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히스토리 - 인류역사의 기원 생각하는 힘 : 세계사컬렉션 1
김서형 지음 / 살림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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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려 손이 갔는데 역시나...

중고생들이나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표지를 보니 청소년용이었다.

앞서 읽은 <도자기로 본 세계사>는 같은 시리즈인데도 정말 깊이가 있는데, 어쩜 이렇게 밖에 못 쓰나 실망스럽다.

인류의 기원을 밝힌다는 주제가 너무 거창해서인가?

<최초의 인류>를 읽고 나서 복잡한 호모 사피엔스의 기원을 정리하고 싶어 좀 쉬운 책을 골랐는데 그래도 이 부분은 약간의 도움이 됐고 뒷쪽으로 갈수록 중학교 교과서 수준의 서술이라 아쉽다.

저자로서는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을 같이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이런저런 근세 이야기도 삽입했겠으나 너무 뜬금없어 글의 맥락이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

인류의 기원을 설명하다가 느닷없는 타이타닉 이야기를 하는 식이다.


분자시계를 근거로 인류는 600만~550만 년 무렵 공통 조상에서 침팬지와 갈라지게 된다.

호미니드, 즉 사람과에 속하는 정의를 확실히 모르겠다.

위키백과를 찾아보면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같은 대형유인원이 포함된다.

그 밑에 사람족, 즉 호미닌에 침팬지아족과 사람아족이 있다.

이 사람족의 하위 분류, 즉 사람아족에 호모속이 있고, 그 외에 파란트로푸스속,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 사헬란트로푸스속, 오로린속, 아르디피테쿠스속, 케냔트로푸스속이 있다.

사람속, 즉 호모의 종류가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등이 있는데, 저자는 이 하이델베르크인이 호모 사피엔스의 직접 조상이라고 한다.

용어 정의가 확실하지 않는 것 같아 다른 책을 참조해야 할 것 같다.

하여튼 인간의 진화는 일직선이 아니라는 게 중요한 듯 하다.

생명의 기원에 대한 부분에서 저자는 오파린의 원시수프 설만 설명했는데 이정모씨의 책에 따르면 요즘에는 거의 언급되지 않고 심해 열수구 가설이 받아들여진다고 했었다.

업데이트가 필요한 부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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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럽 나의 편력 - 젊은 날 내 영혼의 거장들
이광주 지음 / 한길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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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별 4개 주는 책들이 많아져서 기분이 좋다.

한 권의 책에서 이렇게 많은 지식과 생각할 꺼리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기쁘고 행복하다.

책을 읽은 그 순간만큼은 세상 만사를 다 잊고 몰입하게 되는 것 같다.

현실로부터의 도피라는 자조적인 생각도 들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어쩌면 독서를 포함한 지적 활동, 혹은 문화나 예술, 교양 등도 종교나 윤리도덕, 거창한 대의명분, 시대정신처럼 인생을 살아가는 데 유의미한 방향키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앞서 읽은 이병한씨의 <유라시아 견문>에서는 동유럽 사상가들이 공산주의 이후의 대안으로 종교 즉 기독교를 내세웠다.

폴란드의 천주교나 러시아의 정교 등은 마치 우리의 유교 전통과도 같은 오래된 연원을 가진 민족 정신 비슷한 것이리라.

한국에서의 기독교는 어찌 보면 외세와도 비슷한 느낌이니 종교가 주는 의미가 서구 사회와 같을 수 없으리라.

그럼에도 종교의 광신과 도그마, 특히 이른바 근본주의자들이라 불리는 미국식 성경 무오류설 종파들이 먼저 떠올라 진정으로 21세기에 종교가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매우 회의적이었다.

이 책에서는 19세기 문화사가인 부르크하르트를 통해 국가, 종교, 문화 이 세 가지의 조화를 권한다.

국가라고 하면 애국심, 내셔널리즘, 오늘날 한국의 민족주의 내지 친일 청산 같은 걸 들 수 있겠고 종교는 이슬람 사회와 앞서 말한 공산주의 몰락 후의 동구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화는?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는 러시아 경구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과연 문화와 예술, 그리고 나같은 평범한 시민들의 교양은 이 급변하는 시대의 방향키가 될 수 있을까?


책이 참 예쁘다.

노란색 표지가 전혀 촌스럽지 않고 판형도 읽기 딱 좋고, 안의 사진들도 색감이 참 좋다.

한길사에서 책을 참 잘 만들었다.

이광주씨의 오래된 저작 "유럽사회-풍속산책"에서도 18세기 계몽주의에 대한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는데 이번 책을 통해서도 유럽의 많은 지식인들을 만나 볼 수 있었다.

이름만 들었지 실제로 어떤 사상을 가졌는지 전혀 몰랐던 유럽 지성인들에 대해 알게 된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다.

