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브레히트 뒤러 - 가짜 코뿔소를 그린 화가 내 손안의 미술관 4
디터 잘츠게버 지음, 노성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150페이지 밖에 되지 않아 부담이 없고, 큼직큼직한 도판들이 많아 보는 즐거움이 있다
그림책들은 일단 도판 때문에라도 가격이 매우 비싼데 이 책은 150페이지라는 작은 분량 때문에 책값도 1만 2천원이라는 착한 가격이다
일단 부담이 없어서 좋다
그림책을 사면 처음 살 때의 호기심과는 다르게 읽다가 지친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가볍게 볼 수 있는 수준이다
작가가 뒤러의 일생을 이야기 하듯 꾸몄기 때문에 더 쉽게 느껴진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도 충분히 볼 수 있을 것 같다

 

뒤러는,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화가다
자화상을 보고 반해 버렸다
어떤 미술책에서 뒤러의 자화상을 소개하면서 당시 화가치고는 드물게 많은 자화상을 남긴, 자의식이 매우 강한 화가라고 평했다
자신을 마치 예수님처럼 그렸다는 것이다
그 책의 저자가 좀 오버를 했는지, 이 책에 나오는 자화상들은 과히 그렇게까지 오만해 보이지는 않는다
어쨌든 15세기 말 독일의 유명 화가였던 이 미남 화가의 자화상은 나에게 깊이 각인됐다
렘브란트도 자화상으로 유명하지만, 뒤러처럼 멋지지가 않아서 관심이 덜 간다
준수한 독일 청년의 모습이 정말 보기좋다
실제로 그는 자신을 가꾸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스스로 예술가의 품위를 높히기 위해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림에서도 충분히 드러나지만 자존심이 매우 강하고 이지적인 남자였을 것 같다
불행히도 말라리아에 걸려 57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당시 평균수명을 생각하면 요절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위대한 예술가들은 피카소나 마티즈처럼 오래오래 살아 인류에게 기쁨을 더 많이 선사하면 좋겠다

 

이 책은 15세기 인도에서 처음으로 유럽에 들여온 코뿔소 이야기를 주제로 삼는다
코뿔소 앞에 왜 "철갑" 이라는 단어가 붙었을까?
코에 뿔이 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진기한 동물이긴 하지만, "철갑코뿔소" 라는 이름 때문에 중세 유럽 사람들이 더욱 신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철갑코뿔소라고 하면 꼭 진짜로 온 몸에 철갑을 두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철갑 따위는 없다
나도 궁금해서 인터넷에서 코뿔소 사진을 찾아 봤는데 그냥 평범한 동물 피부에 불과하다
그런데 15세기 유럽 화가들은, 코뿔소 앞에 붙은 "철갑" 이라는 단어에 주목해 이 진기한 동물을 그릴 때 항상 철갑을 두른 모양으로 표현했다
기사들이 갑옷을 입는 것처럼 말이다
수많은 그림들이 나왔는데 한 번도 코뿔소를 본 적이 없는 뒤러의 그림이 가장 뛰어나다
동물, 심지어 벌레들까지도 세밀하게 관찰했던 이 훌륭한 관찰력의 소유자인 화가는, 한 번도 코뿔소를 본 적이 없지만 화가의 상상력을 동원해 가장 그럴듯한 코뿔소를 그려냈다
심지어 진짜 코뿔소의 그림이 나왔는데도 여전히 뒤러의 코뿔소 그림이 진짜로 인정받을 정도였고 20세기 초까지도 생물학 교과서에 실렸다고 하니 당시 뒤러의 이름이 얼마나 높았는지 알 만 하다

 

