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일본의 기원인가
김현구 지음 / 창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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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다녀온 기념으로 일본사, 특히 교토와 관련된 책을 읽고 있다.

앞서 읽은 <서울과 교토의 1만년>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현대사와 특히 식민 지배 체제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됐고, 이 책은 일본 고대사와 도래인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한다.

알라딘 리뷰를 보니 2011년에 내가 읽었던 책이다.

남독의 폐해인가 읽은 기억이 없다.

메모를 하면서 지독하는 것보다 반복해서 읽는 게 더 나은 방법 같다.

임나일본부설을 논파하는 부분은 솔직히 다 이해하지 못했다.

일본이 임나, 즉 한반도 남부에 있는 가야를 200년 동안 지배했다는 얘긴데 잘못된 이론인 줄은 알겠으나 논리적으로 설명은 못하겠다.

더 많은 책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저자는 백제와 일본의 교류가 선진 문물을 전해 주고 군사 원조를 받는 관계였다고 정의한다.

바다 건너의 섬이었고, 특히 중국이라는 거대한 문명권 바깥에 있었으니 선진 문물 교류에 대한 욕구가 컸을 것이다.

한반도에서 특히 백제를 파트너로 삼은 것은 백제가 중국 남조와 가장 많은 교류를 한 탓이었다.

백제가 군사 원조를 요청하면서 일본에 기술자 등을 보내주는 방식으로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

백제 멸망 이후 일본은 당이 쳐들어 올 것을 경계하여 2만 7천이나 되는 군사를 보냈으나 백촌강 전투에서 패배했고 그 후로 당을 몰아내려는 신라와 교류하면서 같은 편에 선다.

친백제 정책을 비판하면서 일어난 사건이 덴무 천황의 임신난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은 다른 책을 읽어봐야 할 듯 하다.

어머니가 백제계였다는 간무 천황은 덴지의 증손으로, 덴무 계열로부터 천황 자리를 되찾는 과정에서 백제계의 지지를 얻었다고 추측한다.

역시 명확한 근거가 소개된 것은 아니라 다른 책을 참조해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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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까지의 독서술 - 나이 들어서 책과 사귀는 방법
쓰노 가이타로 지음, 송경원 옮김 / 북바이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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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본은 출판 시장이 워낙 방대해서 그런지 세세한 분야의 오밀조밀한 책들이 참 많은 것 같다.

너무 조잡스러운 게 아닌가 싶다가도 한국책들 보다 훨씬 선택의 폭이 넓은 것 같아 부럽기도 하다.

그냥 독서술도 아니고, 100세까지의 독서술이라는 제목에 끌려 읽게 됐다.

아직 70대라는 노년에 접어 들지 않아서 그런지 확 와 닿지는 않지만, 40대의 영락없는 장년기인지라 젊음보다는 노년 쪽에 좀더 관심이 가긴 한다.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자 모토가 사회적 성공도 아니고 재산 증식도 아니고 자녀 교육도 아닌, 종교 등은 더더욱 아닌, 오직 독서인 나에게 다른 독서인들의 삶과 방식은 항상 궁금증이 생긴다.

여러 독서 에세이를 많이 읽어 왔지만 노년의 독서는 처음 접했다.

저자에 따르면 30대까지는 청년기, 40~60대는 장년기, 70대 이후는 노년기라고 한다.

시간의 절대적 부족이 독서 생활에 가장 큰 적인 만큼, 노년이 되어 은퇴하면 마음껏 책을 읽을 시간이 생기다는 점은 무척 기대가 된다.

저자도 수입 감소 대신 시간적 여유를 노년의 장점으로 꼽는다.

수입 감소는 생각보다 훨씬 타격이 큰지 책도 왠만하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다고 한다.

나는 원래 도서관파라 돈 걱정은 안 하긴 하지만 약간 두려운 마음이 들긴 한다.

저자는 지역 도서관의 네트워크, 이른바 상호대차 시스템을 통해 많은 책을 빌려 읽는다.

전에 살던 안양시가 상호대차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 정말 유용했다.

안양시립도서관 대여섯 곳을 검색하면 왠만한 책들은 다 있어 신청을 하면 하루 이틀이면 가까운 도서관에서 대출할 수 있다.

