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된 학교 - 한 사회학자의 한국교육의 패러다임에 대한 지적 성찰
김덕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인물과 사상사에서 나온 책은 색깔이 너무 분명해 간혹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사실 이 책도 흥미있는 제목과는 달리 주관적인 견해나 감정 과잉이 많아 초반에는 거부감이 많이 들었다
그렇지만 뒤로 갈수록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이해가 되고 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진중권의 책에서도 느낀 바지만 일명 진보주의자들이 추종하는 이념은 다름 아닌 개인주의임을 느낀다
저자의 지적처럼 우리는 개인주의라고 하면 이기주의를 연상시키는데, 그만큼 전체주의적 사고 방식에 경도되어 있다는 의미도 된다
서구 시민 혁명의 전통이 없는 한국에서 비록 그들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받아 들였으나 그 밑바탕이 되는 개인주의나 사회적 연대감이 약한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 같다
저자는 독일에서 유학한 후 그들의 교육 방식이나 사회를 모델로 삼았다
선진국과의 비교는 때로 위험하기도 하다
우리보다 잘 살기 때문에 무조건 그들의 제도가 옳다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문제 없는 사회가 어디 있겠는가?
또 그 사회만의 특수성이라는 것도 있다
그렇지만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지적은 참고할 필요가 있다

교육 문제는 저자의 표현처럼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우리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대입 전형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쏟는가?
수험생을 둔 학부모라면 대입 정책에 비상한 관심을 쏟기 마련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사교육의 왕국 아닌가?
강남 엄마의 반대는 그냥 엄마라는 말도 있다
고액 과외가 판치고 오직 명문대 입학을 위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을 질주하는 게 대한민국 학생들의 현실이다
분명히 우리나라 교육 제도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있다

제일 문제시 되는 것이 주입식 교육이라고 하는데, 요즘은 또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주로 조선일보 같은 보수 언론에서 하는 얘기다
미국 공교육의 학력 저하를 예로 들면서, 일정 지식은 주입식 교육으로 집중해서 전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주입식 교육으로 일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토론하고 연구하는 방식을 배운 적이 없으니, 학생들에게 알아서 공부하라는 말은 어찌 보면 무책임하기까지 하다
현대 사회의 교육 목표란 저자의 말처럼 주체성을 가지고 사회와 관계 맺는 법을 배우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전근대적인 목표, 즉 사회가 원하는 노동력 제공에 매달려 있다
짧은 기간의 경제적 근대화를 이룬 대신, 여전히 전통적인 가치관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문화의 특징은 전체주의다
전체주의란 감시와 처벌을 통해 개인을 통제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대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성에 있는데 전체주의와 아주 상극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유시민의 책에서도 읽는 것이지만, 제발 국론 분열 걱정 좀 하지 말자고 한다
다양한 의견을 내 놓고 하나의 합일점을 찾아 가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인데, 우리 사회는 언제나 일사분란 하게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전체주의를 원한다
그야말로 조국 근대화에 온 국민이 매진해야 하는 박정희 시대의 정신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다는 얘기다
한 사회를 선진국으로 규정하는 것은 경제적인 성장 외에도 사회 구성원들의 정신적 성숙도 포함되지 않을까?
개성과 주체성을 가진 개인들이 보여 사회적 연대를 이루는 사회, 이것이 바로 현대 국가가 지향해야 할 목표일지 모른다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또 들자면 대학의 서열화다
이건 정말 고질적인 문제라 새롭지도 않다
그래도 요즘은 대학이 늘어나고 가치관이 다양화 되면서 대학보다 과가 중요시 되고, 선망하는 직업도 달라졌지만 여전히 서울대가 주는 무게는 무겁기만 하다
강준만이 서울대 망국론을 들고 나오면 서울대 못 나온 놈의 학벌 컴플렉스라고 들을 생각조차 안 한다
서울대라는 엘리트 교육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서울대를 위해 돌진하는 교육 시스템이 문제라는 말이다
왜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이 서울대 컴플렉스를 느껴야 하는가?
차라리 프랑스처럼 정말 소수가 들어가는, 최고의 엘리트 집단으로 만들어 국가를 이끌 싱크 탱크로 활용할 수는 없을까?
지금처럼 비대해진 대학에서 쏟아져 나온 졸업생들이 특권층을 형성하는 구도는 문제가 많다
더구나 서울대는 모든 과가 다 한국 최고다
저자는 이런 예를 든다
한국 외대의 러시아학과가 전통을 자랑하며 최고의 권위를 가졌더라도 어느 날 서울대에 러시아학과가 개설되면 그 때부터 외대는 무조건 2등으로 떨어진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대학의 현실이다
무조건 서울대가 만들면 최고다

서울대의 엘리트 교육이 문제가 아니다
최고라는 자부심이 학구열을 높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서울대를 선두로 하여 모든 대학이 서열화 된다는 것이다
미국처럼 아이비 리그라고 해서 여러 개의 명문 대학이 생기면 좀 더 나을 것 같다
그래야 서로 경쟁하며 더 발전하지 않겠는가?
저자는 대학의 바람직한 목표를 전문화와 특성화로 잡는다
사실 그래야 대학의 존재 이유가 생긴다
모든 대학이 서열화 되면 저자이 표현처럼 연세대는 서울대가 없어지지 않는 한 죽었다 깨나도 절대 1등 대학이 될 수 없다

