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된 학교 - 한 사회학자의 한국교육의 패러다임에 대한 지적 성찰
김덕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인물과 사상사에서 나온 책은 색깔이 너무 분명해 간혹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사실 이 책도 흥미있는 제목과는 달리 주관적인 견해나 감정 과잉이 많아 초반에는 거부감이 많이 들었다
그렇지만 뒤로 갈수록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이해가 되고 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진중권의 책에서도 느낀 바지만 일명 진보주의자들이 추종하는 이념은 다름 아닌 개인주의임을 느낀다
저자의 지적처럼 우리는 개인주의라고 하면 이기주의를 연상시키는데, 그만큼 전체주의적 사고 방식에 경도되어 있다는 의미도 된다
서구 시민 혁명의 전통이 없는 한국에서 비록 그들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받아 들였으나 그 밑바탕이 되는 개인주의나 사회적 연대감이 약한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 같다
저자는 독일에서 유학한 후 그들의 교육 방식이나 사회를 모델로 삼았다
선진국과의 비교는 때로 위험하기도 하다
우리보다 잘 살기 때문에 무조건 그들의 제도가 옳다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문제 없는 사회가 어디 있겠는가?
또 그 사회만의 특수성이라는 것도 있다
그렇지만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지적은 참고할 필요가 있다

교육 문제는 저자의 표현처럼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우리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대입 전형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쏟는가?
수험생을 둔 학부모라면 대입 정책에 비상한 관심을 쏟기 마련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사교육의 왕국 아닌가?
강남 엄마의 반대는 그냥 엄마라는 말도 있다
고액 과외가 판치고 오직 명문대 입학을 위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을 질주하는 게 대한민국 학생들의 현실이다
분명히 우리나라 교육 제도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있다

제일 문제시 되는 것이 주입식 교육이라고 하는데, 요즘은 또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주로 조선일보 같은 보수 언론에서 하는 얘기다
미국 공교육의 학력 저하를 예로 들면서, 일정 지식은 주입식 교육으로 집중해서 전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주입식 교육으로 일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토론하고 연구하는 방식을 배운 적이 없으니, 학생들에게 알아서 공부하라는 말은 어찌 보면 무책임하기까지 하다
현대 사회의 교육 목표란 저자의 말처럼 주체성을 가지고 사회와 관계 맺는 법을 배우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전근대적인 목표, 즉 사회가 원하는 노동력 제공에 매달려 있다
짧은 기간의 경제적 근대화를 이룬 대신, 여전히 전통적인 가치관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문화의 특징은 전체주의다
전체주의란 감시와 처벌을 통해 개인을 통제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대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성에 있는데 전체주의와 아주 상극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유시민의 책에서도 읽는 것이지만, 제발 국론 분열 걱정 좀 하지 말자고 한다
다양한 의견을 내 놓고 하나의 합일점을 찾아 가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인데, 우리 사회는 언제나 일사분란 하게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전체주의를 원한다
그야말로 조국 근대화에 온 국민이 매진해야 하는 박정희 시대의 정신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다는 얘기다
한 사회를 선진국으로 규정하는 것은 경제적인 성장 외에도 사회 구성원들의 정신적 성숙도 포함되지 않을까?
개성과 주체성을 가진 개인들이 보여 사회적 연대를 이루는 사회, 이것이 바로 현대 국가가 지향해야 할 목표일지 모른다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또 들자면 대학의 서열화다
이건 정말 고질적인 문제라 새롭지도 않다
그래도 요즘은 대학이 늘어나고 가치관이 다양화 되면서 대학보다 과가 중요시 되고, 선망하는 직업도 달라졌지만 여전히 서울대가 주는 무게는 무겁기만 하다
강준만이 서울대 망국론을 들고 나오면 서울대 못 나온 놈의 학벌 컴플렉스라고 들을 생각조차 안 한다
서울대라는 엘리트 교육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서울대를 위해 돌진하는 교육 시스템이 문제라는 말이다
왜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이 서울대 컴플렉스를 느껴야 하는가?
차라리 프랑스처럼 정말 소수가 들어가는, 최고의 엘리트 집단으로 만들어 국가를 이끌 싱크 탱크로 활용할 수는 없을까?
지금처럼 비대해진 대학에서 쏟아져 나온 졸업생들이 특권층을 형성하는 구도는 문제가 많다
더구나 서울대는 모든 과가 다 한국 최고다
저자는 이런 예를 든다
한국 외대의 러시아학과가 전통을 자랑하며 최고의 권위를 가졌더라도 어느 날 서울대에 러시아학과가 개설되면 그 때부터 외대는 무조건 2등으로 떨어진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대학의 현실이다
무조건 서울대가 만들면 최고다

서울대의 엘리트 교육이 문제가 아니다
최고라는 자부심이 학구열을 높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서울대를 선두로 하여 모든 대학이 서열화 된다는 것이다
미국처럼 아이비 리그라고 해서 여러 개의 명문 대학이 생기면 좀 더 나을 것 같다
그래야 서로 경쟁하며 더 발전하지 않겠는가?
저자는 대학의 바람직한 목표를 전문화와 특성화로 잡는다
사실 그래야 대학의 존재 이유가 생긴다
모든 대학이 서열화 되면 저자이 표현처럼 연세대는 서울대가 없어지지 않는 한 죽었다 깨나도 절대 1등 대학이 될 수 없다

