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난화에 속지 마라>를 리뷰해주세요.
지구온난화에 속지 마라 - 과학과 역사를 통해 파헤친 1,500년 기후 변동주기론
프레드 싱거.데니스 에이버리 지음, 김민정 옮김 / 동아시아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지구 온난화로 인한 환경 재앙, 한마디로 그건 사기??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논점은 대략 두 세 가지로 추려 볼 수 있다.  

첫째,  최근 백년간 지속적으로 지구 온도가 급작스럽게 상승해 온 게 아니라, 지구는 1500년을 주기로 온도가 오르락 내르락 하는데(1500년 주기의 기후 변동설) 다만, 지금이 소빙하기가 끝나고 자연적으로 온도가 올라가는 시점에 맞물려 있기 때문이지, 인간의 과다한 산업 활동에 의해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에 따른 온실효과 때문에 그런 게 아니다.  

둘째 지구는 과거에도 지금처럼 뜨거웠던 적이 있었고, (아니 더 뜨거웠던 적도 있었다. 영국 땅 전역에서 포도 재배가 가능할 만큼 충분히 따뜻했었다.) 그 때마다 지구 환경은 그런 변화를 탄력적으로 잘 극복해 왔기 때문에 지구 기온이 1-2도 오른다고 해서 동식물이 멸종되거나, 해일, 폭우, 가뭄등의 자연재해가 빈발하거나, 북극의 빙하가 다 녹아버려서 해수면이 상승해 바닷가 인접 육지들이 물에 잠길까 걱정하는 것은 기우에 불과하다.  

셋째, 그러므로 애써서 이산화 탄소 배출량을 줄이거나, 산업활동을 제한하는 방식의 제안은 다 무의미하고, 실효성도 없다.  

책의 저자들은 과학적 지식과 통계 자료로 무장해서 우리가 익히 알아왔던, 그리고 경각심을 가지고 걱정해 왔던 문제들은 이제 잊어버리라고 말한다. 남극의 빙하 코어, 화분 침전물, 과거 역사 기록들, 화석들.. 온갖 종류의 다양한 데이타를 들먹거리면서 지구는 1500년을 주기로 저절로 (태양에서 오는 에너지의 차에 따라) 온도가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이지, 인간이 이산화탄소를 많이 방출해서 그게 지구를 비닐하우스처럼 싸고 있기 때문에 지구 온도가 급상승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온실 효과의 피해에 대한 각종 경고 데이타들은 알고 보면 다 허술하고 조작되어 있거나, 그걸 발표한 사람의 결론과 다른 일부 부분만을 침소봉대하거나, 아예 데이타를  잘못 해석해서 나온 것이지, 진짜 제대로 데이타를 분석해 보면 걱정할 일도, 호들갑 떨 일도 전혀 없다는 거다..  또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게 되면 경작할 수 있는 곳이 확대되고 식물 성장이 촉진되는 등 좋은 점이 훨씬 더 많고 인간 자체가 수천년 동안 그런 변화에 적응해서 오늘날까지 문명을 일궈 왔는데, 새삼스레 뭘 걱정하느냐고 한다.

지난 겨울에 모 방송에서 [북극의 눈물]이란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었다. 빙하가 거의 다 녹아버려서 살 터전을 잃어버려가는 에스키모인들과, 먹을 게 없어서 얼음위를 배회하다 너무 배가 고파서 풀을 뜯어먹는 북극곰의 모습을 보았다. 또 유럽 여행을 다녀온 친구는 스위스의 알프스에 가도 기대처럼 완전히 눈으로 덮인 산을 보지는 못했다고도 했다.  

그런데, 그런 것은 다 잊어버리라고 말한다. 일상적인 주기 속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 우리 책임도 아니고,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일도 아니며, 단지 담담히 받아들이고 과학 혁명을 통해 여태 우리 인류가 그런 것처럼, 지구 환경에 적응해 나가면 될 뿐이라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불쾌했다. 몇 년 전엔가 창조과학학회라는 곳에서 펴낸 [진화, 그 치명적인 거짓말]이란 책을 읽다가 던져 버린 적이 있었다.  진화론을 반박하기 위해 각종 과학적인 듯 보이는 데이타를 끌어다가 과학적으로 진화는 허구이고, 진화의 흔적을 보여주는 각종 화석이라든가, 하는 자료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대홍수 때문에 형성된 것이라고 끈질기게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곡학아세라고 했던가.. 과학의 탈을 쓴 성경 원리주의자의 발악 같았다.   

