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그리스에서 불볕천지 터키까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마쓰무라 에이조 사진 / 문학사상사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만에 읽는 에세이이며 하루키인지.

막연히 표지만 보고 너무 산뜻하고 예뻐서 골랐는데 역시나 명불허전.

너무 줗다.

오래 전에 <먼 북소리>라는 에세이를 읽고 무척 좋았던 기억이 있어 한동안 열심히 다른 에세이도 읽다가 시들해졌었는데 근 십수 년 만에 읽으니 정말 좋다.

좋은 에세이를 쓴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많은 기행문이 나오고 있지만 지식을 주던가 수필 읽는 즐거움을 주던가 해야 하는데 대부분은 둘 다 만족을 못 시켜 줘서 요즘은 잘 안 읽고 있다.

요즘처럼 검색이 잘 되고 수많은 사진들과 영상을 구할 수 있는 시대라면 기행문의 본질은 역시 좋은 문장력, 글 그 자체에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기행문들은 함량 미달처럼 느껴져 어느 순간부터 안 읽게 됐다.

최근에 읽었던 책이 공지영씨의 <수도원 기행>이었는데 소설가의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평범해서 깜짝 놀랬던 적도 있다.

이 책은 왜 하루키에 열광하는지 이해가 금방 가는 좋은 에세이다.

흑백 사진들도 운치있고 좋았다.

그리스 수도원을들 화려하게 보여주는 건 아니지만 여행 중인 이 조그만 남자를 너무 맛깔나게 잘 포착했다.

이 작가의 글이 좋은 건 삶에 대한 가벼운 농담 같은 접근법 때문이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은데, 이렇게 툭툭 지나가듯 설렁설렁 살고 싶은데.

원래 사람이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이 있나 보다.

그리고 이런 가벼운 삶은 이렇게 유명한 세계적인 소설가에게나 허락된 여유인지도 모르겠다.

정해진 시간에서 단 5분만 늦어도 스트레스 지수가 팍팍 올라가는 나로서는 이런 여유있는 여행은 꿈도 못 꿀 것 같다.

너무 재밌는 문장들이 많아 혼자 막 웃었다.


115p

베네치아의 토르첼로 섬에서 본 수난도는 이탈리아에서는 잔혹한 지옥도로 유명하지만 이것에 비하면 천국에 준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쨌거나 이런 그림을 보고 있자니 나 같은 사람은 아직 수난을 덜 겪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문예비평 같은 건 수난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것이다.


바로 이런 식의 유머스러운 문장이 곳곳에 숨어 있다.

오히려 이 작가의 소설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개연성이 부족한 것 같고 약간은 억지스러운 느낌이 있어 잘 안 읽게 되는데 에세이가 정말 좋다!

지식을 얻기 위한 책들은 독서대에 책을 올려 놓고 노트와 볼펜을 손에 들고 정자세로 한 시간에 겨우 50 페이지나 읽을까 말까 하는데 이런 에세이는 시간당 100 페이지도 문제없이 술술 잘 넘어간다.

이런 책이면 하루에 두 권, 세 권도 금방 읽겠다.

간만에 편안한 독서, 즐거운 독서였다.

그리고 번역도 아주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