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당제국의 탄생 - 위대한 동아시아 시대를 연 탁발선비의 천년기행
윤태옥 지음 / 청아출판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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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형식의 역사 기행문이다.

다큐멘터리로 방영됐던 모양이다.

우리에게 매우 낯선 존재인 선비족의 흥망성쇠를 따라 가는 여정이다.

넓은 중국 초원 사진들이 많이 실려 있어 신비롭기도 하고 농경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보니 과연 유목민의 나라는 다르다는 실감이 든다.

저자는 함께 동행한 박한제 교수의 중국역사기행을 읽고 이번 답사를 기획했다고 하는데, 나 역시 그 책 세 권을 정말 인상깊게 읽어서 반가웠다.

위진남북조 시대에 대해 거의 무지했고 특히 선비족의 북위는 오랑캐 왕조였거니 생각한 게 전부였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북중국을 통일했던 위대한 나라였고 이들의 후예가 수당까지 이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 생소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재밌어 시간을 두고 세 번이나 읽었던 책이다.

이 책은 비전문가의 역사 기행문이긴 하지만 선비족의 탄생부터 멸망에 이르기까지 긴 여정을 지루하지 않게, 역사적 사실과 함께 소개한다.

북위 역사를 정리하는데 도움이 됐다.

제목은 대당 제국이지만 사실은 선비족의 이야기다.

이야기꾼 같은 저자의 문체가 흥미로워 다른 저작들도 같이 읽어 보고 싶다.


<인상깊은 구절>

271p

귀족제의 원리는 인격적 자질에 가치의 기준을 두되, 그 자질은 개인의 능력보다는 대대로 학풍과 교양으로 닦여진 우수한 가풍을 유지해 온 가문에서 생긴다는 사고에 기초한 것이다. 출신 가문에 상응하여 관직을 부여하는 일종의 신분제다. 가문의 사회적 지위와 관직의 정치적 지위를 연계함으로써 귀족 계층의 대를 이어 정치, 사회적 리더십을 이어가게 한 것이다. 


<오류>

167p

가황후는 자신이 낳은 태자 사마휼까지 폐위하고 죽였다.

->사마휼은 혜제 사마충의 후궁이 낳은 아들이고 가남풍은 딸만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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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 창조과학과 지적 설계론이 과학이 될 수 없는 16가지 이유, 한정 특별 보급판
리처드 도킨스 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김명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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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가장 발전된 나라로 인식되는 미국이라는 최선진국에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공립학교 과학 시간에 지적 설계론을 진화론과 함께 가르쳐야 한다고 법원에 청원을 하다니, 그저 놀랍다는 말 밖에 안 나온다.

책을 읽으면서 진화가 생명의 원리임을 확신한다면 자연스레 무신론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지적 설계, 이른바 인격신(그 신은 반드시 기독교적 속성을 갖고 있어야 함)이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우주를 창조했다고 믿는 것이 종교인의 믿음이라면 근본주의자들은 그것을 세속 생활에서도 강요하는 듯 하다.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고, 무엇보다 자신의 죽음을 끊임없이 인지하는 의식이라는 것을 갖고 있으므로 보다 강력한 신에게 의지하고 그것을 믿는 공동체에서 유사 가족으로서의 유대감을 통해 안정을 얻는 것이 진화적으로도 생존에 유리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럼에도 그러한 감정적인 믿음이 우주와 생명의 기원을 밝히려는 과학을 대신할 대안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환원 불가능한 복잡한 기관이라는 눈이나 편모 등이 잘못된 주장이라는 점은 이미 알려졌고, 목적을 갖고 처음부터 완벽하게 창조됐다는 주장도, 흔적기관과 쓰레기 DNA 등 쓸모없는 해부학적 기관 등이 반증이 된다.

중간고리가 없다는 주장도 이미 많은 화석들이 발견되고 있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스티브 핑커의 도덕 감정의 진화이다.

흔히 종교가 인간의 도덕심을 고양시킨다고 하는데, 중세 시대 기독교의 마녀 재판이나 오늘날 이슬람 테러 집단만 봐도 종교가 딱히 도덕심과 상관관계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핑커는 인류가 교역을 확대하고 공감의 범위를 넓히는 과정에서 도덕 감정이 진화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과거에 비해 인종차별, 여성차별, 신분철폐, 고문과 사형제 폐지, 전쟁 감소 등 인권과 세계시민의식 성숙의 예는 무수히 많다.