사실 대학 교수 집단이 폐쇄성도 문제가 많다
같은 대학 같은 과 출신만 뽑는 관행에 대해, 저자는 동종교배와 근친상간이라고 일갈을 가한다
정말 딱 맞는 얘기다
근친상간은 유전적 결함이 많고 다양성이 상실되서 열등한 생물을 낳는다는 건 기본 상식이다
다양성이 사라진 사회에 무슨 발전 가능성이 있겠는가?
최고의 지성인이라는 집단이 더욱 배타적인 법이다
책에서 배운 가치를 현실에서는 절대 써 먹지 않는 지성인 집단의 모순이라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 사회에 교수로 채용되는 일이 심심치 않은데, 그 나라라고 해서 편견이나 배타성이 없을 리 없다
다만 우리보다 훨씬 개방적인 태도로 학문의 다양성을 위해 아무 빽 없는 유색인종도 채용해 주는 것이리라

요즘 한창 문제가 되는 교실의 붕괴도 교육하는 쪽의 책임이 크다
학생들은 점점 다원화 되고 개성을 드러내는 쪽으로 나가는데, 학교는 여전히 감시와 처벌을 통해 근대적인 인간을 만들려고 한다
사실 체벌이야 말로 당장 사라져야 할 악습이라고 생각한다
때려서 교육시킬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개인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저자는 중고교 교실의 붕괴보다 대학 강의실의 붕괴가 먼저였다고 말한다
옛날에는 대학생 수가 적고 교수의 권위도 높아서 강의 시간에 졸 망정 떠들거나 휴대폰 통화를 하지는 않았지만, 대출이나 딴 짓 등 수업 참여율이 현저히 낮기는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요즘은 대학생 수가 늘고 교수의 권위도 예전 같지 않으므로 대놓고 떠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수의 권위는 누가 세워야 하는가?
학문의 연구를 통해 교수 자신이 세워야 한다
더 이상 교수라는 직책이 주는 위압감이나 권력만으로 학생들을 통제할 수 없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교사가 커뮤니케이션을 지도한다고 한다
즉 세미나 형식으로 학생들에게 주제를 준 후 자기들끼리 토론을 하면 교사는 그 과정을 원활하게 조정해 주는 것이다
또 숙제를 낸 후 부모가 아이 학습을 지도할 수 있도록 학부모와의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하다
독일 교사들은 이 커뮤니케이션을 잘 지도할 때 교사의 권위가 생긴다고 말한다
저자도 인정한 바지만 세미나 형식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사실 학생들의 수준이 제각각인데 일정 지식을 먼저 암기해 놓지 않으면 제대로 된 토론 수업을 하기 힘들 것이다
나도 해 봐서 알지만 이런 세미나 형식은 능동적인 대신 효율성이 떨어진다
기본적으로 암기해야 할 지식들이 많은 상태에서는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렵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러한 의사소통 방식 정도는 학습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의 문제점이라고 지적되는 토론 문화의 부재는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학 교양이 테마 중심이어여 한다고 주장한다
일리있는 말이다
중고교는 그렇다 쳐도 적어도 대학이라면 일단 기본적인 지식이 있는 상태이므로 더 이상 단순 나열식의 교육은 도움이 안 된다
테마를 잡아 보다 깊이 있게 파고 들고 또 각자의 견해를 제시하는 세미나 형식의 수업이 훨씬 유용할 것 같다
전공은 몰라도 교양은 테마 중심이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바다

우리 교육의 문제는 지나친 도덕주의에 있다
사유하는 방식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도덕적인 인간을 만드려고 한다
하긴 그렇게 도덕 강조하면 왜 이렇게 부정부패가 많은가?
도덕 자체를 스스로 내면화 시킨 것이 아니라 집단의 규율로써 받아 들이므로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아주 마음에 드는 대목이 있다
철학이란 인간교육을 시키는 지적 수단이 아니라 문화, 우주, 세계, 존재, 자연, 윤리 등의 주제에 대하여 엄밀하고 체계적이며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사유하는 지적, 정신적 능력을 배양하는 학과목이라는 것이다
엄밀한 과학으로서의 철학이라!!

흔히 생각하기에 철학이란 윤리 과목일 것 같은데 인성 교육하는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학교가 윤리적 인간 양성을 포기하고 지적이고 학문적인 전문인 양성에 뜻을 둔다면 보다 합리적인 교육이 이루어질까?
하긴 사회도 구성원들을 윤리적으로 교육시키려는데 학교는 오죽하겠는가?
제발 개인의 도덕성은 개인에게 맡겨 두면 좋겠다
외제 승용차 타고 다닌다고 부유층 도덕성 운운하는 시대착오적인 기사도 그만 나오면 좋겠다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왜 책을 읽는가?
요즘 같은 무한경쟁 시대에 한가로이 인문학 서적이나 붙잡고 있어도 될까, 문득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내가 잠자는 시간을 쪼개 가면서 굳이 책을 읽는 이유는 단순한 재미도 있지만, 그보다는 책에서 얻는 지식과 깨달음을 통해 내 삶을 보다 가치롭고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서다
그런데 정작 내가 책에서 얻은 것을 실제 생활에 적용하는가?
자신이 없다
그저 한 번 읽고 감동하고 그것으로 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카프카의 말처럼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같은 책이 아니라면, 대체 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책을 읽는다는 말인가!!

다원화 사회에 절대 가치란 없다
내 의견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나도 주체성을 가진 개인으로 공동체와 관계를 맺고 싶다
애국심이나 민족주의에 경도되지 않고 내 개성을 드러내며 신념에 따라 사회적 연대를 이루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한민국사 - 단군에서 김두한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기대만큼 아주 재밌지는 않다
역시 출판사가 책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일까?
한쪽으로 치우친 느낌도 없지 않다
특히 미군에 관한 내용을 읽을 때는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다
균형잡힌 시각이란 환상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지만 누구나 옳다고 생각하는 보편 타당한 길도 있는 거 아닐까?

