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의 상장례 역사문화연구총서 19
이현진 지음 / 신구문화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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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지루하긴 했지만 복잡한 유교식 장례 절차에 대한 기본 개념을 익힐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좀더 쉽게 설명하는 책이 나오면 더 좋을 것 같다.

조선은 정말 유교적 예치국가였음을 새삼 확인했다.

3년에 걸친 장례와 매년 반복하는 제사 등을 보면 유교 역시 단순한 사상이나 철학이기 보다는 유사종교가 아니었나 싶다.

기독교가 화려한 미술 문명을 꽃피웠던 것처럼 유교도 예술적 산물을 만들어 냈다면 21세기에도 영향력을 가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3년 동안 장례 절차에 온 국력을 기울일 정도로 특별한 일이 없는 정체된 사회였나 싶다가도, 고대 이집트나 진시황 등은 평생을 무덤 만드는데 바쳤던 걸 생각하면 그래도 진보된 사회였구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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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7 18: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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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미술관을 걷다 - 13개 도시 31개 미술관
이현애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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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에 다시 읽은 책.

저자의 신작 <독일 미술가와 걷다>를 최근에 읽고, 정리하는 기분으로 전작을 재독하게 됐다.

다시 읽으니 이해도 빠르고 재밌었다.

재독할 책이 많아지는 것도 독서의 큰 즐거움이다.

독일 여러 지역의 미술관을 가벼운 필치로 소개한다.

도판이 잘 되어 있어 보는 즐거움이 있다.

한국처럼 서울에 모든 것이 집중된 나라가 아니라 지방분권이 활발하여 좋은 미술관들이 전국에 고루 분포한다는 게 참 부럽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좀더 상세한 설명이 있으면 더 좋았을 뻔 했다. 

이를테면 뒤셀도르프를 신도시로 개발하고 예술의 중심지로 키웠다는 얀 벨렘 대제후가 누군가 했더니, 안나 마리아 루이자 데 메디치의 남편인 요한 빌헬름 팔츠 선제후였다.

메디치 가의 마지막 상속자였던 안나가 선대의 수집품을 피렌체에 기증해 오늘날 우피치 미술관가 되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으니, 기왕이면 얀 벨렘 대제후가 그녀의 남편이었음을 설명해 주면 이해가 더 빠를 것 같다.

부부가 자녀가 없었던 대신 예술을 몹시 사랑했던 듯 하다.

또 베를린의 구국립미술관에 전시된 샤도우의 <루이제와 프리데리케 폰 프로이센 공주>라는 작품이 소개됐는데, 이렇게만 얘기하면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루이제는 프로이센의 국왕인 프리드리히 3세의 왕비였고, 동생인 프리데리케는 시동생과 결혼했다.

루이제는 나폴레옹이 독일을 침략했을 때 전후처리를 위해 노력해 애국심으로 국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이 정도 정보를 알려주면 작품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독일은 공국이 많아 프로이센의 제국 성립 이전 역사는 늘 헷갈렸는데 미술관 건립과 관련된 각 공국의 역사가 간략하게 나와 정리하는데 도움이 됐다.


<오류>

191p

슈테델 미술관 편에서 소개된 클로드 모네의 1868년 작품은 제목이 잘못 번역된 것 같다.

<방에서의 아침 식사>가 아니라, <The Luncheon> 즉, 오찬이나 점심 식사다.

263p

카셀의 고전회화관을 세운 가문에 대한 설명 중, 할아버지 카를 다음인 아들은 빌헬름 1세가 아니라 빌헬름 8세다. 그 후에 제후의 칭호를 얻은 이가 바로 빌헬름 1세인데 그는 빌헬름 8세의 손자다. 

저자가 같은 인물로 착각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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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음식 속 조선 야사 - 궁궐부터 저잣거리까지, 조선 구석구석을 우려낸 음식들 속 27가지 조선사, 2018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도서
송영심 지음 / 팜파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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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에 다소 못 미친 책.

기본적으로 음식 자체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이해도가 약간 떨어졌다.

냉면은 설명하려면 무엇을 냉면으로 정의하는지 평양식과 함흥식은 정확히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등등을 먼저 정확히 정의하고 그 유래와 뒷이야기를 풀어야 하는데 여기저기서 정보만 끌어온 느낌이다.

내가 요리에 대한 관심이 적어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경종이 게장과 생감을 같이 먹고 승하했다던지, 사도세자가 노론의 희생양이었다는지 하는 야사는 책의 신빙성을 많이 떨어뜨린다.

대신 설렁탕이 선농단에서 유래한 것은 잘못된 전설이다는 걸 밝히는 글 등은 도움이 됐다.