이사오기 직전 바로 집 앞에서 도서관이 개관해서 정말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이사 온 인천시는 이런 상호대차 제도가 없어 너무 아쉽다.

도서관도 정말 멀어 한 번씩 대출하려면 큰 맘 먹고 가야 한다.

도서관도 주거 환경에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저자는 도서관에서 대략 한 달에 30여 권, 1년이면 400권 정도 대출을 한다.

하루에 한 권 꼴이다.

역시 열혈 독서인답다.

제일 걱정이 바로 노안인데 하루 한 권 정도는 충분히 읽을 수 있는 것 같아 약간 안심이 된다.

시간이 나면 동네 서점을 산책하고 근처 영화관이나 집에서 매일 영화를 본다고 한다.

이 정도 노후라면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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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3 0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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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는 바대로, 재미가 최우선이 되는 독서법, 바로 내가 추구하는 바다.

왜 책을 읽는가?

다치바카 다카시가 잘 이야기해 준다.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책을 읽는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구처럼 알고자 하는 호기심, 궁금증, 지식욕이 인간의 당연한 욕구라 생각하고 그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책을 읽게 된다.

책을 읽으면 더 많은 궁금증이 생기고 인식의 경계가 한없이 넓어진다.

그래서 독서는 질리지가 않는다.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더 알고 싶은 게 많아진다.

오직 시간이 부족할 뿐이다.

이 책은 독서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 아닐까 싶다.

좀더 실제적인 조언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다.

이를테면 한 달에 책값으로 얼마나 쓰는가, 책을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읽나, 책은 어떻게 보관하는가, 서평을 잘 쓰는 방법, 필요한 부분은 어떤 방식으로 메모하는가 등등.

나 같은 경우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기 때문에 독서라는 취미 활동에 돈이 전혀 들지 않는다.

어려서는 정말 돈을 아끼기 위해서 빌려 읽었는데 요즘은 공간의 문제 때문에 빌리게 된다.

다치바나 다카시처럼 고양이 빌딩을 세울 능력이 된다면 원하는대로 다 사고 싶다.

다른 소비재에 비해 책값이 결코 비싸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보관할 공간은 엄청난 돈이 들기 때문에 살 엄두가 안 난다.

또 취미로서 독서를 할 때 어떻게 시간을 확보할 것인가가 요즘의 가장 큰 관심사다.

나 같은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는데 독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시간의 확보가 아닌가 싶다.

디자인과 편집이 잘 된, 그렇지만 내용은 너무 평이하고 가벼운 책이라 아쉽다.

행복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쾌락은 일회적이지만 매일 하는 습관이 행복한 사람이 정말 행복한 거라고.

반복되는 일상이 행복한 사람, 정말 그런 사람이 진짜 행복한 것 같다.

나에게는 딱 독서가 바로 그 행복인데 그 외의 일상도 행복한 느낌이 들도록 잘 가꿔 봐야겠다.


<인상깊은 구절>

44p

돈과 시간과 노력을 꾸준하게 투자하면서 상대적으로 삶을 능숙하게 잘 살아내는 방법인 것이죠. 그것이 책읽기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면 돈이 한 푼도 들지 않는다)

141p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 한번 보면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것 같고, 실제로 가보면 그래요. 그런데 저는 그게 행복이 아니고 쾌락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저는 쾌락은 일회적이라고, 행복은 반복이라고 생각해요. 쾌락은 크고 강렬한 것, 행복은 반복되는, 소소한 일상에 있는 일들이라고. ... 행복한 사람은 습관이 좋은 사람인 거예요. ... 우리 삶을 이루는 것 중 상당수는 사실 습관이고, 이 습관이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거예요. (독서가 습관이고 그래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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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교토의 1만 년 - 교토를 통해 본 한일 관계사
정재정 지음 / 을유문화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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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여행 다녀온 기념으로 관련 책들을 읽고 있는데 의외로 일본사, 특히 교토에 관한 책이 많지는 않다.

도식적인 제목 같아 흥미가 생기긴 하지만 미뤄뒀던 책인데 그래도 제일 관심사에 합당한 책 같아 읽게 됐다.

일본 역사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교토의 유명 절과 신사 등을 소개한다.

저자가 한일 교류 관련 전공자라 그런지 내용은 비교적 충실하나 교과서에 나오는 평이한 서술이라 좀 지루한 게 단점이다.

