 하는 거 아닐까?

이문열이 쓴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라는 소설이 있다

그는 후기에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하지만, 유난히 더 아픈 손가락이 있기 마련이라며, 이 책은 자기 기준에 못미친다는 걸 솔직히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문열이라는 작가가 주는 무게감에는 충분히 합당한 괜찮은 소설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런데 이 책,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은 아무래도 그 일정 기준에 모자란 느낌이다

작가의 다른 책은 안 읽어 봐서 모르겠는데, 어쨌든 이 책은 문장력이 떨어진다

19쇄까지 펴냈다고 하는데, 실망스럽다

 

첫부분은 마음에 와 닿았다

모든 인간 관계가 사실은 권력에 기초한다는 얘기로 시작한다

나는 작가가 미셸 푸코의 글을 읽고 쓴 거라고 확신한다

주인공 인혜는 중고교 시절부터 세진을 무척 좋아한다

그녀가 가지고 있지 않은 부러운 특성들을 세진이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진의 마음에 들고 싶어 공부를 열심히 할 정도였다

그런데 세진은 인혜에게 별 관심이 없다

둘이 자취를 하며 함께 살 만큼 친밀한 관계임에도 세진은 인혜에게 어떤 의존성도 갖지 않는다

나중에야 인혜는 세진이 자신에게 부러워 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사실 세진은 인혜를 대단히 부러워 했다 결손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행복한 인혜의 가정을 부러워 하고, 인혜에게 의존하게 될까 봐 먼저 인혜에 대한 감정을 거둔다 세진은 말하자면, 컴플렉스를 가진 여자다)

 

소녀 시절에는 특히 동성 친구에게 빠지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갖지 못한, 부러워 할만한 특성들을 가진 주위의 친구에게 빠져든다

단순히 돈이나 지위 같은 것과는 다르다

인격적 특성에 매력을 느낀다

그래서 흔히 남성적 매력을 풍기는 선머슴 같은 여자애는 뭇 여학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곤 한다

 

나이가 들면서 이성에게 마음을 뺏기고 나면, 여고 시절 반했던 동성 친구의 매력은 사그러 들게 마련이다

이제 좀 더 성숙한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다

인혜는 남자를 만나면서 세진에 대해 느끼던 부러움이나, 기타 권력 관계를 형성하던 것들이 사실은 별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세진을 잊는다

 

여기까지가 내가 마음에 든 내용이다

모든 인간 관계는 권력에 기초한다는 미셸 푸코의 말에 나는 상당히 동의하는 편인데, 소설에서는 어린 시절 성장기의 삽화들을 통해 잘 그려냈다

그런데 이 다음부터는 도무지 공감이 안 간다

남편의 성불능 때문에 이혼한 인혜는 너무나 손쉽게 남자들을 만난다

인혜라는 여자의 캐릭터가 매력적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소설이기 때문인지, 이혼녀가 사랑을 쟁취하는 과정이 너무나 쉽고 간단하다

남자를 유혹한다

남자가 넘어 온다

같이 식사를 하고 모텔로 들어간다

이게 그녀의 사랑 공식이다

이혼녀가 남자 유혹하는 게 정말 이렇게 쉬울까?

 

세진이 어린 시절 상처 때문에 불안증을 앓고 있는 부분도 공감이 가지 않는다

책 광고에서는 정신 분석을 통한 30대 여성의 자아 발견이라는 식으로 이 부분을 강조하던데, 나는 도무지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지 않는다

사변적이고 말 그대로 소설적일 뿐이다

정신 병원에서 상담도 받고 법사에게 내림굿도 받는데 그 과정들이 너무나 통속적이고 뻔하게 읽힌다

법사가 세진의 몸에서 귀신을 쫒아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정말 이런 의식을 통해 고통받던 사람이 편해진다면 그것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칼 세이건의 논리를 믿는 나로서는, 점성술 등을 포함해 이런 의식의 진실됨을 믿을 수가 없는데 그렇다면 이건 플라시보 효과일까?

무의식을 괴롭히던 존재를 쫒아 버렸다고 환자를 안심시킴으로써 불안증을 가라앉히는 것일까?

 

결국 책을 덮고 말았다

줄거리도 별로 궁금하지 않다

특별한 결말이 없을 게 뻔하니까

통속 소설과 문학 소설을 구분짓는 기준은 문장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소재나 주제들은 사실 다 통속적이다

책의 수준을 결정짓는 건 작가의 역량을 드러내는 문장력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그 점에서 실망스럽다

양귀자의 "모순"을 읽었을 때와 똑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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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 2012-01-02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이 여자의 사변적인 소설이 그렇게 좋기만 하던데..... 마린님은 별 두개 밖에 안되나 보네요. 책을 선택하는 기준도 사랑을 선택하는 기준 만큼이나 제 각각이군요.

그 밖에 앞에있는 책들에 대한 별 점은 대부분 찬성!
 