도덕심을 발달시키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종교가 아니어도 진화의 원리로 우리는 과거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상 깊은 구절>

179p

우리는 초자연적인 행위자가 우리의 실존적 딜레마들을 해결하게 하는 반직관적인 세계를 간신히 창조한다. 이러한 세계들은 우리의 사실적인 일상세계와 충분히 가까워서, 지각적으로 강렬하고 개념적으로 다루기 쉽다. 종교적 세계들은 한결같이 신, 마귀, 천사, 조상의 영 같은 초자연적인 행위자의 개념들에 집중한다. 따라서 유령, 아브라함의 신, 악마는 심리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인간과 매우 흡사하지만, 물적 실체와 물리적 제약이 없다. ... 왜 사람들은 일상적 사실 및 논리와 모순되고 개인적 희생을 요구하는 초자연적인 세계를 받아들일까? 그것은, 이것이 처음에 종교를 유발한 감정들을 집단적으로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공동 의식은 초자연적인 행위자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도덕적 진리를 감정적으로 확인하고 거기에 헌신하게 만든다. ... 그러나 이러한 교감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종교가 제공하는 것이라고는 잔인함과 불관용이 전부다. ... 강렬하고 친밀한 집단의식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종파의 구성원들은 흔히 유사가족을 만든다. ... 과학이 인간과 인간의 의도를 우주 속의 부수적 요소로 취급하는 반면 종교는 그것을 중심에 놓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토머스 제퍼슨의 비인격적인 유니테리언파 신과 프랑스 혁명의 중립적인 신이 구석으로 밀려난 것이고 ... 인격적인 신은 인간적 문제들에 호소한다.

200p

수천 년에 걸친 도덕적 진보는 사람들이 타인의 삶에 자신을 투용하여 공감의 범위를 넓히도록 장려하는 상황들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263p

설계는 목적을 지닌 창조 행위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목적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결과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들이다. ... 오늘날 자연철학자들은 과학이 특정 종류의 문제에는 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질문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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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수업 - 풍성하고 깊이 있는 클래식 감상을 위한 안내서
김주영 지음 / 북라이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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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저자의 <피아니스트 나우>를 읽은 기억이 난다.

잘 모르는 유명 피아니스트를 알게 된 점은 좋은데, 너무 현학적인 문장 때문에 가독성이 떨어져서 아쉬웠다.

이번 책은 꼭 피아노에 국한되지 않고 전반적인 클래식 이야기라 좀더 쉽게 읽힌다.

전공자인 만큼 클래식 작품에 대한 분석이 많고 전문 연주가의 삶에 대해 조금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다만 아는 곡이 많지 않아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유튜브를 찾아 보니 많은 공연 실황이 있어 이 책을 길잡이로 삼아 들어보고 싶다.

고전 음악가에 국한되지 않고 현대 작곡가들과 작품도 많이 소개해 줘서 신선했다.

클래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기타나 탱고 음악도 같이 나와 흥미롭게 읽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더니, 죽기 전에 향유하고 싶은 음악들이 이렇게 많다니!

난 책도 다 못 읽고 있는데 언제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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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에 대하여 - 가치를 알아보는 눈
필리프 코스타마냐 지음, 김세은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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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읽은 <예술의 사생활>이 미학적인 관점에서 보는 미술 감상론이라면 이 책은 미술 감정사라는, 우리 현실에서는 좀 낯선 직업을 가진 이의 성장기다.

어렵지 않고 흥미롭게 잘 읽히는 에세이다.

감정사라고 하면 <귀족의 은밀한 사생활>의 저자가 오브제 즉, 고가구 감정사라는 걸 처음 접했을 뿐이라 무척 생소하다.

보통 미술사학자 아니면 대중적인 글쓰기를 하는 에세이스트 정도지, 미술 작품의 원작자를 규명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감정사라는 직업은 주변에 본 적이 없다.

