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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 ㅣ 이상의 도서관 50
최정태 글.사진 / 한길사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까페에 앉아 친구를 기다리면서 읽었다
한쪽은 서점, 한쪽은 커피숖인데 사지 않은 책도 편하게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둘러 볼 수 있는 곳이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애들이 많아 좀 시끄럽긴 했지만, 책을 사지 않은 사람도 앉아서 읽을 수 있게 배려한 서점이 무척 고맙다
역시 대한민국의 책은 어린이들이 다 읽는가?
어린이 도서 코너는 아이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빽빽하게 둘러앉아 있고 커피숖에도 부모들이 애들에게 책을 읽히는데 어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린이 출판사만 살아남는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였다
저 어린이들도 당장 중학교만 가도 책 붙잡고 있으면 엄마들이 싫어할 것이다
그러니까 어린이 독서는 딱 어린이 시절, 초등학교 시절만으로 국한되는 것 같다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
우연히 집어 든 이 책은, 그동안 내가 바래왔던 그런 책이었다
유럽과 미국 도서관들의 사진을 멋드러지게 담아 보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유럽 건물을 볼 때마다 감탄하는 것은, 어쩜 저렇게 아름다운가이다
특히 로코코나 바로크 양식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시청이나 국회의사당 건물을 보면, 딱딱한 정치도 얼마든지 우아하고 멋있어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도서관 역시 "눈부시게"라는 수식어가 딱 어울릴만큼 참 아름답고 멋졌다
도서관 기행이라는 낯선 단어가 실감날 정도로, 도서관 건물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했다
커피숖에서 책을 읽는데 청승맞게도 줄곧 눈물을 찔끔찔끔 훔쳤다
왜냐면, 도서관을 세우고 거기에 인간이 쌓아올린 지혜의 총체인 책을 채우기 위해 애를 쓴 이들의 숭고한 노력이 너무나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가?
한없이 보잘것 없고 이기적이며 또 잔인한 것이 인간이지만, 한편으로 우리가 이룩한 이 놀라운 지식과 지혜의 산실인 도서관을 보면, 인간의 지성이 얼마나 큰 일을 해내는지 알게 된다
책을 사랑하는 것은 비단 서양 사람만이 아니었다
유럽 도서관 기행에 끼여 있는 규장각도 나에게는 퍽이나 감동적이었다
학문을 사랑하고 누구보다 독서인들을 우대했던 학자 군주 정조가 세운 규장각
수십만권의 중국 서적들과 조선 출판물들을 모아 놓은 이 훌륭한 왕립 도서관은 비록 유럽처럼 멋지게 재건축되어 일반인에게 개방된 곳은 아니지만, 사진만으로도 학문을 사랑한 정조의 독서열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재밌는 건, 규장각이 설립된 해가 바로 미국의 필라델피아 도서관이 세워진 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아이비리그 대학들의 전통이 기본적으로 200여년은 되는 것 같다
신생국 미국을 최강대국으로 이끈 힘이 바로 지성을 사랑하고 체계적으로 쌓아올린 교육 시스템에도 있음이 분명하다
철강왕으로 알려진 앤드류 케네기가 미국 각 지역에 도서관을 짓기 위해 기부한 2500만 달러가 기초가 되어 현재 미국의 공공도서관은 만 5천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20세기 초에 2500만 달러였으니,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어마어마 하다는 놀라움 밖에 안 생긴다
프랑스의 마자린 도서관도 인상적이었다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마자랭 추기경이 모은 책을 기초로 노데라는 사서가 강압적인 수집 정책을 펴면서까지 피땀으로 이룩한 곳이 바로 마자린 도서관이다
지식을 사랑하는 인간의 열정은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운가?
다른 모든 쾌락은 그 순간이 지나면 사라져 버리지만, 지식과 예술에 대한 쾌락은 영원히 남아 인류의 보고가 된다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필사를 하던 중세의 수도사들이나, 도서관의 기초를 잡기 위해 평생을 바친 수많은 사서들, 그리고 대중에게 지식을 전파시키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를 깨닫고 기부를 아끼지 않았던 이들에게 정말 감사하고픈 심정이다
우리는 이렇게 수많은 이들의 피땀으로 조금씩 발전해 오고 있는 것이다
열 아홉 살에 과부가 된 독일의 안나 아말리아 공작 부인이 평생 모은 책으로 세워진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특히 흰색 가구로 꾸며진 서가는 화려한 궁전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 도서관이 몇 년 전 큰 화재를 당했다고 한다
독일 대통령까지 나서서 복구를 위한 기부금 모집에 애를 쓰는 걸 보고 독일인들의 도서관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불타버린 책이라도 구하기 위해 시민들이 화재 현장에서 떠나질 않았다는 이야기는, 지식을 사랑하는 인간의 고귀한 품성을 떠올리게 한다
사진이 참 많고 글도 매끄럽게 잘 쓰여진 편이다
아쉬웠던 점은 각 도서관의 정책이나 이용 현황 등도 함께 언급해 줬으면 좋았을텐데 건물 소개에 치우친 경향이 있다
사진으로 보는 도서관 기행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오랜만에 가슴 뭉클하게 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