인간의 얼굴, 그림으로 읽기 명화 속 이야기 2
홍진경 지음 / 예담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요즘 그림, 특히 르네상스 시대 그림에 대한 책을 많이 읽다 보니 내용이 자주 겹친다

새롭지가 않고 다 아는 얘기인 경우가 많아 아무래도 책의 흥미가 떨어지는 편이다

그래서 좀 쉬었다 읽으려고 했는데 책 표지의 아름다운 여인이 또 나를 유혹했다

 

흔히 알려진 그림은 아니었는데, 관객을 바라보는 자태가 무척 매혹적이고 우아하다

알고 보니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이었다

체칠리아 갈레라니라는 이탈리아 여인인데, 당시 밀라노 군주였던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연인이었다고 한다

저자의 걱정처럼 모나리자가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레오나르도의 다른 그림들은 덜 알려진 편이다

그녀의 우아하고 새침한 자태를 보면, 모나 리자와는 또다른 기품있는 아름다움이 전해져 온다

놀랍게도 이 여인의 나이는 겨우 16세라고 한다

당시 유럽의 평균 수명은 40세에 불과했기 때문에 16세면 성인으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루도비코가 그녀를 유혹한 건 겨우 14세 때!!)

 

또 다른 매혹적인 여인은 다비드가 그린 쥘리에트 레카미에 부인이 있다

프랑스 혁명 당시 살았던 여자인데 워낙 예쁘고 부유해 명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여자는 몹시도 경박해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해 결국 다비드는 화가 난 나머지 그녀의 그림을 포기해 버리고 말았다

쥘리에트에게 보냈다는 편지를 보면 "화가도 숙녀만큼이나 참을성이 없답니다, 부인" 이라는 문구가 있다

그녀의 초상은 마치 그리스 시대 여신처럼 하늘하늘한 긴 원피스를 입고,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에로틱한 느낌을 준다

다비드라면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으로 유명한데, 아름다운 여자의 초상도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그 외에도 렘브란트나 루벤스의 아내들이 등장한다

수공업자에 불과하던 화가들의 지위가 상승하면서 유명세를 얻은 두 화가들은 많은 돈과 높은 지위를 얻었다

그들은 아내와 자신의 초상을 그리면서 귀족처럼 설정했다

루벤스라면 카메라 루시다를 이용하지 않은 화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초상은 숨이 막힐 정도로 사실적이고 아름답다

 

또 다른 매력적인 그림으로는 클림트가 그림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를 들 수 있겠다

흔히 "유딧과 홀로페르네스" 모델로 알려졌는데, 그녀의 초상화를 보면 대단히 관능적이다

클림트의 그림은 황금빛에 어울어져 신비롭고 뇌쇄적인 느낌이 든다

아델레는 오스트리아 은행가의 아내인데 남편과는 17세 차이가 났다고 한다

 

홀바인이 그린 에라스무스 초상도 인상적이었다

에라스무스라면 세계사 시간에 알프스 이북의 르네상스를 이끈 사람이라고 외웠던 기억이 난다

그 때만 해도 그저 역사책 속의 유명한 인물에 불과했는데, 막상 그의 초상화를 보니 살아 있는 인물로 다가 온다

대단히 기품있고 교양있으며 점잖은 학자의 모습이다

에라스무스는 카톨릭 교단의 부패를 비판하고 성경에 기초한 신학적 해석을 강조한 사제로써 당대에 높은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종교 개혁을 한 루터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는데, 요즘 말로 하면 루터는 기독교 근본주의자 수준이었다

우상 파괴를 주장하며 성상과 그림들을 불태우는 루터가 점잖은 학자였던 에라스무스 눈에는 당연히 위험하게 비쳤을 것이다

어떤 대의를 위해서든 폭력은 폭력일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젊은 루터의 초상은 고집스럽고 편협하게 비친다

화가의 의도였는지 모르겠으나, 에라스무스의 여유로움과 비교된다

 

홀바인이 그린 또 다른 초상으로 토마스 모어가 있다

에라스무스의 소개로 영국으로 간 홀바인은 유명세를 얻어 당시 법관이었던 토머스 모어를 그렸다

역사책에만 보던 인물을 실제 그림으로 접하니까 느낌이 사뭇 다르다

토머스 모어 역시 "유토피아"를 지은 인물로만 암기했는데, 그의 초상을 보니 새로운 인물로 다가온다

코가 높고 턱이 뾰족하며 눈이 부리부리 한 게 (너무 전형적인 설명이다!!) 윤곽선이 뚜렷하다

헨리 8세의 이혼을 반대하다 처형당했다는 게 실감날 정도로 무척 강직했을 인상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다

좀 더 깊이 있는 해설을 원한다면 다른 책을 권한다

미술사를 전공한 사람인데도 내용이 다소 가벼운 느낌이 든다

일부러 쉽게 쓴 걸까?