시대와 작가 감정을 하는 전문가가 필요할 정도로 서양 미술사의 뿌리가 깊고 튼튼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도판으로 보는 것보다 직접 가서 명화를 접하는 것이 미적 체험을 하고 안목을 키우는데 매우 중요함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는 듯 하다.

저자가 책에서 여러 차례 강조한다.

눈으로 가서 여러 차례 감상하라.

서양 미술을 책으로 접할 수밖에 없는 외지인의 한계가 느껴진다.

대신 같은 의미로 우리 그림과 문화에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고 싶다.

저자는 작품을 직접 가서 관찰하고 사진 자료와 대조하면서 기억의 체계를 세워 분류한다.

서양에서는 작품을 사진찍어 보관하는 미술사 도서관이 많은 모양이다.

이 도서관의 온라인 판이 바로 내가 즐겨 들어가는 위키 미디어와 crotos, 구글 아트 등이다.

많은 도판을 보면서 눈에 익히면 확실히 화가의 특성과 시대 구분을 하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

읽는 내내 자신의 직업에 대한 강한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덩달아 즐거웠다.

이론을 세우는 미술사학자와는 또다른 감정사라는 직업의 고유 영역이 이채롭다.

이름있는 대가들에 국한되지 않고 덜 알려진 거장들을 찾아내려고 애쓰는 그들의 노력이 멋지다.

베르메르와 폰토르모가 최근에서야 발견된 것처럼 새로운 화가와 작품들이 많이 발굴되길 기대해 본다.


<인상깊은 구절>

41p

언젠가 유용하게 쓰여 결국 존재감을 발휘하고야 마는 시각 정보를 다양하게 자주 접함으로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것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

46p

대개는 다분히 직관적으로 작품의 가치를 판단하며, 작품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도 재력이 뒷받침되기에 거액을 걸 수 있는 사람들이다.

91p

제대로 된 감정사라면 외부의 뜨거운 관심보다는 미술계 전문가들의 관심을 받는 작품에 더욱 주목할 것이다. 그건 자기 직업을 사랑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99p

고심 끝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무관심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101p

무릇 연구란 모든 사람이 그 결론을 당연하고 확실하게 받아들여 거듭 인용할 때 오롯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104p

폰토르모, 안드레아 델 사트로, 브론치노 같은 거장을 연구할 때 무조건 예찬하지 않고 신중하게 접근했다. 발견에 대한 내 자세가 그랬고, 천재의 명성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은 조심스러운 마음도 있었다. 이처럼 절제된 태도를 취하니 올바른 시각을 형성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세기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고찰함으로써 나만의 고유한 관점을 가질 수 있었다.

122p

어엿한 미술품 감정사가 되면 미친 듯이 온 열정을 다해 일하는 삶이 시작된다. 순구한 열정으로 작품 관찰과 고찰에 매달리던 청춘 시절을 그리워 할 때도 가끔 있지만, 평생토록 위대한 모험의 묘미를 만끽하며 살 수 있다.

217p

우리 감정사들은 무명의 옛 대가들을 발굴해 그들의 자료집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거기서 엄청난 기쁨을 느끼는데 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학문적 희열이라 할 수 있다. 알려지지 않은 거장들의 그림은 비록 낡았더라도 여전히 매력적이라 눈이 즐거운 반면, 1918년 이후 이류 화가들의 그림은 형편없는 것들이 허다해서 어떨 때는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지경이다. 바로 이러한 작품을 일컬어 졸작이라 부른다. 졸작은 미술 발전에 아무런 보탬이 안 되며 심지어 아름다움의 의미를 왜곡하기도 한다. 금전적으로 하등의 가치가 없기에 갤러리스트들이 눈길을 주지 않는다.

233p

꼭 미술 소비층이 아니더라도 일단 미술 감상법을 깨우치면 축구 경기나 텔레비전 드라마를 볼 때처럼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한 나라의 교양 수준과 역사, 문화, 회화에 대한 지식은 학교에서 배우는 그 이상으로서 서양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을 이루는 의식과 이념, 즉 공공의 정신적 유산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며, 타인을 열린 마음으로 대해 균등한 기회를 열어주고 파벌주의식의 편협한 사고방식을 근절하게 한다. 미술관 학예사는 교도소, 병원, 낙후 지역으로 찾아가 미술 감상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269p

베렌슨 선생은 우리 미술품 감정사들이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내가 해주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시오."