그점은 이 책도 마찬가지다. 지구 온난화 사기극을 벌이는 세력(?)이 과학 데이타를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해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책을 쓴 자들도 자신의 이익 (뭐, 그게 미국 산업자본주의의 이익인지, 아니면 세계화 주의자들의 이익인지, 우매한 대중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인지)을 위해 자신의 견해에 유리한 자료만을 선별해서 이야기를 해 나간다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객관적인 실험과 결과가 뻔히 드러난다고 알려진 과학의 세계도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에 따라, 자료를 취사 선택하면서 얼마든지 다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게 다시 한번 놀라웠다.  과학이 그러할 진대, 다른 분야야 오죽할까. 그러니, 절대적인 진리, 혹은 절대적인 진실이란 어떤 면에서는 신기루처럼 잡히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책에서 말하는 1500년 주기의 기후 변동설이 맞을 수도 있다. 지구가 주기적으로 더워졌다가 추워졌다가를 반복하는데, 하필이면 우리가 사는 시기가 지구가 더워지는 시기와 맞물려 있는 건지도 모른다.  설사 그렇다 치더라도,  지구 온도가 급변하는 시기에는 훨씬 더 힘든 삶을 살았고, 그 피해의 대부분은 힘없는 대다수의 대중들에게는 고통의 시기였음을 이 책은 아예 간과해버린다.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는 선진국에는 지구 온도 1-2도 더 올라가는 게 별 거 아닌 일인지 몰라도 지구 반대편 어딘가의 사람들에게는 삶의 전 기반을 허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그런 문제 의식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좀 쉽게 표현하자면 이런 식이다. [우리 나라는 4계절이 있고, 계절에 따라 온도가 주기적으로 오르락 내리락하는데, 그중에 여름이 되면 때때로 홍수나 가뭄이 오기도 한다. 그건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고, 또 모든 동식물이 그런 주기에 적응해서 사는 것처럼 인간도 잘 적응해서 살아왔으니 우리는 신경 쓰지 말고 살면 된다.] 이게 말이 되는가?? 설사 인간의 힘으로 홍수나 가뭄이 오는 자체를 막을 수는 없지만, 제방을 쌓거나, 저수지를 만들거나 해서 언제든 생길 수 있는 어려운 환경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은 초등학생만 되어도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 소위 첨단을 달리는 과학자라는 사람들이 1500년 주기 운운하면서 지구가 더워지는 건 아무것도 아니니 걱정 말란다!!   

교토 의정서나 기후 협약 같은 것이 지구의 기온 상승을 막는데, 아직까지는 무력하다고 할지라도, 아무런 준비나 노력조차 하지않는 그들의 태도 보다는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모여서 걱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 보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차라리, 각종 산업을 육성하면서 성장하고 있는 개발도산국에게 이산화탄소 감축 같은 요구사항들이 새로운 기술 장벽, 무역 장벽, 진입 장벽으로 그들 나라의 성장을 저해하고 계속 후진국으로 남게 강제할 수도 있다는 문제 제기와 더불어 이산화탄소 규제가 실제 온실효과에 별 영향이 없다고 설파했더라면 납득할 수 있었겠지만, 무턱대고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규제하면, 모든 나라에서 화석 연료 대신 나무나 때고 화학 비료 대신 저효율의 유기 농법을 쓰느라, 결과적으로 더 못 살게 된다고 강변하는 부분에서는 좀 어이 없었다.  게다가, 유전자 조작 옥수수의 우수성에 대한 찬사까지 중간에 나오는 걸 보고는 실소가 나왔다. 책을 쓴 저자들이 대변하고자 하는 이익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미국은 아직도 이산화탄소 감축 계획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 그것에 대한 가장 좋은 핑계거리이자 이유를 이 책이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동구리무 2012-03-07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 잘보았습니다. 기본적으로 환경 파괴를 기준으로 보아 제가 시골에서 농사일을 도울때가 생각납니다.

