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나의 서양미술사 100
김영나 지음 / 효형출판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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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신간을 보고 너무 반가워 도서관에 신청했다.

저자의 전작 <서양미술의 기원>을 매우 인상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 서양미술사를 얼마나 깊이있게 분석했을까 기대에 차 읽었는데 신문에 연재된 글 모음이라 그런지 너무 말랑말랑 하다.

본격적인 개론서 정도 되는 줄 알았는데 편안하게 그림 감상하면서 읽을 수 있는 연재물 모음이라 좀 아쉽다.

100편이나 되는 그림을 소개하고 관련 이야기를 하느라 440여 페이지로 벌써 분량이 두껍긴 한데 그래도 한 챕터마다 조금 더 길게 설명해 주면 어땠을까 아쉬운 부분이다.

그렇지만 내용 자체는 편하게 읽을 수 있고 무엇보다 재밌다.

또 표지와 편집, 도판이 아주 마음에 든다.

다소 어둡게 나온 도판도 있지만 티치아노나 벨리니 같은 베네치아 화파들의 그림은 정말 색채감이 잘 살아있어 너무 마음에 든다.

작품 자체에 대한 분석보다는 작품을 둘러싼 시대적 배경이나 의의 등에 대한 인문학적 설명이 훨씬 많다.

소장처와 작품 크기, 발표 연도까지 표기되어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다소 딱딱해 보이는 제목과는 달리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인상깊은 구절>

135p

현대 서양에서는 개인을 숭배한다는 것 자체에 회의를 느껴, 위대한 인물의 이름을 도서관이나 대교 등에 붙여 기념한다.

195p

이 환상적인 앙리 루소의 그림은 진정으로 타고난 재능과 상상력을 가진 작가만이 가능한 것으로, 예술은 교육과 훈련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201p

흥미로운 것은 그리스 묘비에서는 사후 세계에 대한 관심은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사후 심판을 받는 장면이, 기독교 미술에서는 천국 또는 지옥의 장면들이 나타나는 데 비해, 그리스 미술에는 이러한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리스 인들은 현세와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억을 더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216p

청교도 정신이 뿌리 깊은 개척민이었던 미국인들에게 땀 흘리고 일하는 밀레의 농민상은 도덕적 우월성과 인간의 미덕을 보여준는 것이었다. 프랑스처럼 오랜 봉건 제도나 계급이 존재하지 않았던 미국에서는 건장한 농민 이미지에 위협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291p

표현주의를 위험한 예술로 생각한 나치는 1934년에 그에게 더 이상 작업을 하지 말 것을 요구했고, 1936년에는 놀데의 작품을 反독일적, 퇴폐적인 미술로 선언하며 작품을 압류했다. 자신을 독일적인 화가로 여기고 나치 당원으로 가입까지 했던 놀데를 반독일적으로 몰아붙인 것은 정말 아이러니였다.

340p

미술은 노동자의 기준에 맞추어야 하며 이젤 회화는 부르주아 회화라고 주장하는 정부와 미술이란 기본적으로 개인의 표현이라고 생각한 말레비치는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347p

아방가르드 미술가들은 작품이 마치 상품처럼 거래되는 미술 시장에 반발하였다. 미술은 아이디어가 중요하며 회화와 조작같이 반드시 물리적인 대상일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 요즈음에는 새로운 미술의 영역을 개척하려는 충동 자체가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 대중의 문화 의식도 높아지면서 더 이상 난해난 미술에 충격받거나 분노하지도 않는다. 고립되고 저항적인 성격의 아방가르드의 의미는 이제 사라진 것일까?

357p

2005년에 조사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여성 작가의 작품 비율은 아직도 5%에 불과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남성의 누드를 그린 작품 수가 훨씬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361p

미술가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은 고대에서부터 내려오는데 그 주된 이유는 손으로 하는 작업은 미천한 노동자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 화가나 조각가가 되려면 대학이 아니라 장인들의 공방에서 도제 교육을 받아야 했고 길드에 가입해야 했는데 이것은 일종의 노동조합과 같은 조직이었다. ... 화가, 조각가들이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부상한 것은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천재적인 미술가들이 등장한 르네상스부터였다. ... 미술학도들든 문학, 고전, 해부학 등을 정식으로 배우면서 장인의 계급에서 그리고 길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374p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기술만 배우지 말고 지식을 배워야 한다고 덧붙여 말했다. 그림은 손으로 그리기 때문에 기술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손은 상상력에서 나오는 것을 그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레오나르도와 같은 뛰어난 미술가들의 등장과 함께 미술은 이제 장인적인 기술 단련에서 벗어나 이론과 지식, 과학에 바탕을 둔 인문학적 위치로 끌러올려졌다. ... 인상파 화가들은 야외에서 풍경을 빨리 직접 화면에 옮겼는데, 많은 붓질이 겹쳐진 완성작은 아카데미의 기준으로 보면 스케치에 불과한 것이고 교훈적인 내용도 없었다. 