종교개혁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당대의 최고 지성이었던 에라스뮈스가 그것에 동조하지 않고 방관자 자세를 취했다는 점을 비판한 책들을 많이 봤다.

그런데 이 책에 따르면 루터는 행동하는 지식인이면서 맹목적이고 광기어린 집념을 가진 신앙인이었고, 에라스뮈스는 궁극적으로 관찰자의 역할을 자임한 지성인이자 휴머니스트였던 셈이다.

어려서는 행동하는 지식인이 참 인간이라 생각했었는데 나이가 들고 이른바 진보라는 이름을 앞에 내세운 사람들의 행태를 지켜 보면서 어쩌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일거에 때려부수고 전체의 이름으로 개인을 구속하고 재단하는 혁명이 아닌,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휴머니즘적인 한걸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류>

72p

그들 가운데는 독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숙부로서 저명한 역사가인 오토 4세, 훗날 교황이 되는 두 명의 인물, 추기경이 된 몇몇 제자도 있었다.

-> 아벨라르의 제자인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숙부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아벨라르 자체가 한국에서는 유명하지 않은 신학자라 정보가 없어 찾느라고 혼났다. 아벨라르 제자 검색하면 죄다 엘로이즈와의 연애 얘기만 나온다.

아벨라르의 제자는 오토 4세가 아니라 중세 역사가인 오토 폰 프라이징이고, 그는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아니라 황제 프리드리히 1세의 숙부이다. 프리드리히 1세의 아버지인 슈바벤 공작 프리드리히 2세와 오토 폰 라이징은 아버지가 다르고 어머니가 같은 이부형제이다.

431p

디트리히의 아버지는 프로이센의 장교로 제1차 세계대전 때 러시아 전선에서 전사했다.

-> 위키백과에 따르면 프로이센의 장교로 러시아에서 전사한 이는 친부가 아니라 계부로 정식 입양하지 않아 성도 바뀌지 않았다. 친부는 베를린 경찰이었고 6세 때 사망했다.

434p

그리고 히틀러와 그녀의 싸움이, 생애를 건 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때 그녀의 나이 29세였다.

-> 히틀러의 연설을 처음 들은 1933년은 그녀가 1901년생이므로 29세가 아니라 32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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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빈, 사극의 배반
정두희 외 지음 / 소나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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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읽어야지 생각만 하던 책을 드디어 빌렸다.

2004년에 출간됐으니 벌써 16년이나 지났구나.

시간이 참 빠른 것 같다.

김혜수가 장희빈 역을 맡아 화제가 됐던 드라마를 소재로, 당시 왕실과 조정을 학술적인 측면에서 분석한 글들인데 밀도가 헐거운 느낌이 들어 약간 실망스럽다.

장희빈에 대한 21세기적인 해석인가, 자꾸 숙종은 정치적이고 공적인 목적으로 장희빈과 남인을 파트너로 선택하고 환국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폐위와 복위를 반복했다고 하는데, 그런 의도도 약간은 있겠지만 그게 주 이유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왕비가 자식을 못 낳아 후궁의 아들이 세자에 오른 사례는 조선 역사를 통틀어 너무나 많다.

오히려 편안하게 적장자가 계승한 경우를 찾기 힘들 정도인데 단지 후계자의 정통성 강화만을 위해 부득불 본처를 내치고 중인 출신의 후궁을 왕비로 세우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겠는가?

숙종 자신의 편협한 성격에 큰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숙종이 장희빈을 정치적 파트너로 삼았기 때문에 단순히 애정 행각으로 왕비를 폐위시키고 다시 복위시킨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다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연산군도 본인 성격이 괴팍해서가 아니라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서 폐비 윤씨 사건을 사화로 연결시킨 것인가?

모든 것을 다 사회 탓 구조 탓으로 돌리는 해석에는 반대한다.

유난히 숙종대에만 왕비의 폐위와 복위가 반복되었던 까닭은 숙종이라는 인물의 독특한 성격과 신분상승 욕구가 강했던 장희빈이라는 인물이 만났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저자는 줄곧 궁녀라는 것이 원래 공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정치에 개입하는 것이 금기를 깬 행동이 아니라 당연하다고 주장하는데, 그녀들이 품계를 받고 일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지극히 행정적인 궁궐 내부의 하급직에 불과했기 때문에 정치에 관여하는 것이 마치 당연한 책무인 양 기술한 것은 잘못된 견해라고 본다.

국왕이 왕비의 가문과 정치적 연대를 맺어 그 인척들을 등용할 수는 있으나 그것 역시 공적인 조정의 자리에서 이뤄질 때 합당한 것이지, 정말로 왕비나 후궁과 상의하여 정사를 돌본다는 건 측천무후 정도나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 싶다.