친일파에 관한 변명은 수긍이 간다
나치 치하에서 겨우 4년 있었던 프랑스와 36년 일제의 지배를 받은 우리나라와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명분을 내세워 작은 꼬투리까지 들춰내 정쟁의 도구로 삼는 요즘 행태는 마음에 안 든다
또 어쩔 수 없이 그 시대를 살면서 크고 작게 일제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민족에 의한 해방이 됐더라면, 그래서 일제에 동조한 사람이 권력을 잡지 못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국력 낭비는 없었을텐데 참 아쉽다
그렇지만 항일 무장 세력이었던 김일성조차 친일파를 전면 처단하지는 않았다고 하니, 오늘날의 친일파 처단 논란은 희화화된 느낌이다

저자는 우리의 가장 큰 문제를 개인주의의 부재라고 본다
시민 혁명을 거치지 않고 직수입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현대 사회의 기본이 되는 시민 의식을 심어주지 못했다
프랑스에서 여성이 참정권을 얻은 게 1945년인데 우리는 1948년에 거저 획득했으니, 우리나라가 여전히 남성 우월주의에 시달리는 것도 이해가 간다
진보주의자들이 박정희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독재자였고 한국 사회를 권위주의 내지는 전체주의로 물들였기 때문이다
주체성을 가진 개인의 부족, 또 그 개인끼리의 연대 의식 부재, 이 결핍을 애국심과 민족주의로 묶으려고 하니 늘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 했는데 기득권층은 왜 최소한의 사회적 의무도 도외시 하는 것일까?
사회에서 특권을 누리는 만큼 그 권력을 도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의무조차 거부하는 요즘의 사태가 참 안타깝다
대표적인 것이 병역의 의무다
왜 그렇게 군대 빠지는 놈들이 흔한가 했더니, 인구가 늘어나 지원병이 너무 많기 때문이란다
빽 있는 놈들은 다 빠지고 서민층만 군대로 끌려가는 요즘의 세태는, 역사책에 나오는 군역 폐단과 다를 게 없다
최소한 병역 의무만은 특권층일수록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회적 책무라는 인식이 확산될 수는 없을까?
이회창 아들들의 병역 면제로 그렇게 떠들썩 한 것도 다 사회적 공분의 표현이다

레드 컴플렉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권력층은 사회주의를 철저하게 억눌렀다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다더니만, 무슨 얘기만 나오면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난리를 친다
연좌제는 또 어떤가?
요즘 같은 민주주의 사회에 가족의 죄로 같이 처벌받아야 하다니, 정말 미친 사회 아닌가?
노무현 장인의 경력을 두고 한나라당에서 문제 삼았다는 말은 참 코메디 같이 들린다
그 동안 권력층은 반공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함부로 휘둘러 왔나?
민족과 반민족의 대립 구도가 되야 할 것을, 어처구니 없이 반공과 공산주의로 양분됐으니, 한국사의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친일파들은 반공을 무기로 내세워 여전히 권력을 유지했다
슬픈 역사의 산물인 그 놈의 진절머리 나는 반공을 아직도 심심찮게 입에 올리는 일명 보수 세력들!!

현 대통령의 권력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실은 지난 정권까지 엄청난 권력을 휘둘러 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조중동의 언론 탄압 발언은 웃기지도 않다
보수라는 이데올로기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라 제발 그 이념을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보여 달라는 것이다
사회적 의무는 전혀 도외시 하면서 오직 특권만 누리려고 하는 이른바 지도층 인사들의 한심한 작태는 차라리 모르는 게 속 편할 정도다
그래도 조선 시대 선비들은 절개라도 있었지만 현 기득권층에게는 기대할 것이 없다
이문열은 자신이 보수라고 주장하지만 막대한 상업적 이익을 취하고 있음을 모른 척 한다
보수든 진보든 자기 이념이나 이데올로기에 따른 최소한의 도덕적 책무는 수행해야 하는 것 아닐까?

단군 아래 한 자손이란 말도 실은 폐쇄적인 민족주의의 발로라고 한다
외국인 노동자 차별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백인에게 멸시당하면서도 동남아인들을 똑같이 멸시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어찌 해야 할 것인가?
일본의 한국인 학살을 비판하려면 우리의 베트남 학살도 똑같이 반성해야 한다
열린 마음과 편견없는 태도란 이렇게 어려운 문제인가?

맥아더 장군에 관한 얘기는 상당히 쇼킹했다
인천 자유 공원에 맥아더의 동상이 있는 걸 당연시 했는데 임진왜란 당시 이여송의 사당과 비슷하다는 것을 읽고 충격받았다
역사책에서 명나라를 받드는 장면을 읽을 때마다 한심하고 분노했는데, 정작 우리 역시 미국에 대해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니!
맥아더는 원자 폭탄까지 투하해 한국 전쟁을 마무리 짓자고 했다가 트루먼에게 해임당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처럼 나 역시 맥아더가 끝까지 밀고 나갔으면 통일되지 않았을까 아쉬워 했다
그런데 가만이 생각해 보면 만주에 원폭 떨어뜨렸다가는 소련이나 중국이 선전포고로 생각하고 3차 대전 일으켰을 수도 있겠다
한 마디로 아주 위험한 발상인 셈이다
이렇게 평가가 엇갈리는 사람의 동상을 세워 놓고 존경한다는 게 왠지 부자연스럽다
조선 정부가 재조지은이라 하여 이여송 등 명나라 장수들 사원 세운 것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주체성을 갖는다는 것, 특히 권력층이 민족적 자존심을 갖는다는 건 참 힘든 일 같다

