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궁중의 잔치, 연향 왕실문화 기획총서 4
김문식 외 지음, 국립고궁박물관 엮음 / 글항아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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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일반인 대상으로 진행된 강연 모음집인 듯 하다.

일종의 생활사, 미시사라고 할까.

궁궐에서 잔치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나를 의궤 등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고증한다.

복식이나 음식, 음악 부분은 설명만 가지고는 잘 와 닿지가 않아 지루했고, 제일 흥미로운 부분은 역시 정재, 즉 춤 공연이다.

의궤에 여러 정재들이 잘 묘사되어 있어 쉽게 이해가 됐다.

궁중무용은 지루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저자가 설명한 바대로 단지 예술성을 추구하려는 게 아니라, 절대지존에게 축수하는 마음과 예를 갖춰 올리는 고도의 형식미가 본질이라고 한다.

뜻을 알고 나니 다르게 보이는 듯 하다.



<인상깊은 구절>

227p

조선 왕실에서 혜경궁의 탄신에 임금이 직접 진하하는 것은 법도에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정조는 이존의 혐의가 없을 뿐 아니라 위에서 높여 받드는 도리는 의리에 입각한 것임을 강조하며 직접 백관을 거느리고 진하했으니, 이보다 더 혜경궁의 위치를 단단히 해주는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326p

군무 중심, 예악 사상 중심, 왕조와 군왕에 대한 찬송 중심이었던 전통적 궁중 정재에서 화려한 춤사위와 복식 그리고 순수 예술체로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독무들이 생겨난 것도 개성에 눈을 떠가는 조선 후기 철학적 흐름의 변화를 반영하는 뚜렷한 지욮가 된다. 

348p

특히 군왕에게 올리는 예악적 상징성은 아예 사라지고 상업적, 대중적 개념이 들어서면서 관객 구미에 맞는 춤과 춤사위만이 전해졌다. 그리하여 궁중 정재는 원래의 성격인 예악성, 송축성이 제거된 채 단순한 대중 예술물로 자리잡는다.


<오류>

87p

홍현주는 순조의 사위

->영명위 홍현주는 정조의 서녀 숙선옹주의 남편으로, 순조의 매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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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만이 무기다 - 읽기에서 시작하는 어른들의 공부법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김해용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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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서적 특유의 오타쿠적인 조잡함이 언뜻 비치면서도 전체적인 내용은 많이 공감하면서 읽었다.

나는 왜 책을 읽는가?

저자는 진정한 지성인이 되기 위해, 나 자신을 인격적으로 성숙시키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 했지만 나는 독서의 효용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편이고, 오히려 호기심이라는 강렬한 욕구 때문에 취미로서 책을 읽는다.

저자는 가능하면 나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좋은 책을 읽으라 하고, 진정한 지성인이 되기 위해 감각적 즐거움만 추구하는 쓸데없는 취미를 버리라고 했지만, 나는 독서 역시 강렬한 취미라고 생각한다.

다만 알고자 하는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책을 읽다 보면 인식의 지평선이 넓어지면서 보다 삶이 풍부해진다는 느낌은 확실히 있다.

독서론이라는 일종의 실용서 같으면서도 마음의 불안을 떨쳐 버리고 현재의 일에 집중하라는 조언이 많은 위안이 됐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말한 "flow" 상태를 추구하라는 뜻 같다.

플로우에 도달할 때 바로 그 순간이 행복이라고 느끼게 된다.


유용했던 조언들

1) 책을 읽으면서 밑줄 긋지 말고 한 챕터를 다 읽은 후 돌아와서 중심 문장에 밑줄을 그어라.

2) 배경 지식을 찾아보면서 읽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나도 그렇게 한다. 구글 지도와 위키 백과, 구글 이미지, 어학사전은 독서의 필요도구다. 그렇지만 자칫 독서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으니 조절을 잘해야 한다.)

3) 시간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얼마나 집중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생산적인 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4) 나만의 문장으로 고쳐 써라. (이 부분이 참 어렵다. 어찌 보면 단순한 읽기에 그치지 않고 한 편의 리뷰를 써서 나의 논점으로 정리를 해야 하는데 읽기보다 훨씬 능동적인 과정이라 에너지 소모가 많아 건너 뛰게 된다)


