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하는가 - 에리히 프롬의 생애와 사상
박홍규 지음 / 필맥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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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란 사람은 참 대단하다
어쩜 이렇게도 관심 분야가 다양한지 모르겠다
단순히 책을 읽는데 그치지 않고 평전까지 쓸 수 있는 그 열정과 능력이 놀랍다
비록 주류 해석과는 다르고 (아마 기존 해석에 대한 반발심으로 책을 쓴 거겠지만) 전문적이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그가 읽은 방대한 분량의 참고 서적을 생각하면 입이 벌어질 정도다
법대 교수라면 자기 전공과도 별 상관이 없는데, 이런 열정으로 사시 도전했으면 분명히 합격했을 것 같다
독일, 프랑스, 미국, 일본 등지에서 유학하고 강의하면서 다양한 언어에 능통한 것도 그의 지적 세계를 한층 넓혀줬을 것이다
역시 언어는 인간의 사유를 결정짓는가...

지난 번 카프카나 까뮈는 작품 해설에서 좀 어려웠는데 이번 에리히 프롬은 사상가라서 그런지 쉽고 간결하다
에리히 프롬이라면 유명한 저서 "사랑의 기술" 로 널리 알려진 작가다
"우리들의 천국" 에서 홍학표를 좋아하는 염정아가 밑줄 그으며 읽던 책이다
그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는 뜻이다
박홍규는 프롬이 이 책 때문에 단지 수필가 정도로 인식된 것 같다면서 불만을 제기한다
그에 따르면 프롬은 아나키스트적 혁명가다!!

그는 유태인인이지만 마르크스처럼 반유태주의를 표방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건국에 따른 폭력성을 비판한다
또 무종교인이기도 했다
비록 그의 사상적 토대가 엄격한 윤리 의식에 기초한 탈무드였지만 말이다
궁극적으로 국가의 권력이 인간을 소외시키고 억압한다고 본 프롬이 종교의 권위를 거부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박홍규는 아나키스트들에게 큰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
까뮈나 카프카도 마찬가지다

프롬은 정신분석학자인데 미국으로 건너간 뒤 임상 실험을 거부당했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학문으로서의 정신분석이 연구된 반면, 미국은 치료 위주였기 때문에 의사가 아닌 프롬에게 제재를 가한 것이다
결국 그는 그에 대한 반발로 멕시코로 간 뒤 20여년을 산다
유럽의 지식인이 미국 대신 제 3세계로 갔다는 게 좀 의아하면서도 그의 자유로움을 반증하는 예처럼 느껴진다
프롬은 정신분석을 교사나 간호사, 사회 복지사 등에게까지 확대시키려고 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당연하지 않은가?
정신과 의사들이 자기 영역을 내줄 리가 없다

프롬의 핵심 사상은 주체성으로 요약되는 것 같다
꼭 프롬 뿐이 아니라 대부분의 현대 사상가들은 자기 머리로 사유하는 주체적 의식을 강조한다
자본주의에서의 인간 소외를 막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일까?
소외란 나라는 존재 대신 주변 환경에 의해 내가 지배당하는 것을 말한다
매스 미디어에 휩쓸려 유행을 쫒는 것도 소외의 한 양식이다
프롬은 모든 종류의 권위를 거부한다
혈연, 지연, 학연, 종교, 국가, 심지어 부모의 권위도 단호히 거부하고 스스로의 머리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곧 자유라고 말한다
솔직히 다른 건 몰라도 부모에 의한 독립은,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어렵다
우리나라처럼 가족주의가 강한 나라에서는 특히 그럴 것이다
프롬은 애착을 좋지 않은 것으로 봤다
그는 성숙한 사랑의 기본 조건을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정도로 모든 종류의 보호로부터 독립되기를 주장했다