뒷편에는 로마 시대 황제들의 초상과 역사적 배경이 나와 로마 역사 이해에 도움을 준다

그렇지만 조각들은 그다지 감동적이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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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중국
이익희 외 지음 / 일빛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이슬람 문명"을 읽을 때도 느낀 거지만, 인류 역사에 획을 그은 대문명들을 한 권의 책으로 다 보여 주겠다는 생각 자체가 욕심인지도 모른다

저자들 역시 거대한 중국 문명과 사회를 한 권에 몰아 넣느라 고생 좀 했을 것 같다

도대체 어떤 걸 넣고, 어떤 걸 빼야 할지, 다 중요한데 아마 감잡기 힘들었을 것이다

앞으로는 한 분야만 다룬 책을 읽어야겠다

너무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다 보니 수박 겉핥기 식의 서술을 피하기 힘든 것 같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중국에 대한 개념 잡기에는 좋은 책이다

 

이 책의 장점을 들자면 중국 공산당 성립 배경과 현대 중국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서술이다

그 동안 중국 하면, 막연히 역사책에서 배운 내용이 다였는데, 현대 중국이 어떤 발전 과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는지 현대의 역사를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장쩌민에 이르는 중국 공산당의 정권 교체와 개혁 개방에 대한 자세한 서술이 마음에 든다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의 기초 이념을 세운 사람으로, 문화혁명의 과오가 있긴 하지만 전 중국 인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인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개혁 개방 이후 소득 격차가 커지면서 도태된 중국 인민들은 가난했지만 평등했던 마오쩌둥 시절을 그리워 하고 텐안문에 걸린 마오의 사진 아래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흔히 관찰된다고 한다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 하는 이유가 그 때의 독재나 권위주의로 돌아가고 싶은 게 아니라, 현재의 상황이 워낙 나쁘기 때문에 도피처로써 그리워 하는 것처럼, 마오쩌둥 숭배도 마찬가지라고 진단한다

 

덩샤오핑은 시장 경제를 섞은 중국식 사회주의를 지향한다

현재 중국의 경제는 더 이상 사회주의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한다

사회주의의 핵심은 공유제와 국영 기업 등인데, 이미 중국의 상당수가 사유 재산을 소유하고 있고, 많은 공기업들이 민간화 됐다고 한다

계획 경제를 한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바뀌지 않듯, 시장이 생성된다고 해서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로 변하지 않는다는 게 덩샤오핑의 경제 철학이다

중국의 개방은 예상과는 다르게 훨씬 이전부터 진행됐다

마오쩌둥이 죽고 덩샤오핑이 집권한 78년부터 중국은 개혁, 개방 노선을 걸었다고 한다

다만 정치는 여전히 공산당의 1당 독재와 사상의 자유를 탄압하기 때문에 89년에 텐안문 사태 등을 맞기도 했다

 

중국의 소수 민족 지원 정책은 다소 독특하다

대부분 인구의 1% 민만의 소수 민족들은 다수 민족에게 흡수, 통합되도록 하는데 중국은 다민족 국가를 표방하는 만큼, 그들의 권리와 문화를 지키도록 장려한다

현재 중국의 소수 민족은 다수인 한족에 비해 약 1% 정도라고 한다

하긴 워낙 중국 인구가 많으니가 1%라고 해도 1억이 넘는다

구 소비에트 연방과는 달리 사회주의가 무너지더라도 소수 민족이 독립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한족이 워낙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티벳족을 제외하고는 독립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중국의 가능성에 대해 많은 점수를 주고 있다

2020년이면 미국을 따라 잡을 것이라는 성급한 판단도 나오고 있다

중국을 주목하는 이유는 넓은 땅덩어리와 풍부한 인적 자원 때문일 것이다

이미 중국은 개방 정책 후 세계 경제 7위의 대국이 되었다

과연 시간이 지나면 중국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것인가?

이렇게 가능성이 풍부한 중국이 현대 이후 왜 후진국으로 남아 있었던 것일까?

사회주의 체제 때문이었을까?

중국이 자본주의를 택했다면 오늘날 중국의 위상은 전혀 달랐을까?

왜 중국이 지금까지 잠든 거인으로 있었는가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듣고 싶다

 

중국이 갈수록 동북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키울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일본과는 경쟁 관계가 될 것이고, 그 사이에 낀 우리 나라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현재 중국은 한류 열풍이 거세지만, 경제 개발을 먼저 이룩한 나라에 대한 동경 때문이지, 결코 한국 자체를 지도적인 국가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므로 중국이 경제 개발을 진행하면 다시 중화 사상에 입각해 한국은 언제든지 한 수 아래의 피지배 국가로 생각할 수 있는 일이라고 저자들은 경고한다

중국이 현재의 기대치만큼 성장을 하게 되면 동북 아시아의 새로운 맹주에 대해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고 한다

고구려처럼 독립적인 위치를 지킬 것인지, 신라나 조선처럼 중국적 가치를 내제화 시킬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중국에 대해 정확한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

 

중국 문장가들 중 제일 감동적인 사람은 소식이었다

소식이라면 아버지와 동생까지 모두 당송 8대 문장가에 든 사람인데 왕안석의 신법에 반대하여 평생 귀양지를 떠돌다 죽은 불행한 천재라고 한다

그의 시 중 다음과 같은 부분이 소개되었는데 무척 인상깊다

 