애매했던 부분이 헌종의 간택후궁이었던 경빈 김씨에 대한 설명이다.

보통 알려져 있기로는, 삼간택에서 떨어진 김씨 처녀를 헌종이 잊지 못해 후궁으로 삼았다고 하는데 어떤 책에서는 야사에 불과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1844년에 왕비 책봉이 있었고 경빈 김씨는 1847년에 궁에 들어왔는데 과연 그녀가 삼간택에 참여했는지 궁금하다.


<오류>

88p

숙종의 초비 인경왕후는 29세에 사망한 게 아니라 20세에 사망했다.

104p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는 16세가 아닌 15세에 책봉되어 부군인 영조와 51세 차이가 난다.

108p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본관은 청풍이 아니라 경주 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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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z4ever 2018-02-20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종 독살설이나, 사도세자와 노론과의 불화는 단순히 야사라기 보다는
현재도 연구되고 주장되고 있는 설이라, 책의 큰 흐름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e-book으로 나오면 꼭 보고 싶네요 ^^
 
서울 산수 - 옛 그림과 함께 만나는 서울의 아름다움
이태호 지음 / 월간미술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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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역 교보문고가 새로 생겼다고 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방문했는데 인문학 서적 코너를 보고 실망감을 금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앉아서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대신, 책 진열대가 너무 줄어 겨우 베스트셀러나 나와 있지 내가 좋아하는 역사나 교양과학 서적은 몇 권 없었다.

서점에 가는 이유는 책을 직접 들여다 보기 위해서인데, 죄다 높은 책장에 꽂혀 있어 손이 닿지도 않아 겨우 제목이나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나마 몇 권 구입하려고 찾아보니 없는 것도 꽤 있었다.

어차피 제대로 책을 구경하지도 못할 바에는 뭐하러 굳이 서점에 가겠는가.

그냥 인터넷 서점에서 고르는 수밖에.

동네 서점 망한다고 도서정가제까지 하면서 단순히 책을 사는 공간이 아닌, 책을 읽고 마치 쇼핑하는 것처럼 문화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요즘의 트렌드는 좋긴 한데, 정작 새로운 책을 소개하는 본연의 기능은 사라지는 것 같아 너무나 아쉽다.

합정역 교보문고만 해도 공간이 꽤 넓은데 책 읽는 곳과 팬시점이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있어 정작 구경할 만한 책들은 별로 없는 느낌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송도 역시 마찬가지다.

교보문고가 생긴다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막상 가보니 자기계발서나 가벼운 여행기, 베스트셀러 소설들이나 진열대에 나와 있을까 역사서나 교양과학서 같은 책들은 손이 닿지도 않는 높은 곳에 올라가 있어 열어 볼 엄두를 못 냈다.

서점 나들이의 즐거움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아 너무 서운하다.


이 책은 합정역 교보문고에서 발견한 책이다.

옛 그림에 나온 서울의 여러 곳을 직접 답사하고 개략적인 역사를 알려준다.

270 페이지 정도의 얇은 분량이라 아쉽고 2편을 기대해 본다.

저자가 국전에 입선한 전적이 있는 분이라 본인이 그린 수묵화를 많이 실어서 현대 수묵화의 미감을 과거 그림과 비교하는 맛이 있긴 하나 전체적인 글 내용과 많이 동떨어진 느낌이다.

대신 당시 한양 지도를 그림으로 그려 설명한 부분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책에 소개된 그림 중에서는 노가재 김창업의 서자였던 진재 김윤겸의 <송파환도도>와 능호관 이인상의 <누상관폭도>가 기억에 남는다.

김윤겸의 그림은 마치 현대 수묵담채를 보는 듯한 세련된 미감이 있어 인상적이었고 나로서는 처음 접해 신선했다.

정반대되는 느낌의 이인상의 문인화 그림도 참 좋았다.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바지만, 한자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고 한시를 이해하는 날이 오길 소망해 본다.

수박 겉핥기처럼 겉에 보이는 글자들만 읽어서는 참맛을 못 즐기는 것 같아 너무 아쉽다.


<오류>

21p

도연명의 <도화원기> 소개글 중, 진나라 효무제 때라고 나오는데 한자가 잘못 됐다.

陳 나라가 아니라 晉나라, 즉 영가의 난 이후 강남으로 내려온 동진을 가리키는 듯 하다.

陳나라는 6세기에 세워져 4세기 사람인 도연명과 관계없다.

112p

1540년에 그려진 <미원계회도> 설명 중, 승문원 교리 시절 퇴계 이황이 참여했다고 하는데 미원은 사간원을 가리키니 승문원과 관계가 없다.

승문원은 괴원이라 불렸다.