권위로부터의 진정한 독립, 과연 가능할까?
사실 주위를 둘러 보면 꼭 파시스트 국가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 행동을 규제하는 권위들이 널려 있다
사회적 관습이나 도덕적 규범 역시 권위의 일종이고, 대중 매체나 유행 등도 하나의 권위다
인간 사회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사는 동안 과연 모든 권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긴 전체로부터의 자유는 불가능할지라도 가능한 많이 자유로운 걸 추구할 수는 있겠다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역시 사랑에 대한 정의였다
"사랑의 기술" 을 읽어 봐야겠다
프롬은 사랑의 조건으로 배려, 존경, 지식, 책임 등을 들었다
"Flow" 에서도 똑같이 설명된 개념이다
간단히 말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연인의 성장을 돕는 것 이게 바로 사랑의 핵심이다
배려란 파트너가 성장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는 것이고, 책임이란 성장에 공헌하는 것이며, 존경이란 그 성장을 인정하는 것이다
또 지식이란 상대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으로 환상을 깨는 것과 같다
이러한 사랑의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연마와 정신 집중, 인내 등이 필요하다
기술 습득은 플로우와 비슷하다
노력을 해야 얻는다는 얘기다
한 눈에 반할수는 있어도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절대 자연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철학자들의 사랑에 대한 정의를 읽으면 육체적 사랑은 그저 하위 개념에 지나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진정한 사랑이란 결국 서로의 가치관을 공유하고 상대방이 사회적, 정신적으로 성숙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대단히 고차원적인 개념임을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가족을 얻는 것과 같다고 할까?
이을테면 엄마, 아빠는 나를 대단히 사랑한다
그들은 내 성장 발전을 누구보다 적극 지지하고 나에게 최고의 관심을 보인다
내 성장이 곧 그들의 기쁨인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사귀고 있는 남자 친구는 그렇지 않다
친밀한 관계이긴 하지만 그 애는 나의 성장보다 다른 것을  더 원한다
한 가족이 되면 변할까?
결혼에 대해서도 그렇다
난 모든 것을 아빠에게 미뤄 버린다
즉 아빠의 권위에 의존해 있는 것이다
아빠가 하라고 한 거니까 좋은 거겠지, 잘못되도 아빠 탓이라고 책임돌릴 데가 있겠지 이런 심리로 말이다
적어도 결혼에 대해서는 보다 주체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상대와 결혼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결혼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분명히 알 것 같다
결혼은 연애의 무덤이란 말은 당연한 얘기다
연애와 결혼은 격이 다른 문제다
평생 함께 사는 것과 좋을 때만 만나는 연애가 같을 수 있겠는가?

죽음애적 성향은 새로운 개념이었다
파괴 본능이나 공격성 같이 네거티브한 성격들을 지칭하는 것 같다
자기애적 성향도 주변에 무관심하고 자신에게만 집중한다는 점에서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프롬은 단순히 파괴적 본능 때문에 공격적일 때도 있지만 생존을 위한 공격은 부정적이지 않다고 했다
이것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생명에 대한 사랑이 있다
곧 휴머니즘을 말한다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주체성을 갖고 타인과 사회에 대해서는 휴머니즘을 지향하라는 얘기다
진정한 개인주의의 성립이랄까?
주체성을 가진 개인이 모여 사회적 연대를 형성하는 것, 권위주의와 민족주의, 모든 형태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이게 요즘 주류를 이루는 탈근대적 사고 방식 같다

프롬은 모든 권위와 현상에 대해 회의하고 비판하고 불복종 하라고 설파하다
이 말은 3천년 전 소크라테스도 한 얘기다
상식이라고 받아들여지는 것도 네 머리로 직접 판단한 뒤 끊임없이 의심해 보고 옳은지 그른지 결정하라고 가르쳤다
서양 사상은 확실히 수용적인 동양 사상과 다르다
훨씬 회의적이고 공격적이라고 할까?
민주주의가 서양에서 태생된 배경이 이해된다
프롬은 불복종이 반드시 비폭력일 필요는 없다고 했다
간디는 비폭력을 불복종의 한 형태로 사용했을 뿐이다
불복종이란 권위에 대한 거부,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자유도 그런 적극적인 개념이다
단순히 타인으로부터 눈에 보이는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소극적 개념이 아니라,  모든 권위로부터 벗어나 내 머리로 사고하는 적극적 의미의 자유다
이 때의 권위는 국가와 가족, 종교까지도 포함한다
애국심이나 가족애, 신앙 등도 인간을 억압하는 권위의 한 형태라면 진정한 자유란 참 획득하기 어려운 것 같다 권위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건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프롬은 홀로 있기를 연습하라고 했나?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과 능동적으로 대처한다는 느낌은 삶의 행복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감정이다
프롬도 행복을 자기 자신에 따라 사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단순히 쾌락만 추구하는 것과는 다르다
쾌락이 선이 아니라, 나 자신의 신념과 합치되는 삶을 사는 것, 그게 바로 행복이다
프롬은 홀로 있기를 연습하고 자기 연마를 하라고 충고한다
삶이나 사랑도 공부처럼 배우고 익혀야 하는 기술이니까

프롬이 정의한 희망이 참 마음에 든다
희망이란 "공허한 상태를 무엇인가로 채우고자 하는 충동으로, 물질의 획득이 아닌 비전의 실현을 향한 능동적인 감정" 이라고 정의했다
희망의 목표는 충실감에 가득찬 상태로 비참한 존재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아마 칙센트미하이가 정의한 플로우와 같은 개념일 것이다
물질의 획득이 아닌 비전의 실현을 향한 능동적인 감정!!
충실감에 가득찬 상태가 되기 위한 노력!!
지금까지 내가 생각한 희망이란 어찌나 비루하고 유치했던지 모르겠다
내가 품은 희망은 기껏해야 물질적이고 안정적인 눈에 보이는 것들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는 물질의 획득은 희망이 아니라고 했다
대체 나에게 비전이라는 게 있었나?
그 비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능동적인" 감정이란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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