모병제에 대한 주장은 매력적으로 들린다
제발 그 놈의 병역 의무제 좀 폐지됐으면 좋겠다
병역제 때문에 모성 보호법도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군대 갔다 온 남자들은 자신들을 군대로 보낸 정부를 원망하는 게 아니라 엉뚱하게 군대 안 가도 되는 여자들을 비난한다
사실 그 점도 어찌 보면 노블리스 오블리제와 비슷한 개념이다
현 사회가 남성 위주라는 건 누구나 다 인정한다
특권을 누리는 사람의 의무로써 군대에 간다고 생각하면 안 될까?
사실 여자가 군대에 안 가는 이유는 장애인이 징집되지 않는 것과 같다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보호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남자들은 군대 얘기만 나오면 역차별이라고 이를 간다
병역 비리로 얼룩진 특권층이나 정부 시책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감하면서 말이다
만약 여자가 군대 안 가는 것에 대해 분노하는 남자라면 특권층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요구할 권리도 없을 것이다
나부터가 이기적인데 누구를 비난한단 말인가?

미국과의 관계도 솔직히 어떻게 정립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북한처럼 민족 자존심 지킨답시고 고립되어 망해 가는 게 옳은 것인지, 아니면 굴욕적 외교지만 경제 발전을 위해 미국 밑으로 들어 가는 게 옳은지 헷갈린다
오늘의 현실과 비교해 보면 신라나 고려, 조선 정부들이 당, 송, 명을 받들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이해된다
그래도 지금은 세계화가 되서 미국 말고도 문화교류를 할 나라가 많지만, 당시에는 중국 뿐이지 않았겠는가?
지배층이 그들의 문화를 숭상하고 받드는 심정이 이해된다
그런데 왜 내제적 가치관으로까지 변모시켰을까?
그만큼 도덕적 기반이 약했기 때문은 아닐까?
지배층의 도덕심은 어쩌면 불가능한 얘기는 아닐까?

저자는 기득권층의 비리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지만, 사실 학생 운동 세력이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다
그들의 권위주의 역시 기성 세대와 별 차이가 없음을 느낀다
언젠가 여성 동인지에서 본 것처럼 밖에서는 평등, 인권 외치던 남자가 집에 들어 오면 공부하는 아내에게 집안일을 맡긴 채 손가락 까닥도 안 하는 이 모순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일상 생활에서까지 신념을 지킨다는 것은 참 어렵다
정권 탈취를 위한 하위 개념으로서의 진보가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더욱 빛나는 미시적 의미의 진보가 된다면!!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릴케 현상 2004-11-18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가 특권층이어서 군대를 가야 한다는 주장은 과한 듯^^ 어떤 측면에서 여자보다 남자가 혜택을 입고 있다고 하더라도, 계급, 계층적인 성격을 함께 고려하지 않고 성별만으로 어떻게 특권층을 나눌 수 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고졸자들은 군대 안 가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marine 2004-11-19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가 특권층이라는 말이 아니라, 특권층인 일부 남성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전쟁나면 귀족들이 먼저 전쟁터로 나가는 애국심을 발휘한다, 뭐 이런 얘기 있잖아요^^

릴케 현상 2004-11-19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권층 남성을 군대 보내는 건 우리모두의 소망입죠^^
참!일상생활에서 신념을 지킨다는 건 어렵다는 글을 보며 문득 딴지를 걸게 됩니다.일상생활에서 신념을 지키는 건 참 쉽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사실은 그게 '신념'이 아니었던거죠.
 
잠들지 못하는 희망 - 세계문화예술기행 5
김명인 지음 / 학고재 / 1997년 6월
평점 :
품절


역시 작가가 쓰는 여행기는 뭔가 다르다
여정이나 싸구려 감상의 나열이 아니라 철학적 성찰과 반성이 들어 있어 읽는 재미가 있다
얼마 전에 읽은 스페인 여행기와 한 씨리즈인데 그것보다 더 괜찮은 것 같다
스페인 기행기는 여정이 거의 없어 여행기라기 보다는 감상문 같았는데, 이번 독일 여행기는 여정도 자세히 나열하고 주변 풍경에 대한 묘사도 많아 더 좋았다
아무래도 저자에게 독일은 특별한 곳인 것 같다
스페인 여행기를 읽을 때는 그저 스페인이라는 독특한 나라를 가서 느낀 점만 쓴 것 같은데, 독일 여행기를 읽으면 저자의 젊은 시절에 대한 회한이 밀려 온다
한 때 학생운동에 가담해 사회주의를 꿈꾸던 청년이, 수년 후 망해 버린 사회주의의 탄생지에 갔을 때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됐을지 알 만 하다
인생에 대한 반추라고 할까?
이루지 못한 젊은 시절의 열정에 대한 한탄이라고 할까?

나는 독일의 뮌헨에 갔었는데 어이없게도 숙소에만 머물렀다
그 전날 야간 열차를 타고 오면서 너무 고생을 해서 시원한 호텔에서 꼼짝 달싹도 안 하고 잠자고 먹기만 했다
독일에 도착했을 때 깨끗하고 조용한 도시 분위기에 놀랬다
뮌헨은 원래 독일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도시라고 한다
날씨가 꽤 더웠는데 에어컨이 없다는 얘기 듣고 깜짝 놀래기도 했다
호텔 방은 비교적 크고 깨끗했다
주유소 안의 편의점 가서 샌드위치 사 먹던 기억이 난다
뮌헨에 있는 큰 맥주집 겸 양조장에 가기도 했다
흑맥주와 구운 소세지를 시켰는데 사람이 어마어마 하게 많았다
독일 사람들은 신이 나서 춤추고 난리도 아닌데 난 그저 소외감만 들었다
즐겁게 논다는 건 바로 저런 거구나, 그런 생각만 했다