위키를 찾아보니 1534년에 승문원부정자로 관직에 처음 출사했고 1540년에 홍문관 교리가 됐다고 한다.

홍문관 교리가 사간원 계회와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하여튼 승문원 교리는 잘못된 부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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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 - 역사가 숨긴 한반도 정복자
장한식 지음 / 산수야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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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너무 좋은 책을 읽었다.

청나라 역사라고 하면 누르하치가 명나라로부터 독립해 후금을 건국할 당시나, 강희제부터 건륭제에 이르는 강건성세 시기, 혹은 함풍제 때의 아편전쟁부터 서태후 시기까지를 다루기 마련인데, 상대적으로 덜 조명된 홍타이지의 수성 시기를 분석한 책이라 흥미롭게 잘 읽었다.

단순히 실록 풀어 쓰기에 그치지 않고 후금이 건국되기까지의 과정, 후금에서 대청제국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은본위 경제와 맞물려 흥미진진하게 서술한다.

저자가 역사학자가 아니라 뻔한 이야기일까 걱정했는데 나로서는 후금 시기에 대한 훌륭한 정보를 많이 얻었다.

다만 애신각라를 여전히 신라를 사랑한다는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기재해 놓은 부분만 동의할 수 없었다.

위키를 찾아 보니, 애신은 쇠라는 뜻으로 쇠가 나는 강 이름을 국명으로 삼은 금나라를 뜻할 가능성이 크고, 각라는 부족을 뜻한다고 한다.

~각라라는 성이 여럿 존재는 것만 봐도 신라 사랑 운운은 말도 안 된다.

저자의 전작 중에 "신라 법흥왕은 선비족 모용씨의 후예였다"는 책이 있던데 신라의 금관 등은 흉노의 기마 문화가 전파됐다고 보기에는 시대 차이가 너무 나서 오히려 자생한 문화로 여겨진다는 게 학계의 통설이 아닌가 싶다.

어찌 됐든 은을 통화로 사용하면서 상품 경제가 확대되고 이를 이용해 경제력을 키워 나라를 일으킨 후금에 대한 고찰이 나로서는 처음 접한 신선한 이야기라 간만에 별 네 개를 주고 싶다.


<인상깊은 구절>

189p

사실 팔기제는 '나라의 전 자원을 군대로 투입하기 위한 거국적 결단'에 다름 아니었다.

337p

세상 물정을 모르는 자들이 당대의 여론을 주도한다는 것은 그 체제의 약점이고 불행이다.

344p

사실 언론의 대책없는 정치 개입은 조선의 큰 약점이었다. ... 기관 간의 선명성 경쟁을 벌여가며 '오랑캐 배척론'을 선동하는 언론의 강한 힘은 정책 입안자들의 손발을 묶어버리는 수준을 넘어 왕도 눈치를 봐야할 정도였다.

348p

'부모인 명을 돕기 위해서는 조선이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오랑캐와 한판 붙어야 한다'는 것이 척화의 중론이었다.

363p

그저 대의를 믿고 오랑캐와는 말도 섞지 말고 성안에서 끝까지 버티자는 주장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굶어죽거나 적의 칼에 군신이 상하게 돼 국가멸망으로 이어질 것'이란 주화파의 지적에 대해서는 '군신이 다 죽고 나라가 망하더라도 (명과의) 의리를 밝히는 것이 오랑캐를 황제로 받는 것보다 낫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막상 항복 이후 심양으로 끌려간 삼학사 외에 죽음을 택한 척화파 신료는 없었다.)

405p

사실 홍타이지는 조선의 '옥쇄 전략을 은근히 꺼려하였다. "만약 지나치게 압박한다면 황제는 죽은 시체뿐인 빈 성만 차지할 것"이라는 조선의 1월 21일자 국서를 꼭 믿은 것은 아니지만 극단적 명분론자인 조선 지도부가 언제든지 비상식적, 비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고 여겼다. 조선이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청을 자극해서 전쟁을 불러들인 것이야말로 '비현실적 선택'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406p

화약궤짝에 불을 질러 폭사한 김상용을 비롯해 상당수가 자결을 선택하지 않았던가? 실력을 겨뤄보고 자신보다 힘이 강하다고 확인되면 곧바로 신복하는 몽골인이나 다급하면 투항해서 목숨을 건지는 명나라 사람에 비해 조선인의 행동양태는 사뭇 달랐다.


<오류>

108p

누르하치의 큰 아들 추잉이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한 것은 1613년이 아니라 1615년이다.

1613년에 유폐됐고 1615년에 죽었다.

324p

오탈자 같은데, 인조가 즉위한 곳은 경인궁이 아니라 경운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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