"천지간에 사물은 스스로 주인인 바, 내가 갖고 싶어도 털끝 하나 소유할 수 없지요

하지만 강가를 스치는 맑은 바람, 산 너머 휘영청 밝은 달, 내가 귀로 들어 소리가 되며, 내가 눈으로 보아 형체를 이룹니다

그러니 누구든 갖고 싶은면 막을 것 없고, 아무리 써도 고갈되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조물주의 보물이라서, 저와 당신이 함께 즐기는 이치인 것입니다"

 

천지간의 사물은 내가 인지함으로써 비로서 형체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달려 있다는 그의 멋진 인생관이 돋보이는 시다

한시를 감상할 줄 모르기 때문에 그 깊은 뜻과 참맛을 몰랐다는 생각이 든다

 

북조 시대의 목란 이야기도 재밌다

디즈니 만화 "뮬란"으로 각색된 이야기인데, 정말 통쾌하다

아버지가 전쟁터에 징집됐는데, 대신 나갈 아들이 없어 목란은 남장을 하고 군대에 간다

10년의 전쟁 동안 목란은 큰 공을 세우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본래의 옷으로 갈아 입고 베틀 위에 앉자 함께 복무하던 군인들이 그녀의 아름다움에 깜짝 놀랬다는 이야기다

여자가 직접 전쟁터에 나가 10년씩이나 용감하게 싸웠다는 이야기는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북조 시대가 아니면 나오기 힘든 얘기라고 한다

 

반면 한나라 시대에는 "목란의 노래"에 대비되는 아주 전형적인 이야기가 전해 온다

하급 관리 초중경은 유란지를 아내로 맞아 행복하게 사는데 시어머니가 질투를 해 아내를 친정으로 쫒아내고 만다

효를 중요시 하던 초중경은 어머니의 말씀을 거역하지 못하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아내를 보낸다

그러나 유란지의 친정에서는 그녀를 태수에게 시집보내려고 한다

이 소식을 듣고 초중경이 찾아 와 신분이 높아지니 자기를 잊었느냐고 한탄한다

유란지는 오직 나에게는 당신 뿐이라면서 신혼 첫날 밤 자결을 한다

초중경 역시 따라서 목을 멘다

두 가문에 의해 청춘 남녀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나는 전형적인 서사시 "공작동남비"의 내용이다

"목란의 노래"에 나온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목란과 아주 대비되는 이야기다

 

거대한 중국 문명과 사회를 한 권으로 정의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시도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가볍게 맛을 봤으니, 중국이란 어떤 나라인가, 또는 어떤 문명인가에 대해 보다 깊은 공부를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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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이브에게는 배꼽이 있었을까
마틴 가드너 지음, 강윤재 옮김 / 바다출판사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상당히 어렵게 읽은 책이다

사이비 과학이 왜 틀린가를 과학적으로 논증한 책이기 때문에 술술 읽히지가 않았다

양자 역학에 관한 부분은 특히 어려웠다

양자 역학에 대한 개념이 부족해서 사이비 이론도 이해가 안 가는데, 왜 틀렸는가를 과학적으로 논증한 내용은 더더욱 어려웠다

그렇지만 나머지 부분은 대체적으로 수긍이 가고, UFO에 관한 내용은 황당무계해서 재밌기까지 했다

적어도 칼 세이건의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보다는 쉽다

(오래 전에 절판된 책이라 구하느라 꽤 애를 먹었는데, 막상 헌책방까지 뒤져 손에 넣고 보니 내용이 너무 어려워 읽다 만 기억이 있는 사연있는 책이다)

 

마틴 가드너라는 작가 자체가 칼 세이건처럼 과학자는 아닌 듯 싶다

그의 약력은 다만 과학 에세이스트 혹은 퍼즐 전문가 정도로만 나왔다

사실 그 점 때문에 또 하나의 말장난에 휩싸이는 건 아닌지 걱정을 했는데, 책의 수준은 그런 걱정이 기우임을 보여 준다

다만 본인의 논증 보다는 다른 과학자들의 반론을 많이 인용했다

확실히 미국 사람들은 출처 밝히기에 열심이다

 

이 책에서 제일 인상깊었던 부분은 패러다임의 틀이었다

그는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에 관한 글이 사이비 과학에 종종 잘못 인용된다고 지적하는데, 그 글은 수능 문제집에서 본 기억이 난다

언어 영역 지문에 인용됐는데, 그 때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을 처음 알았을 뿐더러, 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것들이 (이를테면 뉴턴의 만유 인력 법칙 같은) 패러다임이 변하면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패러다임이란 사물을 보는 틀이자 관점이기 때문에 패러다임이 변하면 당연히 진리도 바뀐다고 했다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는 것도 대표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다

지난 세대에는 진리라고 믿었던 창조론이나 천동설 같은 이론도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폐기되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진리들도 다음 세대가 되면 전혀 엉터리가 될 수 있다는 게 그 글의 요지였다

 