그렇지만 뒷부분의 메이지 유신 이후 역사는 아주 재밌다.

교토라고 하면 막연히 고대 도시라고만 생각했는데 현대사, 특히 한국의 식민 지배와도 관련된 유적이 많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특히 윤동주, 정지용, 송몽규 등 교토 유학생들이나 조선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가슴이 싸~해질 정도로 와닿았다.

식민지 조국을 떠나 지배자의 나라로 학문을 위해, 생계를 위해 건너 왔던 당시 조선인들의 치열한 삶이 애달프다.

마지막에 북한과 남한의 일제 유산 청산에 관한 저자의 의견이 인상적이다.

보통 북한은 친일파 청산에 성공했고 남한은 여전히 친일파 잔재가 남아 있다고 하는데 저자는 정반대로 일제의 물적 기반은 중공업 중심지인 북한에 많이 남아 해방 후 경제 발전에 이바지 했고 남한은 경공업 중심이라 물적 유산이 적었을 뿐더러, 그나마도 6.25 당시 거의 파괴됐다.

남한의 경제 재건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바로 미국의 원조인데 식민 기간 동안의 일제의 물적 유산과 맞멎을 정도라고 한다.

정치 이념 측면에서도 북한은 일본의 군국주의와 유사한 소련의 통제식 전체주의를 받아들여 일제의 연속선에 있으나 남한은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미국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특히 미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이승만이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일제와는 매우 다른 미국식 사회체제가 유입됐다고 한다.

이는 전후 일본도 마찬가지로 한국와 일본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민주주의 사회로 공통의 문명 기반 위에 있고, 전전의 군국주의 일본이 오늘날 북한과 같다는 것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겠으나 매우 예리한 지적이라 생각한다.

앞서 읽은 유홍준 씨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체가 아니라 다소 지루하게 읽었고 대신 두 책을 읽으니 어느 정도 일본사와 교토 유적에 대한 체계가 생긴다.


<인상깊은 구절>

293p

혁명이 성공하면 거기에 참가했던 필부들까지 나중에 기라성 같은 인물로 성장한다. 그렇지만 혁명이 실패하면 그것을 주도한 기라성 같은 인물들조차 나중에 필부로 전락한다. 사실은 혁명에 가담한 사람들의 능력이 그것의 성패를 좌우했다고 보는 게 옳을 테지만, 갑신정변의 주역들은 역적으로 몰려 역사의 음지에 처박힌 반면,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은 충신으로 뽑혀 역사의 양지에 등장했다. 

308p

일본은 1937년 중국과 전면 전쟁에 들어간 이후 한국에서 황국신민화정책과 인력물자동원정책을 철저하게 강행했다. 이에 따라 한국 사회 전반에 일본식의 변화가 심하게 일어났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한국인의 반발과 저항도 만만치 않아 국내외 도처에서 독립과 해방을 지향하는 민족운동이 불을 뿜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인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강렬한 반일민족주의를 체득하게 되었다.

353p

도널드 킨은 메이지 천황이 국내외 정책이나 전략의 실제 입안자가 아닌 인자한 통솔자였을 뿐이라며 일본 정부가 저지른 악행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 오히려 메이지 천황은 그 존재만으로도 수많은 변혁을 이끈 공신들에게 항상 마음의 의지처가 되었다고 본다. ... 그들이 남긴 글을 보면 천황제 국가가 국민을 통합하고 국력을 결집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가상의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메이지 천황은 막강한 권력을 스스로 행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유신 정부의 관료들에 의해 치밀하게 가공되고 연출된 존재인 측면이 많았다. ... 그리하여 러일전쟁을 도발할 즈음에는 "백성을 위해 마음이 편할 때가 없네/ 몸은 구중궁궐 안에 들어 있건만"이라는 시가를 읊을 정도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지도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메이지 천황은 일본이 보잘 것 없는 동양의 한 군주국에서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근대 제국으로 발돋움할 때 그 원동력이 된 존재였다. ... 메이지는 유신의 기세를 몰아 일본을 세계 5대 강국의 반열에 올려놓고 죽음으로써 대제라는 칭송을 받은 반면, 고종은 몇 번에 걸친 개혁의 기회를 놓친 채 5백 년 사직을 지켜 내지 못하여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황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371p

