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정유재란 1597
허남린 외 지음, 국립진주박물관 엮음 / 푸른역사 / 2019년 3월
평점 :
품절


요즘 책 선택을 잘하고 있다.

읽는 책마다 다 재밌고 유익하다.

400 페이지 정도 되고 여러 학자들이 기고한 책이라 어려울까 봐 약간 긴장했는데 술술 잘 읽힌다.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전시회 후 도록 형식으로 발간된 책인가 보다.

한국 학자들이 쓴 부분은 가독성 있게 잘 읽힌 반면 중국과 일본 학자들이 쓴 글은 번역이라 그런지 눈에 쉽게 안 들어와 아쉽다.

그래도 정유재란을 직접 참여한 다른 나라의 시선으로 본다는 점은 신선했다.

중국 학자의 글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조명 연합군이 승리한 이유가 엄청난 은 덕분이었다고 한다.

어떤 주장을 내세우는 건 아니고 당시 전쟁에 얼마나 많은 은이 들어갔는지 상세하게 밝히고 있어 약간 지루했지만 하여튼 명나라 재정에 엄청난 타격을 줬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장거정의 개혁 이후 명 조정이 재정 보충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러한 원정이 가능했다고 한다.

장거정 평전을 읽었을 때도 재정 건실화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상세하게 써 있었다.

어린 황제를 위해 국가 재정을 탄탄하게 만들어 줬건만 만력제는 수년 간 태업을 하더니 이웃 나라 전쟁에 엄청난 돈을 다 써 버리고 결국은 망국의 길로 가고 말았다.

중국인들 입장에서는 조선의 황제냐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은본위제가 이미 확립이 됐는지 명은 모든 군수물자와 병사들의 월급을 은으로 지급했고 반대로 조선은 은이 있다고 쉽게 물자를 구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에 조달에 애를 먹었다.

선조 하면 무능함의 표본으로 그려지지만 군사력이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와중에 조선 조정도 나름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애를 많이 썼음을 보여준다.

선조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직 천조국의 군사들 뿐이니, 조선 조정은 명을 계속 참전시키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사실 이 책의 주제는 임진왜란이 아니라 특이하게도 정유재란이다.

임진왜란 때 명의 참전으로 물러간 후 4년 동안이나 강화 교섭이 이뤄지지만 실패하고 다시 1597년도에 재침한 것이 정유재란이다.

이 정유재란은 왜 일어난 것일까?

도요토미가 다음 해 8월에 죽었으니 조금만 교섭을 더 끌었어도 재침은 없었을텐데 참 아쉽다.

교섭을 이끌었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런 사실을 흘리며 조선 조정에 좀더 시간을 끌어달라는 언질도 수차례 준다.

그런데도 조선 조정은 강화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고 오직 명군이 복수를 해주길 바라며 일본 측 제안은 무응답으로 일관한다.

사실 이 부분이 이 책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정유재란은 강화 교섭의 실패 때문에 벌어졌는데 그 원인은 무엇인가?

책의 대표저자인 듯한 분의 주장에 따르면 조선측의 무응답이 원인이다.

철군 명분을 찾던 도요토미 입장에서는 아무 성과도 없이 물러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적당한 명분을 찾기 위해 다시 침략했고 이 때는 전라도 경상도 지역의 실제 지배를 목표로 삼는다.

살육전을 통해 조선 조정을 압박해서 눈에 보이는 항복 표시를 받아내려 한 것이다.

오히려 임진왜란 때는 중국을 치러 가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최단시간에 북상하고 조선인들과는 크게 부딪치지 않았으나 정유재란 때는 처음부터 남부 지방 점령이 목표라 지역 사회를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코를 베어 가는 등의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다.

일본은 조선을 무시한 채 명나라와 강화 교섭을 시도하지만 명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이 전쟁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나 책봉 이상의 조건은 들어줄 수 없었고 조선 역시 일체의 강화 시도를 전부 무시한 채 외교적으로 명 조정에 압박을 넣어 이들을 섬멸해 달라고 하니 결국 정유재란이 일어나고 말았다.

조선 백성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기가 막히고 끔찍했을까.

무응답으로 응한 조선 정부의 작전도 결과적으로는 옳았다고 저자는 평가하지만 민중 입장에서 보면 재침을 외교적으로 못 막은 것이니 끔찍한 실패가 아닐까?

도요토미 역시 전국을 통일하고 그 역량을 내치에 쏟아 도쿠가와 막부 같은 튼튼한 중앙정부를 만들었으면 늦게 본 아들이 끔찍하게 죽지는 않았을텐데 허황된 판단으로 동아시아 전체를 전쟁에 휩싸이게 했으니 실패한 정치가인 셈이다.

인상적인 부분은,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이 승전했음에도 이미 전라도 남부 해안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 육군 때문에 정박하지 못하고 물러났다는 점이다.

해전의 승리만 강조했을 뿐 이런 디테일한 전후 사정은 언급하는 책이 없어 아쉽다.

순천왜성에 갇혀 있던 고니시 부대가 일본으로 탈출하기 위해 명의 장수 유정과 진린에게 많은 뇌물을 쓰고, 구원하러 온 시마즈 부대와 합류하던 중 벌어진 전투가 노량해전이다.

이순신 입장에서는 적이 달아나는데 원조국이라고 온 군사들이 그대로 보내주려 하니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싶다.

오죽하면 총대장이 앞장서서 함대를 지휘하고 그 와중에 사망하게 됐을까.

나중에라도 정조 때 이 훌륭한 위인의 업적이 평가받게 되서 정말 다행스럽다.

정유재란 당시 한중일 세 나라의 국제정세를 살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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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20-04-15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 사둔게 있는데, 어서 읽어봐야 겠네요.ㅎㅎ

marine 2020-04-16 08:33   좋아요 0 | URL
임진왜란이 아니라 정유재란에 초점을 맞춘 게 흥미로웠습니다.
왜 다시 재침이 일어났느냐 그 부분을 분석한 게 흥미로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