분명 인간이 만든 제품은 완벽한것은 없는것 같습니다.

그 넓은 도랑물을 마시고 돌맹이만 들추면 가재나 개구리 넘쳐나는 물고기들 하지만 농약등 화학 제품 그리고 각종 오폐수의 유입등으로 많은 동식물이 죽어 나가고 예전에 마시고 헤엄치던 도랑물은 더러운 이끼로 가득 차있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한살 한살 먹으며 자신감 보다는 세상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이며 거짓은 무엇일까 하고 말이죠.

 
<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을 리뷰해주세요.
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 - 비밀스러운 종교의 역사
에두아르 쉬레 지음, 진형준 옮김 / 사문난적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아주 예전부터 난 막연하게 어떤 진리가 있다면 그 진리의 본질은 하나일 거라고 생각해 왔다. 다만, 그걸 표현하는 방식과 그걸 받아들이는 방식의 차이가 오늘날의 무수한 종교와 사상을 낳게 되었을지라도, 진짜 깨달음 혹은 진리라면 무언가 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야만 한다고 믿어왔었다.. 

비밀스러운 종교의 역사라는 부제목을 갖고 있는 이 책은 어쩌면 그런 면에서 내가 찾던 책인지도 모르겠다. 19세기 프랑스 철학자이자 역사학자라는 쉬레는 바로 그런 가설에서 서양사를 추적하면서 어쩌면 신비한 깨달음, 혹은 신의 숨결을 직접 대면한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의 흔적을 더듬어, 각기 서로 다른 장소에서 서로 다른 형태로 드러난 여러 가르침들이 어쩌면 하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음을 조심스럽게 이야기 한다.  

아리안족의 이동 과정에서 나타난 람이라는 인류 최초의 스승 이야기부터, 인도의 힌두 신화의 원형이 된 크리슈나 이야기, 이집트의 헤르메스, 이스라엘의 모세, 오르페우스, 피타고라스, 플라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각각 표현 방식은 다 다르고, 그걸 받아들이는 방식도 마찬가지로 달랐지만, 그 본질적이 가르침은 아마도 하나일 것임을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정신과 영혼과 육신으로 구성되어 있고, 선택받은 자, 그리고 그에 합당한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던 자는 아주 드물게 통과 제의를 거쳐 보다 높은 지고의 존재를 깨닫고 때로는 그 존재로부터 특별한 가르침을 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그저 단 한번의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보다 더 큰 영적 성장을 위한 반복되는 행위의 결과이며 현재의 삶이 전생의 삶에 의해 영향받은 것처럼 영적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생에서 초월적인 깨달음, 혹은 특별한 믿음과 가르침이 필요한데, 인류 역사의 초기 단계에서는 이 특별한 가르침은 람이나, 크리슈나를 통해 전승되었고, 그 뒤에는 이집트 사제단들에 의해 수천년간 계승되어 오다가, 모세와 오르페우스, 피타고라스 등등을 거쳐서 그리스와 서방 세계로 조금 더 쉬운 가르침의 형태로 보편화되기 시작했고 그게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러 거진 완성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언급되던 헤르메스나, 오르페우스 이야기나 디오니소스 제의와 바캉스들 이야기 부분은 좀 혼란스러웠다. 박카스나 디오니소스나 다 술의 신 아닌가??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전령 아니었던가? 왜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이 대립하게 되는 거지? 이런 식으로 나의 얼마 안되는 지식 가지고 책 내용을 다 한번에 소화하기에는 좀 무리였다. 

다만, 예전에... 람타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의 첫머리에서 다루는 람이란 존재와 내가 접했던 람타가 비슷하게 느껴졌었고, 사물의 본질적 이치를 숫자로 파악하려고 했던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에 대한 부분은 조금 더 잘 알게 되었다..  