사실 대학 교수 집단이 폐쇄성도 문제가 많다
같은 대학 같은 과 출신만 뽑는 관행에 대해, 저자는 동종교배와 근친상간이라고 일갈을 가한다
정말 딱 맞는 얘기다
근친상간은 유전적 결함이 많고 다양성이 상실되서 열등한 생물을 낳는다는 건 기본 상식이다
다양성이 사라진 사회에 무슨 발전 가능성이 있겠는가?
최고의 지성인이라는 집단이 더욱 배타적인 법이다
책에서 배운 가치를 현실에서는 절대 써 먹지 않는 지성인 집단의 모순이라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 사회에 교수로 채용되는 일이 심심치 않은데, 그 나라라고 해서 편견이나 배타성이 없을 리 없다
다만 우리보다 훨씬 개방적인 태도로 학문의 다양성을 위해 아무 빽 없는 유색인종도 채용해 주는 것이리라

요즘 한창 문제가 되는 교실의 붕괴도 교육하는 쪽의 책임이 크다
학생들은 점점 다원화 되고 개성을 드러내는 쪽으로 나가는데, 학교는 여전히 감시와 처벌을 통해 근대적인 인간을 만들려고 한다
사실 체벌이야 말로 당장 사라져야 할 악습이라고 생각한다
때려서 교육시킬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개인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저자는 중고교 교실의 붕괴보다 대학 강의실의 붕괴가 먼저였다고 말한다
옛날에는 대학생 수가 적고 교수의 권위도 높아서 강의 시간에 졸 망정 떠들거나 휴대폰 통화를 하지는 않았지만, 대출이나 딴 짓 등 수업 참여율이 현저히 낮기는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요즘은 대학생 수가 늘고 교수의 권위도 예전 같지 않으므로 대놓고 떠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수의 권위는 누가 세워야 하는가?
학문의 연구를 통해 교수 자신이 세워야 한다
더 이상 교수라는 직책이 주는 위압감이나 권력만으로 학생들을 통제할 수 없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교사가 커뮤니케이션을 지도한다고 한다
즉 세미나 형식으로 학생들에게 주제를 준 후 자기들끼리 토론을 하면 교사는 그 과정을 원활하게 조정해 주는 것이다
또 숙제를 낸 후 부모가 아이 학습을 지도할 수 있도록 학부모와의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하다
독일 교사들은 이 커뮤니케이션을 잘 지도할 때 교사의 권위가 생긴다고 말한다
저자도 인정한 바지만 세미나 형식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사실 학생들의 수준이 제각각인데 일정 지식을 먼저 암기해 놓지 않으면 제대로 된 토론 수업을 하기 힘들 것이다
나도 해 봐서 알지만 이런 세미나 형식은 능동적인 대신 효율성이 떨어진다
기본적으로 암기해야 할 지식들이 많은 상태에서는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렵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러한 의사소통 방식 정도는 학습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의 문제점이라고 지적되는 토론 문화의 부재는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학 교양이 테마 중심이어여 한다고 주장한다
일리있는 말이다
중고교는 그렇다 쳐도 적어도 대학이라면 일단 기본적인 지식이 있는 상태이므로 더 이상 단순 나열식의 교육은 도움이 안 된다
테마를 잡아 보다 깊이 있게 파고 들고 또 각자의 견해를 제시하는 세미나 형식의 수업이 훨씬 유용할 것 같다
전공은 몰라도 교양은 테마 중심이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바다

우리 교육의 문제는 지나친 도덕주의에 있다
사유하는 방식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도덕적인 인간을 만드려고 한다
하긴 그렇게 도덕 강조하면 왜 이렇게 부정부패가 많은가?
도덕 자체를 스스로 내면화 시킨 것이 아니라 집단의 규율로써 받아 들이므로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아주 마음에 드는 대목이 있다
철학이란 인간교육을 시키는 지적 수단이 아니라 문화, 우주, 세계, 존재, 자연, 윤리 등의 주제에 대하여 엄밀하고 체계적이며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사유하는 지적, 정신적 능력을 배양하는 학과목이라는 것이다
엄밀한 과학으로서의 철학이라!!

흔히 생각하기에 철학이란 윤리 과목일 것 같은데 인성 교육하는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학교가 윤리적 인간 양성을 포기하고 지적이고 학문적인 전문인 양성에 뜻을 둔다면 보다 합리적인 교육이 이루어질까?
하긴 사회도 구성원들을 윤리적으로 교육시키려는데 학교는 오죽하겠는가?
제발 개인의 도덕성은 개인에게 맡겨 두면 좋겠다
외제 승용차 타고 다닌다고 부유층 도덕성 운운하는 시대착오적인 기사도 그만 나오면 좋겠다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왜 책을 읽는가?
요즘 같은 무한경쟁 시대에 한가로이 인문학 서적이나 붙잡고 있어도 될까, 문득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내가 잠자는 시간을 쪼개 가면서 굳이 책을 읽는 이유는 단순한 재미도 있지만, 그보다는 책에서 얻는 지식과 깨달음을 통해 내 삶을 보다 가치롭고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서다
그런데 정작 내가 책에서 얻은 것을 실제 생활에 적용하는가?
자신이 없다
그저 한 번 읽고 감동하고 그것으로 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카프카의 말처럼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같은 책이 아니라면, 대체 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책을 읽는다는 말인가!!

다원화 사회에 절대 가치란 없다
내 의견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나도 주체성을 가진 개인으로 공동체와 관계를 맺고 싶다
애국심이나 민족주의에 경도되지 않고 내 개성을 드러내며 신념에 따라 사회적 연대를 이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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