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 - 역사가 숨긴 한반도 정복자
장한식 지음 / 산수야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간만에 너무 좋은 책을 읽었다.

청나라 역사라고 하면 누르하치가 명나라로부터 독립해 후금을 건국할 당시나, 강희제부터 건륭제에 이르는 강건성세 시기, 혹은 함풍제 때의 아편전쟁부터 서태후 시기까지를 다루기 마련인데, 상대적으로 덜 조명된 홍타이지의 수성 시기를 분석한 책이라 흥미롭게 잘 읽었다.

단순히 실록 풀어 쓰기에 그치지 않고 후금이 건국되기까지의 과정, 후금에서 대청제국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은본위 경제와 맞물려 흥미진진하게 서술한다.

저자가 역사학자가 아니라 뻔한 이야기일까 걱정했는데 나로서는 후금 시기에 대한 훌륭한 정보를 많이 얻었다.

다만 애신각라를 여전히 신라를 사랑한다는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기재해 놓은 부분만 동의할 수 없었다.

위키를 찾아 보니, 애신은 쇠라는 뜻으로 쇠가 나는 강 이름을 국명으로 삼은 금나라를 뜻할 가능성이 크고, 각라는 부족을 뜻한다고 한다.

~각라라는 성이 여럿 존재는 것만 봐도 신라 사랑 운운은 말도 안 된다.

저자의 전작 중에 "신라 법흥왕은 선비족 모용씨의 후예였다"는 책이 있던데 신라의 금관 등은 흉노의 기마 문화가 전파됐다고 보기에는 시대 차이가 너무 나서 오히려 자생한 문화로 여겨진다는 게 학계의 통설이 아닌가 싶다.

어찌 됐든 은을 통화로 사용하면서 상품 경제가 확대되고 이를 이용해 경제력을 키워 나라를 일으킨 후금에 대한 고찰이 나로서는 처음 접한 신선한 이야기라 간만에 별 네 개를 주고 싶다.


<인상깊은 구절>

189p

사실 팔기제는 '나라의 전 자원을 군대로 투입하기 위한 거국적 결단'에 다름 아니었다.

337p

세상 물정을 모르는 자들이 당대의 여론을 주도한다는 것은 그 체제의 약점이고 불행이다.

344p

사실 언론의 대책없는 정치 개입은 조선의 큰 약점이었다. ... 기관 간의 선명성 경쟁을 벌여가며 '오랑캐 배척론'을 선동하는 언론의 강한 힘은 정책 입안자들의 손발을 묶어버리는 수준을 넘어 왕도 눈치를 봐야할 정도였다.

348p

'부모인 명을 돕기 위해서는 조선이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오랑캐와 한판 붙어야 한다'는 것이 척화의 중론이었다.

363p

그저 대의를 믿고 오랑캐와는 말도 섞지 말고 성안에서 끝까지 버티자는 주장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굶어죽거나 적의 칼에 군신이 상하게 돼 국가멸망으로 이어질 것'이란 주화파의 지적에 대해서는 '군신이 다 죽고 나라가 망하더라도 (명과의) 의리를 밝히는 것이 오랑캐를 황제로 받는 것보다 낫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막상 항복 이후 심양으로 끌려간 삼학사 외에 죽음을 택한 척화파 신료는 없었다.)

405p

사실 홍타이지는 조선의 '옥쇄 전략을 은근히 꺼려하였다. "만약 지나치게 압박한다면 황제는 죽은 시체뿐인 빈 성만 차지할 것"이라는 조선의 1월 21일자 국서를 꼭 믿은 것은 아니지만 극단적 명분론자인 조선 지도부가 언제든지 비상식적, 비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고 여겼다. 조선이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청을 자극해서 전쟁을 불러들인 것이야말로 '비현실적 선택'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406p

화약궤짝에 불을 질러 폭사한 김상용을 비롯해 상당수가 자결을 선택하지 않았던가? 실력을 겨뤄보고 자신보다 힘이 강하다고 확인되면 곧바로 신복하는 몽골인이나 다급하면 투항해서 목숨을 건지는 명나라 사람에 비해 조선인의 행동양태는 사뭇 달랐다.


<오류>

108p

누르하치의 큰 아들 추잉이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한 것은 1613년이 아니라 1615년이다.

1613년에 유폐됐고 1615년에 죽었다.

324p

오탈자 같은데, 인조가 즉위한 곳은 경인궁이 아니라 경운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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