그러나 저자는 바로 이 포스트모더니즘주의가 과학과 사이비의 경계선을 모호하게 하는데 이용된다고 한탄한다

과학적 진실들은 1과 0 사이에 나열되어 있으나 우리가 진리라고 받아들이는 것들은 (이를테면 지동설과 진화론 등) 0.999999999의 가능성을 가진, 말하자면 1에 거의 근접한 것들이기 때문에 사실로 받아 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 평론가들이 흔히 이용하는 과학의 오류나 거짓, 숨겨진 이야기 따위는 사실과 분리되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성경이다

저자는 왜 성경을 과학으로 증명해 내려는가 의아해 한다

신의 말씀을 인간의 과학으로 풀어내려는 시도 자체가 사실은 신성 모독이 아니냐는 것이다

즉, 성경은 신의 말씀을 기록한 경전일 뿐이지, 자연 법칙이나 과학적 사실들을 논증한 책이 아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들은 경전이 마치 과학책이라도 되는 양, 그 안에서 과학적 사실들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여기서 바로 이 책의 제목, "아담과 이브는 배꼽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이 나온다

아담과 이브가 신에 의해 지어진 최초의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들은 부모의 탯줄을 의미하는 배꼽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아담과 이브를 그린 모든 그림들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처럼) 배꼽을 당연시 한다

창조론도 마찬가지다

이미 로마 카톨릭은 진화론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잃어 버린 고리들을 예로 들어 진화론이 허구라고 공격한다

그렇다면 화석의 존재는 무엇이고, 수많은 지질학적 증거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들은 진화론을 부정하는 대신, 그것을 대체할만한 어떤 논리적 증거나 과학적인 이론도 내 놓지 못한다

다만 모든 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식이다

 

성경에 대한 사이비 과학의 정점은 종말론일 것이다

부끄럽게도 1992년 다미 선교회 사건이 그 예로 기록되어 있다

나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 때 중학생이었는데 92년 10월에 종말이 올 거라는 광고를 보고 (그들은 뉴욕 타임즈에까지 광고를 실었다고 한다) 혹시 그 예언이 맞으면 어쩌나, 두려워 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했지만, 정작 이장림 목사는 신자들에게 거둔 돈을 다음해가 만기인 채권에 투자했다고 한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건들이 지금도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사실 신앙을 공고히 하는 지파일수록 다니엘서와 요한 계시록을 분석하여 종말론을 내세운다

다미 선교회처럼 특정 날짜를 명시해 신자들의 재산을 갈취하지는 않을지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세상의 마지막이고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며 666이라는 짐승의 숫자가 새겨진 바코드를 이마에 받고 여기서 살아 남은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한 후 천년 왕국에서 살게 될 거라는 일련의 이야기들은 너무나 익숙하다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이 최후의 심판이 우리 세대에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최후의 심판은 기독교의 기본 교리 중 하나다

그러나 성경에 흩어진 지엽적인 사실들을 교묘하게 짜 맞추어 바로 지금이 그 시기라고 주장하는 자칭 예언자들은 사이비라고 규정할 수 밖에 없다

 

UFO에 관한 믿음도 종말론 만큼이나 널리 퍼져 있다

제일 웃긴 건 정부가 이 사실을 알면서도 발표를 안 한다는 것이다

음모론이 판을 치는 미국에서 UFO에 관한 은폐설도 한 몫을 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의 존 맥이라는 정신과 교수는 외계인에게 납치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는 책을 썼다

에모리 대학의 브라운 교수는 원격 투시를 통해 외계인 세력이 멕시코에 거주한다는 책을 썼다

도대체 이런 정신병자들이 대학의 교수로 멀쩡하게 강의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다만 대학 당국은 그들이 종신 교수이고, 학문의 자유를 인정한다는 입장을 취하긴 하지만 그들이 대단한 골치거리임은 분명하다고 한다

브라운의 외계인 이주설을 들으면 영락없는 정신 분열증 환자다

과대 망상의 표본이다

대기 오염으로 화성이 황폐화 되자 다른 은하인의 도움을 받아 지구로 건너 온 화성인은 현재 멕시코 산 속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식이다

 

(정신과 인턴을 할 때 환자를 면담했는데, 그녀는 본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교시를 받고 있다고 했다 너무나 멀쩡하게 생기고 너무나 분명하게 얘기를 해서 처음에는 약간 어리둥절 했다 식사는 잘 하냐고 의례적인 질문을 했더니, 화를 내면서 나의 하나님이 밥을 굶으라고 할 만큼 나쁜 분이 아니라고 했다 안 죽을 만큼 잘 먹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얘기나 브라운의 얘기는 질적으로 다를 게 없는데 왜 한 사람은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있고, 한 사람은 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그 얘기책으로 돈방석에 앉았는지 정말 의아하다)

 