인도와 유럽을 아우르는 사상 혹은 종교의 맥과 큰 흐름을 통합하는 시도 자체는 신선했지만, 조금 내용이 난해한 듯 느껴졌다. 또 19세기 서양인이라는 한계가 있어서였겠지만, 동양의 사상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부분이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어찌 진리가 서양에서만 그 빛을 비추었을까?? 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는 어떤 면에서는 동양에서 더 많이 나왔을 거 같은데.. 동서양을 아우르는 깨달음, 혹은 진리의 큰 줄거리는 전혀 손대지 못하고.. 그냥 서양의 깨달음의 역사 같은 걸 마구 늘어놓는 식의 서술이 좀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4개의 통장 - 평범한 사람이 목돈을 만드는 가장 빠른 시스템 4개의 통장 1
고경호 지음 / 다산북스 / 200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흔히들 돈을 벌려면 종자돈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는 말처럼, 뭐 재테크니 뭐니 해 보려고 해도 어느 정도는 목돈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문제는 종자돈이다.  

자기 수입 안에서 생활하면서 크게 신경쓰지 않고 종자돈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는 책이 나왔다고 해서 읽었다. 4개의 통장을 유기적으로 관리해서 저절로 돈 관리가 되는 시스템을 만들어 두고 그 시스템에 맞겨 운용하다보면, 시간이 흐르면서 돈이 모이게 되는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꼬박꼬박 가계부를 쓰지 않아도 통장 정리만 해 보면, 한달 생활비며, 고정 지출이며, 저축액이며, 예비비가 어느 정도 인지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란다. 익숙해지면 아주 간단하고 편하다고 한다.  

신용카드 사용을 줄이고 생활비 통장의 체크 카드나 현금을 사용해서만 생활비 지출에 쓰고 어느 정도의 예비 자금을 확보해서 예기치 않은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하라거나, 펀드의 누적 수익률 몇 십 프로가 복리 이율로 환산해 보면 별 거 아닐 수 있으니 드러난 수치에 연연하지 말고 제대로 따져 보고 판단하라는 조언들은 귀담아 둘만하다. 수익 지향인지, 안정 지향인지에 따라, 또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주식과 채권 사이에 밸런스를 맞춰 투자해야지, 어느 한쪽에 올인하는 행동은 파멸의 지름길이란 이야기도 충분히 공감이 갔다.   

안 그래도 몇 달 전부터 적금을 하나 들어보려고 모네타 사이트를 기웃거렸었다. 금리가 조금 센 곳은 저축은행들이라 왠지 불안하고, 은행권은 너무 이자가 형편없고, 펀드는 왠지 겁나고.. 이런 나 같은 완전 생초보들에게는 도움이 되는 책이지만, 어느 정도 금융 지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쉽고 뻔한 내용처럼 다가올 수도 있을 거 같다.  

어느 부분은 나도 뭐, 이런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나 했으니까.. 소득 중.. 예산과 실지출을 잘 관리해서 저축액을 늘려가야 목돈이 모인다는 것 정도는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상식 아닌가.. 

재테크 책들이 많이 팔리는 이유는 우리 심리 중에 쉽게 돈 벌려는 욕심,  운 좋게 뻥튀기 하듯 돈을 불리고 싶다는 욕망이 많기 때문일 거다. 그런데, 이 책은 친절하게 그런 비법은 없다는 걸 이야기한다.. 하긴 설사 비법이 있다면, 그걸 누가 책으로 써서 만인이 다 알게 할까. 모든 사람이 다 아는 방법이라면 더이상 비법도 아닌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한 남자가 휴가철을 맞아 모래에서만 서식하는 변종 곤충을  채집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가 겪는 끔찍한 이야기다.  

