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읽는 중국
이익희 외 지음 / 일빛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이슬람 문명"을 읽을 때도 느낀 거지만, 인류 역사에 획을 그은 대문명들을 한 권의 책으로 다 보여 주겠다는 생각 자체가 욕심인지도 모른다

저자들 역시 거대한 중국 문명과 사회를 한 권에 몰아 넣느라 고생 좀 했을 것 같다

도대체 어떤 걸 넣고, 어떤 걸 빼야 할지, 다 중요한데 아마 감잡기 힘들었을 것이다

앞으로는 한 분야만 다룬 책을 읽어야겠다

너무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다 보니 수박 겉핥기 식의 서술을 피하기 힘든 것 같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중국에 대한 개념 잡기에는 좋은 책이다

 

이 책의 장점을 들자면 중국 공산당 성립 배경과 현대 중국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서술이다

그 동안 중국 하면, 막연히 역사책에서 배운 내용이 다였는데, 현대 중국이 어떤 발전 과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는지 현대의 역사를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장쩌민에 이르는 중국 공산당의 정권 교체와 개혁 개방에 대한 자세한 서술이 마음에 든다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의 기초 이념을 세운 사람으로, 문화혁명의 과오가 있긴 하지만 전 중국 인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인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개혁 개방 이후 소득 격차가 커지면서 도태된 중국 인민들은 가난했지만 평등했던 마오쩌둥 시절을 그리워 하고 텐안문에 걸린 마오의 사진 아래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흔히 관찰된다고 한다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 하는 이유가 그 때의 독재나 권위주의로 돌아가고 싶은 게 아니라, 현재의 상황이 워낙 나쁘기 때문에 도피처로써 그리워 하는 것처럼, 마오쩌둥 숭배도 마찬가지라고 진단한다

 

덩샤오핑은 시장 경제를 섞은 중국식 사회주의를 지향한다

현재 중국의 경제는 더 이상 사회주의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한다

사회주의의 핵심은 공유제와 국영 기업 등인데, 이미 중국의 상당수가 사유 재산을 소유하고 있고, 많은 공기업들이 민간화 됐다고 한다

계획 경제를 한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바뀌지 않듯, 시장이 생성된다고 해서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로 변하지 않는다는 게 덩샤오핑의 경제 철학이다

중국의 개방은 예상과는 다르게 훨씬 이전부터 진행됐다

마오쩌둥이 죽고 덩샤오핑이 집권한 78년부터 중국은 개혁, 개방 노선을 걸었다고 한다

다만 정치는 여전히 공산당의 1당 독재와 사상의 자유를 탄압하기 때문에 89년에 텐안문 사태 등을 맞기도 했다

 

중국의 소수 민족 지원 정책은 다소 독특하다

대부분 인구의 1% 민만의 소수 민족들은 다수 민족에게 흡수, 통합되도록 하는데 중국은 다민족 국가를 표방하는 만큼, 그들의 권리와 문화를 지키도록 장려한다

현재 중국의 소수 민족은 다수인 한족에 비해 약 1% 정도라고 한다

하긴 워낙 중국 인구가 많으니가 1%라고 해도 1억이 넘는다

구 소비에트 연방과는 달리 사회주의가 무너지더라도 소수 민족이 독립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한족이 워낙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티벳족을 제외하고는 독립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중국의 가능성에 대해 많은 점수를 주고 있다

2020년이면 미국을 따라 잡을 것이라는 성급한 판단도 나오고 있다

중국을 주목하는 이유는 넓은 땅덩어리와 풍부한 인적 자원 때문일 것이다

이미 중국은 개방 정책 후 세계 경제 7위의 대국이 되었다

과연 시간이 지나면 중국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것인가?

이렇게 가능성이 풍부한 중국이 현대 이후 왜 후진국으로 남아 있었던 것일까?

사회주의 체제 때문이었을까?

중국이 자본주의를 택했다면 오늘날 중국의 위상은 전혀 달랐을까?

