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품고 유럽을 누비다 - 80일 간의 유럽 예술기행
이유리.서효민 지음 / 아트북스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작년 여름이었을까?
우연히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한 뒤 무척 읽고 싶었었다
일단 책 판형이 크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고, 여행기라는데 400페이지 가까이 될 정도로 분량이 빵빵해서 내용도 알찰 거라는 기대를 했다
또 잠깐 들춰 봤더니 사진도 꽤 많이 실린 게 아닌가?
그래서 내심 사고 싶었지만 사진 때문인지 가격이 꽤 비싸길래 도서관에 신청만 해 두었다
보통 신간 신청을 하면 한 달 정도 걸려서 입고가 되는데, 이 책은 정기 도서 구입 목록에 들어있던 책이라 이제서야 빌려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 책을 읽기 위해 무려 반 년을 기다린 셈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후 시간이 좀 지나긴 했지만 오래 기다린 끝이라 가벼운 흥분이 일었다
책을 읽기 전의 느낌은 대략 이런 거였다
나이도 어린 처자들이 무려 석 달 가까이를 유럽에서 미술관만 돌아다니면서 여행을 하다니, 너무 부럽고 과감한 시간 투자가 놀랍다...
사실 이런 여행이야 말로 내가 꿈꾸었던 바로 그 여행이 아니던가?
한 달의 짧은 유럽 여행 후 미술관에 대한 목마름 때문에 언제나 나에게 있어 여행은 미술관 투어였다
그러나 유럽은 일단 비행기 삯만으로도 잠깐 휙 둘러 보고 올 곳이 아닐 만큼 먼 곳이고, 거기다가 직장을 가진 후로는 돈은 되더라도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 그녀들의 미술관 투어 이야기에 기대를 많이 걸게 됐다
남들은 어떻게 시간과 돈을 쪼개 다녀 오는가?
더구나 미술 전공 학생들이면 보는 안목도 남다를 거라고 기대했다
그래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고속버스 안에서 기대를 잔뜩 품고 한 손에 커피를 든 채 책을 펴들었다
(버스 안 손님들은 전부 잠이 들었다
버스 타면 항상 신기한 것이, 사람들은 이 개인적인 시간에 왜 다들 잠만 자는 것일까?
일에 치여 잠을 한 숨도 못 자는 것도 아닐텐데 왜 차만 타면 자는 걸까?)

 

그러나...
역시 기대를 너무 한 게 문제였다
이런 말랑말랑한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책을 편다는 건 참 보통 일이 아닌데 의외로 쉽게 출판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생각할 때 책을 쓰려면 어느 정도 문장력이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이것과 비슷한 여행기인 "노플랜 사차원 여행기" 같은 책은, 그런대로 문장력이 있는 편이다
독자가 읽기에 부담이 없을 정도의 문장력이 있고 또 위트가 있다
그런데 솔직히 이 책의 저자는 글 쓰는 연습을 더해야 할 것 같다
글빨 좋은 사람만 책 내라는 법은 없지만, 하여튼 문장력 부분에서 실망스럽다
그러고 보면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을 쓴 박종호씨는 비교적 글을 잘 쓰는 편에 속한다
이야기의 재밌고 재미없고를 떠나서 눈에 거슬리지 않게 문장을 이어가는, 글 쓰는 솜씨 같은 거, 이런 면에서 아쉬운 책들이 많다

 

또 한 가지 의문은, 공동 집필로 되어 있는데 한 사람만 글을 썼다는 점이다
여행은 둘이 떠났고 그 중 한 사람 글만 실려 있는데 왜 공동 저자로 이름이 나왔을까?
한 사람에게 미안해서 그랬나?
기왕이면 두 사람의 육성이 모두 실려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쉬운 점이다
처음에 읽을 때 난 혹시 저자가 유리라는 친구를 이성 친구로 생각하나 싶었다
유리는 이랬을 것이다, 저랬을 것이다 하면서 친구의 생각을 대신 얘기해 주니까
왜 유리라는 친구가 직접 글을 안 썼는지 모르겠으나 기왕이면 둘이 돌아가면서 글을 썼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다
그러고 보면 책을 내서 베스트셀러가 되려면, 최소한 주목이라도 끌려면 아이템을 잘 잡아야 하는 것 같다
이 책 역시 미술을 전공한 두 여학생의 유럽 예술기행이라고 주제를 잡지 않았다면 그저 그런 평범한 책으
로 독자의 눈길을 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책표지나 디자인 면에서는 비교적 좋은 점수를 주고 싶은데, 솔직히 문장력으로 보면 너무 초보티가 많이 난다
일단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소재 선정은 독특했으나 내용은 매우 평범하다
그러고 보면 손미나씨가 쓴 "스페인, 너는 자유다" 역시 실망스럽다
방송인이 쓴 책이니 특별한 글솜씨가 없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김지은씨의 "서늘한 미인" 정도는 될 거라 기대했었다
아마도 아나운서라는 점, 또 아직까지 스페인은 한국에 덜 알려졌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 것 같다
그렇다고 이런 책을 특별히 비판하는 건 아니다
다양한 수준의 독자층이 존재하는 만큼, 또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필자층이 있는 것도 좋은 일이다
다만 어떤 한 분야의 책, 한 수준의 책만 너무 몰빵되는 것 같아 다양성의 측면에서 아쉽다는 얘기다