300p

탁월한 재능과 부단한 훈련에 탄탄한 인맥이 갖춰지고 정식 교육을 이수할 때 비로소 인목이 형성되는데, 이 중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단연 훈련이다. ... 미술 감상은 인류의 유희 활동으로 공고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 물론 미술을 생업으로 하는 미술사학자, 미술품 감정사, 학예사, 갤러리스트와 같은 분들은 모든 직업인이 그러하듯 그림 한 폭을 자아실현과 유희의 대상으로 대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오류>

베렌슨 선생은 <필립 5세의 초상>의 원작자를 벨라스케스로 감정했는데~

->펠리페 5세는 1683~1746, 벨라스케스는 1599~1660년으로 동시대인이 아니다. 벨라스케스 당시 왕은 펠리페 4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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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일상세계 - 문화인류학적 해석 석학인문강좌 24
김광억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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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흥미로워 신간 신청한 책인데 막상 받아보니 너무 학술적인 책인가 싶어 지루할까 봐 걱정했다.

그런데 역시 전문 학자의 책은 다르구나 감탄하면서 읽게 됐다.

요즘의 화두인 중국 사회를 이른바 수박 겉핥기 식으로 가볍게 스케치하는 일련의 책들과는 수준이 다르다.

다소 사변적인 문장들도 있으나 지루해 보이는 표지와는 달리 내용이 어렵지 않고 무엇보다 정말 재밌고 깊이가 있다.

중국이라는 사회, 특히 공산당에 의한 개혁개방이 이루어지면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자 패권국가가 되려 하는 이 나라의 근본 정신이 무엇인지, 역사적 배경은 어떠한지를 유려한 필체로 풀어낸다.

무엇보다 각 챕터마다 하나의 주제로 응집되는 구성력이 돋보인다.

내친 김에 <석학 인문강좌> 시리즈를 다 읽어 보고 싶다.

중국은 유교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한국과는 일견 비슷해 보이면서도 매우 이질적인 사회다.

공산 혁명과 미국식 자본주의 이식이라는 전혀 다른 현대사의 전개가 그런 차이를 강화시켰을 듯 하다.

중국이 자본주의가 진행되면 공산당이 무너지고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사회로 바뀔 것이다는 예측은 그야말로 중국을 피상적으로 본 견해 같다.

거대한 영토와 많은 인구, 무엇보다 56개에 달하는 다양한 민족을 지닌 오랜 역사를 가진 이 나라는 일반적인 서구식 발전 방향과는 다른 길을 갈 듯 하다.


<인상적인 구절>

70p

거대한 제국 중국이 영국이라는 작은 섬나라에 간단하게 그리고 형편없이 참패를 당한 것은 바로 무기의 차이라는 지적이다. 토론자의 한 사람인 모 대학의 70세 정도의 역사학자는 당시에 영국은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었으며 중국이 세계의 흐름에 어두워서 제때에 적응과 대응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내부적 원인에 주목해야 한다고 반론을 제기하였다. 그는 강병이 아니라 부국부터 하고 사회의 질량을 높이고 지구적 변화에 대응하는 국가적 능력을 제고하는 것, 그리고 문명의 개방과 포용력의 배양이 대국으로 가는 올바른 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초대된 토론자들은 모두 그에게 "당신은 바로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우리에게 주입하던 그 구닥다리 논리를 아직도 답습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며 야유를 퍼부었다. 중국이 막강한 군사력을 확보해야만 미,일의 무력에 대항하여 동아시아 평화를 담보하는 중국의 역할이 가능해진다는 논리였다. 청중으로 동원된 대학생들이 찬성의 깃발을 흔들면서 환호하였다.

(이런 패권주의 때문에 현대 중국은 가까이 하기에는 매우 위험한 이웃이고 거대하고 유구한 문명에 대한 깊은 경이로움과는 별개로, 현대의 중국은 도저히 정이 안 간다.)