438p

거대한 규모의 이런 작품을 지각하는, 물리적이면서 심리적인 경험은 미술관에서는 어려운 생생한 체험이기도 했다. 그러나 월터 드 마리아는 아무리 최고의 작품이라도 자연 그대로의 그랜드 캐니언이나 나이아가라 폭포를 능가할 수는 없다고 겸손하게 말하기도 했다.


<오류>

353p

"아델레 블로흐 바우허 초상 1"은 그 후 약 1500억 불이라는 거금에 화장품 회사 에스티로더의 회장인 로널드 로더에게 팔렸고

->1억 3500만 달러로, 1500억 원에 팔렸다.

364p

'우르비노의 비너스' 크기가 11.9m*16.5m로 잘못 기재됐다. 1.19m*1.65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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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3 - 근대의 절정, 혁명의 시대를 산 사람들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3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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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3권이 나왔다.

역시 전문가가 쓰는 책은 질적으로 다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서양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깊이있게, 그러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발랄한 문체로 쓰여져 너무너무 재밌고 유익하다.

표지 디자인도 예쁘게 잘 나왔고 많은 도판들이 실려 책 자체가 너무 예쁘다.

어설픈 아마추어 작가들의 사이비 같은 역사서 말고 학자들이 눈높이를 조금 낮춰 대중을 위한 교양서를 많이 내주면 참 좋겠다.

1,2권도 좋았지만 3권도 정말 재밌다!!


1) 17세기 바다를 누비던 해적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하층민이 세상을 향해 싸울 때 유일한 무기가 용기라는 말에 가슴이 먹먹하다.

기득권을 갖고 태어나지 않는 사람들이 좀더 많은 권리와 이익을 누리려면 두려움을 무릅쓰고, 어쩌면 죽음을 감수하고서 용감하게 덤비는 수밖에 없는 듯 하다.

대부분의 해적들은 시대가 바뀌면서 국가권력에 의해 처형당하는 불행한 결말을 맺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 밑바닥층 삶을 거부하고 능동적으로 세상에 대항하면서 역사에 이름을 남긴 것을 보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평범하고 겁많은 소시민인 나 같은 사람에게는 해적 이야기가 묘한 울림을 준다.

2) 집념이 있는 인간이 승리를 쟁취하는가.

선악이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역사적 인물들의 역사적 사건들을 읽노라면 범인과는 다른 강렬한 투지가 느껴지고, 좀더 일반화시키자면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끊임없이 투쟁하고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죽음을 불사르는 것 같다.

나르바 전투와 폴타바 전투를 치룬 스웨덴의 칼 12세와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의 이야기는, 세계사적인 의미와는 별개로 인간의 투지가 느껴진다.

러시아를 전면 개혁한 표트르 대제도 그렇지만 겨우 15세에 왕위에 올라 군대와 함께 생활하며 최고의 사령관이 된 칼 12세도 놀랍다. 

이런 경우만 봐도 확실히 유럽의 국왕은 조선의 왕과는 매우 다른 종류의 군주였던 듯 하다.

3) 권력욕도 타고나는 듯 하다.

모든 왕비들이 측천무후나 서태후, 혹은 명성황후처럼 정국을 쥐고 흔들고 싶어 한 것은 아니었다.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불행한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공적인 일에서 벗어나 사적인 삶을 살고 싶어했고 시대가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

정치력이 부족한 왕을 남편으로 둔 불행인가.

4) 시몬 볼리바르는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자로 구대륙의 압제로부터 신대륙을 해방시킨 사람인데, 왜 남미는 미국처럼 자유민주주의 연방으로 발전하지 못했을까? 필그림 같은 이들이 아니라, 구대륙의 지배층들이 너무나 완고하게 남미를 지배하고 구체제와 똑같은 귀족층을 만들었기 때문인가? 혹은 미국이 인디언들을 완벽하게 몰아내고 전 대륙을 장악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잘 몰랐던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 과정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고 왜 두 대륙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는지 좀더 알아봐야겠다.