저자는 스페인 기행기처럼 아들을 데리고 간다
나중에는 아내도 합류해서 자동차 여행으로 다닌다
자동차를 타고 가니까 교통이 편리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저자는 닫힌 여행이었다고 말한다
하긴 버스 타고 길도 물어 가면서 그 곳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여행의 한 묘미일 것이다
의외로 유럽의 도시는 작아서 길 찾기가 쉽다
런던 같은 경우는 관광지가 한 곳에 모여 있어 걸어 다닐 수도 있다
지하철 타는 것도 어렵지 않다

역시 뭘 좀 알아야 깊이 있는 여행이 되는 것 같다
독일 학문에 대해 기초적인 지식이 없다면 그저 무감각하게 박물관이나 건축물을 볼 것이다
자신의 전공 탓인지 저자는 작은 기념물에도 크게 감동한다
하긴 모든 사물이 다 의미를 어떻게 부여하느냐의 차이지만 말이다
베를린의 박물관은 가 볼 생각을 못했는데 거기도 만만치 않은 예술품이 있다고 한다
이집트나 그리스 등지에서 건축물을 떼어 온 것을 두고 저자는 안타까워 한다
건축물이 원래 있던 자리를 떠나면 의미를 잃어버린다고
강대국의 문화재 약탈이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결과적으로 잘 전시해서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 뭐라고 평가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한 해에 한 번씩 한 나라만 집중적으로 돌아 다녀도 좋을 것 같다

독일은 분권주의 나라라고 한다
중앙 집권화가 늦어 근대 국가 탄생도 늦었지만, 모든 도시들이 각각의 특색을 지닌 채 고르게 발전해서 오늘날 지방주의가 잘 발달했다
그래서 어딜 가나 다 잘 꾸며져 있고 박물관이나 미술관, 기념관 등도 풍부하다고 한다
모든 것이 서울로만 집중되는 우리 현실을 생각해 보면 정말 부럽다

솔직히 독일은 별 감흥이 없는 나라였는데 여행기를 읽으면서 가 보고 싶은 곳이 참 많았다
저자의 자세한 여정과 설명, 또 풍부한 감상 탓이다
독일 문학이나 사상이 인류 문화에 기여한 바가 참 크다
전혜린이 사랑한 도시가 바로 뮌헨인데, 이국적 정서가 그녀에게 딱 어울렸던 모양이다
낯선 곳에서 향수병을 앓지 않고 오히려 그 곳을 사랑하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는 유학 생활이 되겠지

책을 더 많이 읽고 예술과 역사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하고 무엇보다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인류 문화의 보고들을 돌아보고 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어느새 독서처럼 여행도 나의 중요한 취미가 되버렸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도, 돈이 좀 없어도 책과 여행을 벗 삼으면 외롭지 않게 살 것 같다
나도 다음에는 꼭 여행기를 써야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의 제단 - 개정판
심윤경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입소문이 괜히 난 게 아니었다
정말 재밌다
전경린의 소설을 읽을 때처럼 참 문장을 잘 쓴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이런 가지런한 문장이 좋다
열심히 글 쓰는 연습을 했을 이런 문장이 마음에 든다
어쩜 그렇게 곱게 쓰는지, 줄거리와는 상관없이 글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실이는 초등학교 밖에 안 나온 다리 병신이다
더구나 행랑채에서 일하는 달시룻댁의 딸이다
애를 못 낳기 때문에 더욱 섹스가 부담없다
조씨 문중의 종손인 상룡은 세상에서 가장 만만하고 탈 날 일 없는 하인 같은 바보 여자애와의 섹스를 즐긴다
만약 상룡이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파렴치한이었으면 차라리 읽기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소설에 그런 전형적인 캐릭터는 없다
다들 현실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복잡다단한 인물들이다
출생의 비극을 안고 태어난 상룡은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위세에 눌려 뭐 하나 맘대로 해 본 적이 없다
연애 한 번 걸어 볼 베짱도 없던 상룡은 군대 갔다 온 후 성욕을 정실에게 푼다

처음에는 상룡의 그 위선적인 행동에 치를 떨었다
아마 대부분의 남자들이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잠을 잘 때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온 마음을 뺏긴 여자라면 또 모를까, 대부분의 섹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상룡이 정실이를 대하듯 그런 마음으로 욕구를 풀 것이다
그런데 상룡은 정실과 살을 섞을수록 그녀에게 빠져 든다
그녀를 무시하고 구박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끌림을 느낀다
결국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베자 한 번도 대적해 본 일이 없는 할아버지에게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선포한다
성욕을 풀기 위해 시작한 일이 어느새 책임감과 애틋함으로 바뀐 것이다
살을 섞다 보면 정든다는 옛말이 바로 이런 경우일까?

조상룡의 할아버지는 종가를 지키는 사람이다
가끔 신문에 전통을 지키는 종가집이 등장하곤 한다
사라져 가는 것을 지키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안타까워 관심을 갖고 읽는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다 보면 그것이 다 얼마나 허망하고 위선적인 일인지 느끼게 된다
무덤에서 발견된 이 집안 며느리의 편지는 대를 잇는다는 명분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짓누르는지 생생하게 보여 준다
어은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종부는 남편과 아들을 잃은 후 자살할 것을 명받는다
하필 출산한  아이가 딸이자 시아버지는 그 딸을 죽이고 며느리는 자살하게 한 뒤 사내 아이와 바꿔치기 해서 그 애로 종통을 잇게 한다
현대 자본주의의 물질 만능주의에 비견될 만한 놀라운 가문 승계 의식이다
돈이 사람을 잡아 먹고 가문이 또 사람을 죽인다
수백년 이어 내려 온 종가라는 것이 실은 이렇게 잔인하게 인간을 죽여 가면서 얻은 명분이라는 얘기다

