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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나의 서양미술사 100
김영나 지음 / 효형출판 / 2017년 10월
평점 :
서점에서 신간을 보고 너무 반가워 도서관에 신청했다.
저자의 전작 <서양미술의 기원>을 매우 인상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 서양미술사를 얼마나 깊이있게 분석했을까 기대에 차 읽었는데 신문에 연재된 글 모음이라 그런지 너무 말랑말랑 하다.
본격적인 개론서 정도 되는 줄 알았는데 편안하게 그림 감상하면서 읽을 수 있는 연재물 모음이라 좀 아쉽다.
100편이나 되는 그림을 소개하고 관련 이야기를 하느라 440여 페이지로 벌써 분량이 두껍긴 한데 그래도 한 챕터마다 조금 더 길게 설명해 주면 어땠을까 아쉬운 부분이다.
그렇지만 내용 자체는 편하게 읽을 수 있고 무엇보다 재밌다.
또 표지와 편집, 도판이 아주 마음에 든다.
다소 어둡게 나온 도판도 있지만 티치아노나 벨리니 같은 베네치아 화파들의 그림은 정말 색채감이 잘 살아있어 너무 마음에 든다.
작품 자체에 대한 분석보다는 작품을 둘러싼 시대적 배경이나 의의 등에 대한 인문학적 설명이 훨씬 많다.
소장처와 작품 크기, 발표 연도까지 표기되어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다소 딱딱해 보이는 제목과는 달리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인상깊은 구절>
135p
현대 서양에서는 개인을 숭배한다는 것 자체에 회의를 느껴, 위대한 인물의 이름을 도서관이나 대교 등에 붙여 기념한다.
195p
이 환상적인 앙리 루소의 그림은 진정으로 타고난 재능과 상상력을 가진 작가만이 가능한 것으로, 예술은 교육과 훈련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201p
흥미로운 것은 그리스 묘비에서는 사후 세계에 대한 관심은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사후 심판을 받는 장면이, 기독교 미술에서는 천국 또는 지옥의 장면들이 나타나는 데 비해, 그리스 미술에는 이러한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리스 인들은 현세와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억을 더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216p
청교도 정신이 뿌리 깊은 개척민이었던 미국인들에게 땀 흘리고 일하는 밀레의 농민상은 도덕적 우월성과 인간의 미덕을 보여준는 것이었다. 프랑스처럼 오랜 봉건 제도나 계급이 존재하지 않았던 미국에서는 건장한 농민 이미지에 위협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291p
표현주의를 위험한 예술로 생각한 나치는 1934년에 그에게 더 이상 작업을 하지 말 것을 요구했고, 1936년에는 놀데의 작품을 反독일적, 퇴폐적인 미술로 선언하며 작품을 압류했다. 자신을 독일적인 화가로 여기고 나치 당원으로 가입까지 했던 놀데를 반독일적으로 몰아붙인 것은 정말 아이러니였다.
340p
미술은 노동자의 기준에 맞추어야 하며 이젤 회화는 부르주아 회화라고 주장하는 정부와 미술이란 기본적으로 개인의 표현이라고 생각한 말레비치는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347p
아방가르드 미술가들은 작품이 마치 상품처럼 거래되는 미술 시장에 반발하였다. 미술은 아이디어가 중요하며 회화와 조작같이 반드시 물리적인 대상일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 요즈음에는 새로운 미술의 영역을 개척하려는 충동 자체가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 대중의 문화 의식도 높아지면서 더 이상 난해난 미술에 충격받거나 분노하지도 않는다. 고립되고 저항적인 성격의 아방가르드의 의미는 이제 사라진 것일까?
357p
2005년에 조사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여성 작가의 작품 비율은 아직도 5%에 불과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남성의 누드를 그린 작품 수가 훨씬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361p
미술가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은 고대에서부터 내려오는데 그 주된 이유는 손으로 하는 작업은 미천한 노동자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 화가나 조각가가 되려면 대학이 아니라 장인들의 공방에서 도제 교육을 받아야 했고 길드에 가입해야 했는데 이것은 일종의 노동조합과 같은 조직이었다. ... 화가, 조각가들이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부상한 것은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천재적인 미술가들이 등장한 르네상스부터였다. ... 미술학도들든 문학, 고전, 해부학 등을 정식으로 배우면서 장인의 계급에서 그리고 길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374p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기술만 배우지 말고 지식을 배워야 한다고 덧붙여 말했다. 그림은 손으로 그리기 때문에 기술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손은 상상력에서 나오는 것을 그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레오나르도와 같은 뛰어난 미술가들의 등장과 함께 미술은 이제 장인적인 기술 단련에서 벗어나 이론과 지식, 과학에 바탕을 둔 인문학적 위치로 끌러올려졌다. ... 인상파 화가들은 야외에서 풍경을 빨리 직접 화면에 옮겼는데, 많은 붓질이 겹쳐진 완성작은 아카데미의 기준으로 보면 스케치에 불과한 것이고 교훈적인 내용도 없었다.
438p
거대한 규모의 이런 작품을 지각하는, 물리적이면서 심리적인 경험은 미술관에서는 어려운 생생한 체험이기도 했다. 그러나 월터 드 마리아는 아무리 최고의 작품이라도 자연 그대로의 그랜드 캐니언이나 나이아가라 폭포를 능가할 수는 없다고 겸손하게 말하기도 했다.
<오류>
353p
"아델레 블로흐 바우허 초상 1"은 그 후 약 1500억 불이라는 거금에 화장품 회사 에스티로더의 회장인 로널드 로더에게 팔렸고
->1억 3500만 달러로, 1500억 원에 팔렸다.
364p
'우르비노의 비너스' 크기가 11.9m*16.5m로 잘못 기재됐다. 1.19m*1.65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