<인상깊은 구절>

36p

"즐겁고 짧은 삶이 내 모토다". 로버츠는 그렇게 선언하고 해적선에 올라탔다. 인생 뭐 있어, 한탕 멋지게 살다 가면 되는 거지!(흔히 이렇게 말하지만 대개는 망하는 길이다.)

44p

해적선에서는 '무질서'가 판치겠거니 하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로는 기존 질서와는 다른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어 있었다. 해적들은 기존 사회의 법 밖에 사는 사람들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욱 엄격한 규율이 필요했다. 만일 그들이 아무런 규율과 질서 없이 살아갔다면 망망대에서 생존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47p

해적들이 최초의 이상적 혁명주의자라는 것이다. 이는 과장이다. 일반 선원이나 해적들은 자기 한 몸 편안하게 지내면 그뿐이지 새로운 세상의 건설 같은 이념은 알 바 아니었다. ... 그들은 범죄자로 낙인찍혀 어딘가에 정착해 가정을 꾸리고 산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았기에 오늘 하루만 살다 갈 것처럼 돈을 썼다. 해적의 실제 삶은 그런 이상적 면모보다는 거칠고 폭력적이었다. ... 해적들의 주된 심성은 기존 사회에 대한 강렬한 적개심일 것이다. 

52p

근대 초 선상작업은 기계화되지 않아 강도 높은 육체노동으로 이루어졌던 터라 여성에게는 무리였다. 그럼에도 실제로는 근육질의 여성이 상당히 많았던 게 분명하다. 최근 사회사 연구는 상당수의 하층민 여성들이 힘이 세고 성격이 거칠며, 겁이 없고 독립적이며, 자신의 지략으로 생존했다고 밝힌다. ... "겁쟁이들은 법의 보호 아래 가난한 자를 털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용기를 방패삼아 부자들을 약탈한다오" ... 폭력적 억압 체제를 몸소 견뎌내야 했던 힘없고 가난한 선원들은 자신들만의 해상 세계를 만들고자 했다. 그들이 가진 유일한 자산은 용기였다. 그렇지만 그들의 유토피아는 섬광처럼 잠시 빛을 내다 순식간에 스러질 수밖에 없었다. ... 국가권력과 법질서가 바다 위에 펼쳐지자 해적들의 가상한 용기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66p

우리나라에서도 단발령이 내려졌을 때 "상투를 자르려면 차라리 내 목을 자르라"며 반발했는데, 러시아에서 그렇게 이야기했다간 진짜 목이 잘릴 수도 있었다.

76p

침략자들은 러시아가 그 자체로 엄청난 장애물이라는 점을 뒤늦게야 깨닫곤 한다. 눈 덮인 광대한 동토는 점령이 불가능했다. 여기에 더해 표트르는 승리를 위해서라면 자국민도 희생시킬 태세여서, 거의 무한정으로 농노들을 징병했다.

83p

표트르는 말년에 자신이 이룬 성취가 모두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후계자인 아들 알렉세이가 자신의 과업을 이어 더 발전시킬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113p

앙투아네트는 정치를 비롯한 공적인 일에서 벗어나 사적인 삶을 살고 싶어 했고, 루이 16세가 선물한 프리 트리아농에서 그 즐거움을 찾았다.

138p

자코뱅 정부 시기라 불리는 이때 평범한 시민들이 국정을 장악하고 국가의 주인이 되었다. 그러나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 프랑스의 제1공화정 시기는 동시에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공포정치의 시대였다.

144p

미라보 의원은 로베스피에로를 이렇게 평했다. "저자는 멀리 갈 것이오. 그는 자신이 하는 말을 모두 믿고 있소." 신념에 따라 말하고, 신념을 실천하려 한 것이다. 그러려면 권력을 잡아야 했다.