특별히 이 이야기가 과장된 거라고 보지 않는다
씨받이라든가 남편 따라 죽은 열녀 이야기는 흔하다
조선 시대의 지배 원리는 가문, 종가 이런 거였다
현대 사회가 자본주의에 의해 운영되듯 말이다
그런 거 생각하면 전통 사라진다고 안타까워 할 것도 없다
힘을 잃은 이데올로기는 사라져야 마땅하다
이문열이 붙잡고 있는 문중이란 개념도 다 허망하게 느껴진다

가엾은 손녀딸, 세 살 때 어머니를 잃은 손녀를 금지옥엽 키워 시집보낸 후 첫 아들을 낳아 기뻐하던 친정의 할머니
전화도 안 되던 시절 사람 사서 시댁 눈치 보며 큰 일 있을 때만 편지를 띄우는 조손간의 모습이 애절하게 느껴진다
손녀는 길게 편지를 쓰지만 편지 받는 할머니는 그 인편으로 바로 답장을 줘야 하기 때문에 늘 시간에 쫒겨 짧게 쓴다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겠는가!
시댁에서 귀여움 받는다고 마음을 쓸어 내렸을 그 할머니는 외증손이 죽고 손자 사위가 죽은 뒤 임신한 손녀가 시아버지로부터 자진 명령을 받았다는 편지를 받았을 때, 자진하지 말라, 자진하지 말라고 간곡히 써 보내는 그 심정이 오죽 했을까?
그 짧지만 애끓는 편지를 읽으면서 마음이 울컥 했다
아무리 가문이나 문중이 중하다 할지라도 손녀딸이 그것 때문에 죽는 꼴은 못 볼 것이다
비록 그 할머니는 며느리에게 가문을 위해 죽어라 말할 수 있어도 자기 손녀에게는 절대 못할 것이다
가엾은 조선 시대 여인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희생자들!
대체 자기 자신보다 더 중요한 가치나 이념이 어딨겠는가?

자기 하나 죽는 것은 슬플 것 없어도 막 태어난 딸까지 죽여 버리는 시아버지의 잔인함에 그만 며느리는 살 의욕을 잃고 만다
그 딸은 사내 아이와 바꿔치기 해 종가의 대를 이어야 하므로 꼭 죽어여 한다
이 잔인한 시아버지와 조상룡의 할아버지와 다를 게 없다
또 딸이라고 낙태하는 부부와 다를 게 없다
대체 대를 잇는다는 게 다 무슨 허망한 일인가?
이데올로기가 인간을 잡아 먹고 있다
자본주의의 황금 만능주의만 인간성을 경시하는 게 아니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나 공산주의 혁명 등도 다 마찬가지다
왜 이념이 우리를 죽이는가?

조상룡의 할아버지는 무력한 노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망해가는 종가를 다시 일으킨 능력있는 사람이다
그는 돈과 권력의 향방을 잘 아는 사람으로 큰 돈을 벌어 문중에 투자한다
돈을 그렇게 잘 버는 사람이 왜 전통적인 가치관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지 참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전근대적인 사람에게 돈이 잘 벌리는 것도 신기하다
자기가 워낙 잘난 만큼 무력한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았고, 역시 무능한 아들도 못마땅해 했다
원래 똑똑한 사람은 자식 못난 꼴을 못 보는 법이다
더구나 우리처럼 혈연 관계가 얽혀 있는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차라리 관심을 끊어 버리면 덜 괴로울 것을, 워낙에 단단한 애증 관계로 묶인 문화권인지라 쉽게 못난 아들을 포기할 수도 없다
그러니 제 마음에 차지 않는 자식을 들들 볶아 조금이라도 고쳐 보는 수 밖에
그러나 그 시도는 늘 불행했다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부모 자식간의 불행한 이야기들이다

조상룡의 아버지는 결국 생각지도 못한 일탈을 저지른다
서울로 대학을 가서 결혼해 버린 것이다
집안에 아버지의 위엄에 눌려 숨도 못 쉬었을 아들이 아버지를 벗어나 한 여자에게 빠지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그가 사랑한 이 여자의 캐릭터가 재밌다
그녀는 지고지순한 여자가 아니다
요즘은 팜므 파탈의 요부들이 뜨는 모양이다
조상룡의 어머니는 바람끼 강하고 돈에 밝은 여자로, 미련없이 남편과 이혼하고 아이를 떼어 준다
아마 조상룡의 아버지는 아내의 배신감에 치를 떨다 자살했을 것이다
흔히 소설에 보면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난하게 살 만큼 둘의 사랑이 단단하기 마련인데, 왠 걸 이 여자는 오히려 이혼할테니 가게 하나 차려 달라고 요구할 정도로 뻔뻔하고 대담하다
억지로 이혼시킨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돈 받고 자신과 아들을 버린 아내에게 더욱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결국 집으로 내려와 억지 결혼을 한 그는 자살로 배신감과 열패감을 극복한다

