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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바침 - 결코 소멸되지 않을 자명한 사물에 바치는 헌사
부르크하르트 슈피넨 지음, 리네 호벤 그림, 김인순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2월
평점 :
200 페이지도 안 되는 얇은 책인데 역시 제목 때문에 지나치지 못하고 빌리게 됐다.
독서 생활을 계속 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새삼 느낀 몇 달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1년 동안이나 사무실 매출이 줄면서 폐업 위기에 몰리니 책이고 뭐고 생존에 직면한 느낌이라 편한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무주택자라 벼락거지 신세가 되고 보니 집이나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부동산 채널만 보게 됐다.
남들은 부동산이니 주식이니 하면서 다들 돈 버느라 바쁜데 나 혼자 책 속에 침잠해 딴 세상에 살고 있었나, 갑자기 현실 세계에 눈을 뜬 바보가 된 느낌이랄까?
책 읽는 것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자 즐거움이라 믿고 있었는데 정말로 2020년, 특히 하반기는 독서 생활의 가장 큰 위기였던 것 같다.
전 재산을 털어 드디어 집을 장만했고 이제 나까지 집을 샀으니 살 사람은 다 산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집에서 노는 아줌마들이 미용실에서 주식 얘기하면 떨어질 때라고 하던데, 대한민국에서 나 같은 사람마저도 불안에 못 이겨 아파트를 샀으니 곧 집값이 떨어질 때가 되지 않았나 자괴감이 들긴 하지만, 다시 평안한 독서 생활로 돌아가자고 마음 먹어 본다.
2021년도에 처음 읽은 이 책은, 아쉽게도 인상적지 못하다.
특히 독일 책들은 영미권 책보다는 친숙함이 덜한 느낌이다.
정서가 달라서 그런가, 공감이 쉽지 않다.
또 나는 책이라는 물질 자체보다는 독서법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고서나 초판을 수집하는 열정을 공감하기가 좀 어렵다.
서문에서 종이책과 교통수단으로서의 말을 비교한 부분은 흥미로웠다.
19세기만 해도 아무도 자동차가 말을 대신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편리함이나 효율성 면에서는 말이 자동차를 따라갈 수 없겠지만, 마치 전자책이 종이책의 감성적인 면을 넘볼 수 없듯 교감을 나눌 수 있는 탈 것인 말을 19세기 사람들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세기도 채 지나지 않아 말은 승마장에서나 겨우 볼 수 있는 귀한 존재가 되버렸다.
그 많던 말들이 탈 것의 위치를 상실하고 극소수의 말만 승마용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저자는 언젠가는 종이책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하지만, 다행히 우리 세대에는 여전히 텍스트가 아닌 물질로서의 책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책 자체에 대한 소유욕이 없고 무엇보다 공간의 문제가 크기 때문에 전자책이 활성화 됐으면 싶긴 하다.
문학 쪽은 많이 나오는 것 같던데 내가 보는 책들은 거의 나오지 않아 아쉽다.
그리고 눈의 피로도 문제도 확실히 종이책 보다는 더한 듯하다.
매년 200권씩 책을 읽는다면 결국 평생 동안 만 권 전후의 책 밖에 못 보는 거라, 책에 나온 바대로 좋은 책을 읽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