혁명은 급진적으로 전개되었다. 무엇보다 종교와 재산 소유 문제를 건드리면 일이 커진다(일찍이 마키아벨리가 말하지 않았던가. 부모를 죽인 자는 용서할 수 있어도 재산을 빼앗아간 자는 용서하지 못한다고). ... 뭐가 두려워 주저하느냐는 태도였다. "혁명이 혼란 없이 이루어지기라도 한다는 말입니까?" ... 로베스피에르는 목수의 집에 방 하나를 얻어 하숙 생활을 했다. 궁전에서 온갖 영화를 누리며 왕처럼 살았던 영웅 나폴레옹과는 확실히 다른 면모를 보인다. 의원 세비로만 생활하며 공적 지위를 이용해 사적 이익을 취하지 않았던 로베스피에르에게는 '부패할 수 없는'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 그러나 혁명이 밥 먹여주지는 않는 법.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는 파리 민중들은 혁명 정부에 경제 문제를 해결해달라며 자주 봉기했고, 지롱드 내각은 이들을 체포했다. ... 많은 프랑스인에게 혁명은 보급품 징발, 징병, 전통적 생활방식에 대한 위협을 의미했다. 착취 제도입네 뭐입네 해도 어쨌든 사람들이 오래도록 소중히 여기던 신앙 체계를 공격하거나, 혁명력이라는 이름으로 시간관념까지 바꾸어놓은 혁명 세력을 순순히 지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여전히 소수파이고 정당성 면에서 취약한 그들로서는 폭력으로써 정당성을 확보하고 강제하는 수밖에 없다. 당통이 말한 대로 "민중이 폭력적이 되지 못하도록 우리가 폭력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87p

페르디난트 카를 대공의 궁정 음악가로 재직할 기회를 엿보았던 듯하나, 마리아 테레지아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어린 시절 모차르트에게 입을 맞추고 옷도 하사했던 여제가 이제는 자기 아들에게 "거지처럼 온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쓸모없는 사람들"을 고용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귀족들은 취향이나 사랑이 아니라 오직 이해관계를 따지고 다른 많은 고려할 사유로 인해 결혼합니다. ... 하지만 우리처럼 가난한 이들은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여자를 취할 뿐 아니라 그 일에 의미를 둡니다. ... 우리의 富는 우리와 더불어 죽습니다. 부는 오직 우리 머릿속에만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다는 근대적인 결혼관이 뚜렷하다. 그러나 아버지 레오폴트는 부가 오직 머릿속에만 있는 거라는 아들의 개똥철학에 동의하지 않았다. 

모차르트는 그렇게 많은 돈을 벌었는데 어찌된 일일까?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는데, 최종 결론은 도박이었다! 도박 빚은 곧바로 갚아야 했다. 빚을 떼먹으면 영화 <타짜>에서처럼 손목을 자르지는 않지만 명예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다.

222p

호위대는 실제 군사 훈련을 하기보다는 번쩍이는 멋진 군복을 입고 무도회에서 춤을 추는 식민지 귀족 청년들의 사교 모임 성격이 강했다. 그런데 볼리바르는 이곳에서 자신이 진정 군인 체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사교 활동보다도 군사 문제를 열심히 공부한 예외적인 학생이었을 것이다. 남은 생을 전장에서 보내게 되는 볼리바르에게 호위대에서 받은 군사 교육은 큰 도움이 되었다. ... 그의 강인한 체력은 늘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하루 종일 행군한 날 저녁에 대여섯 시간을 더 일하거나 무도회에서 춤을 추곤 했다. ... 볼리바르는 이 강력한 집단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파에스를 찾아갔다. 이때 파에스와 부하들은 독립의 대의를 설명하는 볼리바르의 설명은 뒷전이고 그가 말을 어떻게 타는지, 그의 말은 어떤 상태인지 유심히 관찰한 후 승낙했다고 한다. 말을 저토록 보살펴줄 정도라면 물으나마나 같은 편이라고 여겼을 법하다. ... 미국과 프랑스 혁명에 비해 라틴아메리카 독립 혁명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 역시 근대적 자유를 확대시킨 결정적 사건 중 하나였다. 1808년 이후 라틴아메키라에서는 12개 국이 독립을 쟁취했다. 하지만 이 나라들에서는 자유주의적 정치와 위계적 사회 질서 사이의 긴장과 모순으로 인해 혁명이 일어난 다른 지역들과는 매우 다른 역사가 진행되었다.