<인상깊은 구절>

47p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그것은 온갖 일에 대해 '일일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일일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일이 벌어지거나 뭔가를 보았을 때 일일이 이러쿵저러쿵 마음속으로 감상을 말하거나 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푸념도 일일이 생각하는 것에 포함된다. 타인에 대한 소문도 그렇다. 기분이나 신체의 사소한 불편함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도 그렇다. 그중에서도 걱정하는 게 가장 독성이 강하다. ... 좋지 않은 상상을 하며 불안해하거나 실망한다. 그 불안이나 실망을 위무하거나 얼버무리려는 데 또다시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그사이 눈앞에 맞닥뜨린 문제는 딴전이 되고 만다. 이런 버릇은 심한 낭비벽과 같으니 버려야 한다. 이런 나쁜 습관을 버리면 생활이 달라진다. 책임감을 가지고 꼭 판단을 내려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하고, 다른 일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한 채 그냥 인정하는 태도로 변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기분도 흐트러지지 않고 하루를 개운하게 보낼 수 있다.

51p

어떤 유형이라도 절박한 고민을 품고 있으면 긴장을 풀고 생각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차분히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축복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혹은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도 그 문제를 자신의 마음 바깥에 둘 수 있을 만큼 담대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유리하다.

79p

그들이 정말로 종교적이라면 자신들의 바깥쪽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말도 안 되는 억지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굳건한 신앙이 있다면 자신들의 믿음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그들은 이교도가 자신들이 숭상하는 무함마드의 캐리커처를 그렸다는 이유만으로 가혹한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119p

이 세상에서 고급스러운 것, 즉 질이 좋고 아름다운 것은 단연코 값이 비싸다. 단 하나의 예외적인 상품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 예외가 바로 책이다. 

131p

쇼펜하우어는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지적했다. "독서할 때는 생각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거의 없다. 스스로 사색하는 일을 그만두고 독서로 옮겨 갔을 때 안도의 기분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독서에 전념하는 한, 사실 우리의 머리는 타인의 사상이 뛰노는 운동장에 불과하다. 그 때문에 거의 통째로 하루를 다독에 허비하는 부지런한 사람은 서서히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 간다." (나 같이 남독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문구 같다. 책을 읽어서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과, 스스로 그것을 정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데 후자가 에너지 소모가 훨씬 크기 때문에 쓰기 대신 읽기만 한다.)

138p

인간의 마음이 지닌 다채로움과 변용의 불가사의함을 응시하기 위해서는 심리학 공부를 하는 것보다 세계문학을 읽는 편이 훨씬 더 유익하지 않을까. 

150p

이때의 환경이란 특수한 장소나 어떤 목적을 갖고 만들어진 물리적 환경을 뜻하지 않는다. 그 장소에 있으면 자신의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몰두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하므로 환경이라고는 해도 물리적 상태가 아닌 자신의 내적 환경을 가리키는 것일 게다. 물리적인 조건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상태가 그러한 장소를 만든다고 유추할 수 있다. 즉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일 때 자신이 있는 곳이 서재가 된다는 말이다. ... 자신의 마음이 맑고 조용할 때만 모든 생산이 가능하다.

156p

시간을 지배하지 않을 때 지루함이나 시간의 소모를 느낀다. 시간을 지배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자신의 의식 상태와 관련있다. 여기서 말하는 내용의 핵심은 '집중'이다. ... 매번 사소한 일에 감정을 함부로 소모했다가 흐트러진 그 감정을 어떻게든 가라앉히기 위해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일단 눈앞의 일에 집중하기를 권한다.

160p

소위 말하는 걱정이라는 것도 사실과 유리된 망상에 불과하다. ... 많은 사람의 하루 시간이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 이런 망상으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그 망상을 버리면 그만큼의 시간이 생기고, 그 시간을 본래의 일을 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만약 꼭 생각해야 하는 일이 있거나 혹은 대처해야 하는 고민이 있다면 종이에 글과 그림으로 적어 보는 게 가장 이성적이다. 또 그 과정을 통해 현실적인 대처 방법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225p

체력이 있어도 극심한 슬픔, 초조, 불안, 공포가 마음속에 있으면 독학은 어렵다. 하지만 그런 것도 인생이므로 피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도망치지 말고 맞서 하나하나씩 자신의 힘과 인내로 극복해 가야 한다. 즉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강인하지 않으면 독학은 어렵다.

230p

"동물은 우리보다 훨씬 현실 세계를 사는 것에만 만족한다. 동물은 우리 인간과 비교해 보면 어떤 의미에서 정말 현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즉 편안하고 불투명하지 않은 현실을 향유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동물은 육체를 얻은 현실이다. 그 명확한 정서의 안정은 사고와 불안에 의해 누차 동요하고, 불만을 쉬이 품는 우리 자신을 부끄럽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즉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은 귀여움으로 인간을 치유하는 게 아니라 오직 현재를 살아가는 만족을 구현함으로써 인간에게 치유와 가르침을 준다는 것이다. 이것을 뒤집어 보면 대다수의 인간은 현재를 충분히 살고 있지 못하며, 상상과 기대, 후회에 사로잡혀 고통받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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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8-03-13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arine님은 독서의 폭이 넓으신 것 같습니다. 열정도 대단하시고..^^ 역시 전 아직 몸이 그리 좋지 않아서인지 집중해서 읽는게 잘 되지 않네요.

