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 - 조선의 정치가 9인이 본 세종
박현모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기대했던 것 보다는 못했다
전작 "정치가 정조" 를 워낙 인상깊게 읽은 탓일까?
아무래도 이번 책은 밀도 면에서 떨어지는 기분이 든다
사극 작가들이 놓친 부분, 아마추어 역사가들은 지나칠 수 밖에 없는 제도적인 면의 탁월함을 밝히겠다는 서문의 각오와는 달리, 뒤로 갈수록 맥이 빠지는 기분이다
물론 재미는 있었다
300페이지가 좀 못 되는 책을 비교적 꼼꼼하게 읽었는데도 4시간 밖에 안 걸렸으니 말이다
책장이 술술 잘 넘어갈 정도로 이야기 구성이 잘 되어 있다
임용한씨의 "조선국왕이야기" 와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었다
특히 세조에 대한 평가 부분이 상반적이라 흥미로웠다
이 책의 저자 박현모씨에 따르면, 태종이 종사의 앞날을 위해 과감성 있게 세자를 교체했듯, 세종 역시 문종 대신 수양대군을 후계자로 삼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반대다
저자는, 문종이 병약해 일찍 죽었고 그 덕분에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올라 결과적으로 피바람 나는 쿠데타가 일어났으니, 세종이 알아서 후계자 교체를 했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문종이 비록 병약했다고 하지만 아버지 세종 치세에 10년이 넘도록 대리청정을 했고, 왕위에 올랐을 때 이미 30대를 훌쩍 넘은 나이였다.
사실 그는 세조의 아들들인 의경세자나 예종 보다도 훨씬 오래 살았고 손자인 성종 보다도 한 살 더 살았다
조선 시대 평균 왕의 수명으로 보면 요절한 것도 아니라는 얘기다
단지 병약하다는 이유 만으로 적장자 계승이 원칙인 세자를 바꾼다는 건 후대 사람들의 말놀음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또 열 한 살에 왕위에 오른 단종이 너무 어려 나라를 위태롭게 만들었다고 하지만 세조의 손자가 되는 성종 역시 단종보다 겨우 한 살 많은 나이에 보위를 이었다
단종과 성종의 차이는 후원인이 있냐 없냐였을 뿐이다
수양대군이 충직하게 조카의 후견인이 되어 줬다면, 혹은 아버지 문종이나 할아버지 세종이 아예 그의 싹을 잘라 줬다면 문종 시대는 보다 평탄하게 오래 지속됐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문종과 세조는 근본적으로 격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문종을, 충녕에게 왕위를 뺏긴 양녕대군에 비교하지만 (즉 수양대군을 세종에 비교하지만) 임용한에 따르면, 문종은 아버지 세종의 정치 철학을 잘 이했했고 학문에 있어서도 세조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높았다
세조가 힘자랑 하기 좋아하는 무인이었데 비해, 문종은 보다 고상한 학자풍이었고 아버지 세종은 임용한씨의 말대로, 비단 그가 장자가 아니었다 할지라도 세조보다는 문종을 택했을 것이다
세종이 원하는 국가는 의정부서사제라는 제도가 보여주듯, 토론과 논의를 거쳐 가장 좋은 통치법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들 세조는 신성불가침의 왕권을 재상들에게 나눠주는 아버지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왕이 육조에 직접 지시하는 일방적인 방식으로 바꾸었다
왕권과 신권의 줄다리기라는 관점을 넘어서, 세조는 여러 차례의 정난을 통해 무수한 훈구파 공신이라는 특권층을 양산해 냈다
훗날 일어난 중종대의 사화는, 세조가 양산한 이 공신가문의 전횡을 막겠다는 사대부들의 반발이었다
태종 역시 정난을 통해 아버지 태조가 세운 국가를 일부 가문에게 몰아 주었지만, 태종은 세조보다는 훨씬 더 결단력 있는 인물이었고 왕권을 지키기 위해서 어떤 가문이든 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장 가까웠을 가문, 어찌 보면 권력을 뒷받침 해 줄 처가와 사돈 집안까지도 몰살시킨 걸 보면, 특권층과 결탁해 권세를 누린 세조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튼 나는, 세조에 대한 평가는 박현모와 완전히 다르다