260p

원리를 알아냈다고 바로 사용 가능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현하는 데 지대한 공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 기업의 역사를 보면 사업가가 발명가를 착취하는 경우가 비빌비재한데, 그와 달리 와트와 볼턴은 서로 보완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 와트는 새로 고안해낸 밸브, 실린더 등을 계속 실험하면서 증기기관을 개선하는 데 몰두했다. 그는 자기 아이디어를 표절했던 윌킨슨을 비롯한 많은 특허 침해자보다 한 걸음 더 앞서나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287p

아크라이트의 공장에서는 아이들로 일해서 돈을 벌 수 있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아동 착취라고 하겠지만. 당시 형편없이 낮은 임금으로 생계를 꾸리기 힘들었던 노동자 가족 입장에서는 누구든 일해서 돈을 벌어야 했다.

302p

나폴레옹은 오스만 제국 쪽으로 공격 목표를 바꾸어 1799년 시리아 정복에 나섰다. 그러나 정복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총알을 아낀다며 총검으로 찔러 죽이거나 익사시키는 등 적군을 잔인무도하게 살해해 악명만 떨쳤다. 병에 걸린 병사들을 끌고 이집트로 귀환한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황제와의 회담에 늦은 캉바세르가 "죄송합니다, 폐하. 숙녀분과 함께 있느라 늦었습니다"라고 변명하자, 나폴레옹은 이렇게 말했다. "황제와 약속이 있으면 부인들에게 지팡이와 모자 챙겨서 꺼지라고 말하시오."

독재는 한 사람만으로 충분하니 작은 폭군들은 필요 없다. 즉, 나폴레옹 자신은 마음대로 할 수 있되 다른 사람들은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독재는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선전과 여론몰이도 잘 해야 한다.

324p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모든 독재자의 공통점은 다른 사람의 비판이나 조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제국을 운영하는 과정은 합리적 전략, 전술이 아닌 개인적 모험의 연속이었다. 그 점에서 나폴레옹은 여느 독재자와 다름없었다. 체제 유지의 관건은 군사력이다. ... 나폴레옹의 전술은 사실 단순했다. 가능한 한 최대의 전력을 집중해 적의 중심을 깨트려 저항 의지를 꺾어놓는 것이다. ... 이런 전술의 실상은 무엇일까? 엄청난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주 재앙에 가까운 희생을 치렀다. ... 나폴레옹은 천재라기보다는 단지 다른 사람들의 희생에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을 뿐이다. 한 군사사 전문가는 이렇게 말한다. "나폴레옹은 천재가 아니다. 결국 그가 패배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류>

317p

새 신부 마리 루이즈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조카이니,

->나폴레옹의 황후 마리 루이즈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조카인 프란츠 2세의 딸이다. 그러므로 조카가 아니라 조카 손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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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예술로 걷다 - 가우디와 돈키호테를 만나는 인문 여행
강필 지음 / 지식서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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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이 시원시원하다.

상대적으로 표지 디자인이나 제목이 눈에 띄지 않고 진부한 느낌이 들어 걱정했는데 막상 책을 펼치지 미술관 소장품의 도판이 너무나 선명하고 한 면에 큼직큼직 하게 실어 줘 보는 즐거움이 있다.

저자가 본격적인 학자는 아니어도 관련 전공자라 그런지 본문의 미술 관련 내용의 수준도 무난하고 문체도 비문 없이 쉽게 읽힌다.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은 꼭 가 보고 싶었던 곳으로, 신혼여행 때 다녀와서 나에게 매우 특별한 곳이다.

다른 그림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전시했던 넓은 홀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책을 보면서 벨라스케스 작품의 위대함에 새삼 감탄했다.

작품의 부분들을 확대시켜 보여 줘 감상하기가 참 좋다.

가우디가 지은 구엘 공원 편에서 입장료가 8유로라고 나오길래 내가 전에 갔을 때는 돈을 안 냈던 것 같은데 이상하다 했더니만, 2013년 이후 생겼다고 한다.

가이드 해 주던 분이 이 공원은 무료니 마음껏 가우디 작품을 즐기라고 했었는데 어느새 유료로 바뀌었나 보다.


<오류>

28p

19세기 말에는 로히어르의 진짜 작품과, 그의 작품과 유사한 것들을 뭉뚱그려 '플랑드르의 대가(Maitre de Flemalle)'의 창작물이라고 하기까지 했다.

->이게 오류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보통 플레말의 대가라고 하면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의 스승인 로베르 캉팽을 일컫지 않나 싶다. 메로드 제단화가 대표적인 플레말의 대가 작품인데 후에 로베르 캉팽이라 밝혀졌다. 

120p

캐서린은 스페인 왕 페르난도 2세의 딸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숙모였다.