일본은 민족주의가 신앙과 결합하여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반면에 한국의 민족주의는 직설적인 언설로 주입하여 마음에 담겨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374p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라이벌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대한제국을 어르고 달래는 정책을 쓴 반면, 그는 항상 강경하게 억누르고 짓밟는 정책으로 일관했다. 두 사람의 노선 중 결국 야마가타의 주장이 일본의 외교정책으로 채택됐다. 통감으로서 한국 통치에 실패한 이토 히로부미도 나중에는 그의 노선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384p

정부는 '조선인 폭동'이라는 유언비어를 이용하여 계엄령을 공포하였고 지역 민간 단체를 조직하여 무고한 한국인을 살해했다. 그 배경에는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하는 데서 연유한 민족 차별 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게다가 한국 민중이 3.1독립운동 등을 통해 항일의 자세를 선명히 내보이자, 이에 대한 공포심이 잔악한 보복을 불러일으키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414p

'윤동주 시비 건립 취지서'는 이렇게 쓰여 있다.

"전쟁과 침략이라고 하는, 입에 담기조차 무서운 말이, 성전 혹은 협화라는 이름으로 미화되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빛나는 미래를 꿈꾸고 있던 수많은 청년들의 귀중한 생명을 앗아 갔습니다. ... 시인이 공부했던 도지샤의 설립자 니지마 조는  "양심이 전신에 충만한 대장부들이 궐기할" 것을 말했습니다만, 시인의 생전 모습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하면서 양심이 명하는 바에 따라 그는 살았습니다."

436p

6.25 전쟁 이후 남한에서는 파괴된 시설을 복구하고 노후한 시설을 교체했는데, 그 과정에서 일본제가 미국제로 바뀌었다. 6.25 전쟁으로 일제의 유산이 거의 대부분 파괴된 데다가, 복구 과정에서 겨우 잔존한 것마저 미국식 시설로 탈바꿈된 것이다. 해방 당시 일제의 물적 유산은 미군정기 동안 한국에 도입된 원조액과 거의 비슷했다. ... 1960년 시점에서 보면 일제의 물적 유산은 미국이 한국에 제공한 원조액의 7분의 1 정도에 불과하여, 그 후 본격화되는 한국의 공업 발전에 별로 기여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 1948년 8월 15일 미군으로부터 정권을 인계받은 이승만은 미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반공자유주의자였다. 그는 미군정보다 경제 분야에 광범한 통제를 허용했다. 그렇지만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었다. ... 그럼에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남한이 일제 말기의 전체주의와 군국주의 체제를 폐기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한 것은 이후의 역사 발전에 있어 앞으로 나아가에 하는 힘이 됐다고 할 수 있다. ... 지주 등은 고향에서 추방되고 남한으로 이주함으로써 친일파도 상당히 제거되었다. 그리하여 북한은 일제와 단절된 것처럼 보기 쉽다. 그러나 정치, 경제의 근본에 관련된 이념이나 가치 등에서 북한은 일제와 연속된 측면이 많았다. 북한은 해방 이후에도 일제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구축한 통제 경제 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 ... 개인의 자유로운 정치, 경제활동을 금하고 모든 권력을 국가에 집중시키는 것은 전체주의의 핵심이다. 북한에서는 해방 직후부터 전체주의를 지향하는 정책이 펼쳐졌다. 이는 전시체제기 일제의 정책과 연결되었다. 통제의 강화, 인적 물적 자원의 국가 총동원, 지주제 폐기, 자산 국유화 등의 움직임은 일제강점기 말기에 이미 시작됐다. 김일성 정부는 이를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 북한의 전체주의체제가 현저히 군국주의적 색채를 띠게 된 데는 일본 군국주의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 남한과 일본은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일제강점기 말기의 천황숭배 군국주의 체제와 전혀 다른,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체제를 지향하는 미국의 통치를 경험하게 됐다. 그 후에는 미국이 주도한 6.25 전쟁을 치르고 미국의 영향 아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발전시켰다. 현대의 한일 관계는 바로 이런 공통의 문명 기반 위에서 맺어지도 영위됐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북한은 일제강점기 말기와 오히려 유사성이 강한 소련군의 통치를 겪었다. 그리고 6.25 전쟁과 그 이후에는 일당 독재정치와 사회주의 통제경제에 익숙한 중국과 소련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이는 일제강점기 말기의 유산과 결합하여 북한식의 독특한 사회 체제를 만들어 내는 기반이 되었다. 오늘날 서로 다른 문명 기반을 지닌 북한과 일본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을지 예측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남북한의 통일 또한 그러하다.