아들의 죽음을 보고도 조상룡의 할아버지는 신념을 바꾸지 않는다
정실이 상룡의 아이를 가졌다는 얘기를 듣고 옛날과 똑같은 방식으로 일을 처리한다
정실을 끌고 가 유산시키려고 한 것이다
모든 죄는 내가 다 뒤집어 쓰고 너는 흠없는 길을 걸어가라는 결연한 말도 숭고하게 들리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결국 손자와 종가의 앞날에 도움이 되는 희생적인 행동이라 믿는 그가 어리석어 보인다
결국 그는 제정신이 아닌 손자에게 폭행을 당하고 부끄러운 집안의 과거가 적힌 그 언문 편지를 불태우려다 종가를 지탱하던 효계당 전체를 잃고 만다
불길 속을 빠져 나오길 거부한 그는 죽는 순간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상룡 역시 화재로 타 죽는 것으론 나온다
정확한 묘사는 없지만 아마도 죽지 않을까 싶다
정실이는 유산이 됐을까?
이미 임신 중반기를 넘어 산달이 가까워지는데 만약 아이를 낳으면 영아 살해가 된다
낙태하기 힘들텐데 제대로 아이를 낳았을까?
그렇다면 그 애가 유일한 종손이 되서 조상룡네 집의 막대한 재산을 이어 받을텐데 불행히도 정실은 그런 이해득실을 따질 만큼 영리하지 못하다
또 그런 순진함이 상룡의 마음을 끌었을 것이다
비록 그 점 때문에 만만하게 생각해서 성욕 채우는 도구로 시작한 일이지만 말이다

상룡은 정실이 다른 남자들에게 성폭행 당한 것을 알고 그녀를 더럽게 여긴다
남자들은 다 그렇다
그 역시 소진이라는 여자애를 임신까지 시켜 놓고서 가엾은 정실의 성폭행에 분노한다
더려운 년이라는 것이다
자기가 한 것은 괜찮고 여자가 하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믿는 이 뻔뻔한 이중성!!
더구나 자신은 정실을 다만 쾌락의 도구로만 생각하지 않았는가?
인간은 왜 이렇게 뻔뻔하고 위선적인지 모르겠다
그나마 정실과 아이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태산 같던 할아버지에게 결혼하겠다고 말한 그 용기를 생각하면, 그래도 아주 나쁜 놈은 아닌 것 같아 다행스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사랑하는가 - 에리히 프롬의 생애와 사상
박홍규 지음 / 필맥 / 200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홍규란 사람은 참 대단하다
어쩜 이렇게도 관심 분야가 다양한지 모르겠다
단순히 책을 읽는데 그치지 않고 평전까지 쓸 수 있는 그 열정과 능력이 놀랍다
비록 주류 해석과는 다르고 (아마 기존 해석에 대한 반발심으로 책을 쓴 거겠지만) 전문적이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그가 읽은 방대한 분량의 참고 서적을 생각하면 입이 벌어질 정도다
법대 교수라면 자기 전공과도 별 상관이 없는데, 이런 열정으로 사시 도전했으면 분명히 합격했을 것 같다
독일, 프랑스, 미국, 일본 등지에서 유학하고 강의하면서 다양한 언어에 능통한 것도 그의 지적 세계를 한층 넓혀줬을 것이다
역시 언어는 인간의 사유를 결정짓는가...

지난 번 카프카나 까뮈는 작품 해설에서 좀 어려웠는데 이번 에리히 프롬은 사상가라서 그런지 쉽고 간결하다
에리히 프롬이라면 유명한 저서 "사랑의 기술" 로 널리 알려진 작가다
"우리들의 천국" 에서 홍학표를 좋아하는 염정아가 밑줄 그으며 읽던 책이다
그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는 뜻이다
박홍규는 프롬이 이 책 때문에 단지 수필가 정도로 인식된 것 같다면서 불만을 제기한다
그에 따르면 프롬은 아나키스트적 혁명가다!!

그는 유태인인이지만 마르크스처럼 반유태주의를 표방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건국에 따른 폭력성을 비판한다
또 무종교인이기도 했다
비록 그의 사상적 토대가 엄격한 윤리 의식에 기초한 탈무드였지만 말이다
궁극적으로 국가의 권력이 인간을 소외시키고 억압한다고 본 프롬이 종교의 권위를 거부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박홍규는 아나키스트들에게 큰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
까뮈나 카프카도 마찬가지다

프롬은 정신분석학자인데 미국으로 건너간 뒤 임상 실험을 거부당했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학문으로서의 정신분석이 연구된 반면, 미국은 치료 위주였기 때문에 의사가 아닌 프롬에게 제재를 가한 것이다
결국 그는 그에 대한 반발로 멕시코로 간 뒤 20여년을 산다
유럽의 지식인이 미국 대신 제 3세계로 갔다는 게 좀 의아하면서도 그의 자유로움을 반증하는 예처럼 느껴진다
프롬은 정신분석을 교사나 간호사, 사회 복지사 등에게까지 확대시키려고 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당연하지 않은가?
정신과 의사들이 자기 영역을 내줄 리가 없다

프롬의 핵심 사상은 주체성으로 요약되는 것 같다
꼭 프롬 뿐이 아니라 대부분의 현대 사상가들은 자기 머리로 사유하는 주체적 의식을 강조한다
자본주의에서의 인간 소외를 막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일까?
소외란 나라는 존재 대신 주변 환경에 의해 내가 지배당하는 것을 말한다
매스 미디어에 휩쓸려 유행을 쫒는 것도 소외의 한 양식이다
프롬은 모든 종류의 권위를 거부한다
혈연, 지연, 학연, 종교, 국가, 심지어 부모의 권위도 단호히 거부하고 스스로의 머리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곧 자유라고 말한다
솔직히 다른 건 몰라도 부모에 의한 독립은,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어렵다
우리나라처럼 가족주의가 강한 나라에서는 특히 그럴 것이다
프롬은 애착을 좋지 않은 것으로 봤다
그는 성숙한 사랑의 기본 조건을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정도로 모든 종류의 보호로부터 독립되기를 주장했다