소헌왕후와 신빈 김씨의 관계는 참 특이하다
소헌왕후의 침실나인이었던 김씨는 왕에게 승은을 입은 후 6남 2녀라는 자녀를 낳을 만큼 왕의 사랑을 받았다
연달아 일곱 명의 아들을 낳았던 소헌왕후는, 신빈 김씨가 아이들을 생산할 때 임신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년만에 낳은 늦둥이 임영대군을 신빈에게 맡길 정도로 그녀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어쩌면 이렇게도 사이가 좋을 수 있었을까?
왕비 자신이 여덟 명의 아들과 두 명의 딸을 낳을 만큼 다복했기 때문에 남편의 첩에 대해서도 관대했던 것은 아닐까?
아마도 세종이 왕비의 위신을 살려 주고 첩에 대해 여유를 가질 수 있을 만큼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리라
그러고 보면 세종과 소헌왕후 사이는 보통 애정 관계가 아니었을 것 같다
역대 어느 왕후보다도 많은 자녀들을 낳았으니 말이다

유감동 사건에 대한 저자의 시각은 다소 놀랍다
임용한 역시 어우동 사건에 대해 비슷한 해석을 한 적이 있는데, 저자 역시 유감동이 작정하고 고위 관리들을 데리고 놀았다고 본다
남성들은 처벌받지 않고 (받았다 해도 곧 관직이 회복됐고) 어찌 보면 억울하게 희생된 한 여성만 희생된 이 사건에 대한 남성 사가들의 관점이 냉혹하기 그지 없다
유교 사회였으니 이해는 가면서도 현대적인 해석이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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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1 2007-08-01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종에 대한 것도 참 흥미롭군요. 위인전같은데 세종부분에 잠시 묻어서 나온 것이 전부였던 병약한 이미지의 왕이었는데...

marine 2007-08-02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국왕이야기 1편을 보면 (임용한 저) 문종은 세종의 정치철학을 잘 이해한 학자 군주로 나옵니다 쿠데타를 일으켜 일부 공신들과 결탁해 특권층을 양산해 낸 세조와는 정치적 질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나오죠 문종의 세자 시절과 재위 기간은 새롭게 평가해야 될 것 같아요

마노아 2007-08-02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보다 마린님 리뷰가 더 의미있게 다가옵니다. 책을 비교해주신 것도 좋았구요. ^^

marine 2007-08-02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리뷰를 좀 성의없게 썼는데요, 비교해서 읽으면 재밌을 것 같아요

공주 2011-08-04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공주의 남자를 요즘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수양대군이 거의 주연급이라 그에 대한 관심으로 이 글을 읽게 되네요..ㅎㅎ

ㅁㄴㅇ 2011-10-08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태종 없이 세종대왕이 있을 수 없었고. 세조 없이 성종이 있을 수 없었다는건 지극한 역사적 사실인대.

조선사에 있어서 태평성대를 열었던 왕이 바로 성종인대

이 성종은 세조가 없었다면 태평성대를 이룰 수 없었는대. 세종도 마찬가지로 태종없이는 그러한 업적을 만들지 못했거늘.

태종이나 태조에 비하면 세조는 잔인한 축에도 안들어가는대.

픽션 드라마인 공주의남자 라는 드라마 하나가 역사적 인물하나를 병쉰만드는거 같아 아쉽다.

내일이 한글날인대 아버지 세종과 함께 한글을 만들고 세종다음으로 한글을 사랑했던 조선의 군주가 병쉰취급당하는거 같아 안타깝다.

ㄱㅇ 2014-12-31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윗분 말처럼 세조 없이는 성종이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지만 세조가 결코 조선사에 좋은 영향을 끼친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세력을 지지하는 세력들을 지지하면서 결과적으로 훈구파라는 세력을 형성하게 만들었고 비록 성종때 태평성대를 이룰수 있었지만 조선후기를 보면 훈구파 때문에 점차 쇠락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정말 개인적인 사실인대가 아니라 사실인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