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사 - 단군에서 김두한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대만큼 아주 재밌지는 않다
역시 출판사가 책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일까?
한쪽으로 치우친 느낌도 없지 않다
특히 미군에 관한 내용을 읽을 때는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다
균형잡힌 시각이란 환상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지만 누구나 옳다고 생각하는 보편 타당한 길도 있는 거 아닐까?

친일파에 관한 변명은 수긍이 간다
나치 치하에서 겨우 4년 있었던 프랑스와 36년 일제의 지배를 받은 우리나라와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명분을 내세워 작은 꼬투리까지 들춰내 정쟁의 도구로 삼는 요즘 행태는 마음에 안 든다
또 어쩔 수 없이 그 시대를 살면서 크고 작게 일제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민족에 의한 해방이 됐더라면, 그래서 일제에 동조한 사람이 권력을 잡지 못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국력 낭비는 없었을텐데 참 아쉽다
그렇지만 항일 무장 세력이었던 김일성조차 친일파를 전면 처단하지는 않았다고 하니, 오늘날의 친일파 처단 논란은 희화화된 느낌이다

저자는 우리의 가장 큰 문제를 개인주의의 부재라고 본다
시민 혁명을 거치지 않고 직수입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현대 사회의 기본이 되는 시민 의식을 심어주지 못했다
프랑스에서 여성이 참정권을 얻은 게 1945년인데 우리는 1948년에 거저 획득했으니, 우리나라가 여전히 남성 우월주의에 시달리는 것도 이해가 간다
진보주의자들이 박정희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독재자였고 한국 사회를 권위주의 내지는 전체주의로 물들였기 때문이다
주체성을 가진 개인의 부족, 또 그 개인끼리의 연대 의식 부재, 이 결핍을 애국심과 민족주의로 묶으려고 하니 늘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 했는데 기득권층은 왜 최소한의 사회적 의무도 도외시 하는 것일까?
사회에서 특권을 누리는 만큼 그 권력을 도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의무조차 거부하는 요즘의 사태가 참 안타깝다
대표적인 것이 병역의 의무다
왜 그렇게 군대 빠지는 놈들이 흔한가 했더니, 인구가 늘어나 지원병이 너무 많기 때문이란다
빽 있는 놈들은 다 빠지고 서민층만 군대로 끌려가는 요즘의 세태는, 역사책에 나오는 군역 폐단과 다를 게 없다
최소한 병역 의무만은 특권층일수록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회적 책무라는 인식이 확산될 수는 없을까?
이회창 아들들의 병역 면제로 그렇게 떠들썩 한 것도 다 사회적 공분의 표현이다

레드 컴플렉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권력층은 사회주의를 철저하게 억눌렀다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다더니만, 무슨 얘기만 나오면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난리를 친다
연좌제는 또 어떤가?
요즘 같은 민주주의 사회에 가족의 죄로 같이 처벌받아야 하다니, 정말 미친 사회 아닌가?
노무현 장인의 경력을 두고 한나라당에서 문제 삼았다는 말은 참 코메디 같이 들린다
그 동안 권력층은 반공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함부로 휘둘러 왔나?
민족과 반민족의 대립 구도가 되야 할 것을, 어처구니 없이 반공과 공산주의로 양분됐으니, 한국사의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친일파들은 반공을 무기로 내세워 여전히 권력을 유지했다
슬픈 역사의 산물인 그 놈의 진절머리 나는 반공을 아직도 심심찮게 입에 올리는 일명 보수 세력들!!

현 대통령의 권력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실은 지난 정권까지 엄청난 권력을 휘둘러 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조중동의 언론 탄압 발언은 웃기지도 않다
보수라는 이데올로기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라 제발 그 이념을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보여 달라는 것이다
사회적 의무는 전혀 도외시 하면서 오직 특권만 누리려고 하는 이른바 지도층 인사들의 한심한 작태는 차라리 모르는 게 속 편할 정도다
그래도 조선 시대 선비들은 절개라도 있었지만 현 기득권층에게는 기대할 것이 없다
이문열은 자신이 보수라고 주장하지만 막대한 상업적 이익을 취하고 있음을 모른 척 한다
보수든 진보든 자기 이념이나 이데올로기에 따른 최소한의 도덕적 책무는 수행해야 하는 것 아닐까?

단군 아래 한 자손이란 말도 실은 폐쇄적인 민족주의의 발로라고 한다
외국인 노동자 차별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백인에게 멸시당하면서도 동남아인들을 똑같이 멸시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어찌 해야 할 것인가?
일본의 한국인 학살을 비판하려면 우리의 베트남 학살도 똑같이 반성해야 한다
열린 마음과 편견없는 태도란 이렇게 어려운 문제인가?