73p

역사기억과 혁명의 메시지는 이러한 사회교육을 통하여 지극히 익숙한 일상의 일부가 된다. 내가 중국의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만난 다양한 종류의 인민들은 이러한 프로그램이 주는 언술을 판에 박은 듯이 똑같이 되풀이하였다. 지방의 인민들에게는 천안문 광장에서 마오쩌둥 초상화를 배경으로 하여 기념사진을 찍는 것이 일생의 가장 큰 행사로서 의미를 갖는다. 그들은 원명원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즉각 "洋鬼"에 대한 증오와 비분을 토로하게 되다. 그들이 한류 드라마와 오락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것은 이러한 교육 프로그램의 반복이 주는 지루함 때문이며 동시에 일상생활 속의 이야기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 제국의 기억과 신중국 건설에 대한 경험과 외세에 대한 수모의 기억은 그들의 역사의식의 심층에 자리 잡고 있으며 언제든지 애국심으로 연결되어 폭발할 수 있다. 한국인과 중국인 모두 역사인식과 애국심이 강하다. 지난 세기의 아픈 역사적 경험에서 한국인은 경제결정주의와 시민권리 담론을 중심으로 삼는 성향을 만들어 내었다면 현재의 중국인들은 국가가 모든 가치의 위에 위치하는 정치우선주의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주의란 결국 서구를 모델로 하는 성숙한 시민사회이니, 국가 특히 공산당이라는 절대적인 권력 체제가 사회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과는 매우 이질적일 수밖에 없을 듯 하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로 보자면 <서울과 교토의 1만년>에서 본 바와 같이 오히려 일본과 비슷할 듯 하다. 식민 지배 이후의 반일 감정이 여전히 강하지만 말이다.)

84p

그런데 명과 청은 조선에 대해서만은 호혜가 아닌 동맹과 감시의 이중적인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본다. 조선의 문명과 국가관리체제가 중국에 버금가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역내 안정을 위한 동맹관계를 유지함과 동시에 조선이 중국에 대한 위협이 아닌 충성의 입장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중국이 조선에 주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조선이 중국에 제공하기를 끊임없이 요구했다는 것이다.

86p

공자는 제나라가 풍요롭고 실함을 칭찬하면서도 관중을 군자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소인이라고 하였다. 중상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철학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113p

중국과 한국은 근대국가 형성 과정에 유교전통의 재생산 과정이 함께함으로써 전통적, 봉건적 요소 체제의 대체를 필요로 하는 유럽의 이론적 모델과 달리 이전의 전통의 토대 위에서 근대국가가 성립되는 특징을 가졌다. 그러므로 자기 민족이나 종족의 문명에 대한 정당성과 문화적 우월성에 대한 자부심이란 맥락에서 봉건시대의 산물로서의 내서널리즘이 지속 재생산되는 것이다.

126p

대중적 화이관을 기반으로 한 중화세계관의 강조는 국제질서에 적용하여 화이규범을 문화주권론의 맥락에서 재해석함으로써 중화를 문명의 소유권과 연결하는 것은 보편적 가치로서의 중화문명의 지위를 거부하는 모순이 있다.

(문화가 갖는 보편성이 아니라면 위대한 중화문명을 외국인이 굳이 연구하고 찬탄할 필요가 있겠는가. 더군다나 패권주의의 기반이 되는 중화문명이라면 자기들끼리 우쭈쭈 하는 프로파간다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조선조 지식인들의 중국, 즉 명에 대한 숭배가 너무나 컸으므로 조선인의 지배적인 세계관은 곧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이었다. 구한말의 혼란과 근대국가로의 이행에 실패, 그리고 마침내 일제의 식민지가 된 일련의 역사 과정은 당시 청에 의존하였던 청의 운명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 예송은 조선의 유교국가로서의 특성을 보여 주는 사건이다. ... 조선왕조가 때로 무능하거나 폭정을 하는 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근 600년에 가까운 세월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권력체계의 유연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이는 정치학적인 시각에서 볼 때 조선이 단일 민족으로 구성된 작은 영토의 나라이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189p

