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3 :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 불타는 사막에 피어난 꽃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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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편 마지막 권인가 보다.

베스트셀러라 오래 기다릴 줄 알았는데 마침 도서관 신간코너에 있어서 얼른 빌렸다.

문학 작품은 안 읽어서 창비에서 나온 책들은 거의 접하질 못했는데 이 문화유산 시리즈는 편집을 참 잘하는 것 같다.

안의 사진들도 마음에 들고 읽기가 참 편하다.

무엇보다 글솜씨!

유홍준씨 책의 특장점은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것처럼 부드럽게 잘 넘어가는 편안한 문체에 있는 듯하다.

기행문이 감상 위주라면 답사기는 역사 유적의 지식에 방점을 둔다는 설명이 이해된다.

좋은 기행문을 쓰기가 어려운 까닭은, 에세이를 잘 쓰는 게 원래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점에 범람하는 여행기를 읽을 때마다 실망하게 되는 듯하다.

전문 에세이스트가 아니라면 이런 답사기 형식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지식에 비중을 두는 쪽이 독자 입장에서는 훨씬 도움이 된다.

항상 모호하게 다가왔던 중국의 서역과 실크로드에 대한 기본 개념이 조금씩 잡히는 것 같아 즐겁게 읽었다.

1,2 권보다 3권이 더 마음에 든다.

일본 답사기 네 권도 정말 유익했는데 이번 실크로드 답사기도 참 좋았다.



<오류>

274p

5공이란 코란을 외우는 염공, 세금을 부과하는 고공, 메카에 성지순례를 다녀오는 조배공, 하루 다섯 번 예배하는 예공, 금식에 참여하는 재공이다.

 6신은 첫째 코란경에 대한 믿음, 둘째 알라에 대한 믿음, 셋째 천사에 대한 믿음, 넷째 전생에 대한 믿음, 다섯째 후생에 대한 믿음, 여섯째 알라의 섭리대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다.

-> 5공 중 첫번째는 코란을 외운다기 보다는 알라 외에 신은 없고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자라는 신앙 고백이라고 번역해야 할 것 같다. 또 6신 중 넷째 전생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사도들에 대한 믿음이다. 이슬람은 전생을 믿지 않는다. 또 다섯째 후생에 대한 믿음도 최후의 심판으로 바꾸면 더 의미가 명확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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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읽다, 타이완 세계를 읽다
우 링리. 크리스 베이츠 지음, 정해영 옮김 / 가지출판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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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이 시리즈를 읽었을 때는 수박 겉핥기 같은 너무 가벼운 지식인 것 같아 약간 실망했는데 적어도 이 타이완 편은 괜찮다.

아내는 타이완 사람이고 남편은 이 곳에 유학 온 미국인 부부라 현지인과 외국인 두 관점이 섞여 있어 더 흥미로운 것 같다.

대만은 중국 본토와는 약간 다른 역사를 가진 듯하다.

일본과 오키나와 느낌이랄까?

제주도는 원주민이 따로 있거나 하지 않아서 좀 떨어진 섬일 뿐이지 다른 문화권이라는 생각은 안 드는데 대만은 아예 고산족이 따로 있고 현재는 중국과 다른 정치 체제이다 보니 우리와 북한 관계인가 싶다.

그럼에도 장제스가 대만으로 밀려온 후 교육을 통해 한민족 중화문명권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져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확고하다고 한다.

대만 문화를 소개하는 걸 보면 공산당이 정권을 잡은 중국 본토보다 오히려 우리나라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교육열이나 권위주의, 혼전순결, 가족 우선, 가부장 문화, 체면 중시, 비언어적 의사소통 등이 그렇다.

여기도 산후조리 문화가 있나 보다.

산후풍은 매우 동양적인 증세인데 조리원이라는 상업성과 결합하여 현대 사회에 잘 정착한 것 같다.

산후조리 문화가 이렇게 보편화 된 걸 보면 한의학도 여전히 위상을 유지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백일 잔치와 돌잔치를 하는데 대만은 생후 한 달을 기념한다고 한다.

한 달은 신생아 시기라 백일 잔치가 아기에게는 좀더 나을 것 같다.

영아사망률이 워낙 높을 때의 전통들이다.

일본 식민지 시기에 근대화가 됐다고 인정하는 부분은 다소 놀랍다.

1947년 2.28 사건 때는 국민당 정부가 무려 2만 명을 학살했다고 하는데 타이완의 현대사도 갈등이 무척 많을 듯하다.

국민당 독재를 물리치고 기대감을 갖고 정권을 잡았던 천수이볜이라는 당수는 부정부패로 감옥에 갔다니 여기도 진보가 도덕적이지만은 않는 모양이다.