->숙모가 아니라 카를 5세의 이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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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민의 한양읽기 : 궁궐 상 홍순민의 한양읽기
홍순민 지음 / 눌와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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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전편 격인 도성 편은 실록 내용을 그대로 편집해 놓은 것 같아 지루했는데 궁궐 편은 아주 재밌다.

단순히 궁궐의 구조나 전각을 밝히는데 그치지 않고 궁궐을 조성할 당시 사람들의 사고체계나 상황 등을 일목요연하게 분석함으로써 서문에 나온 저자의 말처럼 입체적으로 조선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듯 하다.

궁궐의 외형에 관한 책은 너무 많이 나오고 인터넷 검색만 하면 무수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반면, 궁궐이 어떤 사상이나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지어졌는지, 역사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등에 대한 분석은 전문가의 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귀중한 지식 같다.

흥미진진하게 정말 재밌게 읽었다.

다만 임진왜란 당시 궁궐을 방화한 것이 선조수정실록의 기록처럼 백성이 저지른 게 아니라 왜군, 특히 가토 기요마사의 짓이다고 추정해야 식민사학의 극복인가는 동의할 수 없다.

그 외 심증만으로 경운궁 화재를 러일전쟁 당시 이토 히로부미의 사주에 의한 방화라고 의심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외 부분은 궁궐과 그 안에서 삶을 영위했던 옛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매우 유익했다.

특히 부록으로 실린 문화와 문화유산에 대한 정의는 쉬우면서도 명확한 이해를 돕는다.

육십간지의 앞 글자인 간에 해당하는 글자를 숫자 4부터 대입하면 맞는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

역사를 워낙 좋아하고 연대를 외우면 비슷한 시대의 사건들을 같이 공부할 수 있어 어지간한 사건들의 발생년도는 거의 외우고 있긴 한데 (심지어 화가들의 생존 연대도 외우고 있다) 이 법칙에 맞춰 보니 힘들여 외울 필요가 없다.

이를테면 갑신정변은 간지인 갑이 숫자 4와 대응하니 1884년, 을미사변은 다음 숫자인 5와 대응하니 1885년, 정미의병은 간지인 정이 네번째이니 7과 대응해 1907년 이런 식이다.

정말 신기하다.

빨리 하권을 읽어봐야겠다.


<인상깊은 구절>

116p

우리 문화가 여러 면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런 까닭에 중국 문화와 공통점이 상당히 많다.

149p

건물을 이해하고 그 느낌, 아름다움을 감상하고자 할 때 너무 부분에 매달려서는 곤란하다. 전체적인 인상, 느낌을 잡아야 한다.

172p

이중환은 당시 세력을 잃은 남인 계열에 속하여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고 야인으로 지냈다. 택리지는 그의 주요 저작으로 풍수적 자연지리를 넘어 인문지리서로서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러한 책이기는 하지만 택리지 역시 한 개인의 저작으로서 야사가 안고 있는 자료적 한계가 간간히 눈에 뜨인다. ... 역사적인 진실은 믿음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176p

자신의 의견으로는 찬성이지만, 자기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기보다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따르겠다는 매우 조심스럽고 다소 무책임하다고 할 태도였다. 하륜 같은 사람이 그토록 자신의 주장을 고집했던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무학이 그런 태도를 취했던 것은 당시 불교의 형편과 그의 처지와 관련이 있다.

208p

비변사에서 계를 올려 아뢰었다. " ... 지금 왜적이 아직 물러가지 않았고 전국이 텅 비고 고갈되어 있어서 아침에 저녁 일을 헤아리지 못할 정도입니다. 궁궐을 짓는 일은 지금 할 일이 아니며 사람들의 마땅치 않게 여길 것입니다."

214p

그 이전에도 터를 정하고 건물을 짓는 데 이러한 설들을 참고한 경우가 자주 있기는 하였지만, 그보다는 유교적 합리주의에 바탕을 둔 신료들의 판단이 주를 이루고 그러한 풍수설, 길흉설 등은 어디까지나 그것을 보조하는 정도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광해군 7년 이후 크게 벌어졌던 궁궐 영건 사업에서는 오히려 그러한 술사들의 의견이 주류를 이룰 정도였다. 