설마 브라운 같은 사람이 책을 팔기 위해, 혹은 이름을 얻기 위해 일부러 황당무계한 얘기를 지어낸 건 아닐 것이다

그런 얘기가 받아들여질 만큼 UFO에 관한 사이비 과학이 우리 시대에 널리 퍼진 것이다

식인 풍습이 일반적이라는 믿음도 저자는 사이비 과학으로 보고 있다

특수한 경우를 (이를테면 적의 시신을 먹음으로써 공포감을 조성하거나 전쟁 같은 극한 상황) 제외하고 일상적으로 사람을 잡아 먹는 풍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런 믿음이 퍼진 것은 선교사들이 전해 들은 이야기를 확인없이 책에 기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인류학자들이 조사해 본 결과 식인 풍습이 일상적인 곳은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반론이 쿠루병인데 광우병이 인간에게 발생한 것으로 파푸아 뉴기니의 원주민들이 죽은 이의 뇌를 먹는 풍습 때문에 걸린다고 알려졌다

이것을 밝힌 영국의 의사는 노벨상을 탔다

당연히 그는 식인 풍습을 지지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이 많다고 한다

저자는 아직 결론이 난 문제가 아니라고 한 발짝 비켜 선다

 

내 입장에서 제일 흥미로웠던 부분은 역시 대체의학이다

소변을 마시는 게 좋다거나 발이 몸의 모든 곳을 관장한다는 식의 믿음은 서양에도 널리 퍼진 모양이다

사내아이의 소변을 받아 마시면 정력에 좋다거나, (채만식의 태평천하에서 읽었다) 더러운 물을 마시느니 차라리 자신의 소변을 마시는 게 낫다는 식의 (홍신자의 수필집에 보면 인도를 여행하는데 물이 너무 더러워 깨끗한 자신의 소변을 마셨다고 한다) 이야기는 웃고 넘어 가더라도, (과학자들은 바다 위에서 표류할 때 조차도 소변을 마시는 건 득보다는 해가 많다고 일축한다) 반사학에 대해서는 쉽게 넘어가기가 어렵다

반사학이라고 이름 붙인 사이비 과학은 우리 식으로 보면 수지침이나 발마사지, 경락, 경혈 이런 식으로 풀이될 수 있을 듯 싶다

사실 나 역시 한의학에 대해 별 신뢰를 못하는데 요즘 신경과에서 IMS나 TPI, 테이핑 요법 등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걸 보면 침에 대한 생각도 바뀌어야 하지 않나 싶었다

흔히 발바닥은 몸의 모든 기와 혈이 모여 있어 장이 안 좋으면 어느 부위를 누르라는 식의 믿음이 꽤 통용되어 왔다

저자는 발의 특정 부위를 누르면 특정 장기에 영향을 끼쳐 치료 효과가 있다는 식의 믿음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의학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저자의 이 주장은 받아 들이기가 좀 애매하다

그는 대부분의 대체의학들을 아무 실험도 거치지 않은 채, 그저 그럴 것이다는 식의 직관에 의존해 잘못된 믿음을 설파한다고 비판하는데, 적어도 과학적인 절차를 통한 검증이 필요함은 분명한 듯 싶다

 

점성술이나 UFO, 대체 의학 등은 사이비는커녕 다양한 과학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패러다임이 변하면 어떤 것들은 진리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직관에 의해 이럴 것이다, 하는 식의 주장은 진리가 될 수 없다

어떤 주장이나 논리든지 과학적 방식에 따라 철저하게 검증한 후에서야 비로소 진리인지 아닌지 판명이 될 것이다

막연히 과학은 오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게 전부는 아니다는 식의 문학적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의 정신 의학계가 프로이드를 상상력 풍부한 과학 문예가 정도로 밖에 평가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과학적 실험 보다는 지나치게 직관에 의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건 좀 놀라운 일이다 나는 정신과 시간에 프로이드를 제일 첫장에서 배웠다 그의 이론이 이미 낡은 이론으로 변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꿈이 무의식의 욕망을 표출한다는 프로이드의 해석은, 뇌파 분석과 여러 실험들을 통해 별 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예컨데 신경증 환자를 치료하려면 꿈을 해석할 게 아니라, 약물 치료를 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그의 이론들은 여러 실험을 통해 하나씩 격파되고 있다

20세기 최고의 지식 혁명이라고 평가받는 프로이드조차 냉정한 심판을 받는데, 사이비 과학들이 아무 근거나 논증 과정도 없이 막연히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을 거다는 식으로 검증되지 않은 지식을 팔아 먹는 건 잘못된 일이다

더불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과학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기울여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원리에 대해 정확히 알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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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문명
정수일 지음 / 창비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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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마드 깐수 사건은 한동안 놀라움 그 자체였다

단국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가 사실은 북한에서 보낸 공작원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한 때 퍽 시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북한의 대남 간첩 남파는 해가 가도 끊이지 않고 집요하다는 사실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그 저자가 출소 후 자신의 학문적 지식을 책을 통해 유감없이 선보이고 있다

그가 작가나 화가 같은 예술가는 아니지만, 자신만의 학문의 세계를 저서를 통해 펼쳐 보이는 걸 보면, 예술가와 그들의 역작은 분리되어 평가할 수 밖에 없는 듯 싶다

 