요컨대 조선이라는 전제군주정 치하에서는, 특히 유교적 덕목이 매우 중시된 나라에서는 저자의 견해처럼 궁녀들이 공적으로 정치에 개입하는 게 당연한 일은 절대로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자는 장희빈이 후대인에 의해 일방적으로 악인으로 묘사되었다고 무고함을 주장하지만, 어떤 후궁들도 후계자를 낳았다고 해서 정궁의 자리를 넘보지는 않았다.

남인이라는 정파와 연결된 것부터가 보통 정치력을 가진 여인이 아니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당장 다음대 영조의 후궁인 선희궁은 유일무이한 후계자 아들을 낳아 주고 그 외에도 많은 옹주를 낳은 궁인 출신이었지만 어떤 잡음도 없이 죽은 듯이 평생을 보낸다.

대부분의 후궁들은 그녀와 비슷했고 그것을 높이 숭상했으니, 장희빈의 경우는 조선시대에도 매우 특이하다 생각된다.


맨 앞 장에 역사 드라마에 대한 저자의 견해에 공감하는 바다.

사극은 고증에 충실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통해 문학적 상상력을 더해 관심을 갖게 만드는 데 의의가 있다.

삼국지가 역사와 안 맞는 것 투성이지만 이 불멸의 소설을 통해 우리는 무려 2천 년 전 중국 역사를 꿰뚫고 있다.

나 역시 KBS 에서 방영한 <근초고왕>을 통해 백제에 대한 무한한 관심을 갖게 됐다.

어쩌면 사극은 역사를 바탕으로 하지만 사실은 문학적으로 완성도가 있는지를 평가받는 게 중요할지 모르겠다.

문제는 사극을 곧 역사로 이해하는 대중들의 태도일 것이다.

역사왜곡하는 사극이 문제라기 보다는, 사극을 드라마가 아닌 역사로 받아들이는 대중들이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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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그리스에서 불볕천지 터키까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마쓰무라 에이조 사진 / 문학사상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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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에 읽는 에세이이며 하루키인지.

막연히 표지만 보고 너무 산뜻하고 예뻐서 골랐는데 역시나 명불허전.

너무 줗다.

오래 전에 <먼 북소리>라는 에세이를 읽고 무척 좋았던 기억이 있어 한동안 열심히 다른 에세이도 읽다가 시들해졌었는데 근 십수 년 만에 읽으니 정말 좋다.

좋은 에세이를 쓴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많은 기행문이 나오고 있지만 지식을 주던가 수필 읽는 즐거움을 주던가 해야 하는데 대부분은 둘 다 만족을 못 시켜 줘서 요즘은 잘 안 읽고 있다.

요즘처럼 검색이 잘 되고 수많은 사진들과 영상을 구할 수 있는 시대라면 기행문의 본질은 역시 좋은 문장력, 글 그 자체에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기행문들은 함량 미달처럼 느껴져 어느 순간부터 안 읽게 됐다.

최근에 읽었던 책이 공지영씨의 <수도원 기행>이었는데 소설가의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평범해서 깜짝 놀랬던 적도 있다.

이 책은 왜 하루키에 열광하는지 이해가 금방 가는 좋은 에세이다.

흑백 사진들도 운치있고 좋았다.

그리스 수도원을들 화려하게 보여주는 건 아니지만 여행 중인 이 조그만 남자를 너무 맛깔나게 잘 포착했다.

이 작가의 글이 좋은 건 삶에 대한 가벼운 농담 같은 접근법 때문이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은데, 이렇게 툭툭 지나가듯 설렁설렁 살고 싶은데.

원래 사람이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이 있나 보다.

그리고 이런 가벼운 삶은 이렇게 유명한 세계적인 소설가에게나 허락된 여유인지도 모르겠다.

정해진 시간에서 단 5분만 늦어도 스트레스 지수가 팍팍 올라가는 나로서는 이런 여유있는 여행은 꿈도 못 꿀 것 같다.

너무 재밌는 문장들이 많아 혼자 막 웃었다.


115p

베네치아의 토르첼로 섬에서 본 수난도는 이탈리아에서는 잔혹한 지옥도로 유명하지만 이것에 비하면 천국에 준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쨌거나 이런 그림을 보고 있자니 나 같은 사람은 아직 수난을 덜 겪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문예비평 같은 건 수난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것이다.


바로 이런 식의 유머스러운 문장이 곳곳에 숨어 있다.

오히려 이 작가의 소설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개연성이 부족한 것 같고 약간은 억지스러운 느낌이 있어 잘 안 읽게 되는데 에세이가 정말 좋다!