<오류>

38p

송나라(860~1279) 때는 도교의 명상적인 측면과 연단술을 어느 정도 받아들인 성리학이 학파로 발전했다.

-> 송나라는 960~1279 년이다.

43p

서기 500년 경 달마 대사가 중국에 도착해 소림사에서 태국을 창시하면서 불교의 인기가 높아졌다.

-> 태국이 아니라 태극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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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문화경관
김광식 지음 / 눈빛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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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제목만 보고 유럽 문화경관에 대한 전문적인 책인 줄 알았다.

유럽 몇 개 도시의 기행문이라 정보 면에서는 아쉽지만 일단 사진이 너무 훌륭하다.

전문 사진작가가 아닌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인 것 같던데, 정말 대단하다.

저 멋진 표지 사진도 저자가 직접 촬영한 것이라고 한다.

이 출판사의 특장점은 선명하고 훌륭한 사진들이다.

판형이 옆으로 길어 읽을 때 다소 불편한 점은 있다.

기왕의 기행문이라면 시간 순서대로 편집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주제가 유럽의 문화경관이라서 그런지 다양한 곳을 소개해 주는 것은 좋은데 동선이 왔다갔다 해서 한번에 쭉 읽히지가 않고 좀 고생했다.

놀랍게도 저자가 83세 때 유럽을 여행하고 쓴 글이라고 한다.

지적 능력은 나이가 들어도 쇠퇴하지 않는 모양이다.

글로만 봐서는 80대 할아버지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문체가 산뜻하고, 무엇보다 노부부가 같이 외국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체력이 참으로 대단하다.

난 벌써부터 비행기 타기가 힘든데 정말 건강하신 분 같다.

그리스,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의 유명 유적지들을 소개한다.

유럽은 와이러니를 방문해서 숙박도 하고 현지 음식도 만들어 먹는 관광농업이 많나 보다.

사진만 봐서는 너무 관심이 가고 끌린다.

단순히 유적지 돌아다니는 수준이 아니라 그 지역에 머물면서 체험 활동을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것 같다.

라인 강 유역의 고성 탐방도 멋있었다.

유럽은 확실히 석조 건축물이라 잘 보존이 된 것 같다.

저자가 개신교도인지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해 설명하면서 가톨릭의 특징은 의식에 있고 개신교는 오직 성경에 근거한다는 점이 차이라고 했는데 이 부분은 동의하기 어려웠다.

교회와 성당에 모두 다니고 세례를 받았던 나로서는 오히려 개신교의 성경 무오류설, 근본주의적 관점이 더 우려스럽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중세 가톨릭의 신학을 여전히 고수한다고 착각하는 것 같아 아쉽다.

오히려 가톨릭의 성경 해석이 훨씬 진보적이고 열려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오류>

66p

기원후 39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했다.

-> 380년에 국교가 됐다.

182p

교황 클레멘스 7세(재위 1521-1634)와 교황 레오 10세(재위 1513-1521)는 로렌초의 손자로 메디치 가문 출신이다.

-> 클레멘스 7세의 재위 기간은 1521~1534년이다. 그리고 레오 10세는 로렌초의 아들, 클레멘스 7세는 조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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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아민 말루프 지음, 김미선 옮김 / 아침이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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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책에 내가 약한 것일까?

너무 힘들게 읽었다.

소설 형식이라 재밌게 읽을 줄 알았는데 역사서 보다 훨씬 더 힘들게 읽었다.

배경 지식이 없기도 하고 너무 여러 인물들이 등장해 가닥을 잡기가 어려웠다.

그렇지만 다 읽고 나니 복잡한 십자군 원정이 어느 정도 그려지는 소득이 있었다.

제목 그대로 유럽인의 관점이 아닌 침략을 당한 아랍인의 관점에서 전쟁 과정을 서술했기 때문에 이슬람 세계의 내분과 국제 정세를 파악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유럽인의 공세를 잘 막아내지 못했던 이유가 이슬람 세계 역시 셀주크 투르크와 바그다드의 아바스 왕조, 이집트의 파티마 왕조 등이 내분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국처럼 하나의 거대한 제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밀려오는 금발머리의 광신적인 전사들을 각개 격파해야 돼서 심지어 이 침략자들과 동맹을 맺어 같은 이슬람 측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런 복잡한 관계 때문에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 차례의 십자군 원정이 가능하고 그리스도교 왕국이 세워졌던 모양이다.

결국 이슬람은 침략자들을 몰아 냈지만 대항해 시대 이후에는 서구의 공격을 막을 수 없었으니 중세적 몰락이 안타깝다.