454p

일본 국민은 일상생활에서 '3종의 신기'라 불린 세탁기, 텔레비전, 냉장고를 마음껏 이용하며 소비와 안락의 꿀맛을 즐기게 되었다. 6.25 전쟁을 현장에서 겪은 한국과 한국인의 비참한 신세계와는 너무나 다른 환경에서 일본과 일본인은 그렇게 안정을 누렸다. 

465p

한국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한 반면, 일본은 6.25 전쟁의 특수 계약과 특별 수요에 힘입어 세계의 경제 강국으로 부상했다. 그러면서도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압도적 영향 아래서 천황제적 군국주의와 통제 경제 체제를 탈피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로 문명 전환을 했다. ... 불과 반세기만에 한국은 국민의 생활양식과 문화 수준에서 일본과 선진성과 보편성을 공유하는 동질 국가로 발전했다. 한국이 이렇게 발전한 데는 일본의 협력과 지원이 큰 힘이 되었다. 


<오류>

124p

11세기 후반에 즉위한 시라카와 천황은 외조부가 섭관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시라카와 천황은 고스자쿠 천황과 후지와라노 시게코로 섭관가인 후리와라씨가 외가이다. 시라카와 천황의 아버지인 고산조 천황의 어머니가 섭관가가 아닌, 산조 천황의 딸 데이시였기 때문에 위 문장은 고산조 천황으로 바뀌어야 한다. 고산조 천황은 우다 천황 이래 170년 만에 후지와라 씨를 외척으로 하지 않은 천황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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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 가문 이야기 - 르네상스의 주역 현대지성 클래식 14
G.F. 영 지음, 이길상 옮김 / 현대지성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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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매력적인 제목과는 달리, 읽기가 매우 힘들다.

너무 세세하게 당시 상황들을 늘어놓는다.

최근작이 아니라 20세기 초에 나온 번역서라서 읽기가 힘든가 싶다가도, 아래 리뷰를 보면 대체적으로 흥미롭다는 평이니 메디치 가와 당시 피렌체에 대한 내 기본적인 지식이 부족한 탓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장점은 메디치가가 당대 예술의 통큰 후원자였던 만큼 정치 얘기에 그치지 않고 건축과 회화, 조각 등과 같은 예술사를 함께 설명해 준다는 점이다.

별 관심이 없었던 기베르티, 도나텔로, 루카 델라 로비아, 베노초 고촐리, 보티첼리 등 당대 유명한 예술가들이 사회에 끼친 영향과 작품에 대한 글을 읽고 나니 과연 르네상스 시대였구나 싶다.

작품을 검색해 보니 잘 몰랐던 훌륭한 조각과 그림들이 참 많다.

특히 루카 델라 로비아의 환조와 보티첼리의 아름다운 성모자 등이 정말 인상적이다.

메디치 가문이 공화국을 지배하는 과정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인상깊은 구절>

336p

종교개혁을 낳은 것은 루터가 아니라 '새 지식'이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봐도 루터처럼 그렇게 미미한 지위에 있던 한 개인이 온 유럽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뒤흔든 격동을 일으킬 수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루터가 한 일은 이미 내연성을 가진 물질들에 불을 붙인 것이었다.


<오류>

165p

베네치아에서는 두 형제 젠틸레와 조반니 벨리니와 이복 형제 만테냐가 미술 학파를 시작하고 있었는데

->만테냐는 벨리니 형제의 처남이다.

305p

프랑스 군은 용감하고 유능한 젊은 장군 가스통 드 푸아가 지휘했는데, 그는 루이 12세의 사촌으로서

->가스통 드 푸아의 어머니 마리 드 오를레앙은 루이 12세의 누이이다. 그러므로 그는 루이 12세의 사촌이 아니라 조카다.

319p

이복 형제 필리포 스트로치와 그외 피렌체의 주요 인물들이 로렌초 2세를 수행했다.

->필리포 스트로치는 로렌초의 누이 클라리체와 결혼했으므로 이복형제가 아니라 매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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