맥아더 장군에 관한 얘기는 상당히 쇼킹했다
인천 자유 공원에 맥아더의 동상이 있는 걸 당연시 했는데 임진왜란 당시 이여송의 사당과 비슷하다는 것을 읽고 충격받았다
역사책에서 명나라를 받드는 장면을 읽을 때마다 한심하고 분노했는데, 정작 우리 역시 미국에 대해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니!
맥아더는 원자 폭탄까지 투하해 한국 전쟁을 마무리 짓자고 했다가 트루먼에게 해임당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처럼 나 역시 맥아더가 끝까지 밀고 나갔으면 통일되지 않았을까 아쉬워 했다
그런데 가만이 생각해 보면 만주에 원폭 떨어뜨렸다가는 소련이나 중국이 선전포고로 생각하고 3차 대전 일으켰을 수도 있겠다
한 마디로 아주 위험한 발상인 셈이다
이렇게 평가가 엇갈리는 사람의 동상을 세워 놓고 존경한다는 게 왠지 부자연스럽다
조선 정부가 재조지은이라 하여 이여송 등 명나라 장수들 사원 세운 것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주체성을 갖는다는 것, 특히 권력층이 민족적 자존심을 갖는다는 건 참 힘든 일 같다

모병제에 대한 주장은 매력적으로 들린다
제발 그 놈의 병역 의무제 좀 폐지됐으면 좋겠다
병역제 때문에 모성 보호법도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군대 갔다 온 남자들은 자신들을 군대로 보낸 정부를 원망하는 게 아니라 엉뚱하게 군대 안 가도 되는 여자들을 비난한다
사실 그 점도 어찌 보면 노블리스 오블리제와 비슷한 개념이다
현 사회가 남성 위주라는 건 누구나 다 인정한다
특권을 누리는 사람의 의무로써 군대에 간다고 생각하면 안 될까?
사실 여자가 군대에 안 가는 이유는 장애인이 징집되지 않는 것과 같다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보호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남자들은 군대 얘기만 나오면 역차별이라고 이를 간다
병역 비리로 얼룩진 특권층이나 정부 시책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감하면서 말이다
만약 여자가 군대 안 가는 것에 대해 분노하는 남자라면 특권층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요구할 권리도 없을 것이다
나부터가 이기적인데 누구를 비난한단 말인가?

미국과의 관계도 솔직히 어떻게 정립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북한처럼 민족 자존심 지킨답시고 고립되어 망해 가는 게 옳은 것인지, 아니면 굴욕적 외교지만 경제 발전을 위해 미국 밑으로 들어 가는 게 옳은지 헷갈린다
오늘의 현실과 비교해 보면 신라나 고려, 조선 정부들이 당, 송, 명을 받들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이해된다
그래도 지금은 세계화가 되서 미국 말고도 문화교류를 할 나라가 많지만, 당시에는 중국 뿐이지 않았겠는가?
지배층이 그들의 문화를 숭상하고 받드는 심정이 이해된다
그런데 왜 내제적 가치관으로까지 변모시켰을까?
그만큼 도덕적 기반이 약했기 때문은 아닐까?
지배층의 도덕심은 어쩌면 불가능한 얘기는 아닐까?

저자는 기득권층의 비리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지만, 사실 학생 운동 세력이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다
그들의 권위주의 역시 기성 세대와 별 차이가 없음을 느낀다
언젠가 여성 동인지에서 본 것처럼 밖에서는 평등, 인권 외치던 남자가 집에 들어 오면 공부하는 아내에게 집안일을 맡긴 채 손가락 까닥도 안 하는 이 모순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일상 생활에서까지 신념을 지킨다는 것은 참 어렵다
정권 탈취를 위한 하위 개념으로서의 진보가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더욱 빛나는 미시적 의미의 진보가 된다면!!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릴케 현상 2004-11-18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가 특권층이어서 군대를 가야 한다는 주장은 과한 듯^^ 어떤 측면에서 여자보다 남자가 혜택을 입고 있다고 하더라도, 계급, 계층적인 성격을 함께 고려하지 않고 성별만으로 어떻게 특권층을 나눌 수 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고졸자들은 군대 안 가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marine 2004-11-19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가 특권층이라는 말이 아니라, 특권층인 일부 남성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전쟁나면 귀족들이 먼저 전쟁터로 나가는 애국심을 발휘한다, 뭐 이런 얘기 있잖아요^^

릴케 현상 2004-11-19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권층 남성을 군대 보내는 건 우리모두의 소망입죠^^
참!일상생활에서 신념을 지킨다는 건 어렵다는 글을 보며 문득 딴지를 걸게 됩니다.일상생활에서 신념을 지키는 건 참 쉽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사실은 그게 '신념'이 아니었던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