권위로부터의 진정한 독립, 과연 가능할까?
사실 주위를 둘러 보면 꼭 파시스트 국가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 행동을 규제하는 권위들이 널려 있다
사회적 관습이나 도덕적 규범 역시 권위의 일종이고, 대중 매체나 유행 등도 하나의 권위다
인간 사회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사는 동안 과연 모든 권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긴 전체로부터의 자유는 불가능할지라도 가능한 많이 자유로운 걸 추구할 수는 있겠다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역시 사랑에 대한 정의였다
"사랑의 기술" 을 읽어 봐야겠다
프롬은 사랑의 조건으로 배려, 존경, 지식, 책임 등을 들었다
"Flow" 에서도 똑같이 설명된 개념이다
간단히 말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연인의 성장을 돕는 것 이게 바로 사랑의 핵심이다
배려란 파트너가 성장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는 것이고, 책임이란 성장에 공헌하는 것이며, 존경이란 그 성장을 인정하는 것이다
또 지식이란 상대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으로 환상을 깨는 것과 같다
이러한 사랑의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연마와 정신 집중, 인내 등이 필요하다
기술 습득은 플로우와 비슷하다
노력을 해야 얻는다는 얘기다
한 눈에 반할수는 있어도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절대 자연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철학자들의 사랑에 대한 정의를 읽으면 육체적 사랑은 그저 하위 개념에 지나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진정한 사랑이란 결국 서로의 가치관을 공유하고 상대방이 사회적, 정신적으로 성숙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대단히 고차원적인 개념임을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가족을 얻는 것과 같다고 할까?
이을테면 엄마, 아빠는 나를 대단히 사랑한다
그들은 내 성장 발전을 누구보다 적극 지지하고 나에게 최고의 관심을 보인다
내 성장이 곧 그들의 기쁨인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사귀고 있는 남자 친구는 그렇지 않다
친밀한 관계이긴 하지만 그 애는 나의 성장보다 다른 것을  더 원한다
한 가족이 되면 변할까?
결혼에 대해서도 그렇다
난 모든 것을 아빠에게 미뤄 버린다
즉 아빠의 권위에 의존해 있는 것이다
아빠가 하라고 한 거니까 좋은 거겠지, 잘못되도 아빠 탓이라고 책임돌릴 데가 있겠지 이런 심리로 말이다
적어도 결혼에 대해서는 보다 주체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상대와 결혼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결혼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분명히 알 것 같다
결혼은 연애의 무덤이란 말은 당연한 얘기다
연애와 결혼은 격이 다른 문제다
평생 함께 사는 것과 좋을 때만 만나는 연애가 같을 수 있겠는가?

죽음애적 성향은 새로운 개념이었다
파괴 본능이나 공격성 같이 네거티브한 성격들을 지칭하는 것 같다
자기애적 성향도 주변에 무관심하고 자신에게만 집중한다는 점에서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프롬은 단순히 파괴적 본능 때문에 공격적일 때도 있지만 생존을 위한 공격은 부정적이지 않다고 했다
이것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생명에 대한 사랑이 있다
곧 휴머니즘을 말한다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주체성을 갖고 타인과 사회에 대해서는 휴머니즘을 지향하라는 얘기다
진정한 개인주의의 성립이랄까?
주체성을 가진 개인이 모여 사회적 연대를 형성하는 것, 권위주의와 민족주의, 모든 형태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이게 요즘 주류를 이루는 탈근대적 사고 방식 같다

프롬은 모든 권위와 현상에 대해 회의하고 비판하고 불복종 하라고 설파하다
이 말은 3천년 전 소크라테스도 한 얘기다
상식이라고 받아들여지는 것도 네 머리로 직접 판단한 뒤 끊임없이 의심해 보고 옳은지 그른지 결정하라고 가르쳤다
서양 사상은 확실히 수용적인 동양 사상과 다르다
훨씬 회의적이고 공격적이라고 할까?
민주주의가 서양에서 태생된 배경이 이해된다
프롬은 불복종이 반드시 비폭력일 필요는 없다고 했다
간디는 비폭력을 불복종의 한 형태로 사용했을 뿐이다
불복종이란 권위에 대한 거부,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자유도 그런 적극적인 개념이다
단순히 타인으로부터 눈에 보이는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소극적 개념이 아니라,  모든 권위로부터 벗어나 내 머리로 사고하는 적극적 의미의 자유다
이 때의 권위는 국가와 가족, 종교까지도 포함한다
애국심이나 가족애, 신앙 등도 인간을 억압하는 권위의 한 형태라면 진정한 자유란 참 획득하기 어려운 것 같다 권위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건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프롬은 홀로 있기를 연습하라고 했나?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과 능동적으로 대처한다는 느낌은 삶의 행복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감정이다
프롬도 행복을 자기 자신에 따라 사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단순히 쾌락만 추구하는 것과는 다르다
쾌락이 선이 아니라, 나 자신의 신념과 합치되는 삶을 사는 것, 그게 바로 행복이다
프롬은 홀로 있기를 연습하고 자기 연마를 하라고 충고한다
삶이나 사랑도 공부처럼 배우고 익혀야 하는 기술이니까

프롬이 정의한 희망이 참 마음에 든다
희망이란 "공허한 상태를 무엇인가로 채우고자 하는 충동으로, 물질의 획득이 아닌 비전의 실현을 향한 능동적인 감정" 이라고 정의했다
희망의 목표는 충실감에 가득찬 상태로 비참한 존재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아마 칙센트미하이가 정의한 플로우와 같은 개념일 것이다
물질의 획득이 아닌 비전의 실현을 향한 능동적인 감정!!
충실감에 가득찬 상태가 되기 위한 노력!!
지금까지 내가 생각한 희망이란 어찌나 비루하고 유치했던지 모르겠다
내가 품은 희망은 기껏해야 물질적이고 안정적인 눈에 보이는 것들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는 물질의 획득은 희망이 아니라고 했다
대체 나에게 비전이라는 게 있었나?
그 비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능동적인" 감정이란 것도 중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