250p

헌종 연간에 이미 흥선대원군은 종친의 핵심 인물이었다. 다만 왕권이 극히 약했던 그 시기 종친의 위상 역시 보잘것없었기에 종친의 핵심이라 해도 별 영향력은 없었다. ... 흥선대원군이 권력에 접근하게 된 일차적인 계기는 임금의 생부라는 자격을 매개로, 고종을 임금으로 결정한 대왕대비 신정왕후와 결탁한 것이었다. ... 경복궁 중건을 위한 이 영건도감이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장악하는 기반이 되었다. ... 경복궁 중건 사업을 통하여 임금의 권위가 높아졌다기보다는 흥선대원군의 실권이 커졌다. ... 흥선대원군의 실각은 이러한 고종의 정치적 성장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292p

사랍답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후대로 이어지고 그렇지 못한 것은 사라진다.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이 쌓여서 문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화는 축적되는 속성을 갖는다. ... 문화는 그 문화가 빚어낸 삶의 꼴을 벗어나는 행위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하는 구속력을 갖고 있다.

298p

문화를 이야기할 때 흔히 설정하는 인간 집단은 민족이라고 하겠다. 민족이란 어떤 집단인가? 민족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흔히 언어라고 말한다. ... 같은 말을 쓰면서 같은 공간에 모여 살다 보면 하나의 정치 체제, 달리 말하자면 한 국가를 이루게 되고, 자연히 서로 물자를 사고 팔면서 비슷비슷한 소비 생활을 하는 경제권을 이루게 된다. 그 결과 살아가는 모습, 곧 생활 습관이나 풍습을 같이 하게 된다. 그 안에서 혼인 관계를 맺고, 그 결과 혈통을 공유하고 비슷한 외모를 갖게 된다. 이렇게 어느 정도 오랜 세월을 지내다 보면 다른 집단과는 구별되는 "우리" 의식을 갖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인간 집단이 민족이다. 

300p

유네스코에서 문화유산을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전해진 것으로 역사적 가치를 지니며, 사회의 문화적 전통의 일부로, 인위적인 것들이 주가 되며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304p

안목은 어떻게 해서 생기는가? 안목의 출발점은 관심이다. 관심이 있어야 보인다. ... 직접 현장에 가서 답사를 하면 느낌이 생기게 마련이다. ... 이렇게 관심이 안목의 출발점이기에 관심을 가지고 보면 새로운 느낌을 받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안목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관심과 느낌에 뒤이어 이해가 따라야 한다. 관심에서 출발해서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되면 그것에 관해서 온갖 정보를 수집하게 된다. ... 안목은 관심과 느낌에 더하여 정보와 지식을 밑거름으로 삼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아직 충분하지 않다. 느낌과 지식은 서로 어우러져 새로운 느낌과 지식을 키우고, 그것이 쌓이면 자기 나름의 체계를 갖추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느낌과 지식이 어우러진 인식이 생겨난다. 인식이 갖추어져야 비로소 안목이 제대로 서게 된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고 책을 읽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여행을 가서 느낌이 생기면 제대로 알기 위해 돌아와서 책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쌓는다. 그러면 여행지에 대한 관심과 느낌이 지식으로 배가되어 인식의 외연이 확장되고 그 과정이 너무나 즐겁다. 이번에 교토를 다녀온 것도 그렇다. 유홍준씨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 교토편을 보면서 교토의 문화재에 관심이 생겼고 직접 가서 보고 많은 느낌을 갖게 됐으며 다시 돌아와 관련 서적들을 읽으면서 아, 그 때 봤던 게 바로 이런 의미였구나 하고 깨닫고 있다. 나는 아직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체계를 갖추는 인식의 상태까지는 못 간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런 과정 자체가 삶에서 느끼는 가장 큰 기쁨이다)


<오류>

102p

제용감, 내자시, 사섬시 등 왕실에서 쓸 물품을 조달하는 관서들이

->사섬시가 아니라 내섬시다.

220p

인조는 자신의 잠저인 이현궁으로 옮겼다가~

->인조의 잠저는 상어의궁이고 이현궁은 광해군의 잠저였다. 반정으로 폐한 뒤 인조는 자신의 어머니 연주부부인을 이현궁으로 모신 후 계운궁이라는 궁호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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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 서울편 1 - 만천명월 주인옹은 말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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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믿고 보는 유홍준 교수의 문화유산답사기.

이번 일본 여행 때도 큰 도움이 됐고 최근작인 서울 궁궐 편도 역시나 만족도가 높다.