인상깊은 구절을 적으신 것 중 첫번째 구절이 제일 마음에 들어오네요. 저도 한번 읽어보아야 겠습니다.

marine 2018-03-14 01:42   좋아요 0 | URL
전 독서의 폭이 너무 좁아서 문제인 것 같은데^^
다만 책에 대한 열정, 알고자 하는 욕구는 큰 것 같아요. 다치바나 다카시가 지식욕은 본능이라고 했던 말에 공감해요.
 
홍순민의 한양읽기 : 궁궐 하 홍순민의 한양읽기
홍순민 지음 / 눌와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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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은 무척 인상깊게 읽었던 반면 2권은 두툼한 분량에 비해 부정적인 시선이 너무 많아 읽기 참 불편했다.

왕조가 몰락하고 식민지 지배까지 받았으니 궁궐이 과거의 모습을 잘 유지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세심한 복원이 된다면 참 좋겠지만 왕조 시대의 영광을 오늘날에도 100% 재현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복원 역시 시대의 역량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책 전반에 실려 있는 어설픈 복원에 대한 저자의 강도높은 비판이 너무 부정적이라 부담스럽다.

궁궐에 더이상 사람이 살지 않고 문화재로서만 존재하니 쇠락한 느낌은 너무 당연한 게 아닐까.

1917년 화재 후 희정당을 재건하면서 순종이 김은호 등에게 맡긴 벽화도 우리 역사의 문화재라 생각한다.

일제가 붙여 놓은 것도 아니고 순종 생전에 일부러 조선인 화가들에게 의뢰해 장식한 벽화까지 식민지 흔적이라고 창덕궁의 제 모습이 아니라니, 역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해 가는 과정이 아닌가.

석조전이 외세 개입의 상징으로 경운궁 건물이라 할 수 없다는 비판도 마찬가지다.

엄연히 대한제국 당시에 지어진 근대식 건물이고 문화재로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이런 관점들에 동의하기가 힘들다.

그 외의 전체적인 내용은 매우 성실하게 궁궐의 이모저모를 설명해서 만족스럽다.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은 많이 알려져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경희궁과 경운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궁궐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특히 동궐도와 비슷한 서궐도의 채색본을 통해 경희궁의 사라진 전각들을 설명하는 부분이 유용했다.

도판은 감탄할 만큼 선명하고 훌륭하다.

표지 디자인도 무척 인상적이다.

목조 건축물인 만큼 궁궐의 화재 이야기가 자주 나와 안타깝다.

서울 한복판에 여전히 다섯 궁궐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자주 가 볼 수 있다는 게 참 고맙다.

한동안 궁궐 이야기는 너무 많이 접한 듯 해서 식상했는데 다시금 흥미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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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아를 통해서 본 조선시대 생활사 (하) 한국문화총서 12
안길정 지음 / 사계절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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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자가 마지막 챕터에서 밝힌대로 조선시대 각 신분의 생활사가 관아, 즉 지방 통치 기구를 중심으로 잘 그려진 책이다.

유럽사 쪽에서만 보던 이른사 미시사, 생활사라는 관점에서 무척 신선하고 흥미롭게 읽었다.

다만 조선왕조가 양인층에 기생하는 양반층의 확대로 망하게 됐다는 결론은 너무 단순한지 않나 싶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양인 이하 계층의 생활사를 세밀하게 복원한 저자의 노력이 돋보이고 깊이있는 분석을 제시하는 점은 좋지만, 지배 엘리트의 역할에 대한 고찰이 아쉬운 부분도 있다.

마지막에 실린 성황제가 국가에서 관리하는 제사였다는 점도 신기하다.

막연히 민간에서 행하는 굿으로만 알고 있었다.

특히 단오제 같은 큰 굿을 할 때 아전층이 이런 연회를 담당했다는 점도 처음 알았다.

옷 한 벌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큰 공력이 들고 그 가치가 얼마나 컸는지, 겨울을 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등과 같은 실제적인 생활상 분석이 당시 사회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족징과 인징 등과 같은 폐해가 결국 연좌제에서 비롯된 것이고 세금이나 형벌이 개인이 아닌 가족과 마을이라는 공동체에 부과됐다는 것을 보면, 확실히 근대사회는 집단에서 개인으로 분화해 나가는 듯 하다.