사실 이슬람 문명에 대해 무척 궁금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특히 9.11 테러 이후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어 한동안 서점에 이슬람 관련 책들이 쏟아진 기억이 난다

그런데도 이슬람 하면 부정적이고 보수적이며 호전적인 생각 밖에 안 든다

이슬람 문명에 대한 정확하고 포괄적인 지식에 대한 욕구가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는 해소된 기분이다

물론 제대로 된 이해는 아직도 요원하지만 말이다

 

일단 이 책을 읽고 싶으면 이슬람에 대한 공부를 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루해서 읽다가 덮게 될지도 모른다

이슬람 문명에 대한 권위있는 전문가이고, 또 교수라는 신분 때문인지 마치 교과서처럼 기술했다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도 첫째, 둘째 이런 식으로 하나 하나 짚어가면서 교과서식으로 나열한다

참고했던 책들도 대학 교제들이 많았다

사실 보다 에세이적이고, 비판적인, 또 분석적인 책을 기대했는데 이건 너무 교과서적이라 잔재미가 부족하다

그렇지만 어떤 책 보다도 이슬람 문명에 대해 전통적이고 학문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객관적이라 할 만 하다

 

이슬람을 이해하는 첫 단계는 이슬람교가 정교합일의 원칙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불교는 말할 것도 없고, 기독교 역시 종교와 정치는 확연히 분리되어 있다

발전된 종교일수록 정교 분리가 분명하다고 알고 있는 나로서는 다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이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도 낯설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나 이란의 호메이니처럼 종교 최고 지도자가 바로 정치를 지배하는 사람과 동일시 된다

이것이 옳은 일인가, 그른 일인가를 떠나서 그들의 전통이고 교리라고 하면, 문화 상대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타 문명인들이 왈가왈부 할 일이 아니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슬람교의 꾸르안은 (코란의 원어식 발음이라고 한다 꾸란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단어냐고 작가는 한탄한다)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부분만 강조하는 여타 경전과는 다르게, 이슬람인의 모든 생활을 통제한다

정치, 경제, 문화, 도덕, 예술 등등 사회 전반에 걸쳐 이슬람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가를 가르친다

 

그래서 나온 독특한 제도가 바로 무이자 은행이다

꾸르안은 상업 활동은 장려하나 이자 놀이는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근로 소득이 아니라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슬람인들은 이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 지금도 무이자 은행이 전체의 20%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이슬람인들이 경전의 가르침을 어떻게 지켜 나가야 하는가는, 대단히 어려운 문제라 할 수 있겠다

 

서구인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여성에 대한 억압이다

전 책에 걸쳐 일관되게 이슬람 문명을 옹호하고 있는 저자는 이것 역시 이슬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편견이라는 식으로 말한다

남자들은 정욕이 강하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고, 남자 역시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해 여성이 바깥으로 나갈 때는 히잡을 쓰도록 한다

이것은 의무 사항이 아니고 다만 보호 차원에서 권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히잡을 두른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교가 여성들을 억압시킨다는 비난은 거둘 수 없을 것 같다

어떤 종교나 문화든지 근본적인 뜻은 바람직하고 좋다

유교 문화 역시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바깥 출입을 삼가게 하고 집에 가두었다

근본 취지가 좋다고 해서 현실 생활에서 반드시 바람직한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아내를 넷까지 둘 수 있다는 교리가 전쟁 때 미망인들을 거두기 위한 여성 보호책의 일종이었다고 말하지만, 근본 취지와는 다르게 여성들의 지위를 남편에게 종속시켰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히잡 역시 근본 취지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슬람 여성들을 사회적으로 억압해 왔다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여성에게도 똑같은 권리와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은 어떤 문화나 종교를 막론하고 당연시 되야 할 보편적인 가치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종교가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가, 그 의미에 대해 좀 더 비판적인 관점을 견지할 필요가 있을 듯 하다

 

명예 살인은 여전히 이슬람 사회에서 자주 일어나는데, 이것은 명예, 특히 가족의 명예를 중요시 하는 태도 때문이라고 한다

간통을 한 여자를 남편이 아닌 그녀의 친정 아버지나 오빠, 남동생 등등이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살해를 저지른다

이것은 공공연한 관습으로 쉽게 처벌되지 않는다고 한다

명예 살인이야 말로 (명예라는 말을 붙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이슬람 여성 인권의 현주소를 보여 주는 극명한 사례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좀 더 보편적인 관점에서 이슬람을 들여다 봤으면 훨씬 더 흥미로운 책이 되지 않았을까, 아쉽다

 

지하드는 서구 사회에서 가장 비난받는 개념이다

흔히 성전이라고 번역하는데 적절한 단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지하드라고 말하는 게 낫다고 한다 (일본 천황을 덴노라고 그대로 부르자는 주장처럼)

지하드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개인의 삶을 신앙에 전력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알려진 것처럼 신앙을 지키기 위해 사회적으로 전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자신의 전력을 기울이는 방법이 반드시 폭력적일 필요는 없다

지하드 자체가 폭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다만 전술로써 전쟁이나 자살 테러 등을 택할 수는 있다고 본다