추천사에서 저자가 감히 다른 사람은 이슬람 내의 잘못을 언급하지 못하지만 내부인이기 때문에 용감하게 발언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 부분은 좀 의아하다.

당대 역사도 아닌 무려 천 년 전의 역사를, 어떤 이유로 비판하지 못한단 말인가?

오리엔탈리즘으로 비난받을까 봐 몸을 사리는 것인가?

역사도 사회과학인데 왜 이런 어정쩡한 도덕주의를 얘기하는지 모르겠다.


<오류>

264p

구금에서 풀려나기는 했지만 르노 드 샤티용은 사위인 보에몽 3세가 통치하고 있던 안티오케이아의 국정을 장악할 수가 없었다.

-> 보에몽 3세가 왜 사위인가 찾느라 시간이 한참 걸렸다. 사위가 아니라 의붓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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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녕왕과 무령왕릉
이도학 지음 / 학연문화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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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사, 특히 공주 시기의 백제는 역사책에서 많이 안 나와서 정확히 모르는 시대였는데, 집중적으로 당시를 조명한 책이라 읽고 나니 대략적인 구도가 그려져서 좋았다.

다만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1) 한성 백제의 마지막 왕인 개로왕이 장수왕에게 죽임을 당한 후 문주왕이 공주로 피난하였는데, 우리 역사서에는 부자관계로 나온다.

저자는 일본 서기 등을 신뢰해 형제로 생각하고 나도 이 쪽에 마음이 간다.

그렇다면 비유왕의 아들이 개로왕, 문주왕, 곤지였던 셈이다.

당시 곤지는 일본에 파견되어 있었는데 저자는 개로왕이 자신의 임신한 처를 곤지에게 주고 일본에 가던 도중 섬에서 사마왕, 즉 무녕왕을 낳았다는 기록을 부인한다.

일단 형사취수제는 있어도 형제공처제는 찾아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나 역시 이런 예는 들어보지 못한 것 같아서 다른 책에서 봤던 것처럼 아마도 무녕왕이 방계로 왕위를 계승하면서 그 뿌리를 가장 권위있는 한성백제 왕실과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낸 설화라고 추정한다.

저자의 이 추론을 다른 책에서 인용한 것을 봤던 생각이 나고 일리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므로 무녕왕은 곤지의 아들이고 다만 동성왕이 적자라 삼근왕 이후 왕위를 먼저 이었고, 아마도 무녕왕은 서자라 동성왕이 살해된 후 40세에 즉위한 것으로 본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무녕왕이 일본으로 가던 중 섬에서 출생했다는 기록을 부정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확실히 사료가 있는데 단지 추론만으로 섬에서 출생하지 않았고 심지어 일본에 간 일도 없었다고 한 부분은 납득이 안 간다.

또 저자는 비유왕 역시 구이신왕의 아들이 아니라 형제, 즉 아버지 전지왕의 서자라는 설을 지지한다.


2) 저자는 근초고왕의 마한 정복설을 부정하고 노령산맥 이북까지 간접지배 했는데, 공주로 백제 왕실이 이전한 후 동성왕 때 무진주까지 세력을 넓혀 갔다고 주장한다.

근초고왕의 마한 경략 범위가 어디까지였는지에 대한 학자들의 치열한 주장들을 읽었던 기억이 나서 이 부분도 흥미로웠다

저자의 주장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서진이 이민족에게 밀려 강남으로 내려가면서 점차 남방까지 한족의 범위를 넓혀 갔던 것처럼, 백제 왕실도 고구려의 침략으로 쫓겨갔지만 한반도 남부로 그 세력을 넓혀 갔던 것 같다.

중국처럼 한반도가 대륙이었다면 또다른 역사가 펼쳐졌을까?


3) 맨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백제의 요서 경략설을 사실로 받아들이지만 이 부분은 동의하기 어려웠다.

당시 북위가 화북을 통일하고 확고한 지배권을 행사할 때인데 과연 남제서 등에 나온 바다 건너 백제의 요서 경략이 가능한 일일까?

물증 자료가 없다면 신뢰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른 책에서 본 것처럼 고구려에 낙랑이 멸망하자 요동으로 낙랑인들이 이주하였고 그들을 받아들인 연나라에서 낙랑군이라는 이름을 붙여 거주하게 했고 이 낙랑군이 다시 옮겨 가다가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백제의 요서 경략은 북위의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했던 남조 역사가들의 잘못된 기록이라는 학설에 마음이 간다.

백제가 후연과 협력하여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해 요서로 진출했다는 저자의 추론에 물적 증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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