서구 학계와 중국 국내의 진보적인 학계에서는 이를 NGO와 시민사회운동의 활성화로 진단하는 학자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정부와 인민 사이의 타협과 공모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국가의 입장에서도 정치의 기술 차원에서 볼 때 公의 과도한 강조와 확대가 가지고 오는 사회의 경직성을 완화하고 사회문제와 복지문제의 해결에 국가의 부담이 일부를 민간 영역에서 감당하는 것을 허용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201p

학자가 되는 것과 돈을 버는 것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도록 사회적 신분제를 적용하였던 조선조 유교사회에서는 상상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 비록 이념 차원에서도 보다 근본주의적인 유가는 도교와 불교를 멀리하지만 실제 사람들의 현실생활에서는 분명하고 배타적인 구분이 없다. 이 점이 유교가 보다 근본주의적 성향을 띠면서 실천된 조선과 구별된다.

236p

유교와 도교가 합칠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불교가 번창할 수 있었던 까닭은 나라의 광활함과 지식의 보편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역사적 배경에 기인한다. 지식 엘리트들이 세계관을 만들고 세련화하지만 그것을 궁극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인민이다. 유교와 인민에게 절대적인 윤리와 가치관이 되기에는 인민은 그러한 지식, 즉 문명 위주의 유교적 세계질서체계에서 편안한 위치를 보장받을 수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낮고 열등한 위치에 처해지는 것이다.

305p

상대방의 체면을 여지없이 짓밟을 만큼 도를 지나치면 안 된다. 그러한 모습은 때로 중국인이 철저하게 따지지 않고 불의와 타협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화해라는 가치의 묘를 살리는 지혜이기도 하다. 어차피 함께 살아갈 사람이라면 비록 그가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를 영원히 생활세계에서 추방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최소의 체면은 살려줘야 한다. ... 그들은 명분에 흥분하기보다는 실질적으로 해결책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데 더 관심이 있다.


<오류>

67p

1990년대에는 소위 제3세대 감독군이 출현하여~

->책에 소개된 장이머우는 5세대 감독이다.

89p

흉노는 헝가리를 거쳐 핀란드까지 전 유럽을 속전속결의 전법으로 정복한 거대한 국가였다. ... 아틸라는 당시 흉노의 지도자였다. 흉노와의 화친을 위하여 11대 원제 때에는 호한야선유에게 한족 궁녀를 시집보내었으니 왕소군의 고사가 그것이다.

->1세기 무렵의 흉노와 아틸라가 등장하는 5세의 훈족이 같은 종족인지는 불분명하고, 무엇보다 유목 전사로써 유럽을 공포에 떨게 하였으나 거대한 국가를 이루었던 것도 아니고, 아틸라 시대와 왕소군은 하등의 관계도 없다.

89p

전진의 부견으로부터 백제로 불교가 전해졌다.

->전진의 부견이 순도를 고구려에 보내 불교가 전해졌고, 백제는 동진의 마라난타에 의해 전해졌다.

93p

수와 당의 건국자는 각각 흉노족과 선비족이었다. 금은 거란족이 지배하는 나라였다.

->양견과 이세민은 모두 북위의 선비족이다. 금은 거란이 아니라 여진족이 지배했고 요나라가 거란족이다.

95p

헌제 때 일어난 난리 통에 채문희는 선비족에게 끌려가서 선우 주천립의 첩이 되어 오랑캐 땅에서 지냈다.

->채문희는 남흉노 선우 주천립(호주천)이 아니라, 그 조카인 좌현왕 유표의 첩이 된다. 유표는 전조를 세운 유연의 아버지다. 찾아보니 조조에 의해 낙양으로 돌아온 후 재가하여 낳은 딸이 서진을 세운 사마의의 큰 아들 사마사의 황후가 된다.

128p

기해예송에서 남인은 효종이 왕이므로 대비는 신하로서의 3년복을 입어야 한다고 하였고 서인은 효종이 왕이지만 적통이 아니므로 그냥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상복, 즉 기년설을 주장하였다.

->남인이 3년복을 주장한 것은, 효종이 차자이나 왕위를 이었으므로 일반적인 예법과는 달리 종통을 이은 장자로서 대우를 해야 한다는 뜻이었고, 서인은 왕과 사대부는 예법이 다르지 않으므로 차자의 예로 1년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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