나같은 평범한 독자 수준에서 어렵지 않게 그러면서도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동궐도를 늘 대충 봐서 어디가 어딘지 항상 헷갈리고, 특히 후원의 정자는 쉽게 눈에 안 들어왔는데 찬찬히 본문과 지도를 맞춰 보면서 읽어 나가니 이제는 확실히 감이 잡힌다.

창덕궁 후원 설명이 어찌나 맛깔스러운지 당장이라도 가 보고 싶다.

이번 교토 여행도 교수님의 답사기가 아니었다면 그렇게까지 인상깊게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독자로써 늘 감사드린다.

아쉬운 점은 동궐도의 전체 부분과 해설하는 부분을 매칭시켜 보여 주면 좀더 이해하기 쉬웠을 것 같다.

본격적인 관광책은 아니니 어쩔 수 없겠지만 구글 검색으로 지도 찾아 보느라 시간이 꽤 걸렸다.

아무래도 동궐도를 구입해서 같이 봐야 할 것 같다.


1) 세종은 정말 다방면에 천재적인 군주였던 모양이다.

세종 대왕의 업적 중에 아악 정비가 나오길래, 그냥 했나 보다 싶었는데 책을 읽어 보니 놀라울 따름이다.

루이 14세는 스스로 발레도 췄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유학자였던 세종이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니, 이런 분이 왕조 국가의 수장이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러시아를 건설한 표트르 대제와 비슷한 위상이라고 해야 하나 싶다.

종묘제례 과정이 자세히 나오는데, 이를 보면 유학이 단순한 국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서양으로 치면 기독교와 비슷한 위치가 아니었을까 싶다.

일상생활의 의례를 규정하는 내용이 워낙 많아 종교가 아닌 마치 단순한 철학 같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조상신을 섬기는 종교가 아니었을까?

2) 조선 궁궐의 미학을 설명하면서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에 나왔다는 "儉而不陋 華而不侈"를 매우 강조한다.

사실 그 말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오사카 도자미술관에 가서 한중일 세 도자기를 보면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중국와 일본 도자기에 비해, 혹은 고려 청자에 비해 확실히 조선 백자는 좋게 말해 순박하고 얌전하지 화려한 매력이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주로 우리 백자만 봤을 때는 잘 몰랐는데 셋을 동등하게 비교해 놓으니 확실히 차이가 난다.

이런 검소함을 사대부들이 추구했던 것 같다.

유교, 특히 성리학 혹은 주자학과 상업은, 특히나 21세기의 자본주의와는 도저히 함께 갈 수가 없는 사상임을 새삼 느꼈다.

3) 승화루 서목에 따르면 3천여 점의 서첩과 화첩 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조선 왕실이 망하면서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보관되어 있었다면 최고의 왕실 수장품으로 격조높은 작품들이었을텐데 정말 아쉽다.

그런 걸 보면 8세기 무렵의 왕실 수장품이 여전히 전해져 내려오는 일본의 정창원은 정말 놀랍다.

읽다 보니 사도세자에 관한 부분이 위키백과에 있는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위키백과 내용을 요약해서 쓴 것 같다.

요즘은 인터넷 검색이 너무 잘 되니 출처 표기에 매우 민감해야 할 듯 하다.


<인상깊은 구절>

지금 천석정에는 霽月光風樓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 문인들이 사랑하던 문구다. 송대의 문인 황정견이 유학자 주돈이의 고상한 인격을 칭송하며 그의 마음이 '화창한 바람, 비갠 달과 같다'고 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311p

육당 최남선이 <심춘순례>에서 선암사 강선루에 올라 정자에 걸린 다섯 편의 시를 한 번 소리 내어 읽어보고는 두 번 읽고 싶은 시는 없다고 한 대목에 주눅이 들었다. 나는 '소리 내서 읽을 수 있는 시가 하나도 없구나'라고 해야 할 판이다. 이런 한이 있어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한문 강독 모임 세 곳에 참석하며 공부하고 있지만 마냥 어려운 것이 한문이다. 

(저자가 문화재청장 시절에 펴낸 책이 <궁궐의 현판과 주련>이라고 한다. 이럴 수가! 답사기 책도 좋지만 이 책도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감사한 마음이 마냥 샘솟는다)


<오류>

38p

사도세자, 효명세자처럼 나중에 왕으로 추존된 분이 열 분이나 되기 때문이다.

->왕으로 추존된 분은 덕종, 원종, 진종, 장조, 문조 등 다섯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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