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1 - 개정판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도무지 공감이 가지 않는 소설이다

한 번은 읽고나서 비판을 하던가 해야 하는데, 중간에 덮고 말았다

나랑은 안 맞는 책이다,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양귀자의 "모순"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양귀자라면 이상 문학상도 수상하고, 나름대로 인정받은 (즉 실력있는)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모순"이라는 책이 전형적인 통속 소설에 불과해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훌륭한 작가라고 해서 그가 쓴 모든 책들이 다 훌륭할 수는 없겠지

그렇지만 최소한 어느 정도 수준은 되야 하는 거 아닐까?

이문열이 쓴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라는 소설이 있다

그는 후기에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하지만, 유난히 더 아픈 손가락이 있기 마련이라며, 이 책은 자기 기준에 못미친다는 걸 솔직히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문열이라는 작가가 주는 무게감에는 충분히 합당한 괜찮은 소설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런데 이 책,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은 아무래도 그 일정 기준에 모자란 느낌이다

작가의 다른 책은 안 읽어 봐서 모르겠는데, 어쨌든 이 책은 문장력이 떨어진다

19쇄까지 펴냈다고 하는데, 실망스럽다

 

첫부분은 마음에 와 닿았다

모든 인간 관계가 사실은 권력에 기초한다는 얘기로 시작한다

나는 작가가 미셸 푸코의 글을 읽고 쓴 거라고 확신한다

주인공 인혜는 중고교 시절부터 세진을 무척 좋아한다

그녀가 가지고 있지 않은 부러운 특성들을 세진이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진의 마음에 들고 싶어 공부를 열심히 할 정도였다

그런데 세진은 인혜에게 별 관심이 없다

둘이 자취를 하며 함께 살 만큼 친밀한 관계임에도 세진은 인혜에게 어떤 의존성도 갖지 않는다

나중에야 인혜는 세진이 자신에게 부러워 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사실 세진은 인혜를 대단히 부러워 했다 결손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행복한 인혜의 가정을 부러워 하고, 인혜에게 의존하게 될까 봐 먼저 인혜에 대한 감정을 거둔다 세진은 말하자면, 컴플렉스를 가진 여자다)

 

소녀 시절에는 특히 동성 친구에게 빠지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갖지 못한, 부러워 할만한 특성들을 가진 주위의 친구에게 빠져든다

단순히 돈이나 지위 같은 것과는 다르다

인격적 특성에 매력을 느낀다

그래서 흔히 남성적 매력을 풍기는 선머슴 같은 여자애는 뭇 여학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곤 한다

 

나이가 들면서 이성에게 마음을 뺏기고 나면, 여고 시절 반했던 동성 친구의 매력은 사그러 들게 마련이다

이제 좀 더 성숙한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다

인혜는 남자를 만나면서 세진에 대해 느끼던 부러움이나, 기타 권력 관계를 형성하던 것들이 사실은 별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세진을 잊는다

 

여기까지가 내가 마음에 든 내용이다

모든 인간 관계는 권력에 기초한다는 미셸 푸코의 말에 나는 상당히 동의하는 편인데, 소설에서는 어린 시절 성장기의 삽화들을 통해 잘 그려냈다

그런데 이 다음부터는 도무지 공감이 안 간다

남편의 성불능 때문에 이혼한 인혜는 너무나 손쉽게 남자들을 만난다

인혜라는 여자의 캐릭터가 매력적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소설이기 때문인지, 이혼녀가 사랑을 쟁취하는 과정이 너무나 쉽고 간단하다

남자를 유혹한다

남자가 넘어 온다

같이 식사를 하고 모텔로 들어간다

이게 그녀의 사랑 공식이다

이혼녀가 남자 유혹하는 게 정말 이렇게 쉬울까?

 

세진이 어린 시절 상처 때문에 불안증을 앓고 있는 부분도 공감이 가지 않는다

책 광고에서는 정신 분석을 통한 30대 여성의 자아 발견이라는 식으로 이 부분을 강조하던데, 나는 도무지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지 않는다

사변적이고 말 그대로 소설적일 뿐이다

정신 병원에서 상담도 받고 법사에게 내림굿도 받는데 그 과정들이 너무나 통속적이고 뻔하게 읽힌다

법사가 세진의 몸에서 귀신을 쫒아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정말 이런 의식을 통해 고통받던 사람이 편해진다면 그것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칼 세이건의 논리를 믿는 나로서는, 점성술 등을 포함해 이런 의식의 진실됨을 믿을 수가 없는데 그렇다면 이건 플라시보 효과일까?

무의식을 괴롭히던 존재를 쫒아 버렸다고 환자를 안심시킴으로써 불안증을 가라앉히는 것일까?

 

결국 책을 덮고 말았다

줄거리도 별로 궁금하지 않다

특별한 결말이 없을 게 뻔하니까

통속 소설과 문학 소설을 구분짓는 기준은 문장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소재나 주제들은 사실 다 통속적이다

책의 수준을 결정짓는 건 작가의 역량을 드러내는 문장력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그 점에서 실망스럽다

양귀자의 "모순"을 읽었을 때와 똑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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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 2012-01-02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이 여자의 사변적인 소설이 그렇게 좋기만 하던데..... 마린님은 별 두개 밖에 안되나 보네요. 책을 선택하는 기준도 사랑을 선택하는 기준 만큼이나 제 각각이군요.

그 밖에 앞에있는 책들에 대한 별 점은 대부분 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