에필로그 부분은 저자로서는 전문 학자도 아니면서 이렇게 성실한 저작을 왜 내놓게 됐는지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 같지만 독자에게는 잘 전달이 안 되는 듯 하여 아쉽다.


<인상깊은 구절>

55p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품위 유지를 위해 많은 돈이 필요하며, 위로 올라갈수록 씀씀이가 더 커진다. 돈을 아꼈다간 체면이 깎이거나 여지없이 홀대받게 마련이다. 그래서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수모'를 두려워하게 되고, 이를 회피하려고 아랫사람들이 '알아서' 상납하게 만드는 데 잔머리를 굴리게 된다. 고전을 보면 체면 유지나 인사치레로 드는 각양각색의 돈이 나오는데, 예전이니 인정이니 정비니 하는 것들이 다 상대에게 호의를 바라고 건네진다.

209p

성서에서 예수가 로마군에 붙잡혀 처형될 때 군병들이 그의 옷을 나눠 갖기 위해 제비뽑기를 하는 기사가 나온다. 아무려면 죽은 이가 입던 낡은 옷까지 서로 차지하려고 그럴까 하는 생각을 누구나 할 법한 대목이다. ... 가내 수공업에 의존하던 전통시대에 옷 한 벌 짓는 데는 많은 시간과 품이 들었다. ... 원료의 생산에서 완성품을 이루기까지 한 벌의 옷은 그야말로 여인의 고된 공력이 아로새겨진 노동력 덩어리인바 번듯한 의관 한 벌은 웬만한 형편에서는 넘볼 수 없는 고가였다. 궁색한 양반들은 결코 의관이 번듯할 수 없었다.

221p

추운 겨울, 이것은 중세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꼭 이해해야 할, 오늘과는 다른 과거의 생활상이다. 서민들이 추위의 제약에서 벗어난 것은 오래 되지 않았으며, 아마도 보릿고개에서 벗어난 것과 대략 일치할 것이다.

228p

오늘날에는 세금 납부액이 개인별로 발부되지만 당시 세금은 리별로 할당되었다. 즉 리와 면은 전결, 군역, 환곡, 잡역 같은 각종 세와 역을 거두는 데 공동책임을 졌다.

238p

조선의 주민 장악방식을 보면 매우 절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엄연한 행정계통이 있는데도 별도의 주민 기구를 가동하여 징세하는 방식은 이웃나라들에선 유례가 없다. 만약 주민 조직의 도움 없이 이런 성과를 내려면 관료 조직은 엄청나게 방만해졌을 것이다. 비대한 관료 조직은 자짓 재정 파탄을 부를 수 있어 언제나 나라에 득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민 자치는 나라에서 양보한 일방적인 시혜일 수 없다.

246p

베짜기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전업적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다른 집안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 행해졌다. 이를테면 김매기 같은 밭일이 기본이고 베짜기는 가외의 일이라서 해가 떨어진 밤이나 한가한 겨울철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렇게 때문에 웬만한 체력이나 인내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이런 중노동이 조선시대 여인들에겐 일상이었다.

325p

로마 교황청과 신교도들 사이에는 어떻게 해야 우리가 의롭게 되느냐, 즉 구원을 얻느냐는 문제를 두고 근 500년 간에 걸친 논쟁을 거듭해 왔다. 쟁점이 된 것은 선행에 대한 평가였다. 교황청과 달리 캘빈이나 루터가 보기에 자선은 구원의 결정적 요인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구원이 우리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며, 선행이나 믿음이 반드시 구원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우리의 구원 여부는 최후의 심판을 주재하는 재판장의 자유로운 독단에 따르며, 우리의 선행이나 믿음에 대한 평가도 오로지 재판장의 전권 사항이다. 


<오류>

136p

노비들의 도망이 끊이지 않자 왕실은 18세기 벽두에 공노비 해방령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공노비 해방령은 1801년, 즉 19세기에 내렸다.

331p

광범위한 도망의 형태로 나타난 노비들의 저항이 없었다면 숙종조의 공노비 해방령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공노비 해방령은 숙종이 아니라 순조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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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빠 2018-03-11 0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책 추천해줘서 감사합니다
 
관아를 통해서 본 조선시대 생활사 (상) 한국문화총서 11
안길정 지음 / 사계절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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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연히 교보문고에서 보고 당연히 전공자가 쓴 책인 줄 알고 빌렸는데, 뜻밖에도 출판일을 하는 분이라 놀랬다.