지식을 얻기 위한 책들은 독서대에 책을 올려 놓고 노트와 볼펜을 손에 들고 정자세로 한 시간에 겨우 50 페이지나 읽을까 말까 하는데 이런 에세이는 시간당 100 페이지도 문제없이 술술 잘 넘어간다.

이런 책이면 하루에 두 권, 세 권도 금방 읽겠다.

간만에 편안한 독서, 즐거운 독서였다.

그리고 번역도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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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견문 3 -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유라시아 견문 3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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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권이 완결됐구나.

1권 읽고 중국몽을 꿈꾸는 저자의 철학에 공감이 안 되는데도, 독특한 여행법이 흥미로워 다음 권을 기다렸었다.

두께가 상당해 미루다가 드디어 빌리게 됐다.

2권이 대출중이라 3권을 먼저 읽었다.

600 페이지가 넘어 긴장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평이한 문장들이라 속도감이 났다.

오히려 저자의 세계관에 거부감이 너무 커서 계속 읽어야 하나 고민이 됐었는데 역시 어떤 책이든지 안 읽는 것보다는 읽는 게 훨씬 좋은 것 같다.

특히 폴란드의 정치인 리샤르트 레구트코와의 대담 부분이 아주 유익했다.

상당히 긴 분량인데 축약하지 않고 전문을 실어 주어 많은 도움이 됐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계속 서구 민주주의의 독선에 대해 경계하고 그 대안으로 정치적 영성을 주장한다.

위의 폴란드 정치인도 역시 종교를 통한 영성의 회복 혹은 고대 그리스의 이상향인 교양있는 인간상을 추구한다.

정말 종교가 현재 민주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계몽주의가 군주주의를 대신했듯이 과연 종교가,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독선적으로 변해버린 민주주의 대신 21세기를 끌고 갈 새로운 사상이 될 수 있을까?

무신론과 진리에 대한 과학의 가치를 확신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공감이 안 된다.

세상 모든 것이 다 가변적이고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변할 수 있어도 지구가 46억 년 전에 태어났고 인간도 다윈의 적자생존 법칙에 의해 오래 전부터 진화해 온 존재라는 사실은 변할 수 없음을 확신하는 나로서는 정말로 기독교가, 이슬람이, 혹은 힌두교가 무슨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전혀 공감이 안 된다.

혹시 저자는 종교에 대해 자세히 모르고 마치 평화주의나 녹색당 같은 사변적인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이란의 이슬람 혁명에 대해서도 푸코를 인용하면서 매우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종교의 도그마에 갇혀 신앙의 자유를 얻지 못하고 사상을 강요하는 폐쇄적인 신정 국가 체제를 바람직한 서구화의 대안으로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

서구화에 의한 세계화의 반발, 혹은 민족주의의 발로인가?

냉전이 끝나면 국경을 초월하여 자유롭게 교류하고 열려 있는 보편적인 세계국가가 오지 않을까, 평화의 시대에 대한 희망은 국지적인 분쟁들로 그저 꿈이었음이 드러났다.

마치 19세기에 오스만 제국이나 합스부르크 제국 밑의 신민들이 민족주의에 고취되어 독립해 나갔던 것처럼 EU 통합 혹은 미국 중심체제에서 벗어나 각자의 길로 가려 한다고 한다.

영국의 브렉시트나 유고 연방의 해체만 봐도 이해는 되는데 그렇다면 어떤 대안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동의를 못하겠다.

교조적 민주주의가 사실은 전체주의와 통한다는 말에 대해 생각해 봤다.

저자는 촛불혁명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굉장한 가치 부여를 하고 있지만 혹시 지금 다시 글을 쓴다면 아직도 진정한 시민사회의 승리, 정당 대신 자유로운 시민들이 이룩해 낸 놀라운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민주주의 혹은 올바르다는 개념에 저촉되는 어떤 주장도 금지된다고 현재의 서구식 민주주의를 비판하고 있는데 과연 우리나라를 보면 그렇다.

5.18, 세월호, 일제시대, 페미니즘 등에 대해 약간이라도 다른 의견을 내세우면 심지어 법적인 처벌을 받도록 하자는 분위기다.

전체주의는 확실히 한국 사회의 기저에 깔려 있는 것 같다.

위의 폴란드 정치인이 주장하는 영성의 회복, 혹은 교양있고 철학을 가진 인간상을 키우기 위해 그 대안이 전통적인 문화와 종교라는 것에는 회의감이 들지만, 적어도 그 이상에는 공감한다.

그렇지만 현대는 대중문화, 소비주의의 시대이고 70억 명의 인구에게 가벼운 대중문화와 화려한 소비문화 대신 지적이고 교양있는 사람이 되라고 과연 권면할 수 있을까?

실효성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가 너무 변해 버려서 의미없는 주장으로 들린다.

저자의 독특한 여행법이 매력적이면서도 답답한 느낌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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