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문화 읽기
황성근 지음 / 북코리아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미국에 관한 생활사 이야기는 많이 접해 봤지만 상대적으로 독일 이야기는 드문 편이라 관심을 갖고 읽게 됐다
전체적인 느낌을 말하자면 편견이 매우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아마도 전형적인 한국의 중년 남성인 것 같다
유교적인 가치관을 신봉하고 민족주의적인 경향이 다분하다
어차피 자신의 관점과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기 마련이다
이 사람의 의견이 틀렸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너무 많았다
기본적으로 가치관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1. "여자들이 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거부감이 드는 부분이었다
담배를 피우든 말든 그건 전적으로 개인이 판단할 문제다
아직도 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여자에게 시비붙는 현상이 일반적인 우리나라가 정상인가?
여자는 애를 낳을 사람이므로 몸에 해로운 담배를 안 피워야 한다는 논리도 너무 웃긴다
그럼 불임인 여자는 담배를 피워도 되나?
더 넓게 보자면 담배는 폐암을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이니,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 아예 금지시켜야 하는 거 아닌가?

2. "독일 여자들은 게으르기 때문에 화장을 하지 않는다"
넌센스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의 유별난 화장술과 옷에 대한 열정은 유명하다
그럼 한국인은 특별히 다른 민족에 비해 부지런하기 때문에 자기를 가꾸는데 열심인가?
사람마다 생각하는 건 다르겠지만 난 오히려 화장을 하지 않아도 당당하게 거리를 나갈 수 있는 독일 분위기가 훨씬 마음에 든다
여자가 화장도 안 하고 돌아다닌다는 비난을 듣는 대한민국 보다는, 화장을 하든 말든 개인의 자유로 치부하는 독일 사회가 훨씬 자유롭지 않는가?
그리고 독일 학생들은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살기 때문에 옷이나 화장품에 투자할 여력이 없을 것이다
결혼하기 전까지, 아니 결혼할 때조차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해 화려하게 치장하고 다니는 한국인들이 과연 독일인 보다 부지런해서 화장을 열심히 하는 것인지 매우 의심스럽다

3. "독일인은 부모 자식간의 사랑이 약하고 계약관계다"
가족 관계야 말로 타인의 눈으로 정확히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과연 독일 부모들은 자식에 대한 희생정신도 없고 계약 관계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가?
독일 사람이 책을 읽으면 매우 분노할 것 같다
같은 식으로 보자면, 우리나라 사람들 역시 지나치게 자식들에게 얽매여 자기 인생은 없고 오직 자식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고 산다고 비판할 수 있다
관점의 차이일 뿐이다
오히려 난, 자식들에게 함몰되지 않고 자기 인생을 찾는 독일 부모들이 훨씬 현명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노인 소외 문제는 가부장제의 유지만으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현대 산업사회를 거치는 모든 나라에서 어쩔 수 없이 직면하는 문제다
복지 정책의 확대로 해결할 문제지, 장유유서 정신을 고취시키고 결혼 후 장남이 부모를 모시는 가부장제를 유지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만약 도덕 정신의 해이 따위로 호도된다면 그야말로 사회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피상적인 관찰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4. "성의식이 지나치게 노출되서 마치 동물적인 본능을 드러내는 것 같다"
그럼 한국인처럼 음성적으로 숨어서 밝히는 게 동물적이지 않고 지적인 태도인가?
술집에 가서 섹스하는 정도는 외도로 치지도 않는 한국 문화가, 드러내 놓는 독일 문화에 비해 더 우수한가?
천만에라고 말하고 싶다
저자는 독일 문화를 우수하게 생각하는 것이 한국인의 열등감의 발로라고 하는데, 반대로 독일을 깍아 내리는 것 역시 또 하나의 열등감의 표현일 뿐이다
어떤 문화든지 나름대로의 특수성이 있고 그 사회의 독특함과 역사적 전통으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평가할 수 없다
그런데도 저자는 우리가 독일을 선진국이라고 막연히 추앙하는 것에 반대하다 보니, 역으로 무조건 깍아 내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또 독일 사회를 분석하는 깊이가 너무 없다
피상적인 관찰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5. "독일 학생들은 국민의 세금을 낭비한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다
사실 한국처럼 교육열이 높은 곳에서는 독일처럼 학비가 무료인 나라가 부럽기 마련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 팔아 대학 보냈다는 말이 흔히 들렸고, 지금도 등록금 인상 거부 투쟁으로 학기초면 캠퍼스가 시끄럽다
그런데 독일이나 프랑스 등은 심지어 외국인들에게도 대학 등록금을 받지 않는다고 하니 우리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다
그러나 반대로 대학에 가지 않는 사람들은, 대학 교육을 받아 상류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부당한 세금을 낸다는 비판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회 복지 제도 운영의 문제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우리 입장에서 보면 누구나 원하면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현실은 매우 발달된 제도임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노인들이 아무 때나 대학에 갈 수 있다며 세금 낭비라고 표현하는 건 지나치게 편파적이다
차라리 복지 제도의 효율성 문제를 거론했으면 좋았으련만 감정적인 비난에 그친 점이 아쉽다
또 덧붙이자면, 독일인이 지적 과시욕이 강하다면서 속물적이라고 비난했는데 알고자 하는 욕구가 왜 비난의 대상이 되는지 모르겠다
걸핏하면 책을 찾아 보려고 하고 심지어 아무 때나 대학에 간다는 게 왜 비난의 근거가 되는지...