사료를 적당히 짜집기 한 가벼운 교양서에 그치지 않고 문헌 자료를 깊이있게 분석해 조선시대 지방 통치 체제와 생활상을 잘 보여준다.

간혹 현대사에 대한 비판이 생뚱맞게 끼어 있어 책의 흐름을 방해하지만 대체적으로 성실한 저작이고 조선시대 지방이 어떻게 통치되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할 수 있어서 좋은 독서였다.

신분제가 무너지면서 국역을 져야 하는 양인들의 부담이 가중되어 왕조가 망하게 됐다는 고찰이 흥미롭다.

조선이라는 사회 자체가 근대화와 전혀 맞지 않는 체제였기 때문에 결국은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었을테지만, 각종 세금과 역을 부담해야 하는 양인들이 줄어 들고 명목상 양반이 늘어나면서 결국 국가 체제가 무너지고 말았다는 지적이 일리가 있다.


<인상깊은 구절>

80p

오늘날 우리는 본인에겐 죄가 없는데도 가족이라는 탓으로 피해를 입는 연좌제나 족징, 또는 이웃에 살고 있다는 죄로 애꿎게 덤터기를 쓰는 인징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행형이나 징세시 개인을 완전히 독립적으로 대하게 된 것은 근대 이후였으며, 조선 사회에서는 이런 질족이 왕조가 망할 때까지 이어졌다. ... 형을 운영할 때 삼강오륜을 기초 윤리로 과감하게 존중하였다는 것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86p

이런 고색창연한 몸가짐들은 모두 상대에게 깊은 존경과 두려움을 나타내기 위해 표시하는 예법으로, 관아에서 일하는 자들에게는 몸에 익은 자세였다. ... 이런 예법은 번거로웠지만 신분사회를 유지하는 방편으로 엄격하게 지켜졌다.

148p

조선왕조가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다는 것은 여행시의 편의시설을 오직 관리만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제한했던 데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관리라 할지라도 임의적으로 발마를 요구할 수 없었으며, 규정에 따라 필요한 만큼의 말, 음식, 숙소를 제공받았다.

162p

도망이 보편적 현상으로 번지자 더 이상 역로는 유지될 수 없었다. ... 조선 양반사회가 적대 계급에 의해서가 아니라 부양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난 기생 계급의 중압으로 와해되었다. 양인을 압살하는 최대의 부담은 군역이었으며, 전세나 환곡 같은 나머지 부담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고통은 사회적 천대와 함께 더욱 가중되었다.

167p

양반은 벼슬에 나아갈 수 있는 권리, 즉 사환권을 비롯한 여러 특권을 누렸다. 벼슬살이는 농업 이외에 자본을 축적할 수단이 마뜩찮았던 전통시대에 가산을 일으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185p

양반은 법제가 아니고 사회운동에 따라 오랜 시기에 걸쳐 형성된 계급이다.

222p

조선 후기의 신분 동요는 이 같은 부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양인들의 필사적 몸부림이었다. 물론 여기에 향리와 노비들이 가세하기는 했지만, 인구의 압도적 다수를 이루는 양인, 즉 국역 부담자의 고갈은 곧바로 국가의 붕괴로 이어졌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모든 신분이 너나없이 양반을 지향했다. 17세기 이후 신분을 사서 양반 행세를 하는 이들이 맹렬하게 늘어났고, 이들이 벗어난 역의 부담을 뒤집어쓴 빈농층은 더욱 비참해졌다. 그와 함께 국가도 신역의 징발 대신 금납화를 추진하면서 신분의 통제도 점차 느슨해졌다. 18세기는 양반이 사회 계급으로 형성된 시기인 동시에 그들의 특권을 시샘하는 자들이 대거 모칭을 자행함으로써 국가의 역제에 커다란 위기가 들이닥친 시기다. 궁핍한 양인들은 이들 기생 계급의 하중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이 하중이 곧 국가의 붕괴를 초래한 원동력이었다. ... 양인의 붕괴는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부양자들의 몰락과 재정 파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232p

근대에 들어와 보장된 개인의 자유는 잔혹한 전제주의와 싸우기로 결단한 사람들이 마침내 이겨서 후손들에게 전한 유산이다.

246p

수감 시설의 정비는 죄수의 고통을 고려한 인도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형법 질서를 엄정히 하여 국가 기강을 바로 세운다는 고도의 통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실시되었다.


<오류>

292p

1994년이었던가 태국 정부가 범법한 어떤 미국인 청년을 태형에 처할 거라고 하자

->태국이 아니라 싱가포르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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