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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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스카르메타가 쓴 칠레 소설

파블로 네루다라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와 마리오라는 가공의 인물을 등장시켜 담담하게 이야기를 펼친다

특히 마지막에 마리오가 시 공모전에 시를 내고, 바로 쿠테타가 일어나 군인들에게 끌려가는 장면으로 끝내는 것을 보면, 작가의 내공이 보통이 아닌 것 같다

"열광적으로 시작해서 침울한 나락으로 떨어지며 끝을 맺는다" 는 저자의 서문에 딱 들어맞는 결말이다

베아트리스 곤살레스와 법정에서 자주 만나 식사를 했다는 말이 서문에 나오는 걸 보면, 마리오라는 인물도 어느 정도는 사실인 것 같기도 하다

약간의 변형은 거쳤겠지만, 군부 독재 시절 억울하게 시 한 편 쓴 걸로 끌려가 실종된 사건이 있었던 건 분명한 것 같다

하긴 파시스트 정권 아래서 이런 일은 굳이 애써 찾지 않아도 널려 있을 것이다

 

베아트리스 어머니의 걸쭉한 육담이 소설의 백미다

아마 저자 자신이 일상적으로 쓰는 말일 것 같다

어쩜 그렇게 사랑의 언어가 갖는 허구성을 직설적으로 지적하는지, 놀랍다

결국 다 섹스로 연결된다는 걸 너무 리얼하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결혼을 빨리 하긴 하나 보다

베아트리스는 겨우 열 여섯 살에 마리오와 첫 섹스를 하고 바로 결혼했으니까 말이다

 

메타포에 대한 이야기가 이 소설의 백미인 것 같다

메타포의 뜻이 뭔지 정확히 알게 됐다

평범한 사물도 시의 눈으로 보면, 즉 메타포를 사용하면 한편의 아름다운 시가 탄생한다

이를테면 비를 하늘의 울음이라고 표현하는 식으로 말이다

정말 모든 것을 상징과 비유로 표현하면 끔찍한 현실 속에서도 한 편의 시가 탄생할 것 같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니까 약간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소설에 대한 이해를 더할 수 있어서 좋다

괜찮은 독서법 같다

너무 검색에 몰두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런 식으로 책을 읽으면 한 편을 보고 나서 남는 게 정말 많다

이 책을 통해서도 칠레 현대사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

아옌데가 누구인지, 피노체트가 어떻게 정권을 탈취했는지, 특히 카스티야라는 한 마디 단어를 가지고 카를 5세의 가계도까지 알게 됐으니 소득이 크다

교양은 이렇게 쌓아가는 것 같다

책을 이렇게 읽는다면 책 한 권으로 얻을 수 있는 지식이 정말 엄청날 것 같다

특히 소설의 경우 외국 생활을 자연스럽게 알게 해 준다

지난 번 "책과 바람난 여자" 에서도 프랑스의 일상 생활을 많이 알게 됐고 "유럽의 나르시시스트 프랑스" 에서는 현대 프랑스 정치사에 대해 감을 잡게 됐으며 이번 책에서는 칠레의 현대사를 어느 정도 알게 됐다

사기 본기를 읽으면서는 고대 중국 역사를 좀 더 가깝게 접할 수 있었다

책이 주는 효용성은 정말 엄청나다

 

중남미 소설은 확실히 분명하게 구별되는 특색이 있다

달콤쌉싸름한 초콜렛이나 11분을 읽었을 때 딱 그 쪽 계열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이 책도 마찬가지다

일상의 판타지가 가미됐다고 해야 할까?

명료한 사건 전개 보다는 은근슬쩍 넘어가는 게 많다

플롯의 탄탄한 구조 이런 걸 별로 중요시 안 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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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뽀스 2006-08-15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영화보셨나요? 일포스티노.

marine 2006-08-16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뇨, 말만 들었어요 일 포스티노가 이탈리아어로 우체부라고 하더군요

부엉이 2006-10-02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는 체홉을 읽기 위해 러시아어를 배웠고, 또 누군가는 네루다를 읽기 위해 스페인어를 배웠다고 하더군요. 문학이란, 목적을 순수하게 하는 힘이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