왜 중국이 지금까지 잠든 거인으로 있었는가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듣고 싶다

 

중국이 갈수록 동북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키울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일본과는 경쟁 관계가 될 것이고, 그 사이에 낀 우리 나라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현재 중국은 한류 열풍이 거세지만, 경제 개발을 먼저 이룩한 나라에 대한 동경 때문이지, 결코 한국 자체를 지도적인 국가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므로 중국이 경제 개발을 진행하면 다시 중화 사상에 입각해 한국은 언제든지 한 수 아래의 피지배 국가로 생각할 수 있는 일이라고 저자들은 경고한다

중국이 현재의 기대치만큼 성장을 하게 되면 동북 아시아의 새로운 맹주에 대해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고 한다

고구려처럼 독립적인 위치를 지킬 것인지, 신라나 조선처럼 중국적 가치를 내제화 시킬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중국에 대해 정확한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

 

중국 문장가들 중 제일 감동적인 사람은 소식이었다

소식이라면 아버지와 동생까지 모두 당송 8대 문장가에 든 사람인데 왕안석의 신법에 반대하여 평생 귀양지를 떠돌다 죽은 불행한 천재라고 한다

그의 시 중 다음과 같은 부분이 소개되었는데 무척 인상깊다

 

"천지간에 사물은 스스로 주인인 바, 내가 갖고 싶어도 털끝 하나 소유할 수 없지요

하지만 강가를 스치는 맑은 바람, 산 너머 휘영청 밝은 달, 내가 귀로 들어 소리가 되며, 내가 눈으로 보아 형체를 이룹니다

그러니 누구든 갖고 싶은면 막을 것 없고, 아무리 써도 고갈되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조물주의 보물이라서, 저와 당신이 함께 즐기는 이치인 것입니다"

 

천지간의 사물은 내가 인지함으로써 비로서 형체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달려 있다는 그의 멋진 인생관이 돋보이는 시다

한시를 감상할 줄 모르기 때문에 그 깊은 뜻과 참맛을 몰랐다는 생각이 든다

 

북조 시대의 목란 이야기도 재밌다

디즈니 만화 "뮬란"으로 각색된 이야기인데, 정말 통쾌하다

아버지가 전쟁터에 징집됐는데, 대신 나갈 아들이 없어 목란은 남장을 하고 군대에 간다

10년의 전쟁 동안 목란은 큰 공을 세우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본래의 옷으로 갈아 입고 베틀 위에 앉자 함께 복무하던 군인들이 그녀의 아름다움에 깜짝 놀랬다는 이야기다

여자가 직접 전쟁터에 나가 10년씩이나 용감하게 싸웠다는 이야기는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북조 시대가 아니면 나오기 힘든 얘기라고 한다

 

반면 한나라 시대에는 "목란의 노래"에 대비되는 아주 전형적인 이야기가 전해 온다

하급 관리 초중경은 유란지를 아내로 맞아 행복하게 사는데 시어머니가 질투를 해 아내를 친정으로 쫒아내고 만다

효를 중요시 하던 초중경은 어머니의 말씀을 거역하지 못하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아내를 보낸다

그러나 유란지의 친정에서는 그녀를 태수에게 시집보내려고 한다

이 소식을 듣고 초중경이 찾아 와 신분이 높아지니 자기를 잊었느냐고 한탄한다

유란지는 오직 나에게는 당신 뿐이라면서 신혼 첫날 밤 자결을 한다

초중경 역시 따라서 목을 멘다

두 가문에 의해 청춘 남녀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나는 전형적인 서사시 "공작동남비"의 내용이다

"목란의 노래"에 나온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목란과 아주 대비되는 이야기다

 

거대한 중국 문명과 사회를 한 권으로 정의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시도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가볍게 맛을 봤으니, 중국이란 어떤 나라인가, 또는 어떤 문명인가에 대해 보다 깊은 공부를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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