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한 남자가 휴가철을 맞아 모래에서만 서식하는 변종 곤충을  채집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가 겪는 끔찍한 이야기다.  

남자는 사막을 찾아 여행을 떠났다가 아름다운 사구 속의 마을을 발견한다. 우연히 만난 마을 주민을 따라 갔다가, 모래 구덩이 속 어떤 집에 하룻밤을 묵게 된다. 집 뒤로 산처럼, 혹은 절벽처럼 모래가 버티고 있는 집 안에는 여자 혼자 살고 있었고, 그 여자는 별로 어색하게 생각하는 기색도 없이 그를 맞아 잠자리를 준비해 준다.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처럼 모래 속에서 조금씩 풍화(?? 모래화)되어가는 집 안에 낯선 여자와 단둘이 보내는 이상야릇한 기분도 잠시.. 지친 그는 잠에 빠졌고 그 다음날 아침에 감사 인사와 함께 떠나려고 하지만, 자신이 타고 내려왔던 사다리는 이미 치워진 지 오래이고.. 자신이 하룻 밤을 보낸 집 위로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 집을 덮칠듯 아슬아슬하게 모래절벽이 버티고 서 있었다. 여자는 미안해 하는 얼굴로 모래를 퍼 나르지 않으면 곧 모래가 이 집과 이 마을 전부를 집어 삼킬 거라고. 그러니 부지런히 모래를 퍼서 위로 올려보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건 댁의 사정이고 난 여기를 나갈거야라고 남자는 말하지만, 아무리 둘러 봐도 집을 금방이라도 삼킬 듯한 모래 절벽으로 둘러쌓인 집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사다리는 오래전에 치워졌고,  모래 절벽은 암벽이 아니기에 붙잡을 것도 발 디딜 것도 없이 조금만 움직이면 흘러내렸다. 병자인 척도 해보고, 여자를 기절시켜서 모래 언덕 위에 살고 있는 주민들과 협상해 보려고도 하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써 보지만 나갈 수 있는 길이 없다. 죽지 않으려면 물이 필요하고 그 물은 모래를 위로 퍼 나르는 경우에만 위에서부터 하루 쓸 수 있는 정도 분량의 물과 식량이 제공되기에, 결국 남자는 살기 위해서 그들이 원하는대로 그대로 두면 집을 금방이라도 덮어버릴 모래와의 끝없는 사투를 시작한다.   

왜 관공서에 가서 모래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시설을 해 달라고 하지 않고 이렇게 모든 마을 주민들이 끝없는 모래와의 싸움을 계속 하면서 사는 걸까. 남자는 마을 주민에게 자신을 내 보내 주면 반드시 사람들을 설득해서 그들 마을을 지킬 수 잇도록 해 주겠다고 하지만, 그들은 이미 요지부동이다.

 남자는 자신 외에도 몇몇이 그들의 덫에 갇혀 일년이 넘도록 모래 구덩이 어딘가에서 모래를 위로 퍼 나르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여자를 통해 알게 된다. 아무 희망은 없다.. 남자는 한번인가 그들의 사다리를 몰래 올라 탈출에 성공할 뻔도 했지만, 마을의 독특한 지형 때문에 결국 다시 사로잡히는 처지가 되어 여자에게 돌려 보내진다. 그런 상태에서 몇년을 살아왔는지도 모르는 여자는 그곳을 빠져 나갈 생각 조차 하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그곳이 바로 집이고 터전이니까.. 어짜피 나가봐야 세상 어디는 다 사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한다. 하긴, 남자가 실종되고 나서도 세상은 아무 일없이 그냥 흘러갔다

남자는 서서히 여자와 닮아간다. 여자와 함께 뒹굴고 여자와 함께 모래를 퍼 올리고 여자가 해주는 밥을 먹으면서 여자와 남자는 그렇게 살아간다. 나중에 여자가 아이를 낳기 위해 모래 위로 보내졌을 때.. 남자는 사다리를 보고도 자유를 찾아 올라가지 않았다.    

이 책에서 신기한 점은 모래의 이미지에 대한 작가의 성찰이다.. 모래는 끝없이 흐르는 성질을 가졌다는 점에서는 물과 똑같다. 그러나 물이 생명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라면, 모래는 그 모든 것을 부식시키는 힘을 지닌 것 같다. 모래 자체가 바위가 서서히 부서져서 생기는 것이기에.. 그 속성 자체가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부서지게 하고 흐르게 한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공감이 같다.

그러나, 고작 모래 이야기를 하자고 이런 책을 썼을까?? 도대체 이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어디 있을까 싶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을을 지키겠다는 주민들의 욕심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다 모래를 퍼 올리면서 인생 전부를 허비하고 있는 불쌍한 한 남자 이야기가 무슨 세계 명작일까?  공포 영화 소재로나 딱 알맞을 것 같은데.. 예를 들자면 쏘우 시리즈나 큐브 시리즈 같이 자신이 왜 거기에 잡혀 왔는지도 모르는 채 끌려왔지만, 마지막에는 납치범들의 의식과 동화되어 버려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불쌍한 남자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뒤에 비평글을 읽었다. 모래 속에서 모래에 맞게 자신을 변형시킨 벌레를 채집하러 떠난 남자가 벌레는 채집하지 못하고 스스로 모래 속에 맞는 인간으로 돌연변이를 일으켜 살아간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소설의 첫 등장 부문과 끝나는 부분의 이야기의 아귀가 비로소 맞는 것도 같다..  

하지만, 암튼.. 기괴하다고 해야 하나.. 모래 속 마을 사람들의 삶 전부가 마치 시지프스 같다. 끝없이 무거운 바위를 밀어 산을 올라야 하는 계속 되는 고통과 형벌..  개개인의 삶이 희생되어서 지켜지는 마을 전체의 안녕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일본이라는 나라, 그 민족의 사고 방식 속에 전체를 위해 개개인의 희생은 때로는 불가피하다는 게 배어 있는 모양이라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난 그런 전체가 무섭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