6. "쇼핑몰이 9시면 문을 닫고 일요일에는 열지도 않아서 매우 불편하다"
물론 이용객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 있다
그렇지만 반대로 종업원 입장에서는 즉 근로자들에게는 당연히 정해진 노동시간만 일하면 되는 거니까 좋은 노동 환경이지 않을까?
한국 사회를 관찰한 프랑스 기자가, 한국의 상점은 밤 12시에도 열려 있다면서 대체 그 노동자들은 언제 쉬는지 모르겠다고, 이런데도 한국이 가족 중심사회인지 의아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가족은 언제든지 내 옆에 있는 존재고, 돈 버는 게 최고라는 인식 때문에, 또 지나치게 각박한 경쟁 체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밤까지 불을 켜 놓고 손님을 맞는 한국의 점원들이 더 가엾은 처지가 아닐까?
이용객들은 불편하겠지만 그들보다 더 못한 처지이기 마련인 노동자들의 근로 시간을 준수해 주는 독일 사회가 훨씬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또 공무원들이 점심 시간에는 일을 보지 않는다고 비판하는데 공무원들 역시 밥은 먹어야 할 거 아닌가?
독일 서민들이 한국보다 잘 사는 것 같다고 했는데 서민들이 이런 권리를 보장받기 때문에, 또 그만큼 인건비가 높기 때문에 육체노동 일을 하더라도 먹고 살만 하다는 걸 왜 모른체 하는지 모르겠다

7. "독일의 음식 문화는 한국보다 수준이 낮다"
한 나라의 음식 문화를 우열의 높낮이로 따질 수 있는 문제인가?
물론 프랑스나 중국처럼 특히 음식으로 유명한 나라들이 있다
그렇지만 과연 얼마나 그 나라 음식을 먹어 봤길래 심지어 야만적이라는 표현을 쓰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포크와 나이프는 야만적인 것이고, 숟가락과 젓가락은 발전된 형태인가?
문득 영어에는 붉다는 표현이 red 밖에 없지만 한국어에는 수많은 표현이 존재한다면서 영어보다 한국어가 훨씬 발달된 언어라는 기사가 생각난다
나 역시 어, 정말 영어 표현은 단순하구나 생각했는데, 과연 그 글을 쓴 사람이 영어 표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냐면서 붉다는 의미의 수많은 영어 단어를 나열한 반론 글을 본 후, 영어에 대한 무지가 어설픈 한국어 찬양론자를 낳았다는 걸 깨달았다
제대로 모르면서 남의 문화나 언어를 함부로 깍아 내려서는 안 된다
칭찬은 좋은 말이니까 쉽게 얘기해도 되지만, 비판은 정말 신중해야 한다
더구나 남의 문화를 깍아 내려 자신의 문화를 높힐 때는 매우 주의해야 하는 거 아닐까?

전체적으로 전여옥이 쓴 "일본은 없다" 를 본 기분이었다
"독일문화읽기" 가 아니라 "독일은 없다" 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저자는 아마도 학창 시절 가졌던 막연한 독일 문화에 대한 동경이 억울했던지, 혹은 외국에 살고 온 걸 대단한 위세라고 자랑한 게 아니꼬왔는지 독일 문화의 저급함을 매우 강조한 것 같다
한 나라의 문화는 좋다 나쁘다 한 마디로 정의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
무조건적인 동경이 위험하다면 반대로 우리가 훨씬 낫다는 어설픈 우월주의도 경계해야 마땅하다
독일 사회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이 너무 약해 인상 비평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근거를 대기 보다는 자신이 가진 가치관에 빗대어 좋다, 나쁘다 단정을 지은 내용이 많아 공감을 얻기가 어려웠다
박노자가 쓴 노르웨이 이야기와 같은 수준있는 문화 비평서를 기대해 본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노아 2006-10-30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도 별 셋이군요. 읽으면서 별 하나? 했는데.. ^^

marine 2006-10-30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수준이 떨어진다는 건 아니고, 제 생각과 다르다는 얘기예요^^

비로그인 2006-10-30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괴상한 논리가 많은 책인 듯 싶어요. 블루마린님의 리뷰를 먼저 읽은 것이 다행입니다.

여울 2006-10-30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4. 7. 옥시덴탈리즘이군요. 좀 심하신 듯. 5-6. 오히려 공유하거나 느낄 점들이 많은 것 같군요. 읽으시느라 힘드셨겠네요. ㅎㅎ

marine 2006-10-30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ude님, 여울마당님, 상황을 보는 관점의 차이인 것 같아요
책을 읽고 동의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 리뷰 쓰기가 조심스러웠습니다

피뢰침 2007-03-12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카로운 리뷰, 잘 보았습니다. 독일 문화에 대해 다룬 책 자체가 많지 않은데 뭘 봐야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