만약 이 화가가 요즘 시대에 태어났다면 세밀화를 그리는 화가가 됐을 것 같다
그 정도로 관찰력이 매우 뛰어나고 정말 사진을 찍어 놓은 것처럼 정밀하게 그린다
바닷가재나 게 등을 그린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랬다
판화 작업을 많이 했던 뒤러는, 목판화를 만들 때도 전 과정에 참여해 꼼꼼하게 감독을 했다고 한다
당시 화가는 대장장이나 목수 등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일종의 하층 직업군에 불과했으나, 예술가적인 자존심과 자각 의식이 강했던 이 화가는, 보지 않고 대충 기존의 자료에 의존해 베껴 내는 당시의 관행을 거부하고 직접 눈으로 관찰해 꼼꼼하게 그려냈다
그래서 이탈리아 등으로 여행도 많이 다녔다
직접 눈으로 봐야 그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뒤러는 예술가적 자존심만 높은 천재는 아니었다
장사 잇속에도 밝아 판화가 처음 발명됐을 때 적극적으로 판화 사업에 뛰어들어 하층민들에게 싼 값으로 수백장의 판화 그림을 팔므로써 많은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판화는 한 번 새겨 놓으면 100장 정도는 문제없이 찍을 수 있어 단 하나의 작품 밖에 못 만드는 유화화는 비교할 수 없는 수익을 주는 사업이었다
경제의 흐름을 잘 분석한 화가라고 할 수 있겠다
나중에는 독일과 이탈리아 등지에까지 이름을 떨쳐 여러 도시에서 연금을 주며 데려가려고까지 했다
난 뒤러의 이런 사업적 수완이 참 마음에 든다
능력에 걸맞은 대우를 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고흐처럼 사회의 냉대를 견디며 불행하게 팔리지도 않는 그림을 그리며 평생 가난과 멸시에 시달렸던 예술가의 삶은, 너무나 안타깝고 고통스럽다
피카소처럼 자신의 능력에 걸맞게 사회가 인정을 해 주고 돈도 많이 버는 그런 예술가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실력은 쥐뿔도 없는데, 혹은 창의성이라고는 없는 진부한 예술가가 단지 화단이나 문단의 역학관계를 잘 이용해 많은 치부를 하고 명성을 얻는다면 동시대인들의 관람객들에게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이런 예술가들은 시대가 지나면 다 사라질 것이다
위대한 예술가들을 시대가 알아 보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 주면 좋겠다
그래서 뒤러가 연금도 많이 받고 사업가로도 성공했다는 책의 결말이 아주 마음에 든다

 

아내 아그네스와는 9살 차이가 나는데 당시의 관습에 따라 얼굴도 보지 않은 채 혼인했다
라틴어 공부까지 했던 자의식 강한 예술가였던 뒤러에게, 14세에 시집온 시골 처녀 아그네스는 잘 맞지 않았다고 한다
뒤러는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해 수개월씩 집을 비웠고 평생에 걸친 방랑 생활 동안 아내를 데리고 간 적은 딱 한 번에 불과했다
자식을 몇이나 낳았는지 연표에 나오지 않아 무척 궁금하다
루벤스처럼 아내를 너무나 사랑해 그녀를 모델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뒤러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초상화도 남겼는데 특히 어머니는 죽기 며칠 전에 그린 그림이라 병마와 싸우는 초췌한 인상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의 어머니는 무려 열 여덟 명의 아이들을 낳았으나 뒤러를 포함해 겨우 셋만 살아 남았다고 한다
열 여덟 번의 출산과 세 명에 불과한 아이들...
당시 의학 수준이 얼마나 낮았는지 실감이 난다
그러나 그 엄청난 횟수의 출산에도 불구하고 수명을 다한 걸 보면, 뒤러의 어머니는 비교적 건강한 분이셨을 것 같다

 

뮌헨에 가서 알테 피나코텍을 들르지 않았던 게 정말 아쉽다
기회가 된다면 직접 뒤러의 그림들, 특히 그의 자화상들을 관람하러 가고 싶다
그림 뿐 아니라 화가의 잘 생긴 얼굴이나 성격, 생애 등도 매력적이라 관심이 많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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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9-21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긴 걸로 본다면 저는 에곤 쉴레에게 반해버렸더랬어요. 더더군다나 그가 그린 여인들은 어떤 면모가 성스러워 보였거든요. 뒤러는 `완전무결한 나'라는, 초상화 아래 쓰인 대목에서 넘어갈 뻔 했더랬습니다. 후훗

marine 2006-09-21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도 좋은데 얼굴까지 잘 생기면 금상첨화죠^^

토르토르 2006-10-13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러는 자식이 없었대요 ^^ 지금 뒤러에 대한 보고서 쓴다고 이것저것 읽고 있어요

marine 2006-10-13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저도 그럴 것 같았어요 아내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하더라구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