남자는 사막을 찾아 여행을 떠났다가 아름다운 사구 속의 마을을 발견한다. 우연히 만난 마을 주민을 따라 갔다가, 모래 구덩이 속 어떤 집에 하룻밤을 묵게 된다. 집 뒤로 산처럼, 혹은 절벽처럼 모래가 버티고 있는 집 안에는 여자 혼자 살고 있었고, 그 여자는 별로 어색하게 생각하는 기색도 없이 그를 맞아 잠자리를 준비해 준다.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처럼 모래 속에서 조금씩 풍화(?? 모래화)되어가는 집 안에 낯선 여자와 단둘이 보내는 이상야릇한 기분도 잠시.. 지친 그는 잠에 빠졌고 그 다음날 아침에 감사 인사와 함께 떠나려고 하지만, 자신이 타고 내려왔던 사다리는 이미 치워진 지 오래이고.. 자신이 하룻 밤을 보낸 집 위로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 집을 덮칠듯 아슬아슬하게 모래절벽이 버티고 서 있었다. 여자는 미안해 하는 얼굴로 모래를 퍼 나르지 않으면 곧 모래가 이 집과 이 마을 전부를 집어 삼킬 거라고. 그러니 부지런히 모래를 퍼서 위로 올려보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건 댁의 사정이고 난 여기를 나갈거야라고 남자는 말하지만, 아무리 둘러 봐도 집을 금방이라도 삼킬 듯한 모래 절벽으로 둘러쌓인 집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사다리는 오래전에 치워졌고,  모래 절벽은 암벽이 아니기에 붙잡을 것도 발 디딜 것도 없이 조금만 움직이면 흘러내렸다. 병자인 척도 해보고, 여자를 기절시켜서 모래 언덕 위에 살고 있는 주민들과 협상해 보려고도 하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써 보지만 나갈 수 있는 길이 없다. 죽지 않으려면 물이 필요하고 그 물은 모래를 위로 퍼 나르는 경우에만 위에서부터 하루 쓸 수 있는 정도 분량의 물과 식량이 제공되기에, 결국 남자는 살기 위해서 그들이 원하는대로 그대로 두면 집을 금방이라도 덮어버릴 모래와의 끝없는 사투를 시작한다.   

왜 관공서에 가서 모래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시설을 해 달라고 하지 않고 이렇게 모든 마을 주민들이 끝없는 모래와의 싸움을 계속 하면서 사는 걸까. 남자는 마을 주민에게 자신을 내 보내 주면 반드시 사람들을 설득해서 그들 마을을 지킬 수 잇도록 해 주겠다고 하지만, 그들은 이미 요지부동이다.

 남자는 자신 외에도 몇몇이 그들의 덫에 갇혀 일년이 넘도록 모래 구덩이 어딘가에서 모래를 위로 퍼 나르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여자를 통해 알게 된다. 아무 희망은 없다.. 남자는 한번인가 그들의 사다리를 몰래 올라 탈출에 성공할 뻔도 했지만, 마을의 독특한 지형 때문에 결국 다시 사로잡히는 처지가 되어 여자에게 돌려 보내진다. 그런 상태에서 몇년을 살아왔는지도 모르는 여자는 그곳을 빠져 나갈 생각 조차 하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그곳이 바로 집이고 터전이니까.. 어짜피 나가봐야 세상 어디는 다 사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한다. 하긴, 남자가 실종되고 나서도 세상은 아무 일없이 그냥 흘러갔다

남자는 서서히 여자와 닮아간다. 여자와 함께 뒹굴고 여자와 함께 모래를 퍼 올리고 여자가 해주는 밥을 먹으면서 여자와 남자는 그렇게 살아간다. 나중에 여자가 아이를 낳기 위해 모래 위로 보내졌을 때.. 남자는 사다리를 보고도 자유를 찾아 올라가지 않았다.    

이 책에서 신기한 점은 모래의 이미지에 대한 작가의 성찰이다.. 모래는 끝없이 흐르는 성질을 가졌다는 점에서는 물과 똑같다. 그러나 물이 생명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라면, 모래는 그 모든 것을 부식시키는 힘을 지닌 것 같다. 모래 자체가 바위가 서서히 부서져서 생기는 것이기에.. 그 속성 자체가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부서지게 하고 흐르게 한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공감이 같다.

