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폴 사르트르 - 시선과 타자 살림지식총서 97
변광배 지음 / 살림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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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페이지에 불과한 짧은 책이지만 접근하기는 쉽지 않았다
사르트르라는 이름이 주는 부담감 때문에 어려울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물론 사르트르라는 이 거대한 실존주의 철학자를 100페이지의 책으로 완전히 이해했다고 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가 제기한 문제의식이 무엇인지 인식할 수는 있는 좋은 기회였다
지난 번 푸코 입문서에서도 느낀 바지만 살림 총서는 깊이있는 지식을 부담없는 분량으로 쉽게 소개한다
100페이지 내외의 짧은 분량과 3300원이라는 부담없는 가격에 이 정도의 지적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기회가 흔할까?
살림 총서 같은 좋은 책들이 많이 발간됐으면 좋겠다
스타벅스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지만 그 내용은 가히 인류 문화의 진수를 훑어낸다고 단언할 수 있다

사르트르는 실존주의 철학자다
즉 그는 인간의 실존에 대해 연구한 사람이다
우리의 존재는 어떻게 증명될 수 있는가?
그는 세상을 즉자적 존재와 대자적 존재로 나누는데, 의식을 가진 인간은 대자적 존재이고 의식이 없는 사물은 즉자적 존재라 할 수 있다
의식을 가졌다는 점에서 인간은 모든 것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존재이고 만물의 영장이라고 할 근거이기도 하다

타자와의 관계를 맺는 방법에는 세 가지 태도가 있다
먼저 동화의 태도다
말 그대로 타자의 시선과 나를 동화시키는 것이다
타자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나의 존재 의미가 생긴다
동화의 태도는 다시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사랑이다
제일 흔한 남녀간의 사랑을 생각하면 된다
사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우리 자신에게 존재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에게 완벽한 만족을 줄 수는 없다
타자의 시선으로 어떻게 내 존재의 의미를 완벽하게 부여받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랑을 통한 존재의 증명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다
두 번째는 언어다
언어란 단순히 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모든 기호 체계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마조히즘을 들 수 있다
마조히즘은 나의 주체성을 완전히 타자에게 일임해 버리는 것이다
의외로 이런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 엄마들은 자식을 대리 만족의 내지는 자아 실현의 도구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데 나의 주체성을 포기하면 절대로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 없다

동화가 타자의 시선을 전부 수용하는 것이라면 제 2의 태도는 타자를 내가 객체화 시키는 것이다
여기에도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번째는 매조히즘의 반대 새디즘, 성적 욕망, 무관심, 그리고 증오다
새디즘은 폭력을 통해 나에게 상대를 예속시킨다
성적 욕망은 폭력을 매개하지는 않지만 상대의 주체성과 자유를 육체에 종속시킴으로써 객체화 시킨다
즉 의식을 가진 한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적 욕구를 풀어 줄 육체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무관심은 아예 타자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타자를 나에게 영향을 끼칠 존재로 보는 게 아니라 그저 사물로 인지하므로써 관계 자체를 맺으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이런 시도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타자는 시선의 폭발을 통해 나를 언제든지 객체로 전락시킬 위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무관심은, 세상은 오직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부수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 유아론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은 편할 것 같다)
마지막 증오는 사르트르가 제 3의 태도라고 따로 명명할 정도로 중요하다
타자의 시선으로 정의되는 나 자신이 너무 싫기 때문에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타자를 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부정해도 한 번 타자에게 인식된 이상, 그 머릿속에 있는 의식을 지울 수는 없다
그가 죽는다고 해도 내 머릿속에는 그에게 인식됐다는 사실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타자와의 관계를 맺는 제 4의 태도는 유희의 태도다
유희란 우스꽝스러움을 의미한다
주체성을 상실하고 남이 나를 보는 이미지대로 연기를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나를 바보같다고 생각하면 나는 그 이미지에 맞게 바보스러운 행동을 하므로써 편안함을 느낀다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고 타자의 시선으로만 존재하는 사람의 비애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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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4-11-27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살림 도서 괜찮은 것이 많죠. 푸코는 넘 어렵던데...ㅎㅎ

marine 2004-11-27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밑줄 그으면서 두 번이나 읽었어요 직접 푸코의 저서를 읽어봐야겠다 싶어서 성의 역사를 샀는데, 아 그 난해함이라니...

스파피필름 2004-11-29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구토를 읽고 나서 바로 읽었는데 사르트르에 대해 쉽게(?) 정리가 되는 듯 하더라구요. 값도 싸고 정말 좋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