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아이들 - 할인행사
마지드 마지디 감독, 바하레 시디키 외 출연 / 프리미어 엔터테인먼트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재밌었다
사실 오래 전에 구입한 건데 선뜻 끌리지가 않아 계속 미루던 참이었다
왠지 신파일 것 같고 운동화 한 켤레에 얽힌 남매의 절절한 사연, 이런 식으로 억지 감동을 줄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
이런데도 안 울고 배겨?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건 순전히 나의 편견에 불과했다
역시 상은 아무나 받는 게 아닌가 보다

한 시간 30분 밖에 안 된 영화라 길이 면에서도 마음에 든다
왠만큼 재밌는 영화가 아니면 2시간 넘게 집중하는 건 좀 힘들다
마지막 장면에 몇 분 더 추가로 에필로그 같은 걸 넣을 수도 있었을텐데 깔끔하게 잘라 버린 점이, 아쉽기도 하고 여운이 남기도 하고, 무엇보다 리얼리티가 있어서 좋았다
보통 다른 영화 같았다면 알리가 1등을 해 버려서 동생 자라의 신발을 못 가져 왔으니, 독지가가 나서서 사줬다거나 (해피 엔딩이라면), 아니면 1등 상품을 받고도 슬퍼하는 두 남매의 모습을 몇 분 더 끌 수도 있었을텐데 (비극적 결말이라면) 이도 저도 아니고, 마라톤 대회에서 딱 끝난 점이 신선했다
그리고 실망하는 자라와, 알리의 모습을 한 번씩만 비추고 끝!!

자라역을 맡은 꼬마 배우는, 예쁘게 자랐을 것 같다
다코타 패닝처럼 귀엽고 앙증맞은 건 아닌데, 눈매가 보통이 아니다
아주 나쁘지도 아주 착하지도 않은 딱 그만한 나이의 캐릭터를 잘 그려냈다
자라가 자기 신발을 훔쳐 간 애를 찾아내고 오빠랑 둘이 그 집으로 간다
그런데 학생의 아버지는 장님이었다!!
겨우 1학년, 3학년 남매는 자기들도 신발이 없어 바꿔 신는 처지에, 도저히 신발을 달라고 할 수 없어 돌아서고 만다
이 장면에 제일 감동적이었다
어쩜 이런 설정을 했는지, 감독에게 감탄하는 바다
아마도 그 신발 도둑은, 훔치려는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고 그냥 주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솔직히 알리가 수선한 자라의 신발을 일부러 안 보이는 곳에 감춰 둔 건데 그걸 주웠다고 생각하기엔 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하긴 나중에 꼬마애의 어머니가 고물상에 판 걸 보면 누가 주어가도 그만일 낡은 구두였음은 분명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고, 나중에 그 아이가 자라의 볼펜을 주은 후 다시 돌려 주는 장면이 삽입되어 더 마음이 따뜻했다
그러니까 이 꼬마애는 절대 나쁜 어린이는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아무 의도없이 저지른 행위가 두 남매에게 큰 고통을 줬을 뿐...

 

인생만사 새옹지마라는 격언도 영화에 나온다
정원사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알리의 아버지는, 아들 알리 덕분에 큰 돈을 번다
두 부자는 행복에 들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너무 꿈에 부풀었다 싶었는데, 역시 브레이크가 듣지 않아 자전거는 개울에 처박히고 알리네 부자는 오히려 병원비로 더 큰 돈이 나간다
역시 약속했던 자라의 신발은 사지 못한다
사람은 정말 한 치 앞을 모르는가 보다
절정의 순간에 바로 찾아 온 불행이라니...

 

역시 제일 멋있었던 장면은 알리의 달리기 질주였다
꼬마애가 어찌나 잘 뛰는지, 신발을 전해주기 위해 열심히 달리는 알리와 자라의 모습이 겹치면서 나도 모르게 "알리, 힘내!!" 라고 소리쳤다
간만에 영화에 몰입한 셈이다
차라리 최선을 다해 뛴 후 마지막에 주춤거렸으면 좋았을 것을, 어설프게 눈치보면서 3등 하려고 하다가 결국 추격당해 전력질주 한 결과 1등을 하고 만 알리
"챔피언, 웃어 봐" 하는 기자의 말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알리, 이럴 때 마음 넓은 어른이 나타나 우울해 하는 이유를 알아 차리고 좀 도와 주면 안 될까?
신문 기사거리로도 훌륭한데 말이다

 

신발을 바꿔 신고 등교하는 바람에 항상 지각을 하는 알리의 마음을 모르고 선생님은 알리를 쫓아냐려고 한다
왜 알리는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을까?
성적도 상위권이고 꽤 똑똑한 아이인데도 말이다
나도 그랬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말하면 큰일난다고 생각하고 혼자 해결하려고 낑낑댄다
어른들에게 얘기하면 금방 해결될 일인데도 말이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이다
데미안의 싱클레어 역시 매우 부당하게 협박을 받는데도 식구들에게 말하지 못하고 괴로워 하다가 데미안이 나타나면서 빛의 세계로 돌아온다
알리에게도 그런 데미안 같은 존재가 나타나 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이들은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한다
다행히 알리의 담임 선생님은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직감하고 알리를 옹호해 준다
한 단계 더 나아가 그 애의 고민을 들어 줬으면 더 좋았을텐데 말이다

꼭 덧붙이고 싶은 말은, 이란의 평범한 생활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는 점이다
우리처럼 좌식 생활을 한다는 점, 그리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을 쓴다는 점, 집에는 항상 차가 있다는 점, 사원에서 차에 설탕 조각을 넣어서 마신다는 점 등이 퍽 흥미로웠다
여자들이 반드시 차도르를 쓴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직접 보니까 그것도 감회가 새롭다
오전반, 오후반을 나눠서 하는 것도 어쩌면 남녀 분리를 위해서인 것 같다
얼굴은 내 놓아도 되는데 머리를 가리는 걸 보면, 머리카락을 보이는 게 성적인 의미가 들어있지 않나, 이런 생각도 했다
아예 얼굴을 가리는 경우도 있지만 심하지 않을 때도 반드시 머리카락은 가리는 걸 보면, 이슬람 문화에 여자의 머리는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물론 문화적 차이로 인정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도르 착용 모습은 편하지가 않았다
자발적으로 전통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혹은 종교적인 이유로 차도르를 쓰는 건 얼마든지 편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이슬람의 모든 여자들은 반드시 차도르를 써야 한다면 이건 또 얘기가 달라진다
문득 얼마 전에 읽은 "차도르를 벗어라" 라는 책 제목이 떠오른다
개인의 선택과 국가의, 혹은 종교의 강요는 하늘과 땅 차이가 아니겠는가?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영화가 많이 수입되서 상영됐으면 좋겠다
영화만큼 그 나라의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는 드문 것 같다
책 보다도 훨씬 생생하게 보여 준다
간만에 본 정말 재밌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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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mbino 2007-04-02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아빠가 여동생 신발을 사오시는 장면으로 훈훈함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