그러나, 고작 모래 이야기를 하자고 이런 책을 썼을까?? 도대체 이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어디 있을까 싶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을을 지키겠다는 주민들의 욕심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다 모래를 퍼 올리면서 인생 전부를 허비하고 있는 불쌍한 한 남자 이야기가 무슨 세계 명작일까?  공포 영화 소재로나 딱 알맞을 것 같은데.. 예를 들자면 쏘우 시리즈나 큐브 시리즈 같이 자신이 왜 거기에 잡혀 왔는지도 모르는 채 끌려왔지만, 마지막에는 납치범들의 의식과 동화되어 버려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불쌍한 남자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뒤에 비평글을 읽었다. 모래 속에서 모래에 맞게 자신을 변형시킨 벌레를 채집하러 떠난 남자가 벌레는 채집하지 못하고 스스로 모래 속에 맞는 인간으로 돌연변이를 일으켜 살아간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소설의 첫 등장 부문과 끝나는 부분의 이야기의 아귀가 비로소 맞는 것도 같다..  

하지만, 암튼.. 기괴하다고 해야 하나.. 모래 속 마을 사람들의 삶 전부가 마치 시지프스 같다. 끝없이 무거운 바위를 밀어 산을 올라야 하는 계속 되는 고통과 형벌..  개개인의 삶이 희생되어서 지켜지는 마을 전체의 안녕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일본이라는 나라, 그 민족의 사고 방식 속에 전체를 위해 개개인의 희생은 때로는 불가피하다는 게 배어 있는 모양이라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난 그런 전체가 무섭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운명의 날>을 리뷰해주세요.
운명의 날 - 유럽의 근대화를 꽃피운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니콜라스 시라디 지음, 강경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리스본 대지진?? 근대 유럽 역사의 흐름을 바꿀 만한 엄청난 사건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난 처음 들어보는 걸까?

1755년 11월 1일 카톨릭의 성인들을 기리는 축일인 만성절 아침,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했고, 뒤 이어서 거대한 쓰나미가 도시를 덮쳤다. 유럽의 번영을 상징하던 화려한 도시 리스본은 연타석으로 터진 지진과 화재와 쓰나미로 순식간에 폐허가 되어 버렸다.  

자연 재해 앞에 인간이, 또 인간이 만든 도시와 문화가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은 그다지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멀게는 대서양 어디 깊은 물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는 아틀란티스 대륙의 이야기가 있고, 몇년 전엔가 우리 나라에서 전시회까지 열렸던 화산재 속에 덮여버린 도시, 품페이도 있고, 성경에 보면 숱하게 타락과 죄로 인해 멸망해 버린 도시들이 등장한다. 노아의 홍수로 세계가 다 물에 잠기었다거나(그런데, 왜 중국과 우리나라는 역사가 지속되어 왔을까??), 죄와 타락과 오만으로 인해 소돔과 고모라가 천벌을 받아 멸망했다는 식의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실제 현실에서도 몇 년 전에 인도네시아에 쓰나미가 닥쳐서 몇 십만인가가 순식간에 물귀신이 되었고, 중국 쓰촨성 대지진 때도 무너진 집과 산더미 속에 수십만이 그대로 매장 되어 버렸다. 자연의 엄청난 힘 앞에 인간이 이루어낸 문명과 과학 기술이 무용지물처럼 느껴지는 게 어디 한 두번일까?   

1755년 갑작스럽게 생긴 대지진 앞에 리스본의 운명도 마찬가지였다. 불과 3분만에 포르투갈이 수백년간 이룩해 놓은 부와 번영, 그리고 종교적인 신념이 다 무너져버렸다.   

당시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은 수백년에 걸쳐 진행된 노예 무역의 중계와 식민지 브라질 착취를 통해 쌓아올린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내면을 파고 들어가 보면, 일단 경제적으로는 해외에서 벌어오는 막대한 재화가 왕족과 몇몇 상층 귀족에게만 돌아가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가난과 무지에서 허덕거리는 사회였고, 종교적으로는 예수회가 실권을 장악해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자들을 종교재판을 거쳐 공개처형 해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던 카톨릭 신앙의 마지막 보루 같은 도시였으며, 동시에 개인의 이성과 자유와 과학에 대한 일체의 사상과 교육을 통제하던 나라였다.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내면으로는 곪을 대로 곪아 있던 나라 리스본에 유럽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재앙이 갑작스럽게 닥쳤다. 그것도 카톨릭 성자들을 기리는 만성절날, 지진은 성당과 많은 가옥과 궁전이 무너졌다. 신부와 신자과 불신자들이 함께 죽었고, 왕족과 귀족과 일반 백성들과 천민들이 평등하게 죽었다. 죽은 자들에게는 성서에 예견된 지구 멸망의 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날이었을 것이다.   