호전적인 교파에서는 이 지하드를 이슬람의 5대 의무 중 하나로 끼워 넣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지하드는 기본 의무가 아니다

요즘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자살 테러 등은 이슬람의 근본 교리를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슬람은 절대 호전적이지도 않고 폭력적이지는 더더욱 않다

 

이슬람인이라면 꾸르안의 규정에 따라 6가지를 믿어야 하고, 5가지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알라, 경전, 천사, 예언자, 정명(일종의 숙명 내지는 운명), 말일(최후 심판) 등 여섯 가지를 믿고, 단식(라마돤 한 달 동안), 성지 순례(일생에 한 번 이상), 예배(하루 다섯 번), 믿음(알라와 그의 예언자 무함마드를 믿는다는 고백), 적선(일정 금액을 가난한 이들이나 사원에 희사) 등이다

이슬람인들은 신은 알라 뿐이고, 그가 보낸 예언자 무함마드를 믿는다는 구절을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한다고 한다

꾸르안이라는 말 자체가 읽음이라는 명사인 만큼 그들은 자신의 경전과 믿음을 끊임없이 소리내어 말한다

하루 다섯 번의 예배는 메카를 향해 10분 남짓 시행되는데, 이렇게 바쁜 시대에 그 계율을 어떻게 지키겠냐는 서구인의 비아냥에 이슬람인들은 가볍게 웃으면서 대답한다고 한다

"담배 피울 시간에 하면 되지요"

이슬람인들이 거주하는 중동 지역은 대부분이 사막이라 단식에 들어가면 해 지기 전에는 물 한 방울도 마실 수 없기 때문에 무척 괴로운 일이다

저자는 이 의무를 자기 절제라는 식으로 해석한다

한 달씩이나 해 지기 전까지 음식은 물론 물 한 방울도 마실 수 없고, 한 달 내내 성교나 매매 등도 금지되는데 이러한 훈련을 통해 신에 대한 믿음을 키우고, 욕망을 억제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모든 종교나 문화의 의식들에는 다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걸 되새겨 보면 수긍이 간다

 

정명이라는 개념은 다소 어려운데, 이에 반하는 것이 자유의지이다

인간이 처음부터 신에 의해 운명지워져 있는 존재라면, 세상을 살면서 죄짓는 것도 다 신의 뜻 아니냐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도 자유 의지는 중요한 개념이다

이미 여호와는 인간이 죄지을 것을 알고 있었는데 왜 창조했는가에 대한 의문들이 많다

결국 이것은 자유 의지로 설명된다

신은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느냐, 마느냐는 태어나기 전부터 숙명지어진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면서 인간의 의지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슬람교 보다는 기독교가 훨씬 더 운명론, 혹은 예정설을 중요시 한다

흔히 알려진 칼뱅의 예정설만 봐도 이미 구원은 태어나기 전부터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은 그저 열심히 자기 일만 하면서 살면 된다고 했다

 

이슬람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들 중 역시 가장 마음에 든 부분은 마지막 결론이었다

저자는 요즘 유행하는 문명 충돌론을 거부한다

원래 문명이란 이질적인 것들이 만나 교류를 통해 더 나은 것으로 발전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금의 현실은 충돌이 아니라 교류 과정에서 나오는 사소한 부작용에 불과하다고 본다

흔히 우리 나라는 이슬람과 별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극동에 위치한 은둔의 나라 코리아도 오래 전부터 이슬람과 교류를 해 왔다

이미 이슬람 지리서에는 신라가 황금이 많은 이상향으로 묘사되고, 그 위치까지 지도에 나온다

고려 시대에는 이슬람인을 우대한 몽고에 의해 교역이 활발했고,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많은 이슬람인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고 한다

덕수 장씨나 경주 설씨는 대표적인 회회인들이다

이처럼 고래로부터 아무리 멀리 떨어진 문명이라 할지라도 서로 교류하면서 발전해 왔다

이제 와서 새삼 문명의 충돌 운운하면서 위기인 것처럼 떠들어 대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태도라고 일축한다

문명이란 본시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기 마련이라고 저자는 문명 진화론을 적극 옹호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13억 인구를 아우르고 있는 이슬람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고 정확한 지식을 얻자고 한다

원활한 문명의 교류를 위해서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확실히 우리가 (혹은 내가) 서구 중심 문화에 젖어 있음을 알게 됐다

우리가 서구 문화권에 살기 때문에 60억 인구가 모두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세계화는 곧 서구화라고 믿은 것이다

산업 혁명 이후 서구 문명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세계의 1/5을 담당하는 이슬람 문명 역시 중요한 축이라는 걸 간과했다

또 반드시 서구 문명이 가장 선진화 됐고, 가장 이상적이라는 식의 잠재의식도 버려야 할 것 같다

저자의 말처럼 여러 문명이 서로 교류하는 과정에서 보다 이상적인 문명으로 진화한다는 열린 사고를 가져야 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낯선 문화에 대한 편견을 어느 정도 벗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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