 

책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이쯤으로 하고, 책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을 써 보자면....
일단 너무 부럽다
나에게도 이 정도의 시간을 낼 수 있는 백수 시절이 바로 작년에 있었다
본의 아니게 회사를 그만둔 후 5개월 정도의 시간이 났고 그 중 얼마는 평소에 소망하던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하여튼 결심을 한다면 그 정도는 쓸 돈과 시간이 분명히 있었다
그렇지만 결국은 떠나지 못했다
새 직장을 잡아야 한다는 부담감, 서울로 가면 집을 얻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도저히 쉽게 여행을 결심할 수가 없었다
일정을 짧게 잡으면 그런대로 떠날 수도 있었겠으나 안 그래도 백수인데 놀러 가서 펑펑 돈을 쓸 수 없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결국은 말 그대로 백수로 방바닥 긁다가 끝났다
그러고 보면 여행이라는 것도 일종의 투자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나는 박종호씨 같은 분이 참 부럽다
의사라는 직업이 주는 금전적 여유도 있었겠으나, 거기서 번 돈을 클래식 같은 고상한 취미에 쏟아 붓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 사회적 지위나 친분을 위해 골프에 쏟거나 차에 투자한다
또 아마도 대부분의 다른 직종을 가진 사람들 역시 집 사고 애들 교육비에 쓰고, 하여튼 돈 쓸 곳은 아마도 널려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한정된 재화를 한정된 곳에 쓸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어디에 투자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관이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적금 통장에 붓는 사람, 주식을 사는 사람, 뮤지컬 보는 데 쓰는 사람, 여행을 떠나는 사람, 차 사는 데 쓰는 사람, 그리고 불우 이웃 돕는 데 쓰는 사람...
어떤 것에 우선순위를 두느냐는, 어쩌면 그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가 될지도 모른다

 

지난 번 여행에서 안 가 본 곳이 바로 스페인이다
스페인은 남유럽에 위치해서 그런지 프랑스나 영국 등과는 또다른 느낌인 것 같다
뮌헨에 갔을 때 알테 피나코텍에 못 간 것도 아쉽다
여행에 너무 지쳐 있었는지 뮌헨에 도착해서는 호텔에서 잠만 잤다
영국 역시 마지막 일정인지라 피곤해서 에딘버러에 못 갔다
체코에서도 그 유명한 인형극을 못 봤다
당시에는 최대한 많은 곳을 도는 배낭여행이 유행이라서, 일정이 너무 빡빡했다
그래도 한 번에 여러 나라를 맛이라도 보고 온 게 다행스럽긴 하지만, 하여튼 여행 도중 체력이 바닥나서 무척 힘들었다
더구나 미술관 투어, 건축물 투어 이런 식으로 주제를 정해 놓고 갔으면 유익했을텐데 무조건 남들 가는대로 따라가는 식이라 아쉬운 점이 많다
지금 같으면 한 곳이라도 차분히 보고 돈을 좀 더 들여서라도 편안한 여행을 즐겼을 것이다
또 가능하면 가이드 투어를 했을 것이다
가이트 투어는 깃발부대다, 진정한 여행이 아니다, 하지만 그 나라 문화를 짧은 시간에 돌아 보기에, 가이드 투어는 상당히 유익하다
특히 대만과 일본에 갔을 때 가이드의 상세한 설명이 없었다면 아마도 대충 풍경만 보고 돌아왔을 것이다

 

다시 언제쯤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요즘은 저가 항공사도 많이 나오니 예산 세우기가 더 쉬울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행 하면 유럽의 미술관 투어였는데 요새 끌리는 곳이 바로 이집트다
확실히 크기는 사람을 압도하는 것 같다
직접 피라미드를 눈으로 본다면 아마도 이집트 문명에 대한 기존의 생각이 확 바뀔 것 같다
누가 여행은 삶의 비타민이라고 했던가!!
갑자기 막 떠나고 싶어진다
덧붙이고 싶은 말은, 사진을 좀 잘 찍고 싶다는 거다
이 책에도 본인들이 찍은 사진이 많이 실렸다
나는 인물 사진 찍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유럽 가서도 별로 안 찍었다
대신 풍경 사진을 잘 찍으면 훌륭한 기록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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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1-15 0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부지런히 다독하시는 것 같아서 존경스러워요. 김지은씨 좋아하는데..MBC즐거운문화읽기에서 진행 참 잘했어요. 서늘한 미인 좋아요? 저도 문장력없는 미술관련책 싫어요. 박종호씨 기억해놔야겠어요.

marine 2007-01-15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늘한 미인" 읽을 만 하답니다 현대미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죠
그리고 박종호씨, 글 잘 씁니다 문장력이 된다고 해야 하나요?

kleinsusun 2007-01-16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피라미드를 보고 시퍼요!^^
아....가고 싶은 이집트!!!

marine 2007-01-16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은 저보다 기회가 많으실 것 같아요~~

시골영감 2009-07-03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