또 그날은 로마 멸망 이후 거의 천년 이상 유럽을 지배하던 기독교 대신, 인간의 합리적 이성과 과학적 사고 방식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된 운명의 날이기도 했다.  개신교와 카톨릭 모두 대재해 앞에 무용지물이었다. 지진의 원인이 리스본 시민의 타락과 원죄에 대한 신의 심판이라거나, 불신에 대한 벌이라는 신부와 목사들의 설교가 늘어갔지만, 실질적으로 지진으로 피폐해진 리스본을 다시 살릴 것은 카르발류라는 한 정치가였다.  

그는 대재해 앞에서 망연자실해 있는 국왕을 대신해, 리스본의 피해 실태를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치안을 유지하고, 공권력을 적절히 이용해, 부상자들과 이재민들을 구호하고 썩어빠져 있던 리스본의 구태을 일소하고, 특권층의 특혜를 줄이고 긴 안목을 가지고 리스본을 재건축해 나갔다. 어디서 갑자기 이런 인물이 나왔을까 싶게, 그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뛰어난 안목과 추진력과 결단력을 가진 카르발류를 통해, 신의 저주를 받은 도시 리스본은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그 과정에서 근대적 의식이 유럽 전역에 싹터나갔다.  

그는 그의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적들에게 혹독했고, 자신의 비전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 대중에게도 단호했다.  그만큼 적도 많았다. 그를 지지하던 주제 1세의 사망 이후, 그는 바로 실각했고 자신이 추구했던 모든 개혁 정책들이 다 폐지되는 것을 모멸스럽게 지켜봐야했다.  

카르발류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상앙을 떠올렸다. 춘추전국시대와 18세기 유럽이라는 시간차, 공간차가 있지만, 두인물이 서로 겹쳐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카르발류가 대재난 이후 멸망 위기에 처한 포르투갈을 차근차근 개혁과 결단으로 재건축해 나갔지만, 비밀 경찰, 첩자, 검열이 난무하는 독재정치를 벌임으로써 주제 1세 사후 바로 실각된 것처럼, 상앙도 변법이라는 개혁을 통해, 그 당시 변방에 속해있던 진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지만, 너무 지나친 법집행 때문에 모두의 미움을 사서, 결국 진효공 사후에 바로 실각되었다.  

포르투갈은 카르발류가 펼쳤던 개혁을 다시 원점으로 돌림으로써, 더이상 유럽의 강대국으로 남아있지 못하고 점차 주도권을 네덜란드나, 영국 프랑스에 빼앗기고 쇠락해 갔지만, 카르발류는 천수를 누리다가 평온하게 죽은 반면, 진나라에서는 상앙이 추진한 변법의 덕택에 나라가 부강하게 되었고, 결국 진시황때에는  천하까지 통일할 수 있었지만, 상앙 본인은 결국 자신이 만든법에 의해 잡혀 죽임을 당했다. 자신이 남긴 업적으로 비록 자신은 죽지만 후세에 두고 두고 이름을 남기게되는 상앙과, 한 때 포르투갈을 전성기로 이끌었지만, 실각하고 쇠락해지는 포르투갈과 함께 잊혀져가게된 카르발류중  누가 더 한이 많을 지 궁금해졌다.  

공교롭게도 며칠 전에 영화 해운대를 봤다. 부산을 완전히 휩쓸어 버리는 메가 쓰나미를 다루고 있는 대형 블록버스터인데 그 영화를 보면서.. 내내 이 책을 생각했다. 영화가 아니고, 실제라면.. 그 재난은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까? 카르발류 같은 지도자가  우리에게도 있을까??(물론 그의 독재적 통치 방식은 절대 사절!!!.. 지금 청와대에 있는 사람 하나도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